킬링 로맨스’ 포스터
필자는 이 영화가 극장에서 금방 자취를 감출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개봉 2주 차에 역주행이 시작됐다. MZ 관객 사이에서 ‘여래바래 4기’라고 불리는 팬덤이 형성되더니 싱어롱 상영회가 열렸다. 또 N회차를 인증하는 SNS 게시물이 쏟아지며 ‘킬링 로맨스’의 평점은 오르기 시작했다. 이처럼 영화 평점이 회복된 경우는 이례적이다. ‘킬링 로맨스’는 컬트영화의 반열에 올랐지만 총 20만 관객을 동원하며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데는 실패했다.
2023년 개봉한 영화 ‘킬링 로맨스’. 병맛 개그 코드와 황당무계한 설정으로 호불호가 갈렸다.
‘킬링 로맨스’를 사랑하는 이유는 뻔뻔한 태도에 담긴 선한 마음 때문이다. 이 영화에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쥬라기 공원’,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싸이코’ 등 고전 명작의 이미지가 케이블 홈쇼핑 광고, 노래방, 대학로 뮤지컬, 인터넷 밈과 공존한다.
범우와 여래, 여래의 팬클럽 여래바래 3기가 조나단 나와 최후의 결전을 벌이는 장면을 살펴보자. 조나단 나가 “리슨!”이라고 소리치자 느닷없이 H.O.T.의 ‘행복’이 재생되고 노래방에서 봤을 법한 궁서체의 곡 제목과 작사·작곡가 자막이 나오기 시작한다. 조나단 나가 노래를 부르며 여래를 유혹하자 범우와 여래바래 3기는 비의 ‘Rainism(레이니즘)’을 개사한 ‘여래이즘’으로 노래방 배틀에 응수한다. 이때 영화와 노래방 뮤비가 어우러지듯 오타쿠와 가스라이팅 피해자, 학대당한 동물이 어우러지는 기적의 순간이 펼쳐진다. 이 장면은 인터넷 밈의 미학과 맞물려 있다. 인터넷 밈은 여러 이미지의 합성을 통해 제작된다. 그 출처가 무엇이든 한데 어우러져 웃긴 콘텐츠를 만들면 그만이다.
영화, 웹툰 모두 인터넷 밈의 소스일 뿐 위계를 지니지 않는다. 우리는 평소 계층과 출신, 이념 등을 고려해 서로의 위계를 정하는 사고에 익숙하다. 인터넷 밈을 공유하며 즐기는 순간에는 그 위계를 잊을 수 있다. ‘킬링 로맨스’의 윤리적인 아름다움은 거기서 온다. 잠시나마 모두가 하나가 되자는 그 착한 마음에서.
‘킬링 로맨스’에서 ‘조나단 나’로 열연한 故 이선균 배우.
#킬링로맨스 #B급영화 #여성동아
사진제공 다음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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