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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사랑하는 뇌섹남 타일러 라쉬

글 이현준 기자

2021. 04. 26

시카고 대학교에서 국제학, 서울대 대학원에서 외교학을 전공하고 8개 국어를 구사하는 언어 천재 타일러 라쉬는 기후 위기를 해결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한다. 뇌가 섹시한 이 남자가 환경 문제에 꽂힌 이유.



방송인 타일러 라쉬(33)는 2014년 JTBC 예능 ‘비정상회담’을 통해 세상에 얼굴을 알렸다. 그는 해당 방송의 패널로서 모국어인 영어는 물론 한국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등 8개 국어를 구사하며 똑 부러지는 토론 실력을 뽐내는 등 ‘비정상회담’의 브레인으로 활약했다. 또 2016년 tvN 예능 ‘뇌섹시대-문제적 남자’에서는 여러 어려운 문제를 척척 풀어내며 지적 매력을 뽐냈다.

타일러를 ‘진짜 뇌섹남’으로 만드는 건 그가 환경보호에 힘쓰는 에코브리티(Ecobrity, Eco+Celebrity)라는 점이다. 온 동네가 숲으로 둘러싸인 미국 버몬트주의 시골 마을에서 성장해 어릴 때부터 자연에 관심이 많은 그는 2016년부터 WWF(세계자연기금)의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지속적으로 환경 관련 강연을 하는 건 물론 인스타그램에 여러 환경 이슈를 올리기도 한다.

지난해 7월엔 환경 도서 ‘두 번째 지구는 없다’를 출간했다. 타일러는 책을 통해, 인류가 기후 위기를 유발해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를 멸종 위험에 빠트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기후 위기야말로 경제 시스템을 무너뜨릴 가장 큰 위협이라며 환경과 경제는 상충하는 개념이 아니라 ‘환경이 곧 경제’임을 역설한다. 타일러는 이에 대한 대처법으로 독자에게 ‘선택권’을 제시한다. 환경을 기준으로 삼아 친환경 경영을 실천하는 기업의 제품을 선택하고 그렇지 않은 기업 제품은 불매하면서, 환경을 위한 더 나은 선택을 고민하고 요구해야 한다는 의미다.

‘두 번째 지구는 없다’는 두 달 만에 4쇄를 돌파하는 등 각종 서점 환경 관련 분야에서 베스트셀러에 올라 지금까지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 FSC(국제 비정부기구인 삼림관리협의회가 부여하는 지속 가능한 산림경영 인증으로, 인증받은 종이는 숲과 야생동물을 모두 보전할 수 있다) 인증 종이와 친환경 콩기름 잉크로 제작돼 환경에 주는 부담을 최소화했다. FSC 인증 종이로 책을 제작해줄 출판사를 찾기 위해 출간을 미뤄가며 동분서주한 타일러의 노력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이처럼 환경에 대한 타일러의 마음은 진지하다. 그는 ‘두 번째 지구는 없다’의 서문에서 “내 꿈은 기후 위기를 해결하는 것이다”라며 “그동안 방송에서 이에 대한 이야기를 충분히 하지 못했다. 얘기하려고 해도 재미없다는 이유로 편집되거나 빨리 감기로 풍자의 대상이 되기 일쑤였다. 누구도 듣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문가도 아닌 내가 환경을 이야기하는 건, 누구라도 당장 행동해야 할 만큼 지구의 상황이 절박해서”라고 말했다. 3월 31일 타일러를 만났다. 다소 어색한 첫 만남이었지만 환경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그는 두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단순히 쓰레기를 줄이는 것만으론 부족해

지난해 출간한 ‘두 번째 지구는 없다’가 베스트셀러에 올랐어요. 그만큼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다는 이야기일 듯합니다.

그동안 환경 도서가 잘 팔린다는 인식은 없어서 책을 준비하면서도 ‘과연 팔릴까’ 걱정했어요. 그런데 코로나19로 인해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다 보니 우리가 쓰고, 사고, 버리는 것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고, 환경에 대한 관심도 높아진 듯해요.

책에서 “한국 사람들은 정말로 분리배출을 잘한다”고 했어요. 한국인들의 환경에 대한 인식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나요.

인식이 많이 좋아졌고 점점 더 나아지고 있다 생각해요. 하지만 분리배출을 잘하는 것만으로 환경을 잘 보호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안 돼요. 쓰레기 처리 시스템 전체를 기준으로 평가해야 하거든요. 쓰레기 분류·처리작업장에 간 적이 있는데, 시설이 열악해서 분리배출이 잘됐다 해도 재활용이 잘 안 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국민들의 노력과 아울러 기술적인 측면에서 정부 차원의 투자가 더해졌으면 좋겠어요.

환경보호를 위해 개인은 무엇을 실천하면 좋을까요.

그동안 환경보호에 대해 이야기하면 전깃불 끄기, 물 아껴 쓰기, 분리배출 잘하기 같은 것에 초점이 맞춰졌다고 생각해요. 물론 그런 걸 실천해야 하는 건 맞지만 큰 영향을 주긴 어려워요. 그런데 투표와 구매라는 행동으로 ‘진짜’ 힘을 보여줄 수 있어요. 선거 때 환경 관련 공약을 내건 후보자에게 투표를 하고, 쇼핑을 할 때 친환경 인증 마크를 획득한 상품을 구매하는 거죠. 소비자가 친환경 인증 제품을 선호하면 기업도 친환경 사업에 노력을 기울이게 되니까요.

‘두 번째 지구는 없다’에 플라스틱 통 재사용하기, 대중교통 이용하기, 과대 포장 제품 피하기 등 WWF가 제안하는 ‘지구를 위해 실천해야 할 10가지’를 수록했는데,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했어요. 단순히 쓰레기를 줄이는 것만으론 부족하다는 뜻인가요.

네, 맞아요. 물론 쓰레기를 줄이는 것은 중요하죠. 하지만 그것만으로 ‘해결이 된다’고 착각하면 안 돼요. 전기차를 예로 들 수 있어요. 전기차는 에너지 전환의 발걸음을 내딛게 한다는 점에서는 정말 좋죠. 하지만 전기차에 사용되는 전기를 어떻게 만들까요. 한국은 OECD 국가 중 재생에너지 사용률이 꼴찌예요. 자동차를 전기차로 전환한다 해도 결국은 화석연료로 전기를 만들게 되는 거죠. 현상의 이면을 보다 깊이 탐구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타일러 씨가 가장 심각하게 생각하는 환경 문제는 뭔가요.

온실가스 배출 문제예요. 지금 대기엔 이미 400ppm이 넘는 온실가스가 쌓여 있어요. 기온은 산업화 시대 시작 시기와 비교했을 때 3도나 높아졌고요.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이뤄내겠다는 이야기가 전 세계적으로 나오고 있지만 더 적극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생각해요. 탄소 배출을 줄이는 걸 넘어 기존에 배출된 탄소를 제거해야 해요.

환경보호를 위해 행동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우리는 열심히 일을 해서 돈을 버는데, 이유는 대개 잘살고 싶어서 그런 거라 생각해요. 집도 장만하고 은퇴하면 편안히 살고 싶고요. 하지만 기후 위기가 그 모든 걸 소용없게 만들 수 있어요. 지금 이 상태로 계속 간다면 해수면이 상승해 2050년 기준으로 김해, 영종도, 군산, 보령 쪽이 모두 물에 잠겨요. 또 많은 나라가 동남아와 미국 등에서 식량을 수입하는데, 국토가 물에 잠기면 식량 생산 능력이 현저히 떨어져 식량 위기가 발생할 수도 있어요. 당장 기후 위기 해결을 위해 행동하지 않으면 미래는 없어요.

그런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자신과는 상관없는 먼 미래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먼 미래가 아니에요. 미국에서 집을 살 때 대출을 받으면 대개 상환 기간이 30년이에요. 30년 후면 2050년이잖아요. 30년 후까지 갈 것도 없이 10년 후만 본다 해도 이미 기업들이 기후 위기를 예측해서 재빨리 움직이고 있어요. 미국에서는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발생하자 보험사들이 해수면이 바뀌어 해일, 폭풍이 올 수 있는 지역의 보험료를 조정했어요. 우리 개개인도 기업처럼 재빨리 움직여야 해요.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는 개인적인 이유도 있을 것 같아요.

바로 제 미래를 위해서요. 저는 정말 잘 살고 싶거든요(웃음). 물론 저의 조카들이 살아갈 세상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다음 세대를 위한다”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고 느껴요. 결국 환경 문제는 다음 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 우리의 문제예요.

한꺼번에 모든 걸 완벽히 하려 하지 않길

환경보호를 하려 해도 불편함이나 비용이 발목을 잡을 때가 많은데, 지나치게 이상적이라는 지적을 받진 않나요.

3~4년 전만 해도 “너무 이상적이다” “비현실적이다” 등 비판의 목소리가 많았어요. “하지만 이젠 인식이 바뀌었는지 그런 말을 잘 하지 않아요. 그리고 모든 사람이 한꺼번에 변화한다거나 모든 게 완벽해질 순 없어요.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에서 조금씩 실천하고 바꿔나가면 성공이라 생각해요. 만약 주변 사람들을 설득하고 싶다면 우선 상대방의 선택권을 존중해야 해요. 점진적으로, 그 사람이 참여할 수 있게요. 전 여러 번 채식을 시도하다 결국 실패했어요. 원래 고기를 좋아하기도 하고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다 보니 쉽지 않더라고요. 대신 저는 외식을 할 때만 고기를 먹어요. 소고기보다 환경에 덜 해로운 돼지고기, 닭고기를 먹죠. 타인에게도 이런 방법을 권해요. 이렇게 하면 채식에 대해 거부감 있는 사람도 단계적으로 설득해나갈 수 있어요. 만약 제가 출판사에 “전자책만 내겠다”고 했으면 이번 책은 출판되지 못했을 거예요. 대신 FSC 인증 종이와 콩기름을 사용해 출간함으로써 제 가치관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질 수 있었어요.

타일러는 여러 방법으로 환경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노력한다. 개인 텃밭을 가꿔 채소를 기르며 요구르트와 치즈도 만들어 먹는다. 플라스틱 통을 여러 번 재사용함은 물론이다. 업무 중 발생한 이면지를 스케치북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책에서 밝힌 것 외에 환경보호를 위해 평소 실천하는 것이 있다면.

친환경 인증 마크를 찾아다녀요(웃음). 예컨대 카페에서 커피를 마셔야 한다면 FSC 인증 종이를 사용하는 곳을 가는 거죠. 사실 ‘실천’이라 하면 가정과 개인에만 국한하는 경향이 있지만 조직 차원에서 활동하는 게 중요하다 느껴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직장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있잖아요. 팀 차원에서 ‘어떻게 하면 종이나 물을 덜 쓸 수 있을까’ 고민하고 실천하는 게 더 좋죠. 저의 경우 종이를 최대한 안 쓰기 위해 웬만하면 온라인 계약을 해요.

타일러의 책임감은 보통 사람이 선뜻 하기 어려운 지점까지 닿아 있다. 책에 따르면 그는 과거 치킨 광고, 자동차 광고 모델 제의도 거절하며 ‘소신’을 보이기도 했다. 축산업과 자동차 매연이 환경에 악영향을 주기 때문이었다.

치킨  ·  자동차 광고 모델 제의도 거절했다고요.

네, 제의가 왔었는데 거절했어요. 제가 직접 제품을 쓰는 것과 그걸 홍보하는 건 다르다고 생각해요. 예컨대 제가 개인적으로 치킨을 먹는 것과 “여러분, 치킨 많이 드세요”라고 얘기하는 건 다르다는 거죠. 자동차도 마찬가지고요. 가치관에 어긋나지 않도록 신경을 많이 쓰고 있어요.

모델료가 적지 않았을 것 같은데, 후회하진 않았나요.

물론 숫자를 생각하며 ‘내가 왜 그랬지’ 싶었던 적이 있어요(웃음). 그래도 마음은 편안하고 행복해요. 주변에서도 저의 이런 생각을 인정해주니 좋고요.

꿈이 ‘기후 위기 해결’이라고 밝혔는데, 어떻게 이뤄나갈 생각인가요.

꿈은 크고 비현실적이어야 해요. 그래야 꿈이지, 현실적인 건 꿈이라 할 수 없다 생각해요. 저에겐 환경 위기가 정말 큰 문제거든요. 때론 정말 될까 싶긴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제 꿈이에요. 혼자서는 결코 할 수 없는 일이기에 책도 썼고요. 계속해서 WWF 같은 단체와 협업하고 지금처럼 인터뷰, 강연도 열심히 하며 많은 이야기를 할 생각이에요. 그래야 정치가, 기업가, 과학자 등 환경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이 문제에 더 관심을 가질 것이고 위기도 해결될 수 있다고 믿어요.

환경 문제와 관련해 여성동아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제 꿈은 기후 위기 해결입니다. 혼자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도움이 많이 필요합니다. 기후 위기는 여러분의 삶에도 많은 영향을 미칠 거예요. 환경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고 기후 위기 해결을 위해 함께 노력해주시길 바랍니다.

사진 지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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