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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촬영 뒷얘기

화제의 미니시리즈 ‘장밋빛 인생’ 만든 김종창 PD

“드라마 준비하는 동안 머리는 뽀글뽀글, 옷은 후줄근하게 입는 문제로 진실씨와 참 많이 다퉜어요”

글·김명희 기자 / 사진ㆍ조영철 기자

2006. 02. 08

지난해 방영돼 화제를 모은 KBS 미니시리즈 ‘장밋빛 인생’을 연출한 김종창 PD. 최진실을 주인공으로 캐스팅해 드라마를 성공으로 이끈 그가 들려주는 ‘장밋빛 인생’ 뒷얘기 & 아내와 함께 만들어가는 자신의 인생 이야기.

화제의 미니시리즈 ‘장밋빛 인생’ 만든 김종창 PD

‘첫사랑’ ‘애정의 조건’ 등 화제의 드라마를 만든 베테랑 연출자 김종창 PD.


지난해 4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전국을 울음바다로 만들었던 KBS 미니시리즈 ‘장밋빛 인생’을 연출한 김종창 PD(41). 1991년 KBS에 입사, ‘첫사랑’ ‘노란 손수건’ ‘애정의 조건’ 등 화제의 드라마를 연출해온 그는 그러나 “‘장밋빛 인생’이 시청률 면에서 대박이 난 건 약간 의외였다”고 털어놓았다.
“그동안 다른 드라마를 통해서 장사를 잘했어요. 그래서 ‘장밋빛 인생’에서는 시청률과는 상관없이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인생의 쓸쓸한 부분, 그중에서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부부라는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었죠. 부부라는 게 참 묘하잖아요. 피를 나눈 부모 형제보다 더 애틋하다가도 돌아서면 남보다 더 냉정해지기도 하니까요.”
‘장밋빛 인생’은 최진실의 출연 문제로 준비 단계부터 난항을 겪었다. 그와 문영남 작가는 일찌감치 맹순이 역에 최진실을 점찍어 두었지만 주변의 반대가 심했던 것.
“당시 최진실씨는 개인적인 아픔을 겪고 있었을 뿐 아니라 세상의 시선으로부터도 썩 좋지 않은 상황에 놓여 있었어요. 또 ‘그동안 귀엽고 깜찍한 역할을 주로 해왔던 그가 남편에게 버림받고 처절하게 죽어가는 맹순이를 연기할 수 있을까’라는 우려도 있었고요. 제 아내조차도 최진실을 캐스팅하면 집을 나간다고 했으니까요(웃음).”

부부싸움 과격하게 하라는 주문 받고 “이렇게 싸우지는 않았다” 말하면서도 이단 옆차기 보여준 최진실
김종창 PD는 “당시 최진실을 캐스팅하는 것은 화약고를 지고 불에 뛰어드는 것과 마찬가지였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배우로서의 역량과 열정을 감안한다면 가치 있는 일이라고 판단, 위험을 감수하고 출연시키기로 했다”고 한다.
“일단 캐스팅을 확정하고 나서는 진실씨에게 기존의 예쁘고 깜찍한 모습은 절대 피할 것, 아줌마로 완전히 망가질 것, 작가와 연출자를 무조건 믿고 따를 것 등을 요구했어요. 그리고 대신 드라마가 끝나면 배우로서 부쩍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약속을 했죠.”
그의 의도대로 최진실은 철저하게 맹순이 역에 빠져들었고 덕분에 슬럼프를 극복하고 안정적으로 컴백할 수 있었다.
“20년 가까이 인기를 누려온 톱스타가 마음을 비우고 신인의 자세로 돌아가는 게 쉽지만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드라마를 준비하며 저와 많이 싸웠어요(웃음). 머리도 더 뽀글뽀글 볶고 옷도 더 후줄근한 걸로 준비하라고 다그쳤죠. 그러는 과정 속에서 진실씨도 자연스럽게 맹순이에 동화됐고 그 덕분에 드라마도 성공할 수 있었어요.”
그는 “‘장밋빛 인생’을 통해 40대 초반의 나이에 꼭 한 번 해보고 싶었던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그래서 더 진실하게 접근할 수 있었다”고 한다. ‘장밋빛 인생’은 자신이 만든 드라마 중에서 가장 치열하고 정직하게 세상과 마주한 작품이라는 것.
부부 문제를 다룬 드라마다 보니 일부에서는 이혼의 아픔을 겪은 최진실의 개인사가 맹순이에 오버랩되면서 드라마 시청률이 올라가지 않았느냐는 분석도 있다. 이에 대해 김 PD는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시청자 입장에서는 드라마와 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아슬아슬함이 TV를 시청하는 큰 즐거움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화제의 미니시리즈 ‘장밋빛 인생’ 만든 김종창 PD

“촬영하면서 진실씨와 부부 문제나 살아가는 얘기 등에 관한 대화를 많이 해서 공감대를 넓혔어요. 맹순이가 반성문에게 이단 옆차기를 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실제로 부부싸움을 하는 것처럼 과격하게 싸우라고 주문을 했더니 진실씨가 “저희 이렇게 때리면서 싸우지는 않았어요”라며 받아치면서도 연기를 잘 해내더라고요. 진실씨도 그렇고 이제 우리가 그런 농담쯤은 스스럼없이 할 수 있는 나이가 된 것 같아요.”

촬영 중엔 집안 전혀 돌보지 못하는 ‘불량 가장’
드라마를 통해서 온 국민을 울리고 웃겼지만 정작 자신은 드라마를 만드는 몇 달 동안 가정을 전혀 돌보지 못한 ‘불량 가장’이었다는 김종창 PD. 92년 결혼한 아내 이미경씨(40)는 그런 남편을 대신해 가정을 이끌어가는 믿음직한 동반자라고 한다.
“아내와는 대학시절 성당 주일교사 활동을 하면서 처음 만나 입사 후 곧바로 결혼했어요. 결혼 초에는 집에서 큰소리도 치곤 했지만 40대로 접어들면서 아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해요. 저와 아들 녀석이 엄마 닭(아내)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병아리 같다는 생각이 들죠.”
그는 2003년 드라마 ‘노란 손수건’을 통해 호주제에 대한 문제를 제기, 여성부로부터 남녀평등상 대상을 수상했으며 후속작인 ‘애정의 조건’이나 ‘장밋빛 인생’에서도 여성의 편에 서왔다. 이는 많은 여성들이 그의 드라마에 공감하고 열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에서는 여성들이 피해자일 수밖에 없잖아요. 작품을 통해서나마 그런 문제들을 짚어보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런 작품을 만들면서도 집에 가서는 어쩔 수 없이 ‘물 떠와라’ ‘밥 차려 와라’라고 시키는, 가부장적인 남편이죠(웃음).”
스스로 보수적인 남자라고 말하는 그는, 그러나 아내 이야기가 나오는 대목에서는 목소리부터 부드럽게 변했다. 13년간 변함없이 자신의 옆자리를 지켜준 아내에 대한 고마움이 전해졌다.
“한 달에 한 번 집에 들어갈까 말까 한 남편과 살아주는 것만도 고맙죠(웃음). 사실은 아내도 현장 스태프나 다름없어요. 스태프들은 밥도 해다 주고 같이 술 마시면서 고민도 들어주고 하니까 저보다 아내를 더 좋아하는 것 같아요. 또 대본이 나오면 가장 먼저 아내에게 보여주고 자문을 구하는데 어떨 때는 이웃 아줌마들에게 이런저런 얘기들을 듣고 와서 ‘진짜 현실은 이렇다’고 조언을 해주기도 하죠.”
화제의 미니시리즈 ‘장밋빛 인생’ 만든 김종창 PD

드라마를 만드는 동안은 어쩔 수 없이 ‘불량 가장’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김종창 PD. 대신 작품이 끝난 뒤에는 꼭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간다고.


드라마 촬영기간 동안 집안일은 모두 아내에게 맡긴다는 그는 대신 촬영이 끝나면 가족과 함께 여행하며 그간 떨어져 지낸 아쉬움을 달랜다고 한다. 지난 연말에는 20일 정도 터키와 이집트 여행을 다녀왔다고.
“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인데 TV를 통한 간접경험보다는 직접 보여주고 느끼게 해주는 것이 좋다는 게 저희 부부의 생각이에요. 드라마 한 편을 마치고 나면 꼭 가족이 함께 여행을 가죠. 유럽에도 서너 번 다녀왔고 일본에도 다녀왔어요. 매번 비행기 값만 가지고 출발해서 철저히 현지에서 모든 걸 해결하죠. 밥도 직접 해먹고 차도 렌트해서 다녀요. 몇 년 전만 해도 거뜬했는데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조금 힘에 부치네요(웃음).”
여행을 다니느라 집 장만도 못했지만 다행히 아내가 자신의 의견을 따라줘 고맙다는 김종창 PD. 드라마와 삶에 대한 사랑으로 아름답게 물든 그의 모습 역시 장밋빛으로 빛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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