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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YLE

미국 MZ 사로잡은 엘라 엠호프의 패션 정치

김명희 기자

2024. 09. 24

미국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인기가 치솟고 있다. 옷 잘 입는 의붓딸, 엘라 엠호프도 해리스 후보의 인기를 견인하는 요소 중 하나다.

아디다스 by 스텔라맥카트니의 레드 컬러 시스루 의상을 입고 
멧 갈라에 참석한 엘라 엠호프.

아디다스 by 스텔라맥카트니의 레드 컬러 시스루 의상을 입고 멧 갈라에 참석한 엘라 엠호프.

미국의 여성 기업인이자 칼럼니스트인 티나 산티 플래허티는 재클린 케네디의 라이프스타일에 관한 책 ‘워너비 재키(What Jackie Taught Us)’에서 “옷은 총보다 강한 무기”라고 썼다. 옷을 통해 특정 이미지를 구축하거나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해 대중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재클린 케네디와 미셸 오바마 등 미국의 퍼스트레이디들은 패션 덕분에 팬덤이 생기기도 했다. 이번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로 나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부인 멜라니아 여사는 모델 출신의 압도적인 피지컬에 명품 마니아였기에 걸치는 옷마다 화제가 됐고, 트럼프의 이미지를 고급스럽게 포장하는 데도 일조했다. 트럼프에게 멜라니아가 있다면, 해리스에겐 의붓딸 엘라 엠호프가 있다.

‘해리스–월즈’가 새겨진 야구모자가 눈길을 끈다.

‘해리스–월즈’가 새겨진 야구모자가 눈길을 끈다.

미국 명문 패션 학교인 파슨스디자인스쿨에서 텍스타일을 전공한 후 패션 관련 컨설팅 회사 ‘소프트 핸즈’를 운영하고 있는 엘라 엠호프는 위트 있고 개성 넘치는 스타일로 MZ세대의 열광을 이끌어내고 있다. 엘라는 해리스 부통령의 남편이자 변호사인 더글러스 엠호프와 영화감독 커스틴 엠호프의 1남 1녀 중 둘째다. 더글러스는 커스틴과 2008년 이혼하고 카멀라 해리스와 2014년 재혼했다. 엘라가 대중의 주목을 받은 건 2021년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 때부터다. 당시 빨간색 곱슬머리에 호박색 스톤으로 장식한 미우미우의 체크무늬 코트를 입은 엘라는 만화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비주얼로 단숨에 스타일 아이콘이 됐고, 취임식 일주일 후 미국 최대 모델 에이전시 IMG와 계약했다. 아이반 바트 IMG 회장은 당시 엘라에 대해 “모델은 외모와 사이즈만이 아니라 대중과 소통하는 법을 아는 게 중요하다. 엘라는 의상을 에지 있고 현대적으로 소화하며 대중과 소통하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평했다.

2021년 2월 뉴욕패션위크에서 프로엔자슐러의 모델로 런웨이에 데뷔한 엘라는 이후 세실리에반센, 콜리나스트라다 등 개성 강한 브랜드의 무대에 섰고, 2021년에는 아디다스 by 스텔라맥카트니 드레스를 입고 멧 갈라에 참석하기도 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이 개최하는 패션 행사인 멧 갈라는 매년 특정 주제를 제시하는데, 2021년의 주제는 ‘미국의 예술작품을 닮은 패션(In America: A Lexicon of Fashion)’이었다. 엘라는 미국 여류 화가 조지아 오키프의 1923년 작품 ‘레드 칸나’에서 영감을 받은 레드 컬러의 시스루 톱과 바지를 입었는데, 그녀의 대담한 스타일링은 그해 멧 갈라에 참석한 수많은 셀럽의 착장 가운데 단연 눈길을 끌었다.

문신, 파워 인플루언서가 디자인한 의상 등으로 MZ 목소리 대변

틱토커 조안도히르시가 디자인한 의상을 입고 민주당 전당대회에 참석한 엘라 엠호프.

틱토커 조안도히르시가 디자인한 의상을 입고 민주당 전당대회에 참석한 엘라 엠호프.

이렇듯 패션계에서 입지를 다져가던 엘라 엠호프를 다시 정치 무대로 소환한 건 아이러니하게도 해리스의 라이벌인 공화당 캠프 쪽이다. 부통령 후보로 발탁된 J. D. 밴스 상원의원이 과거 해리스를 ‘캣 레이디(cat lady)’라고 비난한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캣 레이디는 사전적으로는 자녀를 낳지 않고 고양이를 키우며 사는 여성을 의미하지만, 밴스의 발언에서는 ‘미국의 미래에 기여하지 않는 이기적인 여성’이라는 뜻으로 해석됐고 이는 곧 수많은 여성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35만 명의 팔로어를 보유한 엘라는 즉각 자신의 SNS에 “나는 3명의 부모(더글러스, 커스틴, 해리스)를 모두 사랑한다. 나와 오빠가 있는데, 어떻게 (해리스가) 자식이 없는 사람이 될 수 있냐”며 밴스의 발언을 반박했다. 8월 22일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는 지지 연설에 나서 “내가 14세 사춘기였을 때 해리스가 내 삶에 들어왔다. 그녀는 인내심 있고 배려심이 많았으며 항상 나를 진지하게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1 대학에서 텍스타일을 전공한 엘라 엠호프는 자신이 제작한 
니트 제품을 선보이는 팝업을 열기도 했다. 2 3 4 엘라는 모델로 런웨이에 서거나 패션 행사에 셀럽으로 참석하기도 한다.

1 대학에서 텍스타일을 전공한 엘라 엠호프는 자신이 제작한 니트 제품을 선보이는 팝업을 열기도 했다. 2 3 4 엘라는 모델로 런웨이에 서거나 패션 행사에 셀럽으로 참석하기도 한다.

여성 비하 논란으로 번진 캣 레이디 발언과 트럼프 대통령 시절 연방대법원이 보수화되면서 낙태법이 강화된 것을 계기로 수많은 여성이 공화당에 등을 돌렸고, 민주당이 그 수혜를 고스란히 안게 됐다. 해리스 캠프에 따르면 지난 7월 모금한 선거 자금 3억1000만 달러(약 4127억 원) 중 60%가 여성이 기부한 것이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의 전 부인이자 게이츠와 함께 자선 재단을 설립해 운영해온 멀린다 게이츠, 2011년 사망한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의 아내인 로렌 파월 잡스, 셰릴 샌드버그 전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COO), 팝스타 비욘세 등 자산가도 기부에 나섰지만, 십시일반 소액 기부도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가운데 젊고 시크한 이미지의 엘라 엠호프가 선거 캠페인에 적극 참여하면서 MZ세대 여성의 강한 결집을 이뤄내고 있다.

하이패션과 스트리트 패션을 조합한 엘라 엠호프의 독특한 스타일은 트럼프 캠프 여성들의 고전적인 글래머러스 룩과 대비되며 더욱 참신해 보인다. 엘라는 8월 19일 민주당 전당대회 첫날에는 헬무트랭의 민소매 원피스에 민주당 후보 이름인 해리스–월즈(Harris–Walz)가 새겨진 야구 모자를 매치했다. 자연스럽게 노출된 문신과 너드가 연상되는 프레임 큰 안경, 야구 모자의 조합은 그녀 세대의 목소리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듯했다. 8월 20일 전당대회에서는 시그니처 암 밴드와 섬세한 체크 패턴이 돋보이는 톰브라운의 네이비 컬러 슈트에 산뜻한 화이트 버튼다운 셔츠, 네이비 넥타이를 매치했다. 미국 토종 브랜드 톰브라운은 2013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두 번째 취임식에서 미셸 오바마가 해당 브랜드의 드레스 앙상블을 착용한 것을 비롯해 오랫동안 민주당 인사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어왔다. 조 바이든 대통령의 부인 질 바이든도 2020년 대선 캠페인 기간 내내 톰브라운 블레이저를 즐겨 입었다.

8월 22일 전당대회 마지막 날에는 300만 팔로어를 보유한 틱톡 인플루언서 조안도히르시가 디자인한 맞춤 드레스를 입었다. 연한 블루 컬러의 비대칭 톱과 드롭트 웨이스트라인에 핸드 주름 튈이 돋보이는 여성스러운 화이트 스커트, 코바늘로 직접 뜬 어깨끈 장식과 발레 슈즈의 조합은 여성이 강해 보이기 위해 남성적인 옷을 입을 필요가 없는, 새로운 파워 드레싱 시대의 문을 여는 듯했다.

보수 백인 남성 트럼프와 진보 흑인 여성 해리스가 박빙의 승부를 겨루고 있는 미국 대선이 엘라 엠호프의 등장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그녀를 통해 패션의 힘이 어디까지인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하다.


#해리스 #미국대선 #엘라엠호프 #여성동아

‌사진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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