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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TYLE

Health People | 사춘기의 재발견

‘마음’이 아니라 ‘뇌’를 치료하라! 김영화 서울 강동소아정신과 원장

사춘기, 부모와 아이의 전쟁

글·김현미 기자 사진·지호영 기자, 동아일보 사진DB파트

2011. 09. 07

툭하면 말대꾸하고 폭력적인 아이, 게임만 하고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 매일 책상에 앉아 있는데 성적은 자꾸 떨어지는 아이, 밥만 먹으면 짜증을 내는 아이, 불러도 대답 없고 매사에 무관심한 아이…. 사춘기 자녀의 뇌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마음’이 아니라 ‘뇌’를 치료하라! 김영화 서울 강동소아정신과 원장


지난해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일본에서 건너온 ‘중2병’이라는 말이 크게 유행했다. 15세 안팎인 중학교 2학년은 본격적인 사춘기로 이 연령대에서 겪는 심리적 변화를 ‘중2병’이라는 신조어로 표현한 것이다. ‘중2병’ 테스트라는 것도 있다. ‘나는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우울증에 걸렸다고 생각한다’ ‘뭐든지 네거티브하게 보는 성향이 깊다’ ‘주먹으로 벽을 치거나 가래침 뱉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언제나 무뚝뚝한 표정으로 남들을 바라본다’ ‘인수분해 따위가 인생에 무슨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다’ ‘샐러리맨은 되고 싶지 않다’와 같이 매사에 자신은 특별하다고 여기고, 세상에 대해 불만을 품고, 냉소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 ‘중2병’의 특징이다.
어찌 보면 사춘기의 기본적인 성향과 크게 다르지 않은 ‘중2병’에 많은 이들이 열광한 까닭은, 사춘기라는 용어가 ‘2차 성징’과 같은 신체적 변화에 치중했다면 ‘중2병’은 자의식, 반항, 불안, 냉소, 고독과 같이 심리적 변화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중2병’에 걸린 어른이 늘고 있는 현실에 있다. 실제 국내에서는 ‘중2병’이 나이에 관계없이 자의식 과잉, 무개념, 허세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다.

‘중2병’ 유행과 사춘기의 연장
김영화 서울 강동소아정신과 원장(53)은 일찌감치 사춘기가 연장되고 있는 현상에 주목해, 지금까지 밝혀진 연구 결과와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부모를 위한 지침서인 ‘사춘기 뇌가 위험하다’(해피스토리)를 썼다.
“흔히 12~18세 사이에 있는 10대를 청소년이라고 하고 이 시기를 사춘기라고 합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사춘기가 만 10세에서 24세까지로 늘어났어요. 신체적으로 2차 성징이 나타나는 시기는 점점 빨라지고 있죠. 여아는 10세, 남아는 11세 정도면 사춘기가 시작돼요. 과거에 비해 영양 상태가 좋아서 신체적으로 일찍 성숙하고, TV와 인터넷 등으로 시각적 자극을 많이 받는 것도 사춘기가 빨라지는 원인이죠. 그러나 사춘기가 빨리 시작됐다고 해서 빨리 끝나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요즘은 20대 중반까지 사춘기가 계속됩니다. 현대사회의 핵가족화, 과보호, 교육 기간의 연장 등이 사춘기가 길어지는 원인입니다. 이것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에요.”
이러한 사실은 사춘기 청소년들의 뇌를 촬영한 결과로 입증됐다. 김 원장의 설명에 따르면 과거 심리학자들은 아이들이 중학생이 될 무렵이면 기본적인 사고 능력을 지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뇌 영상촬영기술의 발달로 사춘기 청소년의 뇌를 직접 들여다 봄으로써 청소년기의 뇌 발달이 훨씬 오랜 기간 동안 진행돼 20대 중반이 돼야 뇌가 비로소 어른과 같은 상태로 성숙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요즘 청소년들의 뇌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사춘기 뇌의 특징을 다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 사춘기 뇌는 계속 자라고 있다
아이와 어른은 뇌에서 1~2% 정도의 세포를 가지치기한다. 하지만 청소년기의 뇌는 엄청나게 많은 세포를 만들어냄과 동시에 세포 연결의 15% 정도를 가지치기로 잘라낸다. 따라서 많은 양의 정보를 받아들이면서도 한편 잃어버리기도 한다. 하루는 갑자기 어른스러운 말을 하다가도 다음 날은 그 생각을 잊고 다시 어린아이가 되는 것은 이러한 뇌 세포의 변화 때문이다.

2 사춘기 뇌는 ‘제2의 탄생기’에 있다

‘마음’이 아니라 ‘뇌’를 치료하라! 김영화 서울 강동소아정신과 원장

사춘기에 접어든 자녀를 이해하려면 이 시기 뇌의 변화에 대해 먼저 알아야 한다고 말하는 김영화 원장.





사춘기 뇌는 계속 자라고 있을 뿐 아니라 구조도 성인의 뇌와 다르다. 전두엽은 뇌의 가장 앞쪽에 자리 잡은 뇌로 어떤 일을 하기 전에 먼저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합리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곳이다. 또 충동적이고 부적절한 행동을 하기 전에 브레이크를 걸어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청소년기가 되면 이 전두엽이 발달하기 시작해 20대 중반에 완성된다. 그전까지는 원시뇌가 작용하는데 이 뇌는 원시시대부터 주위의 위험을 알아차리고 자신을 보호하는 생존에 중요한 기능을 한다. 사춘기 청소년들이 정리정돈이나 의사 결정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충동적으로 행동하며 참을성이 없는 것은 이러한 뇌의 구조적 변화 때문이다.

3 정신 장애, 부모 탓이 아니라 뇌 기능 장애다
과거 정신분석 이론 중심의 정신 장애 연구는 부모의 잘못된 양육 방식이나 어릴 적에 받은 마음의 상처에 의해 아이들이 심리적인 고난을 겪는다고 믿었다. 그러나 최근 뇌 과학자와 정신과 의사들이 뇌신경을 분석하고 연구한 결과, 뇌에 장애가 있는 아이들이 정신 장애를 겪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또한 우리 몸속에 분비되는 엔도르핀이나 세로토닌 같은 신경 전달 물질이 뇌신경 세포를 자극해 개인의 기분과 감정은 물론이고 행동에도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러므로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학습장애, 틱장애, 불안장애와 같은 뇌 기능 장애를 숨기거나 방치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진단을 받고 치료를 해야 한다.

귀여운 악동인 줄 알았더니 품행장애

‘마음’이 아니라 ‘뇌’를 치료하라! 김영화 서울 강동소아정신과 원장


이러한 발견은 사춘기 자녀와 전쟁 아닌 전쟁을 치르고 있는 부모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무엇보다 “그아이 머릿속에 뭐가 들어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며 포기하거나 대책 없이 “내 탓이오”라며 한탄하는 대신, 사춘기 자녀의 충동적이고 반항적인 행동을 이해하고 대화할 방법을 찾게 된다. 또한 자녀의 뇌 기능 장애를 일찍 발견하고 적극적으로 치료를 할 수 있다. 김 원장은 “뇌 기능 장애는 몸의 질병이라는 점에서 감기와 다를 바 없다”며 “감기 같은 작은 병도 오래 방치하면 폐렴이나 여타 질환으로 악화되듯 뇌 기능 장애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한다.
“요즘 청소년들은 신체적으로 다 큰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정신적으로 미숙한 상태예요. 이런 불균형 때문에 오히려 정신 장애가 늘고 있습니다. 또 청소년기에 이미 성인의 정신 질환이 모두 나타나요. 모든 병이 그렇듯 조기 발견, 조기 치료가 제일 중요하죠. 사춘기 반항이려니 하고 그냥 넘기면 안 됩니다.”
그렇다면 정상과 비정상의 차이는 무엇일까. 김 원장은 “현실 적응력의 문제”라고 말한다.
“단순한 반항이 아니라 학업에 문제가 생기고, 조직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학교를 안 가고, 물건을 빼앗거나 훔치고, 폭력을 행사하는 등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데까지 이르면 정상은 아닌 거죠. 흔히 친구들을 때리고 불장난을 하고 동물을 학대하는 등 거친 행동을 하는 아이를 ‘악동’이라고 하는데, 악동이라는 말에는 귀엽다는 느낌도 있지만 이런 아이들을 치료하지 않고 그대로 두면 비행 청소년이 될 가능성이 높아요. 이처럼 충동적이고 공격성이 강한 아이들은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품행장애’로 진단합니다. 이런 아이들은 충동 행동을 조절하는 뇌의 전두엽이 손상된 경우가 많고, 보통 아이들에 비해 뇌 신경 전달 물질인 세로토닌 수치가 훨씬 낮게 나타났다는 연구 결과도 있어요.”

★ Check Point!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가 지켜야 할 7가지 수칙
1. 해로운 환경에서 방패막이 돼라 요즘 청소년들은 지나친 자극에 일찌감치 노출돼 쉽게 유혹에 빠진다. 부모는 자녀가 여가 시간에 무엇을 하는지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2. 부모가 ‘뇌의 전두엽’을 대신해 경고하고 주의를 주어라 사춘기가 길어졌다는 것은 부모가 아이를 보호해야 할 시간도 길어졌다는 것을 뜻한다. 자녀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한편, 때로는 적극적으로 개입해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
3. 자녀가 도움을 요청하면 즉시 전문적인 도움을 받도록 하라 자녀가 “우울하다” “죽고 싶다” “공부에 집중할 수 없다”고 고백하면 즉시 전문적인 도움을 받도록 한다. 대수롭지 않은 사춘기 문제로 생각해 방치하면 문제가 더 악화될 수 있다.
4. 자녀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빨리 인정하라 자녀에게 정신적인 문제가 있고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을 빨리 인정해야 한다. 정신 장애는 노력한다고 낫는 것이 아니다.
5. 자녀의 정신 장애에 대해 정확히 알라 사춘기 정신 장애에 대해 알고 나면 자녀의 문제가 부모 탓도 아니고 아이의 잘못도 아니며, 치료가 가능한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된다.
6. 혼자 모든 짐을 지려고 하지 마라 자녀 문제를 자기 탓으로 여기다 부모 또한 스트레스를 받고 우울증이나 불안증이 생길 수 있다.
7. 원만한 부부 관계를 유지하고 부모 스스로 행복해져라 자녀에게 정신적인 문제가 생기면 대부분 부부싸움을 하게 된다. 서로 상대 탓을 해봤자 도움이 안 된다. 부모는 자녀의 치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공동 치료자’가 돼야 한다.

정서적 조숙증은 반항보다 더 위험해
김 원장은 최근 눈에 띄는 현상으로 ‘애늙은이’ 문제도 지적했다.
“‘우리 아이는 너무 의젓해요’라며 자랑하는 부모들이 있어요. 또래 애들과 달리 말도 함부로 안 하고, 늘 부모 눈치를 보죠. 대개 자식을 친구처럼 대하고 어른들끼리 할 이야기를 아이에게 거리낌없이 하며 키웠거나, 부모가 미숙해서 오히려 자식에게 의지하는 경우예요. 이런 아이들을 보면 껍데기만 어른이에요. 속은 허한 거죠. 정서적으로 불안증, 강박증 같은 게 있어요. 정서 발달은 신체 발달과 똑같아서 단계가 있는 법인데 너무 일찍 어른 노릇을 하려니 부담이 큰 거죠. 저는 정서적 조숙증이 더 위험하다고 말해요.”
올 8월부터 ‘정신과’라는 진료 과목이 사라지고 ‘정신건강의학과’로 바뀌었다. 정신 질환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해소함으로써 국민의 정신 건강을 증진시킨다는 취지에서 의료법을 개정한 것이다. 개명 추진 과정에서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우리 국민의 21%가 상담을 받고 싶었으나 실제 상담을 받은 경우는 7%에 불과하다는 결과도 나왔다. “실제 정신건강의학과로 바뀐 뒤 달라진 게 있느냐”고 묻자 김 원장은 “뭐가 달라진 것 같냐”고 되묻는다.
“제가 레지던트를 할 때까지만 해도 정신병이라고 하면 안수기도와 굿을 할 정도였어요. 정신과 치료를 받더라도 병원에 다니는 사실을 철저히 숨겼죠. 요즘 젊은 부모들은 자녀가 공부를 더 잘하도록 학습클리닉을 찾는 시대니까 많이 변했지요. 그러나 몇몇 지역의 학교와 보건소에서 정신보건사업의 일종으로 초등학생들의 집중력장애, 우울증 등을 스크린하여 학생들의 정신 건강을 지키고자 했으나 일부에서 인권 침해라고 반대하는 것을 보면 안타깝죠. 치료가 필요한 아이들을 빨리 찾아내서 도움을 줄 수 있을 텐데…. 또 정신 질환 병력이 있으면 보험 가입이 어려운 문제도 빨리 해결해야 해요. 외부 강연을 하면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상담을 받고 싶은데 병력이 남으면 어떻게 하느냐는 거예요.”
김영화 원장은 이화여대 의과대학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서울대 소아정신과 전임의를 수료했다. 미국 유타주립대 소아정신과 임상의, 유타 주 PCMC(Primary Children’s Medical Center) 임상의 등을 거쳐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로 활동 중이다. 특히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이 유난히 말이 늦고, 자폐·학습장애로 어려움을 겪거나 중도에 학업을 포기하는 사례가 많은 것을 보고 이들에 대한 지원 방법을 모색하면서 사춘기 청소년의 문제에도 더 깊은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 Information
사춘기 성교육 어떻게 할까
“네 몸은 아주 소중하단다”

‘마음’이 아니라 ‘뇌’를 치료하라! 김영화 서울 강동소아정신과 원장

청소년 전문 상담가이자 교육자인 저자들이 쓴 ‘사춘기 소녀’와 ‘사춘기 소년’은 구체적인 성 관련 지식을 전달하면서 왜 그것을 알아야 하는지 그 이유까지도 알려준다.



가슴이 커지고 음부와 겨드랑이에 털이 나고 생리를 한다. 여드름이 나고 고환이 커지고 목소리가 변한다. 어느새 ‘야동’을 보고, 자위를 하고, 이성교제를 하는 아이들. 이럴 때 부모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명화 아하!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장은 “먼저 아이 또한 성적인 느낌, 감정, 반응을 가지고 있는 성적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인식 아래 몸과 마음의 변화를 혁명적으로 경험하는 사춘기 아이들을 위해 차분하고 친절하게 대화로 풀어가는 성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청소년 전문 상담가이자 교육자인 저자들이 쓴 ‘사춘기 소녀’와 ‘사춘기 소년’은 구체적인 성 관련 지식을 전달하면서 왜 그것을 알아야 하는지 그 이유까지도 알려준다. 예를 들어 ‘사춘기 소녀’ 편에서 9세 무렵 막 사춘기가 시작되는 소녀들에게 자신의 몸을 자세히 관찰할 것을 권한다. 손거울로 자신의 다리 사이에 3개의 구멍을 확인해볼 수도 있다. 외음부라고 하는 이곳에 왜 입술처럼 주름이 있는 피부가 있을까. 세균 감염으로부터 질을 보호하고 출산 시 아이가 안전하게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능을 한다는 설명이 따른다. 월경에 대해서는 넉넉하게 지면을 할애하는데 일반 생리대와 탐폰의 장단점을 비교한 부분이 매우 실질적이다.
‘사춘기 소년’ 편에서는 나이에 따라 음모의 숱이 어떻게 짙어지는지 삽화로 보여주고 음경과 고환의 형태, 발기하는 원리 등이 자세히 나온다. 소녀 편에 비해 성적 환상과 섹스에 대한 설명이 많은 것이 특징. 13장 ‘여자아이와 가까워지기 위한 힌트’에서는 장난감보다 또래 여자아이들에게 자꾸 눈길이 가는 사춘기 소년의 솔직한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두 책 모두 아하!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에서 감수했다.
·사춘기 소녀, 수샨 모브세시안 지음, 윤운영 옮김, 걷다, 1만8천원
·사춘기 소년, 제프 프라이스 지음, 손희정 옮김, 걷다, 1만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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