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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column

실천을 앞세운 페미니스트, 앙겔라 메르켈

성지연 에세이스트, 국문학 박사

입력 2022.09.13 10:00:01

“그녀는 노력했습니다(She tried).” 역사 속에 어떻게 남길 바라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는 이렇게 답했다. 최장수 독일 총리이자 유럽의 중재자, 전 세계 여성의 롤 모델이 돼온 그의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는 1991년 헬무트 콜 내각에서 여성청소년부 장관으로 일했다.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는 1991년 헬무트 콜 내각에서 여성청소년부 장관으로 일했다.

“나 자신입니다. 되도록 자주 나 자신을 롤 모델로 삼습니다.”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는 평생의 롤 모델이 누구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저널리스트 케이티 마튼이 2021년 출간한 ‘메르켈 리더십: 합의에 이르는 힘’(‘메르켈 리더십’)에 나오는 이야기다. 롤 모델은 가고자 하는 길에 먼저 발자취를 남긴 사람이다. 단순히 돈이나 출세로 롤 모델을 꼽지는 않는다. 오히려 어떤 사람의 삶이 참 근사해 보인다면 그가 인생의 롤 모델이다. 메르켈이 자신을 롤 모델로 꼽는 건 충분히 수긍이 간다. 그의 앞에서 근사하게 걸어 나간 사람이 드물기 때문이다.

물론 메르켈에게 롤 모델이 없었던 건 아니다. 노벨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여성 과학자 마리 퀴리가 그중 하나다. 메르켈은 퀴리가 보여준 스스로에 대한 확신과 엄청난 끈기, 이를 바탕으로 한 성취에 큰 자극을 받았다. 여성에게 결코 우호적이지 않은 과학 분야에서 얻은 성취라는 점에서 더욱 그랬다. ‘메르켈 리더십’의 저자는 메르켈의 또 다른 롤 모델로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2세를 주목한다. 메르켈의 책상 위에는 은제 액자에 담긴 예카테리나 여제의 그림이 놓여 있다. 독일의 공주였던 그는 자신을 과소평가한 많은 남자들을 쓰러뜨리며 장장 34년간 러시아를 통치했다. 루터교 신자인 것도 메르켈과 공통점이다.

자신을 앞서 걸어간 여성의 길에 메르켈은 자기 발자국을 더한다. 지금도 어디선가 한 여성은 메르켈의 삶을 통해 꿈과 용기를 얻을지 모른다. 저자 마튼도 그중 하나가 아닐까. 마튼은 헝가리 출신 미국인이다. 냉전시대 언론인 부모가 스파이 혐의로 체포된 경험을 갖고 있다. 전체주의 국가에서 여성으로 태어나 성장한 공통된 체험이 메르켈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이해로 이끌었던 게 아닐까. 현재를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롤 모델이 된 메르켈 총리의 삶을 ‘메르켈 리더십’과 함께 되짚어보자.


‘삼중 아웃사이더’에서 총리로

메르켈은 1954년 당시 서독 함부르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호르스트 카스너 목사는 많은 동독인이 서독으로 이주하던 때 거꾸로 동독으로 이주했다. 1961년 메르켈이 일곱 살 때 동독과 서독 사이엔 철조망이 세워졌다. 메르켈 가족이 다시 서독으로 돌아갈 길은 막혀버렸다.



학창 시절 메르켈은 학업성적이 뛰어났지만 부르주아 아버지를 가졌다는 이유로 어려운 학교생활을 했다. 반에서 처음으로 청바지를 입은 학생으로 교장에게 훈계를 듣기도 했다. 메르켈은 공산당의 지시를 따르지 않아 졸업장을 못 받을 뻔했지만, 다행히 주교의 탄원으로 졸업한 다음 라이프치히대에 진학했다. 물리학 전공이었다.

메르켈은 루터교 신자이면서 공산당 청년단체의 조직원이었다. 교회와 국가, 독립적인 사고와 마르크스·레닌주의 사이에서 적응과 타협이라는 처세를 배워가야 했다. 책에서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가 그의 서른 살 생일에 대한 묘사다.

당시 막 이혼한 메르켈은 버려진 아파트를 무단으로 점거해 살고 있었다. 친구들이 집수리를 도와줬다. 메르켈의 거처를 방문한 아버지는 실망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대략 20년 후인 2005년 메르켈은 독일 최초의 여성 총리로 취임했다. 물리학을 전공한 가난한 대학원생에게 그간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메르켈은 1989년 ‘민주적 각성(DA)’이란 동독의 신생정당에 들어갔다. 이듬해 봄, 메르켈 박사는 과학자에서 본격적인 정치가로 변신한다. 민주적 각성은 얼마 지나지 않아 ‘기독교민주연합(CDU·기민당)’에 통합됐다. 1991년, 통일된 독일연방공화국의 헬무트 콜 총리는 메르켈을 여성청소년부 장관에 임명한다. 정치 초년생 메르켈이 콜의 내각에 기용된 건 동독 출신 여성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통일을 이룬 콜 총리로서는 동독을 배려하고 국민 통합을 제고할 수 있는 적절한 카드였다.

저자는 메르켈이 정치적으로 성공한 이유를 자제력, 전략적 사고, 수동적인 공격성에서 찾는다. 콜에게 당시 메르켈을 추천했던 인물이 동독 비밀경찰, 슈타지(Stasi) 정보원이었다는 루머로 정치생명에 위기를 맞는다. 하지만 메르켈은 이를 적극적으로 해명하지 않았다. 또 1999년 콜이 불법 정치자금 후원과 관련된 스캔들에 휘말렸을 때 신문에 그를 비판하는 글을 실었다. 이 두 사건은 메르켈의 신중함과 냉정함을 잘 보여준다.

메르켈은 자신에게 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기민당의 유력 인물들이 정치자금 스캔들에 휘말리게 되면서 메르켈이 2000년 기민당 대표로 선출됐다. 독일 정치사에서 메르켈은 동독 출신에 과학자이고 여자인 ‘삼중 아웃사이더’였다. 이 비주류적 약점이 메르켈에게 오히려 기회가 됐다는 건 참 아이러니하다. 일단 기회를 잡은 메르켈은 물러서지 않았다. 2005년 이 삼중 아웃사이더는 독일 총리에 취임했다.

한국 정치 사정도 복잡한데 독일 정치의 실상에 대해 자세히 알기는 어렵다. 하지만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이후 독일 정부의 단호한 결정은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당시 원자력 발전에 대한 우려가 치솟은 상황. 독일은 재빨리 원전의 단계적 중단을 결정했다. 메르켈이 주도한 것이다. 그가 소속된 기민당은 원자력 발전에 우호적인 보수정당이다. 반(反)핵은 진보정당인 ‘녹색당’의 오래된 주장이었다. 녹색당은 메르켈에게 이슈를 빼앗겼다.

저자 마튼은, 메르켈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이 대중에게 환영받을 것임을 감지할 때마다 과감하게 이를 실천에 옮겼다고 평가한다. 탈원전 문제에서는 정치가 메르켈의 의견과 도덕주의자 메르켈의 의견이 일치했다. 여기에 탈원전을 지지하는 국민이 있고, 과학적 신념을 가진 그의 리더십이 있었기에 원전의 단계적 중단이라는 결정이 가능했던 것이다.

독일 총리로 지낸 16년간 그의 리더십은 유럽 전체에 영향을 미쳤다. 그의 뛰어난 협상력은 빛을 발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는 세계경제에 충격을 가했다. 유럽은 2002년부터 19개국이 단일화폐 유로를 쓰는 유로존(Eurozone)으로 묶여 있다. 북쪽의 풍요로운 국가들은 경제위기를 버텨냈지만 그리스,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 등 남유럽 국가 경제는 크게 흔들렸다. 독일은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대신 각국에 긴축을 요구했다. 메르켈은 끈질긴 협상을 통해 특히 심각했던 그리스를 유럽연합(EU)에 남겨두는 데 성공했다.

2015년 EU의 대(對)러시아 경제 제재를 이끌어낸 주인공도 메르켈이다. 메르켈은 우크라이나를 둘러싸고 서방세계와 러시아가 대립할 때 푸틴을 상대해야 했다. 서구의 대표 격이다. 우크라이나는 유럽 역사에서 히틀러, 스탈린 등 독재자의 관심 대상이었다. 비옥한 농토와 풍부한 천연자원을 갖고 있는 전략적 요충지라는 것이 이유다. 1991년 소비에트 연방 붕괴 이후 서서히 친(親)서방으로 기우는 우크라이나에 푸틴의 마수가 뻗혔다.

2014년 우크라이나의 친러시아계 대통령 빅토르 야누코비치는 EU와의 포괄적 조약에 서명하라고 요구하는 시위대에 발포 명령을 내렸다. 시위는 폭동으로 변했다. 야누코비치는 러시아로 망명했고, 푸틴은 우크라이나 남부 크림반도 지역을 합병하는 방식으로 보복했다. 푸틴과 오바마 그리고 메르켈은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복잡한 정세에 휩쓸렸다. 메르켈은 많은 시간과 엄청난 노력을 들여 2015년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를 이끌어냈다.

EU와 미국이 힘을 합친 러시아 경제 제재는 힘을 합친 기술적 위업으로 평가받는다. 여기서 복잡한 사안을 관리 가능한 단위로 쪼개는 메르켈의 탁월한 능력이 빛을 발했다. 러시아어에 능통해 ‘푸틴 잡는 무티(Mutti·엄마)’로 불렸던 그의 협상력 역시 중요하게 작용했다.

2014년으로 돌아가 지도자로서의 메르켈이 돋보였던 또 다른 사례를 살펴보자. 당시 시리아 내전으로 대규모 난민이 유럽으로 쏟아졌다. 2015년 터키 보드룸 해안에서 세 살 남자아이 쿠르디가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 배를 타고 시리아를 탈출하던 난민이었다. 빨간 티를 입은 쿠르디의 사진은 전 세계를 슬픔에 빠뜨렸다.

놀랍게도 메르켈은 100만 명의 난민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윤리적 결단이었다. 여기에는 루터교의 기독교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세계 평화를 위협했던 어두운 독일의 역사를 극복하겠다는 메르켈의 의지가 담겨 있었다. 2015년에는 독일 쾰른에서 남성들이 여성들을 추행하고 겁탈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용의자 32명 중 22명이 망명 절차를 밟고 있던 난민이었다. 우려와 다르게 이 사건 이후에도 90%의 독일인이 난민들에게 머물 곳을 제공하는 데 찬성했다. 메르켈의 결단력처럼 난민들을 수용하는 독일인들의 자세도 놀라웠다.

하지만 메르켈은 세 번째 총리 임기 말 극우 정당의 위협에 직면한다. 2016년 크리스마스, 베를린에서 이민자에 의한 테러로 12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후 난민 정책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커졌다.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은 2017년 연방하원에 입성하며 전체 의석의 15% 이상을 차지했다. 독일을 위한 대안은 난민 수용, 여권 신장, 국제 질서 등의 의제에서 메르켈의 모든 것에 반대했다.

마튼은 2016년 메르켈이 네 번째 총리직에 입후보하겠다고 결심한 것을 권위주의와 포퓰리즘이 확산하는 상황에서 대안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당시 메르켈이 입후보를 고사하면 세계 정치 무대에는 트럼프와 푸틴, 시진핑만 남게 되는 상황이었다. 2020년 미국 대선에서 바이든이 트럼프를 꺾고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메르켈은 2021년 네 번째 임기를 끝으로 16년간의 기나긴 총리직을 마무리했다.

한 소녀에게 보내는 응원

2015년 러시아 모스코바 크렘린 궁에서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왼쪽). 2005년 기민당 당 대표 시절의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

2015년 러시아 모스코바 크렘린 궁에서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왼쪽). 2005년 기민당 당 대표 시절의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

정치인을 평가하기란 어렵다. 선과 악을 분명히 가늠할 수 있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많은 업적을 남겼음에도 치명적인 잘못이 있을 수 있고, 다른 나라엔 불편한 악당이었지만 자국민들에겐 믿음직한 지도자일 수도 있다. 메르켈은 임기 말 독일 국민 80%의 지지를 받으며 퇴장했다. 하지만 그가 주도한 우크라이나의 일시적 평화는 2022년 러시아의 침공으로 깨졌고, 에너지 위기로 원전 중단 반대 의견이 독일 내에서 나온다. 정치는 움직이는 것이고, 정치인으로서 메르켈의 삶을 여기서 평가할 생각은 없다. 내겐 그럴 능력도 없다.

흥미로운 건 페미니즘에 대한 메르켈의 입장이다. 그간 메르켈은 페미니즘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보인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런데 돌아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메르켈은 2014년 독일 기업 이사회에 의무적으로 30%의 여성을 배정해야 한다고 법을 개정했다. 또 일곱 아이의 엄마인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을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2021년 퇴임을 앞두고 메르켈은 처음으로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고백했다. 페미니즘이 사회참여와 삶의 전반에서 남성과 여성이 평등해야 함을 추구한다면, 그런 의미에서 자신은 페미니스트라고 말이다. 메르켈은 언제나 말보다 실천을 앞세웠다.

자, 이제 글을 마무리하자. 지면을 빌려 메르켈의 삶과 정치를 돌아보려 한 까닭은 한 가지다. 21세기에 들어와 메르켈은 전 세계 여성들에게 하나의 분명한 롤 모델을 제시해왔다. 메르켈 자신이 이와 연관된 말을 한 적도 있다. 메르켈은 “성차별주의에 맞서는 나의 가장 큰 무기는 인생에서 성공을 거둬 다른 사람들이 따를 수 있는 자극제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21세기 가장 큰 자극제 역할을 한 여성이 메르켈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오늘날에는 어린 소녀가 ‘언젠가 장관이 되고 싶다’ ‘총리가 되고 싶다’는 말을 하더라도 웃는 사람은 없습니다. 심지어 일부 사람들은….”

그는 말을 잠시 멈췄다가 이렇게 덧붙였다.

“남자가 이런 직무에 적합할지 의아해하기도 합니다.”

메르켈이 이런 농담을 던지자 청중으로부터 폭소가 뒤따랐다. 2018년 독일에서 여성참정권 보장 100주년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역사는 더디지만 이렇게 발전한다.

롤 모델로서 메르켈의 역할은 세계 어디서건 한 소녀가 자신이 여자라서 무언가를 못 한다고 생각하지 않게 하는 일이다. 또한 어떤 사람도 성별에 따라 할 수 있는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메르켈은 성별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뛰어넘어 스스로 갈고닦은 능력과 성실성으로 우리 시대 최고의 정치가 중 한 사람이 됐다. 이 세상의 젊은 여성들 또는 어린 소녀들에게 이보다 더 큰 응원이 어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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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연의 다시 만난 그녀들
1970년 출생. 연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다양한 글쓰기를 하는 전업 에세이스트로 살아가고 있다.




사진 게티이미지 뉴시스 
사진제공 모비딕북스



여성동아 2022년 9월 70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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