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이세은(23)이 연기한 ‘나미코’가 인상에 남은 탓일까. 바로 코앞에서 본 이세은은 TV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어리고 생기발랄했다. 까맣게 반짝이는 눈망울과 희고 깨끗한 피부, 웃을 때마다 꽃잎처럼 벌어지는 입술이 마치 예쁘고 신비한 이국 여자를 보는 것 같았다.
지난 7월5일 첫 방송된 KBS 주말극 ‘보디가드’에서 ‘공주과’ 모델로 등장하는 이세은은 만나자마자 재잘재잘 드라마 얘기부터 꺼냈다. ‘보디가드’에서 연기하고 있는 ‘한성희’는 톱모델로 부잣집 딸인데 남자를 사냥하는 것이 취미인 여성이라는 둥, 얄미운 캐릭터라서 욕을 많이 먹을 것 같은데 욕을 먹더라도 연기를 잘했다는 소리를 듣고 싶다는 둥, 한참 얘기하다가 또 깔깔거리고 웃었다. 그동안의 마음고생을 훌훌 털어버린 걸까. 표정이 밝고 명랑했다.
이세은은 사실 지난해 12월 ‘야인시대’에 출연한 이후 안재모, 댄스그룹 ‘X라지’의 고재형, 농구선수 김승현 등과 잇달아 스캔들에 휘말리면서 곤욕을 치렀다. 그 과정에서 소속사와 이전 문제로 불화를 겪는 등 마음고생이 심했다. 그 때문일까. 스캔들과 관련된 얘기를 꺼내기가 무섭게 그의 표정이 대번에 어두워졌다.
“저는 그들과 사귄 적이 없어요. 단지 호감만 있었거나 아무 사이도 아닌데 스캔들이 났죠. 심지어 농구선수 김승현씨는 잘 모르는 사람이에요. 제 성격이 솔직하고 직선적이라서 사실이면 떳떳하게 밝힐 텐데 너무도 터무니없는 스캔들이 나니까 황당하더라고요. 한마디로 어처구니가 없었죠. 그건 사실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싫었어요.”
연이어 터진 스캔들에 상처를 받은 모양이다. 마음 같아서는 자신의 억울한 심정을 토로하고 싶었지만 모르는 사람하고까지 스캔들이 나니까 “사실 무근”이라는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더구나 말이라는 게 하면 할수록 왜곡되고 과장되지 않는가. 그래서 입을 꼭 다문 것이라고 한다. ‘남들이 뭐라 하든 나만 깨끗하면 되는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하면서 그에 대한 헛소문이 빨리 잠잠해지기를 간절히 바랬다는 게 그의 고백이다.
그 말을 하는 그의 표정은 무척 우울해 보였다. 악몽처럼 끔찍했던 당시의 상황이 떠올랐기 때문일까. 명랑하던 목소리도 어느새 한풀 꺽여 있었다.
“가족들한테 가장 미안했어요. 언론인이셨던 아버지는 ‘신경 쓸 것 없다, 대범하게 대처하라’고 위로해주셨지만 어머니는 걱정을 많이 하시는 눈치였어요. 잇달아 터지는 스캔들이 사실이 아니라는 걸 믿으셨지만 제가 여자라서 걱정이 됐던 모양이에요. 많이 속상해하셨죠.”
“터무니없는 스캔들이 터질 때마다 가족들한테 가장 미안했어요”
이세은은 그런 일이 있은 후 어머니와 같이 대구 진인동 ‘진인마을’의 한 중증장애인 복지시설을 찾아가 일일 자원봉사를 했다.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간 것인데 “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장애인들에게 밥과 죽을 먹여주고 그들과 같이 손잡고 노래를 부르면서 스캔들로 인한 정신적인 충격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장애인들이 비록 신체적으론 장애가 있지만 정신적으론 보통사람들보다 순수하다는 걸 느꼈다”면서 웃었다.
“(터무니없는 스캔들이 터진 후에) 일부러 방송을 자제했어요. 쉬는 동안 요리와 재즈댄스를 배웠죠. 요리를 배운 이유는 먹는 걸 워낙 좋아하기 때문이에요. 식당에 가더라도 맛있는 음식이 나오면 요리법을 꼭 물어보거든요. 또 운동도 열심히 했어요. 매일 2시간씩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했는데 어떤 날은 너무 심하게 해서 몸살이 날 정도였어요. 하지만 나를 위해서 자기관리를 열심히 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연기자는 촬영에 들어가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기 때문에 한가할 때 하고 싶었던 일, 배우고 싶었던 것들을 배워야지, 안 그러면 자기관리를 할 시간이 없어요.”
이세은은 현재 사귀는 남자친구가 없다고 한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1년 전에 사귀던 남자친구와 헤어졌는데 “사랑에 빠지면 경주마처럼 목표지점을 향해서 달리기만 하는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그야말로 사랑하는 남자 외에는 아무도 눈에 안 들어온다는 뜻인데 나이가 어리기 때문일까. 아직 사랑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고 한다. “막연하게나마 서로 이해해주고 쉽게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것이 사랑인 것 같다”면서 또 깔깔거리고 웃었다.
“제가 원하는 이상형은 남자답고 유머러스하면서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에요. 일할 때에는 프로정신을 갖고 하는 사람, 생각이 어른스러운 사람, 그런 타입을 좋아하지요. 연예인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같은 일을 하면 서로 더 이해해줄 수 있으니까 좋을 것 같아요. 연기자는 특히 밤샘 촬영도 많이 하고 새벽에 일이 끝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일반 남자들이 이해하기에는 좀 어려운 부분이 있거든요. 그런 점에서 보면 같은 연예인이 더 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서로 잘 아니까 힘이 돼줄 것 아니에요.”
친구들이 남자친구와 알콩달콩 연애를 하는 걸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고 한다. 겉으로는 ‘닭살커플’이라고 놀리지만, 속으론 “나도 이상형의 남자와 연애를 해봤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게 솔직한 심정”이라고 털어놓았다.
“싱글들의 가장 큰 적은 외로움이라고 하는데 저는 외로움을 느낄 때마다 영화를 봐요. 친구들을 만나서 수다를 떨 때도 있고 가끔 글을 쓰기도 해요. 워낙 글 쓰는 걸 좋아하거든요.”
좀 의외가 아닐 수 없다. 그에게도 이런 면이 있었던가.
이세은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결혼은, 친구처럼 지내다가 어느날 사랑이 싹터서 결혼을 하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아직 결혼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외로울 때면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부모님과 떨어져서 사는 게 싫고 어머니와 친구처럼 지내기 때문에 더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 결혼하고 싶다고 한다.
“그 일(스캔들 사건)이 있은 후 저 자신도 많이 변한 것 같아요.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도 조심을 하니까요. 선배들은 톱스타가 되려면 터무니없는 스캔들도 즐길 줄 알아야 된다고 하지만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네요. 지금도 그때의 일만 생각하면 억울하고 답답하고 화가 나요.”
이세은은 그 얘기를 더는 하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다시 입을 꼭 다물고 있다가 드라마에 대한 얘기를 시작했는데 ‘보디가드’ 출연을 앞두고 좋은 꿈을 꾸었다고 말하면서 “아마 모르긴 몰라도 앞으로 좋은 일이 많을 것 같다”며 까만 눈망울을 반짝거렸다. 터무니없는 스캔들로 마음고생을 많이 한 이세은, 그 힘든 과정을 겪고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온 그에게선 어느덧 성숙한 여자의 향기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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