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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인생 사용설명서 여섯 번째 | 연애소설을 쓰다

“21세기엔 사랑도 SNS로 배달됩니다”

미투데이 한 줄 글이 맺어준 서현정 ·추지호 부부

글 | 권이지 객원기자 사진 | 홍중식 기자

2012. 04. 17

SNS에서는 수많은 글이 오가며 초 단위로 스쳐 지나간다. 한 끗 차이로 보지 못할 수도 있었지만 ‘단 한 줄’의 글이 두 사람의 인생을 운명이라는 붉은 실로 묶었다.

“아휴, 이 철없는 손가락아”… 그 여자 이야기

“21세기엔 사랑도 SNS로 배달됩니다”


2007년 12월 28일. 한 해가 3일밖에 남지 않아 더욱 쌀쌀한 겨울. 왠지 모르게 무료했다. 미술학원에서 수강생들과 씨름하느라 몸과 마음이 지쳤다. 머리나 식힐 셈으로 들어간 미투데이. 유난히 눈에 띄는 글이 있었다.
“영화 티켓 2장이 생겼는데 함께 보러 갈 사람이 없어 양도합니다.”
아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쓸쓸함이 절절히 묻어나는 글에 마음이 살짝 흔들렸다. 하지만 공짜에는 머리보다 손이 먼저 반응하는 법. “저한테 주세요!”라고 댓글을 달고 말았다. ‘안녕하세요?’라는 인사와 함께 시작한 첫 대화. “영화 티켓 직접 받아야 하나요?”
“네, 아니면 보내드릴까요?”
보내줄 수도 있다는데, 편한 방법을 두고 왜 굳이 만나서 받아야 한단 생각이 들었을까. 손가락은 키를 하나씩 눌러대며 뭔가 제멋대로 문장을 만들고 있었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엔터 키를 누른 후였다.
“저랑 같이 영화 보실래요?”
직접 앞에 대고 말하는 것도 아닌데 볼이 잔뜩 빨개졌다. ‘아이고, 아이고 이 바보, 내가 왜 그랬을까?’란 생각이 들었지만 되돌릴 수는 없었다. ‘혹시 몰라. 내게도 좋은 사람이 나타날지 모르잖아?’라고 생각하며 눈을 딱 감고 한마디를 덧붙였다.
“사실 저도 같이 볼 사람이 없거든요.”

“추워서 떤 거 아니야, 당신 때문이지”… 그 남자 이야기
주 7일 근무, 철야와 야근의 반복. 사회생활 초년생은 사람이 고팠다. 우연히 생긴 영화 티켓이지만 볼 사람이 없어서 양도하려고 했는데 잘 모르는 사람이, 심지어 여자가 내게 영화를 보자고 했다. 말뿐이라도 고마웠다. 그만큼 누군가를 만나고 싶었던 마음이 컸으니까. 평범한 한 주였다면 아마 꿈도 못 꿨을 영화인데, 이 바쁜 연말에 일주일이나 특별 휴가를 준 회사에 마음속 깊이 고마웠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 31일. 약속 장소를 잡고 나서야 기억했다. 1년 중 가장 많은 사람이 제야의 종소리를 듣기 위해 종로에 모여드는 날임을. 수많은 커플들이 손에 손을 잡고 온기를 뿜어내고 있었지만 정신 못 차릴 만큼 날씨가 추웠다. 온몸을 떨며 만나기로 한 곳에 가서 전화를 걸었다. 한 번도 얼굴 본 적 없는 사람과의 첫 대면이라니. 호기심 반, 설렘 반.
“저 지금 도착했어요. 어디 계세요?”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순간, 은행 ATM 부스 안에서 한 여자가 고개를 돌렸다. 심장이 쿵하고 한 번 떨어지더니 몸둘 바를 모르게 됐다.

만남은 운명, 하지만 사랑은 의지



“21세기엔 사랑도 SNS로 배달됩니다”


소설 같은 그들의 첫 만남은 ‘인연’이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니었을까. 이 연애담의 여주인공 서현정(31) 씨는 남자의 착해 보이는 인상에 한눈에 반했다. 처음 보자마자 ‘잘해 보고 싶다’란 생각이 들었던 것은 남편 추지호(31) 씨도 마찬가지. 영화를 보고 헤어진 뒤 집에 오는 길에 지호 씨는 현정 씨 얼굴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고 했다.
“제가 외롭긴 외로웠나 봐요(웃음). 좋은 사람이면 좋고, 아니면 말자는 마음가짐으로 나갔는데, 단 한 번의 만남에 ‘잘해보고 싶다’란 생각을 했으니까요. 얼마나 가슴이 떨렸는지 지금도 떨려요. 제가 소심한 편인데 어떻게 용기가 났는지 만나자고 했어요. 거절당할까봐 얼마나 조마조마했는데요.”
첫 만남까지가 조금 특이했을 뿐이지, 그들의 연애 자체는 평범했다. 다만 그들의 이야기는 꾸준히 SNS에 기록됐다. 좋았던 일, 슬펐던 일 모두. 1년 4개월의 연애 기간과 결혼, 임신에서 출산 그리고 육아까지 두 사람의 계정에 고스란히 남았다. 둘의 기록뿐 아니라 이들 부부는 첫아이를 가진 뒤 첫째 이준이의 미투데이 계정을 만들고 아이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었다. 출산 뒤에는 자연스레 육아일기로 바뀌었다. 이들 부부에게는 만남의 계기도 됐지만, 기록할 수 있는 공간도 됐다. 지호 씨는 SNS를 이용하면 부부간의 애정 표현도 좀 더 자연스럽게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나라 보통 남자들이 ‘사랑한다’나 ‘고맙다’는 말을 잘 표현하지 못하잖아요. 하지만 저는 쑥스러움을 글로 반감시킬 수 있었어요. 미투데이에 ‘고마워, 현정아’ 하고 글을 쓰고 집에 들어가서 말하면 덜 부끄럽더라고요. 연습이 되는 셈이죠.”
부부는 SNS로 시시콜콜한 일상부터 장 봐오라는 부탁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을 주고받는다. 보통 밖에서 일하는 남편들은 집에서 아내가 얼마나 힘든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현정 씨는 육아의 어려운 점이나 힘들었던 일을 솔직하게 올리는 편인데, 그 글을 보고 지호 씨는 아내가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있다는 것 역시 장점으로 꼽았다.
“배우자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나 심리 상태 같은 걸 알 수 있으니까 서로 더 잘 이해하고 배려하게 돼죠.”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는 법. 현정 씨는 SNS로 열심히 대화하다 보니 정작 남편이 집에 오면 별로 할 이야기가 없다는 점과, 자신의 몸과 마음이 힘들어서 글을 쓰면 소심한 남편이 그 글을 보고 하루 종일 걱정할 걸 생각해 때로는 SNS에 정직하게 모든 것을 털어놓을 수 없는 점(?)을 단점으로 꼽았다. 그래도 손을 놓을 수 없는 것은 이들 부부의 일상이 하나의 책처럼 기록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디지털을 구성하는 0과 1이라는 두 숫자, 이 숫자가 문자가 되고, 문자의 공유를 통해 감정이 만들어지고, 커진다. 이들 부부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 다시금 알 수 있었다. 사랑이란 아주 사소하게 시작해, 두 사람의 인생을 한데 엮는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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