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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디지털 성범죄와 싸우는 '불꽃'의 '단'

글 문영훈 기자

입력 2022.04.28 10:30:01

지난 2년간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크게 달라졌다. ‘n번방 사건’을 최초 보도한 ‘추적단 불꽃’의 역할이 컸다. ‘단’과 ‘불’로 구성된 이들은 활동가와 기자 사이를 오가며 일했다. 최근 이들에게 변화가 생겼다. 지난 1월 불, 박지현 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정치에 뛰어든 것. 단은 전과 다름없이 저널리스트로 남기로 했다. 단에게 쓴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2020년 봄, ‘n번방 사건’으로 통칭되는 ‘텔레그램 성 착취물 제작 및 유포 사건’이 세상에 드러났다. 그 후 2년간 세상은 달라졌다. 2020년 4월 불법 촬영물을 소지·시청만 해도 처벌받을 수 있는 성폭력처벌법 개정안 등 ‘n번방 방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경각심도 높아졌다. 같은 해 9월 대법원은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양형 기준을 마련했다. 최종심에서 ‘박사’ 조주빈은 42년형, n번방을 운영한 ‘갓갓’은 징역 34년형을 받았다.

이 모든 일은 대학생 2명의 취재로부터 시작됐다. 2019년 7월 ‘추적단 불꽃’으로 활동을 시작한 ‘단’과 ‘불’은 텔레그램에서 벌어진 성 착취 사건에 대한 기사를 작성하고, 수사 기관에 자신들의 취재 자료를 제공해 피의자 검거를 도왔다. 이들은 2020년 국제엠네스티언론상 특별상, 제355회 한국기자협회 이달의기자상 특별상 등을 받았다.

n번방 사건 수사가 끝난 뒤에도 추적단 불꽃은 멈추지 않았다. 활동가와 기자를 오갔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의 제보를 받고 이들을 지원 단체나 경찰에 연결해줬다. 법무부 ‘디지털 성범죄 등 대응 태스크포스(디지털 성범죄 TF)‘에도 참여했다. 동시에 ‘쓰는 일’을 병행했다. 르포 매거진 ‘우리, 다음’을 제작하고 뉴스레터 ‘불꽃 레터’를 통해 n번방 사건 이후에도 계속되는 디지털 성 착취 실태에 대한 기사를 썼다. 여러 언론사·사회단체와도 협업했다.

디지털 성범죄 카르텔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2명의 전사(戰士)는 얼굴과 이름을 공개하지 않았다. 추적단 불꽃이 변화를 겪은 것은 지난 1월, 불이 더불어민주당 선대위 여성위원회 부위원장 겸 디지털성범죄근절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합류하면서다. 박지현(26) 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바로 그다. “20·30여성 목소리를 대변하고자” 정치 참여를 결정한 불과 달리 단은 계속 싸움터에 남았다. 그는 3월 9일 ‘불꽃 레터’에 “기록하는 일의 가치를 몸소 느끼며 계속 기사를 쓰고 싶다”고 썼다. 주제는 물론 디지털 성범죄 실태 고발이다. 그의 이 선언과 함께 추적단 불꽃은 ‘불꽃’으로 이름을 바꾸고 새 출발을 앞두고 있다.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야 하나 고민”

4월 14일 단을 서울 성동구 서울숲에서 만났다. 그는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 제작자 최찬욱에 대한 기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찬욱은 70명에 달하는 아동·청소년을 이용해 성 착취물을 제작하고 유사 강간을 저질렀다. 지난해 12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12년형을 선고받았다.



왜 ‘최찬욱’인가요.

지금도 디지털 성 착취 범죄는 계속 발생하고 있어요. 가해자가 누군지 모른 채 살아가게 되는 피해자도 많고요. ‘최찬욱 사건’을 보면 n번방 사건 때와 범행 주체가 달라졌을 뿐 행태는 달라진 게 없어요. 온라인에서 어린 피해자를 그루밍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성적으로 착취하는 구조죠.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지 추적해보고 싶었어요. 디지털 성범죄 생태계가 유지되는 방식을 보여주는 거죠.

계속 기사 쓰는 길을 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저는 추적단 불꽃을 계속 키워보려는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1월에 파트너인 지현이(박 비대위원장)가 정치 참여 제안을 받았을 때 고민이 컸죠. 그래도 하고 싶다는 걸 어떻게 말리겠어요(웃음). 응원하는 마음이 제일 컸고 그다음 제가 앞으로 뭘 해야 할지 생각해봤죠. 그러는 차에 ‘오마이뉴스’ 편집부 기자님들이 그간 저희가 써왔던 기사를 피드백해주시겠다고 연락하셨어요. 대화를 나누며 글 쓰는 일을 계속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사실 한때는 제 앞가림을 해야겠다는 마음에 기자를 접고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야 하나 생각했어요. 정신적으로 지쳐 있어서 새로운 공부를 하면 ‘리프레시’가 될 것 같았고요.

n번방 추적을 시작한 뒤 2년간 프리랜서로 일한 셈인데 경제적 어려움은 없었나요.

금전적인 보상을 바라고 시작한 활동은 아니에요. 디지털 성범죄를 근절해야 한다는 방향성이 분명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해올 수 있었고요. 다만 n번방 사건이 공론화되면서 감사하게도 상과 상금을 받았고 출간한 책 인세도 들어왔어요. 매거진 ‘우리, 다음’을 만들며 텀블벅 후원금도 받았고요. 디지털 성범죄 TF 활동비가 생계에 보탬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이래저래 버텨왔네요(웃음).

단의 말처럼 n번방 사건 이후에도 추적단 불꽃은 다양한 방식으로 디지털 성범죄 실태를 세상에 알렸다. 지난해 7월 27일 출범한 디지털 성범죄 TF 전문위원 활동도 그중 하나다. 디지털 성범죄 TF에는 단과 불뿐 아니라 서지현 검사, 변영주 감독 등 각계각층 인사가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9개월간 8개의 권고안을 제시했다. △성범죄 피해자 원스톱 지원 시스템 구축 △불법 영상물 신속 삭제를 위한 응급조치 신설 △객관적·합리적 양형을 위한 형법 개정 및 성범죄 피해자 진술 강화 등이다. 8개 요구안 중 두 건은 행정부 단계에서 바로 받아들여졌다. 법률 제정이 필요한 6개 요구안은 법안으로 발의돼 국회에 상정돼 있거나 발의를 준비 중이다.

디지털 성범죄 TF 활동을 통해 제도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경험을 했는데 어땠나요.

효능감이 컸죠. 처음 TF에 참여할 때는 우리 의견을 참고만 하는 정도일 거라 생각했어요. 입법 활동으로까지 이어질 거라는 생각을 못 했죠. 권인숙 의원 등 민주당 국회의원 여러분이 법안 발의에 적극적으로 나서주셔서 감사했어요. 법을 잘 아는 서 검사님이 회의를 주도적으로 이끌어주시기도 했고요. 저희도 열심히 일했습니다. 활동 기간 동안 매주 회의를 했어요. 정부 기관 전문위원들은 보통 2주에 한 번 혹은 그보다 더 적게 회의를 한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전문위원 임기가 1년으로 알고 있어요. 남은 임기 3개월간 어떤 활동을 할 예정인가요.

디지털 성범죄 TF 활동은 크게 보면 법률 기술 소위원회와 교육 홍보 소위원회로 나뉘어 있어요. 저는 두 곳 모두에 속해 있는데 앞으로는 홍보 쪽에 집중하려고 해요. 지금까지 저희가 마련한 권고안 내용을 많은 분들에게 알려서 입법이 제대로 추진되도록 해야죠. 청년을 대상으로 디지털 성 착취 범죄에 대한 모의재판을 열어보는 걸 기획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단은 지난해 10월 박지현 공동비상대책위원장과 함께 뉴스레터 서비스 ‘불꽃 레터’ 운영을 시작했다. 디지털 성 착취물 유통 사이트 운영 실태를 추적하고 피해 생존자 지원 활동을 하는 이들을 인터뷰해 구독자에게 전달했다. 뉴스레터를 시작하며 쓴 글에는 “우리가 알아야 할 더 많은 이야기가 있다”는 문장이 있다.

디지털 성범죄, 여전한가요.

과거 ‘소라넷’ 같은 불법 촬영물 유통 사이트가 여전히 존재해요. 한 달에 한 번꼴로 제보가 들어와요.

어떤 내용들인가요.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가 불법 사이트에 영상물 삭제를 요청하자 신분을 인증해 자신이 피해자라는 걸 증명하라고 요구하는 황당한 사건이 있었어요. 사이트 측은 범죄와 연관된 촬영물은 자체적으로 관리한다고 말해요. 존재 자체가 불법인 사이트에서 그게 제대로 될까요.

사이트를 차단하면 안 되나요.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사이트 접속 차단을 하면 불법 사이트 측이 도메인을 변경해요. 그러면 그 도메인을 찾아 또 차단해야 하죠. 사이트를 완전히 폐쇄하기는 어렵지만 계속 시도를 하는 수밖에 없어요. 범죄자들에게 사이트 도메인을 계속 바꾸는 불편이 발생하잖아요. 그런 방식으로라도 끊임없이 견제를 해야 한다고 봐요.


“디지털 성범죄 전문 수사 기구 필요”

n번방 사건 이후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졌지만 불법을 자행하는 이들의 수법도 고도화됐다. 단의 말이다.

“불법 성 착취 사이트는 등급제로 운영돼요. 더 많은 영상을 보려면 수백만, 수천만원을 내야 하죠. 그 액수에 따라 등급을 올려줘요. 수사 기관이나 민간 감시를 피하기 위해서죠.”

결국 목적은 돈인가요.

그렇죠. 그런 사이트에 접속하면 불법 도박 업체 광고가 잔뜩 걸려 있어요. 그쪽으로 유입시키려는 의도도 있고, 반대로 불법 도박 사이트에서 돈을 충전하면 성 착취 사이트 등급이 올라가는 방식으로 연동되는 경우도 있어요.

수사 인력을 늘려야겠네요.

아직 일부 시도 경찰청에는 디지털 성범죄를 수사하는 전문 수사관이 없어요. 지역마다 편차가 크죠. 전문 수사관이 없는 지역 피해자는 디지털 성범죄를 당해 신고해도 수사 결과를 듣기까지 굉장히 오래 기다려야 해요. 디지털 성범죄를 처리하기 위한 독자적인 부서나 기구가 필요해요.

피해자들이 겪는 어려움이 더 있나요.

아동·청소년 피해자들은 성 착취 피해를 당하고 난 뒤 부모와의 관계 설정에 어려움을 겪어요. 경찰에 신고해 가해자를 잡으려면 부모 동의가 필요하거든요. 아동·청소년 피해자를 돕는 해바라기센터 등의 도움을 받으려 해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이들에게 제보가 오면 지현이(박 비대위원장)와 제가 피해자의 부모에게 대신 상황을 전달해주기도 했어요. 부모 가운데 상당수는 아이들이 왜 온라인을 통해 낯선 사람과 대화하고 그러다 범죄 피해까지 당하는지, 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해요. “내 자식은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시죠.

n번방 사건 이후 달라진 점도 있나요.

과거에는 성폭력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사회 분위기가 있었어요. ‘일탈계(성적 행위를 찍어 올리는 SNS 계정)’를 만들었다가 디지털 성범죄의 표적이 된 피해자에게 “애초에 왜 그런 걸 했느냐” 따지는 거죠. 이제는 권력 관계에서의 착취에 대한 개념이 널리 알려진 것 같아요. 온라인 공간에서 그루밍이나 가스라이팅이 벌어지면 피해자가 얼마나 취약한 위치에 있는지를 생각해보게 된 거죠. 꼭 아동·청소년이나 여성이 피해자가 아니더라도 권력에 의한 폭력 관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생긴 게 달라진 점이에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대선 후보 시절 전담 기관을 설치해 범죄 피해자를 보호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습니다. 새 정부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요.

저는 윤 당선인의 공약 중 좋은 게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과거와 단절하는 방식으로 국정을 운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간 추적단 불꽃에 “새롭다” “신선하다”는 이야기를 해주신 분들이 있었어요. 기존 여성단체가 하지 못했던 일을 한 거라는 식이죠. 그런데 박 위원장이나 저나 과거에 아동·청소년 성 착취나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 관심을 가졌던 분들이 없었다면 이 일을 시작할 수 없었을 거예요. 지금까지 축적된 여성계의 역사와 이들이 만들어왔던 논의를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더 좋은 정책이 만들어질 수 있고요.


“기록이 언젠가 쓸모를 찾게 될 거라 믿어”

‘단’은 수첩에 “아동·청소년 성착취…”라고 썼다.

‘단’은 수첩에 “아동·청소년 성착취…”라고 썼다.

추적단 불꽃은 2020년 9월 출간한 책의 말미에 “우리가 써 내려간 지난 1년간의 기록이, 함께 공감하고 분노하는 여성들의 발자취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썼다. 단은 “추적단 불꽃 활동을 하면서 좌절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연대하는 이들의 응원으로 추적을 계속해나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어떤 응원을 받으셨나요.

기사 쓰는 일을 계속하기로 결정한 뒤 그 결심을 ‘불꽃 레터’에 담아 독자들에게 보냈어요. 그간의 고민, 계속 기자로 살겠다는 다짐 등을 읽고 한 언론사 논설위원이 답장을 보내왔어요. “나도 기자의 쓸모를 의심하면서 살아가고 있는데 단 님의 편지 내용이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언론계 선배의 주책이라고 이해해달라”며 “앞으로도 좋은 기사를 부탁드린다”는 내용이었어요.

기자의 쓸모란 무엇일까요. 개인적인 답을 찾으셨나요.

2019년 썼던 기사를 다시 떠올렸어요. n번방 사건에 대한 기사를 썼지만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는 데 6개월이 걸렸어요. 당시 취직 준비를 하면서 “내 글이 이렇게 묻히는 건가” 생각했죠. 이제는 기자가 쓰는 글이 매번 주목받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요. 제가 앞으로 쓸 기사가 당시와 같은 반향을 일으키기 힘들 수 있다는 걸 알고요. 그래도 반(反)성 착취라는 문제의식을 갖고 기사를 쓰다 보면 언젠가는 그 글이 쓸모를 찾는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계속 쓰고 싶어요.

#단 #불꽃 #추적단불꽃 #디지털성범죄 #여성동아

‘추적단 불꽃’(현 ‘불꽃’)의 활동
2019년 7월
텔레그램 성 착취물 제작 및 유포 사건을 추적하는 ‘추적단 불꽃’ 결성.

2019년 9월
‘추적단 불꽃’의 르포 ‘미성년자 음란물 파나요? … 텔레그램 불법 활개’ 뉴스통신진흥회 탐사보도 공모전 수상.

2020년 1월 
‘n번방 사건’ 관련 최초 청와대 국민청원 글 게시.

2020년 2월
경찰, 텔레그램에서 성 착취물 제작 및 유포한 66명 검거.

2020년 3월
‘국민일보’와 함께 ‘n번방 추적기’ 보도.

2020년 4월
‘n번방 방지법’으로 통칭되는 형법, 성폭력처벌법, 범죄수익은닉 규제법, 청소년 성보호법 개정안 국회 본회의 통과.

2020년 9월
n번방 사건 추적기를 담은 책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 출간. 대법원 양형위원회,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양형 기준안 마련.

2021년 5월
디지털 성범죄 심층 르포 매거진 ‘우리, 다음’ 제작.

2021년 7월
법무부 디지털 성범죄 등 대응 태스크포스 전문위원으로 합류.

2021년 11월 
‘불꽃 레터’ 시즌1 제작.

2022년 1월
‘불’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선대위 여성위원회 부위원장 겸 디지털성범죄근절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합류.

2022년 3월
‘추적단 불꽃’ 이름을 ‘불꽃’으로 바꿈.

사진 지호영 기자



여성동아 2022년 5월 7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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