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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미지 않아도 매혹적인, 한고은

EDITOR_FASHION 최은초롱 기자 EDITOR_FEATURE 강현숙 기자 김지은

입력 2020.03.24 15:00:02

‘여신’이란 수식어가 맞춤옷처럼 딱 어울렸다. 완연한 봄의 전령사 모습 그대로 오랜만에 카메라 앞에 선 한고은과의 봄바람만큼 따뜻했던 만남.


 원피스 레호. 이어링 르이에. 트렌치코트 문초이.

원피스 레호. 이어링 르이에. 트렌치코트 문초이.

손끝만 뻗어도 드러나는 길고 우아한 보디라인, 호들갑스럽지 않은 미소에서 느껴지는 아우라, 생각에 잠긴 듯 한 템포 늦게 시작하는 느긋한 말투, 아무리 덜어내도 지울 수 없을 세련된 도시 여자의 이미지…. 여기에 말랑말랑 따스한 봄기운이 스몄다고 느낀 건 단순히 기분 탓이 아니었다. 대중에게 배우 한고은은 한껏 깊어진 봄이다. 

한고은의 이미지가 새롭게 각인된 것은 지난 2018년 SBS 예능 프로그램 ‘동상이몽2’에 네 살 연하의 남편과 동반 출연하면서부터다. 평범한 회사원과의 결혼생활, 포장마차에서 소주잔을 기울이고 양 볼 가득 국수를 우물거리는 소박한 일상은 못내 떨쳐버리기 힘들었던 차도녀의 이미지를 단숨에 갈아엎었다. 남편에게 “당신을 만나기 전까지는 살면서 죽는 게 가장 쉽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든 하루를 보냈다. 그러나 당신을 만난 후에는 세상에서 죽는 게 가장 무섭다”는 말로 짠내 가득한 옛 시절에 대한 속내를 내보일 때는 코끝이 찡해지기도 했다.


원피스 미샤. 이어링, 이어커프 모두 프리모떼. 반지 아스트흐. 슈즈 율이에.

원피스 미샤. 이어링, 이어커프 모두 프리모떼. 반지 아스트흐. 슈즈 율이에.

미국 교포 출신 모델로 데뷔 시절부터 주목받았죠. 그 시절에 대한 소회가 궁금하네요. 

재미있는 건 제가 생각하는 한고은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다는 거예요. 사람들은 잘 믿지 않지만 저는 여전히 내성적인 성격이고 제 자신을 설명하거나 표현하는 데 많이 서툰 편이죠. 친구도 많지 않아서 그때는 더욱이 필요한 말만 하는 것에 익숙했고요. 그러다 보니 오해가 오해를 만들기도 했던 것 같아요.
 
시대가 바뀐 면도 있지 않나요? 그땐 대중이 그런 낯선 모습을 받아들이기 힘들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맞아요. 예나 지금이나 저는 멋진 형용사로 뭔가를 꾸며서 말하는 걸 잘 못하는데, 요즘엔 그런 걸 또 ‘쿨하다’고 보더라고요. ‘시대가 정말 많이 바뀌었구나’라고 느낀 건 제 목소리에 대한 반응 때문이에요. 한때는 허스키 보이스가 정말 콤플렉스였거든요. 데뷔 시절에 캐스팅 미팅에 갔는데 거기 계신 분이 제 목소리를 듣고는 “너 그 목소리로 배우 되면 손에 장을 지진다”고 했을 정도니까요. 그래서 일부러 하이 톤으로 목소리를 내느라 어색한 발성을 고수했던 적도 있어요. 그런데 최근에는 ‘목소리 너무 좋아요’ ‘매력 있어요’ 이런 말을 종종 들어요. 이렇게 변하는 시간들이 재미있어요. 마치 영화 필름을 보는 것처럼요. 저는 가만히 있는데 시간들이 막 스쳐 흘러가는 느낌이에요. 


트렌치코트, 바지 모두 쿠만유혜진. 이어링 프리모떼. 이어커프 르이에. 뮬 슈츠.

트렌치코트, 바지 모두 쿠만유혜진. 이어링 프리모떼. 이어커프 르이에. 뮬 슈츠.

얼마 전엔 예능 프로그램 ‘선을 넘는 녀석들’에도 출연하셨죠. 열세 살 때 미국으로 갔는데도 한국사에 해박해서 놀랐어요. 

물론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전에 공부를 좀 했죠. 그랬는데도 설민석 선생님이 “우리 고등학교 역사 시간에 배웠잖아요” 하면서 설명하실 때면 머리가 멍해지더라고요. 저는 학창 시절 그런 경험들이 없으니까요. 기억에 남아 있는 거라곤 애국가 4절, 그리고 초등학교 때 읽었던 학급문고 책 속 이야기가 전부거든요. 그래서 촬영 마치고 집에 가선 남편한테 “나는 정말 무식한 거 같아”라며 하소연도 하고 그랬어요(웃음). 



학급문고 책에서 읽었던 내용을 기억하고 있다니 책을 정말 좋아했나 봐요. 

내성적인 성격이라 혼자서 책 읽는 걸 좋아했어요.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조기교육 같은 게 따로 있지도 않았고, 아이들도 자유롭게 뛰어놀면서 자기들끼리 알아서 컸잖아요. 그렇게 놀면서 한글도 혼자 깨우쳤어요. 돌아가신 엄마는 그런 저를 천재라고 불렀지만, 그렇다고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학과 공부를 좋아했던 건 아니고요. 외우는 공부보단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남은 게 훨씬 많았던 것 같아요. 

한국에 대한 기억을 간직할 수 있었던 비결이 뭔가요. 

미국에 갈 때 어린 마음에도 ‘내가 지금 가면 다시는 한국으로 못 돌아올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한국에 대한 것들을 최대한 많이 기억하려 애썼던 것 같아요. 실제로 미국에서의 생활은 쉽지 않았어요. 적응하기도 힘들었고, 한국의 문화를 잊어버린 친구들도 많이 봤죠. 그래서 ‘만약 내가 여기서 아이를 낳아 기르게 된다면 적어도 한국의 전통과 문화를 가르쳐주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시스루 톱 리유니. 슈트 가브리엘리. 이어링 르이에. 스니커즈 나이키.

시스루 톱 리유니. 슈트 가브리엘리. 이어링 르이에. 스니커즈 나이키.

남편과의 결혼에서, ‘소개팅’이라는 만남부터가 의외였어요. 

소개팅은 사실 반강제로 나간 거예요. 남편이 일반인이어서가 아니라 소개팅 자체가 엄청난 부담이었거든요. 예전에 몇 번 나갔다가 굉장히 안 좋았던 기억도 있었고요. 저는 그냥 평범한 사람이 좋은데, 간혹 제가 연예인이라는 호기심에 나온 경우도 있더라고요. 그런 불편했던 경험들 때문에 아예 피해왔는데, 그날은 제가 좀 어려워하던 선배 언니가 주선했던 거라 거절할 수가 없었어요. 

만난 지 101일 만에 결혼했는데, 남편의 어떤 점에 끌렸나요. 

잘 모르겠어요. 처음엔 이 남자랑 절대 잘될 거 같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그림자가 많은 편인데, 남편은 나이도 어린 데다 때가 하나도 안 묻은 사람처럼 해맑았거든요. 그런데도 어느 날 마법처럼 결혼이 되더라고요. 밝고 긍정적인, 좋은 에너지를 많이 갖고 있는 사람 곁에 있으니 저도 점차 변하는 것 같아요. 

결혼 후 한결 편해지고 여유로워 보여요. 

사랑받는다는 걸 느끼는 건 정말 중요하더라고요. 사실 전 결혼 같은 건 못 할 줄 알았어요. 평범한 삶, 사랑하고 사랑받는 삶 그런 게 저와는 영 거리가 먼 일 같았거든요. 엄청난 열등감 덩어리이기도 했고요. 뭔가 일이 잘못되거나 나쁜 상황이 생기면 그게 다 제가 잘못해 벌어진 것 같아 자책도 했었어요. 스스로한테 너무 가혹했죠. 그런데 막상 ‘내가 정말 사랑받고 있구나, 그래도 되는 사람이구나’라고 느끼며 살다보니 생각이 달라졌어요. 갑자기 1백억원이 어디서 생겼다고 해도 행복한 건 아니잖아요. 지금처럼 특별한 일 없이 평범하게 살 수 있다면 그게 최고의 행복이라는 걸 알게 됐죠. 


슈트 문초이. 이어링 르이에. 스트랩 슈즈 율이에.

슈트 문초이. 이어링 르이에. 스트랩 슈즈 율이에.

결혼 전과 후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요. 

자존감이 높아진 거, 그리고 오롯이 기댈 수 있는 가족이 생겼다는 점요. 특히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는 ‘세상에 내가 정말 고아가 됐구나. 하늘 아래 나밖에 없구나’ 그런 생각에 공황장애가 올 만큼 힘들었어요. 그런데 남편이 그런 저를 일으켜세웠어요. 산산이 부서져서 나동그라진 조각을 하나씩 주워서 다시 ‘나’로 만들어주더라고요. 내가 사랑하고 그래서 결혼한 사람 정도였던 남편이 진짜로 ‘가족’이 된 느낌, 그게 부부인 것 같아요. 그때 남편한테 ‘만약 당신이 없었다면 나는 살아남지 못했을 거야’라고 속마음을 전했어요. 

그래도 결혼생활을 대중에게 공개하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얼마 전 저를 무척이나 아껴주던 시아버지께서 돌아가셨어요. TV에 출연해 영상으로라도 아버님 살아 계실 때 모습을 남길 수 있어 다행이라고 가족들이 말씀하시더라고요. 아버님은 출연 제안이 들어왔을 때도 흔쾌히 응해주셨고, 방송 덕분에 더 자주 찾아뵙고 모일 기회가 많아져 좋아해주셨던 것 같아요. 저도 감사한 마음이 더 커졌고요. 

시아버님이 고은 씨를 무척 아끼는 게 방송에서도 느껴졌어요. 

사실 저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존재를 잘 모르고 자라서, 결혼 후에야 시아버지를 통해 아버지의 정을 느끼게 됐어요. 살가운 성격이 아닌 데다 아버지란 존재가 낯설다 보니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몰라 어려웠어요. 그런데도 참 자상하게 잘해주셨어요. 시어머니 말씀에 따르면 “그렇게 이발을 하라고 해도 안 하다가 고은이 너 온다니 이발하러 가고 사우나도 갔다 왔다”고 전하실 정도였어요. 

고은 씨에게 부부란 어떤 의미인가요. 

사람들은 각자 다른 이유로 결혼을 하고, 또 바라는 부분이 다르다 보니 다투기도 하고 헤어지기도 하는 것 같아요. 어쨌건 서로 원하는 커다란 한 가지가 일치한다면 양말을 어떻게 벗어놓았든, 치약을 어떻게 짰든 그런 행동들이 문제가 되지 않을 거예요. 저와 남편은 큰 한 가지가 ‘가족’이었어요. 서로의 우선순위가 맞아떨어지니 상대방에게 주는 가치가 더욱 특별해요. 이제는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고, 사소한 것에 휘둘리며 살기엔 시간이 아까워요. 너무 욕심내지 않고 가진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커지는 것, 그게 시간이 주는 선물이고 나이가 주는 선물 아닐까요. 

2세 계획은요. 

욕심내지 않고 기다리려고요. 예전엔 아이를 무척 기다리기도 했는데 나이가 드니 제 몸 하나 건사하는 것도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이가 생기면 생기는 대로, 그렇지 않다면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나눌 수 있는 것들을 나누며 살려고 해요. 

블랙 톱 밀로그램. 슈트 대중소. 이어링, 반지 모두 르이에.

블랙 톱 밀로그램. 슈트 대중소. 이어링, 반지 모두 르이에.

운동을 열심히 한다고 들었어요. 

운동은 남편이 좋아해요. 저는 그렇게 에너지가 넘치는 편이 아니라 평소엔 쉬는 걸 더 즐기고요. 운동은 광고 촬영 등 특별히 준비해야 할 때 집중적으로 해요. 어렸을 땐 몸무게나 보디라인에 병적으로 집착했어요. 운동도 정말 열심히 했었고요. 그런데 지금은 많이 내려놨어요. 결혼하고 나서 좋아진 건 더 이상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게 된 거예요. ‘임자가 생겨서 방치를 해도 된다’가 아니라 사랑을 받으면서 자존감이 높아졌기 때문이에요. 물론 남들에게 보이는 직업이다 보니 어느 정도 유지는 해야겠지만 완벽한 몸매를 가져야 한다는 강박에선 벗어났죠. 

그럼 평소 몸매 관리는 어떤 식으로 하세요. 

다행히 체질적으로 식단 조절이 어려운 편은 아니에요. 초콜릿이나 케이크 같은 달콤한 음식은 입에 잘 맞지 않아요. 대신 채소와 과일을 좋아하는 편이고요. 제가 모델로 활동하고 있는 종근당건강 올컷다이어트도 꾸준히 챙겨 먹어요. 나이가 들수록 에너지가 달리니까 예전만큼 다이어트도 쉽지 않고 힘겹게 다이어트를 해도 뭔가 부족한 느낌이 있는데 그럴 때 확실히 도움이 되더라고요. 

동안 피부로도 유명하잖아요. 

감사하게도 물려받은 피부가 건강한 편이라 20대까지만 해도 베이비 로션 하나만 달랑 바르고 다녔어요. 지금도 건조한 걸 못 견뎌 수분 팩을 열심히 하고, 수분 크림을 충분히 바르는 정도가 전부예요. 단, 건조함이 피부의 적이라 집에서 난방을 잘 안 하고, 차에서도 히터를 안 켜요. 

스케줄이 없을 때의 일상은요. 

영화나 미드 보는 걸 좋아해요. 최근엔 ‘아웃랜더’라고 스코틀랜드 역사를 다룬 영국 드라마 시리즈에 푹 빠져 있어요. 남편이랑 뭐 먹을지 고민하며 맛집 탐방하고, 여행 다니고, 강아지랑 산책하면서 쉬엄쉬엄 보내고 있어요. 

앞으로의 계획도 궁금해요. 

MC를 꼭 한번 해보고 싶었는데, 이번에 기회가 생겼어요. 관찰 예능 프로그램인데 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보고 전문가와 함께 문제점을 풀어나가는 방식이 될 거 같아요. 아무래도 우리 주변에 살고 있는 가족들의 실제 이야기라 공감하는 시청자들이 많을 거라 생각해요.


슈트 문초이.

슈트 문초이.

기분 좋은 인터뷰를 마치고, 먼발치에서 찍어둔 화보 현장 스케치 사진 몇 장을 SNS에 올렸다. 팔로어도 몇 명 없는 계정을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 ‘좋아요’를 누르고 갔다. 호기심에 계정을 따라 들어가 보니 온통 한고은과 그의 남편, 그리고 강아지 사진뿐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다 ‘풋’ 웃음이 터졌다. #한고은 #아내 같은 해시태그로 가득 찬, 한고은의 남편 신영수 씨의 SNS였다. 더하거나 덜어낼 것 없는, 완벽하게 로맨틱한 봄 풍경이었다.

사진 신유나 디자인 김영화
제품협찬 가브리엘리 나이키 대중소 레호 르이에 리유니 문초이 미샤 밀로그램 슈츠 아스트흐 율이에 쿠만유혜진 프리모떼 헤어 이소영 메이크업 김지영 스타일리스트 선희정



여성동아 2020년 4월 6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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