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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키즈존 국회에 유모차 끌고 등원한 용혜인 의원

글 이현준 기자

2021. 07. 20

여성과 아이에게 유독 인색한 우리 국회가 이번에는 바뀔 수 있을까. 국회 회의장 아이동반법을 발의한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을 만났다.

7월 5일 국회에선 그동안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광경이 펼쳐졌다. 용혜인(31) 기본소득당 의원이 생후 59일 된 아들을 유아차에 태워 함께 등원한 것. 5월 8일 출산한 용 의원이 출산휴가를 마치고 국회로 첫 출근한 날이었다. 용 의원은 지난해 10월 페이스북을 통해 “임신 7주 차 예비 엄마가 됐다”고 알린 바 있다. 현역 의원의 임기 중 출산은 19대 국회 장하나 의원(당시 민주통합당), 20대 국회 신보라 의원(당시 자유한국당)에 이어 용 의원이 세 번째다.

이날 용 의원은 김상희 국회부의장을 예방해 면담을 가진 후 국회 소통관에서 아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이 5월 17일 발의한 ‘국회 회의장 아이동반법’(국회법 일부 개정안,이하 아이동반법)의 통과를 촉구했다. 아이동반법은 수유가 필요한 24개월 이하의 영아 자녀와 국회 회의장에 동반 출입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법안이다. 20대 국회에서 신보라 의원이 같은 내용으로 법안을 발의한 적 있으나 임기 내에 처리되지 않았다. 현행법상으론 국회에는 의원·국무총리·국무위원 또는 정부위원, 그 밖에 의안 심의에 필요한 사람만이 출입할 수 있으며 이들 외엔 국회의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용 의원의 행동에 대한 관심은 뜨겁다. 관련 기사가 쏟아져 나왔고 댓글과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누리꾼들의 설전이 벌어졌다. 워킹맘들에게 도움이 될 용기 있는 결단이라는 응원도 있는 반면 ‘쇼’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나왔다. 7월 6일 국회 사무처 직원과 보좌진 등의 페이스북 익명 게시판 ‘여의도 옆 대나무 숲’에는 현실도 모르는 보여주기식 법안이란 지적을 골자로 한 게시글이 올라오기도 했고, 결국 아이를 돌보는 건 보좌관의 몫이 될 것이라는 의견도 게시됐다.

용혜인 의원은 이와 같이 사회적 논의에 화두를 던지는 삶을 살아왔다. 2010년 진보신당에 입당해 정계에 입문한 그는 2014년 세월호 참사 추모 침묵 행진 ‘가만히 있으라’를 주도했고 노동당 당 대표를 거쳐 2019년 기본소득당을 창당, 기본소득을 사회적 어젠다로 제시했다. 2020년 범여권 연대로 더불어시민당에 입당해 비례대표 5번에 배치, 21대 국회에 입성한 후 5월 기본소득당으로 복귀했다. 이후 전 국민 1인당 60만원 기본소득 지급을 중심으로 포괄적 차별금지법 발의 동참, 낙태법 개정안 제정 촉구 등 사회 쟁점과 관련해 활발한 의정 활동을 펼치고 있다.

7월 15일 용 의원을 만났다. 그의 의원실 입구에 ‘귀염둥이 단이’라는 문구와 함께 붙어 있는 아이의 사진이 인상 깊었다. 그는 아이와의 동반 출근에 대해 “이렇게까지 화제가 될 줄 몰랐다”며 웃으면서도 “이는 변화의 시작일 뿐이다”라고 의지를 드러냈다. 그가 아이동반법을 통해 바라보고 있는 지향점은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눴다.




아이 키우는 여성 사회의 변두리로 밀려나선 안 돼

의원실 입구의 아이 사진이 인상 깊어요.

다른 의원실에서 아이를 보러 오시는 분이 많아 사진을 걸어두었어요. 7월 5일 함께 등원한 이후론 아이를 데리고 온 적이 없거든요.

아이와 국회에 함께 출근한 소감은 어떤가요.

예방 접종 때문에 가까운 병원 정도를 간 것 외엔 아이와 이렇게 멀리 나온 건 처음이었어요. 전날 저녁부터 밥 먹이는 시간, 재우는 시간, 국회로의 이동 시간 등을 계산해서 시뮬레이션해야 했어요. 아이와 함께 외출하는 게 참 어렵더라고요. 대모험이었어요(웃음).

불편했던 점은 없었나요.

국회는 비교적 시설이 잘 갖춰진 편이에요. 경사로 배치가 잘돼 있어서 유아차를 끌고 다니기 편했어요. 또 저는 사무실이 있으니 아이에게 밥을 먹이거나 기저귀를 갈아주기도 수월했죠. 하지만 국회 직원이나 민원인들에겐 어려운 일이겠죠. 또 수유실을 둘러봤는데, 정말 최소한의 것들만 있더라고요. 개선돼야 할 지점이라고 생각했죠. 상대적으로 상황이 나은 국회가 이 정도라면 더 열악한 곳이 많을 거예요.

출산일이 5월 8일인데, 아이동반법 발의일은 5월 17일이에요. 출산 전부터 법안 발의를 염두에 뒀던 건가요.

네. 출산 전부터 임신, 출산, 육아와 관련된 사항들을 점검하면서 출산 후 국회에 돌아가 다룰 법안을 준비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원래 출산 예정일이었던 5월 말보다 빨리 아이를 낳게 돼서 출산 이후 발의를 하게 됐어요.

지금은 누가 아이를 돌보고 있나요.

남편이 육아휴직 중이라 주로 돌보고 친정어머니도 조금씩 도와주세요. 친정 찬스는 정말 쓰기 싫었는데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요. 친정어머니가 저한테만 매여 있을 수는 없잖아요. 남편도 아프거나 다른 일을 해야 할 때가 있고요. 그래서 아이동반법이 더 필요했죠.

현행법상으로도 국회의장의 허가를 받으면 입장이 가능하잖아요. 그럼에도 법제화를 추진한 까닭은 무엇인가요.

크게 2가지 이유가 있어요. 첫 번째는 아이를 양육하는 사람이 정치에 참여하는 건 ‘허가’를 받아야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아이를 키우다 보면 부득이한 경우가 많이 발생해요. 이는 사회에서 함께 감당하고 부담을 덜어줘야 하는 건데, 부모가 “허락 좀 해주세요”라고 할 문제가 아니죠. 두 번째는 국회의장이 불허한 전례가 있어요. 20대 국회 당시 문희상 의장이 신보라 의원의 요청을 거절했거든요. 어제 신 전 의원을 만났는데, 말씀하시길 당시 문 의장께서 “신 의원이 발의한 회의장 입장에 아이를 동반 가능하게 하는 법안이 국회운영위원회에 상정돼 있는 상태인데, 내가 허가하면 관련 논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거부하셨다고 하더군요.

당시 신 전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결국 통과되지 않았어요. 이번엔 가능할까요.

현재 국회운영위원회가 여야 간 상임위원회 문제로 열리지 않아 논의가 진행되지 못하고 있어요. 이렇게 시간이 지나다 거대 양당의 관심에서 밀리면 어려워질지도 모르죠. 하지만 이번 발의에 함께 이름을 올린 60명의 의원 가운데는 7개 정당 중 6개 정당의 원내대표가 포함돼 있어요. 또 뚜렷한 이견이 있는 의원도 없는 것 같고요. 암울하진 않은 상황이라 생각해요.

외국 의회는 아이와의 동반 입장이 가능한 경우가 많다. 유럽의회, 호주, 뉴질랜드, 미국 등에선 국회 회의장에 자녀 출입이 허용된다. 모유 수유도 가능한데, 2017년 호주 상원의 라리사 워터스 전 의원은 본회의장에서 생후 2개월 된 딸에게 모유를 수유하며 연설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외국과는 달리 한국에선 아직 낯선 것 같아요.

한국에서 정치란 대개 20, 30대가 아이를 키우며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잖아요. 50, 60대의 남성 의원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고요. 이런 문화가 반영됐기 때문 아닐까요. 이 법안은 회의할 때마다 매번 아이를 데려오겠다는 뜻은 아니에요. 코로나19로 ‘돌봄 쓰나미’를 경험하신 분들이라면 이해하실 거예요. 남편과 친정 부모가 아이를 돌볼 수 없는 상황에, 연차도 쓸 수 없다면 부득이하게 아이를 직접 돌봐야 할 수도 있잖아요. 이럴 때 하루 정도 아이를 데려와서 일하면 좀 어떤가요. 신 전 의원이 법안을 발의했을 때 다른 의원의 입법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비판이 있었어요. 아이가 울음을 터뜨릴 수도 있다면서요. 그런데 아이가 우는 게 그리 입법권을 침해하는 행동인가요. 국회 회의장에서 의원이 발언할 때 소리 지르고 퇴장해버리는 게 더 그렇지 않나요(웃음). 아이를 데려올 수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아이를 키우는 것만으로 입법권, 참정권을 제한받는 거잖아요. 아이를 돌보면서 의정 활동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다른 이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게 아니라면 그 정도는 양해해주면 좋지 않을까요. 국회뿐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요.

저출산 문제로 출산이 독려되는 상황인데, 사회적으로 아이를 꺼린다면 모순이라 볼 수도 있겠어요.

우리 사회가 아이라는 존재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육아를 어떻게 인식하는지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이는 원래 울잖아요(웃음). 자기도 하고 뛰어다니기도 하는 거죠. 그 시간을 거쳐 우리 같은 어른이 되는 건데, 사회가 그런 아이들을 견디고 이해해주는 너그러움이 사라진 것 같아요. ‘노키즈존’을 보면 더 그런 생각이 들고요. 시끄럽고 거슬릴 수 있지만 육아가 원래 그런 건데, 아이를 키운다는 이유만으로 사회의 보이지 않는 곳으로 밀려나선 안 돼요. “출산율이 너무 낮다” “아이를 더 낳아라” “젊은이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다” 등 이야기하지만 마치 육아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엄마가, 아이를 의젓하게 다 키워낸 후에 사회로 내보내야 하는 것으로 인식되곤 하죠. 엄마들이 주말이나 저녁에 누군갈 만나면 으레 “아이는 어쩌고?”라는 질문이 따라와요. 남성들에게는 그런 걸 묻지 않잖아요.

‘바꿔내기’ 위한 ‘보여주기’

아이와의 동반 출근을 정치적 쇼로 보는 시선도 있어요.

이렇게까지 이슈가 될 줄 알았다면 법안을 더 잘 준비할 걸 그랬어요(웃음). 점검해야 할 일이 너무 많더라고요. 여성들이 왜 ‘독박 육아’를 하는지 따져보려면 사회적 고정관념뿐 아니라 성별 간 임금격차라는 사회 구조의 문제도 살펴봐야 하고, 임신과 출산으로 인한 경력 단절도 다뤄야 해요. 국회에 복귀하면서 이러한 문제를 다룬 패키지 법안을 발의하면 좋았을까 싶지만 그러지 않은 까닭은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방향을 잘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아이동반법 발의는 단지 시작이에요.

페미니스트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도 있지만 용 의원 스스로는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2019년 노동당 당대표에 당선될 때도 페미니즘을 기치로 내세운 바 있고, 비례대표뿐 아니라 지역구 후보도 여성 할당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여성 권리 신장을 위해 목소리를 내왔다. 그리고 용 의원은 임신과 출산을 겪으며 여성의 삶을 더 깊이 느낄 수 있게 됐다고 했다. 기본 소득이라는 도발적인 의제를 던진 신인 정치인에겐 한 아이의 엄마라는 타이틀이 더해졌다.

정치와 육아 모두 아직 초보라고 할 수 있잖아요. 어느 게 더 어렵나요.

종류가 다른 어려움이에요. 기본소득이라는 의제와, 이를 위한 길을 걷는 기본소득당 둘 모두 그동안 한국 사회에선 볼 수 없었던 것이거든요. 아무도 걷지 않은 길을 걸어간다는 점에서 어렵죠. 육아가 어려운 이유는 크게 2가지인데, 그중 한 가지는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두려움이에요. ‘이제 아이를 낳기 전의 삶은 없구나’ 하는. 자유롭게 외식하고, 친구를 만나고, 여행을 다니는 삶은 앞으로 없을 테니까요. 나머지 하나는 아이랑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거예요(웃음). 아이는 우는 거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잖아요. 그럼에도 저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존재이기에 관계를 맺어나가야 하죠. 물론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겠지만요(웃음).

아이는 순한 편인가요.

일단 그런 듯한데, 오늘로 생후 69일이라 좀 더 살아봐야 알 수 있지 않을까요(웃음). 조금 일찍 출산해서 아이가 작게 나왔는데도 잘 먹고 자요. 크게 아픈 곳 없이 잘 자라고 있는 것 같아요.

여성 문제에 대해 많은 관심을 기울여왔잖아요. 임신과 출산을 겪으며 더 와 닿게 된 부분이 있나요.

네. 여성의 고민에 대해서요. 제가 임신했을 때 솔직히 기쁨보다 걱정이 앞섰어요. ‘선출직의 임신과 출산에 대해 국민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하고요. 또 출산휴가를 써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도 겪었죠. 쉬자니 해야 할 일이 있고, 그렇다고 바로 일을 하자니 ‘슈퍼맘’의 롤 모델이 되는 건 아닐까 걱정됐죠. 사회에서 “국회의원도 출산하고 바로 일하는데, 당신이 뭐기에 휴가를 쓴다고 하냐”라는 분위기가 생길까 봐요. 딜레마에 빠진 거죠. 아이를 낳은 후엔 마땅히 맡길 곳이 없어 애를 먹었고요. 이 외에도 그동안 알지 못했던 디테일한 부분에 대해 알게 됐어요.

예를 들자면.

난임 치료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많은데, 난임치료휴가가 단 3일밖에 주어지지 않더라고요. 또 자녀가 초등학교 1학년이 되면 돌봄 공백이 발생하고요. 그 전에는 어린이집에서 오후까지 맡아줬는데, 1학년은 점심쯤이면 수업이 끝나버리니까요. 그래서 휴직을 하거나 심한 경우 퇴사를 해야 하고, ‘학원 뺑뺑이’를 시키기도 하고요.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의 의료지원 문제도 있어요. 임신 중 초음파 검사를 대개 2주에 한 번씩 받아야 하는데, 임신기간 통틀어 7번밖에 비용이 제공되지 않더라고요. 조산을 방지하기 위한 약도 외국에서는 부작용 때문에 사용하지 않는 것만 건강보험 적용이 되는 상황이고요. 앞으로 이러한 디테일한 부분을 해결해나가고 싶어요.

아이동반법 발의가 시작이라고 하셨어요. 앞으로 어떤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까요.

우선 아이동반법 법안에는 ‘여성 의원’이 아이를 데려올 수 있다고 명시하지 않았어요. 왜냐면 아이를 일터에 데려가야 하는 상황은 엄마에게만 생기는 게 아니잖아요. 저만 이득을 보기 위해 발의한 법안이 아니에요. 코로나19 발생 이후 많은 부모가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어린이집 휴원이나, 학교에서 확진자가 나오면 갑작스레 아이가 하교하기도 하고요. 이럴 때 돌봄이냐, 일이냐 선택을 강요받지 않았으면 해요. 이 법안은 국회법 개정안이기에 통과돼도 국회 안에서 영향력을 미치는 게 맞지만 이에 대한 관심을 시작으로 많은 것들이 변할 거라고 생각해요. 국회만 해도 법과 제도를 만드는 곳이지만 보좌진의 경우 임신하면 일을 지속하기 어렵고 육아휴직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해요. 그러면서 민간의 영역에 육아휴직과 출산휴가를 보장하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을 거예요. 비록 응원과 함께 비난도 많이 받았지만 아이동반법 발의에 대한 관심은 저에게 기회라고 생각해요. 이후 제가 내놓을 양육, 임신, 출산에 대한 지원 법안들이 더 관심을 받을 수 있을 테니까요. 그렇기에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아이와 함께 출근한 것이 단순한 ‘보여주기’가 아니라 ‘바꿔내기’를 위함이라는 걸 입증하는 게 저에게 남은 책임인 것 같아요.

사진 지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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