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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column

일의 우선순위와 자기 결정권

글 이성배 아나운서

입력 2021.02.10 10:30:01

2021년, 어느덧 열 살 아들의 아빠가 되었다. 영원히 20대의 마음으로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10대의 아들을 둔 40대가 되고 보니 20대 청춘보다는 40대 중년의 마음에 더 가까워진다. 지난해까지 새해 다짐에는 나 자신의 발전이 1순위였는데 이젠 아들의 성장으로 무게중심이 옮겨졌다. 

부쩍 자란 헌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애잔함이 느껴진다. 

왠지 나를 키우던 30년 전을 돌이켜보고 계시는 것만 같다. 슬그머니 어머니께 어떤 감정인지 여쭈어보니 “너를 키울 때 놓쳤던 감정들이었는데, 자라는 헌이를 보면서는 놓치지 않고 차곡차곡 담고 싶다”고 하신다. 

헌이는 점점 할머니의 통제권에서 벗어나기 시작했고,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늘었다. 헌이의 육아는 돌봄에서 교육과 관리의 시기로 넘어가고 있다. 

아이를 적절한 수준에서 통제하고 관리해야 할진데 아이와의 감정적 오해는 만들지 않으면서 부모로서, 양육 담당자로서 선을 지키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 



코로나19로 인해 학교보다 학원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보니 친구 관계에서 넓이보다는 깊이가 중요해져 간다. 친구를 많이 사귀기보다는 가까운 친구와 어울리는 시간이 많아졌고, 그들과 야외활동이나 게임을 하는 시간이 늘었다. 부모 입장에서는 다양한 친구들과 많은 경험을 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놀이터에서 놀다가 늦은 시간이 되어도 부모와의 약속보다는 함께 하던 친구와의 시간을 놓치기 싫은지 그 순간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밖에서 놀지 말라고 억지로 강요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친구와 밖에서 노는 것을 마냥 내버려두기도 난감하다. 

더욱이 지난해부터 휴대전화를 사달라고 졸라온 헌이의 요청을 못이기는 척 받아주게 됐다. 모바일 게임과 유튜브에 푹 빠져 있는 헌이에게 스마트폰을 허용하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꼴이기에 그동안 사주지 않고 버텨왔다. 그런데 헌이가 오후 6시 넘도록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도 많아지고, 어두울 때 헌이를 찾느라 어머니와 내가 고생하는 일이 늘면서 더는 버틸 수 없었다. 헌이는 친구들 대부분이 가지고 있는 휴대폰을 드디어(?) 손에 쥐게 됐다. 

지난해 영국 연수에서 돌아와서 4주간 자가격리를 하며 10kg 가까이 몸무게가 불어난 적이 있다. 자기관리가 얼마나 어려운지 새삼 깨달았던 순간이다. 그런 내가 헌이에게 시간 관리 및 일의 우선순위를 알려주는 것은 쉽지 않았다. 

요즘과 같은 코로나 형국에는 더욱 그렇지만 방학을 맞은 지금이 적기가 아닐까 싶었다. 하루에 운동 몇 시간, 게임 몇 시간, 독서 몇 시간 등 꼭 해야 할 것들을 작성하도록 하고 그 중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려줬다. 무엇보다 ‘중요함의 정도’를 아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했다. 아이가 가장 하고 싶어하는 것을 마지막에 놓고, ‘혜택이란 노력의 결과로 얻는 것’임을 주지시켰다. 

헌이는 방학을 맞이해 생활계획표를 작성하고, 계획표 내에서 휴대폰 사용시간을 직접 정하기로 했다. 이를 어길 경우 벌칙 또한 스스로 제시하도록 했다.
헌이는 휴식시간에만 휴대폰을 사용하기로 했으며, 공부보다 휴대폰 사용이 우선할 수 없다는 원칙을 직접 세웠다. 권한과 책임이라는 것을 설명하기 어려웠는데, 휴대폰 사용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바탕으로 우선순위의 개념까지 이해시키는데 도움이 됐다.

헌이 : 아빠, 독서록 다 쓰면 휴식시간이에요. 나가서 저와 축구해요.
아빠 : 어제 눈이 왔으니, 축구 말고 같이 눈싸움을 하자!
헌이 : 믿을 수 없어. 아빠와 눈싸움이라니! 오늘은 내가 이길 거예요!

전국에 폭설이 내린 다음날, 세상을 다 가릴 듯 하얀색으로 뒤덮인 세상을 보니 실감이 나지 않았다. 지난해 영국에서 맞이한 새해와는 사뭇 달랐다. 그래서일까. 헌이도 마냥 신나 보였다. 속으로는 ‘헌이의 방학을 맞아 기억을 남길 일이 생겼다’며 나부터 신이 났다. 눈싸움과 축구를 하면서 적어도 헌이와 생산적인 하루를 보낸 것 같아 뿌듯하기도 했다. 

이제 헌이는 방안에 머물러 글을 쓰고 책을 읽는 것이 일상이 됐다. 곧잘 자기관리를 하는 모양새다. 시간을 재 숙제를 하기도 하고, 시간 내 문제집을 풀고, 독서록도 쓴다. 부모가 모든 것을 통제할 수는 없다. 자연스럽게 아이가 스스로 결정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안내할 뿐이다.

‘싱글 대디’ 아놔리의 육아 라이프

이성배 아나운서는 2008년 MBC에 입사해 ‘섹션TV 연예통신’ ‘생방송 오늘 아침’ 등에서 리포터와 MC로 활약했다. 7년 전 이혼 후 홀로 아들을 키우는 싱글 대디. ‘아놔리(아나운서 리)’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걸 좋아하는 그가 자신만의 특별한 육아 경험을 담은 칼럼을 여성동아에 연재한다.





사진제공 이성배



여성동아 2021년 2월 68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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