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PEOPLE

celeb

‘카시오페아’ 서현진이 선보이는 진심의 힘

두경아 프린래서 기자

2022. 06. 01

완벽한 딕션과 최고의 감정 몰입도로 시청자를 사로잡아온 배우 서현진이 영화 ‘카시오페아’에서 알츠하이머병 환자를 연기했다. 노 메이크업으로 어린아이가 되어가는 과정을 연기한 그는 “카시오페이아 별자리처럼 암흑 속 길잡이가 되어준 배우들이 있어서 길을 찾았다”고 말한다.

알파벳 ‘W’ 모양의 카시오페이아(Cassiopeia·닻별)자리는 북두칠성과 함께 밤하늘에서 가장 밝은 별자리로, 북극성을 찾는 길잡이 역할을 한다. 이 별자리의 이름을 제목으로 붙인 영화 ‘카시오페아’는 변호사이자 싱글맘으로 살아가는 ‘수진’이 초로기 치매(알츠하이머병)로 기억을 잃어가며 아빠 ‘인우’와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머릿속이 암흑처럼 변한 수진에게 인우는 길을 안내해주는 카시오페이아 같은 존재로 그려진다. 그간 초로기 치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는 종종 있었으나, 이 영화는 그간의 서사에서 한발 더 나가 평생 무심했던 아빠의 ‘역육아’에 힘을 싣는다. 역육아란 일반적인 육아의 반대, 즉 어른에서 거꾸로 어린아이로 변해가는 딸을 키우는 일이다.

아빠 인우는 국민 배우 안성기가 맡아 애틋한 부정을 연기하고, 완벽한 변호사에서 어린아이로 변해가는 수진 역은 배우 서현진(37)이 맡았다. 서현진을 캐스팅한 신연식 감독은 “수진 역은 엄마의 역할, 딸의 역할, 커리어 우먼 역할에 합당해야 했는데, 그 모든 것이 가능한 배우가 서현진이었다”며 “현진 씨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질감이 영화 속 너무 무겁고 힘든 부분을 상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서현진은 tvN ‘또 오해영’과 ‘너는 나의 봄’, SBS ‘사랑의 온도’, JTBC ‘뷰티 인사이드’ 등에서 정확한 딕션과 최고의 감정 몰입도로 시청자를 사로잡은 배우다. 그는 주로 인생의 벼랑 끝에서 희망을 찾는 역할을 맡아왔다. 비록 이 영화에서 수진은 더 나아질 리 없는 알츠하이머병 환자지만, 어쩐지 그 안에서도 길을 찾아 나설 것 같은 기분이 들게끔 한다. 그것이 바로 신 감독이 말하는 ‘서현진이라는 배우가 갖는 질감’일 터. 기대에 부응하듯, 서현진은 이번 영화에서 몸을 사리지 않은 열연을 펼쳤다. 그는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환자 연기는 감정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쉽지 않아 촬영 전부터 여러 차례 위기를 넘겼다”고 고백했다.

메이크업 지우고 임한 알츠하이머병 환자 연기

초로기 치매에 걸린 딸 ‘수진’과 기억을 잃어가는 딸을 돌보는 아버지 ‘인우’로 호흡을 맞춘 배우 서현진과 안성기.

초로기 치매에 걸린 딸 ‘수진’과 기억을 잃어가는 딸을 돌보는 아버지 ‘인우’로 호흡을 맞춘 배우 서현진과 안성기.

“2년 전 감독님께 대본을 받았는데, 중반부부터는 엄청나게 울면서 읽었어요. 그때는 대본이 너무 좋아서 출연하고 싶은 마음이 컸죠. 그로부터 1년쯤 지나니 못 할 것 같았어요. 너무 무서워서요. 그러다 또 1년쯤 지나니 ‘할 만하겠다’ 싶었는데, 막상 대본 리딩을 하고 나니 또다시 무서워지는 거예요. ‘내가 왜 겁도 없이 이걸 하겠다고 했지?’ 하는 생각에 감독님께 울면서 전화했죠. 그때 감독님은 ‘즐거운 여행을 떠나듯이 나를 믿고 따라와 달라’고 하셨는데, 정말 그대로 즐거운 여행이 됐어요.”



‘즐거운 여행’이라 했지만, 촬영은 그야말로 고됨의 연속이었다. 병으로 변호사 일을 그르치고, 진단을 받고 오열하고, 배변 실수를 하고, 종이를 먹고, 딸도 알아보지 못하는 등 자신을 잃어가는 과정이었다. 쉬운 장면이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촬영하면서 감정 컨트롤은 전혀 안 됐어요. 울다 지쳐 잠이 들고, 자다 깨서 또 울고. 주변 지인 중에 알츠하이머병으로 돌아가신 분이 있었는데, 그분 생각이 많이 났어요. 연기를 하면서 그분을 다시 만나는 기분이 들었고, 촬영이 그분을 계속 만나는 과정처럼 느껴졌어요.”

서현진은 알츠하이머병 환자를 연기하기 위해 메이크업을 하지 않고 촬영에 임했다. 초반 아름답고 당당하던 수진이 처참하게 무너지는 과정은 외적인 변화와 함께 표현됐다.

“병세가 악화된 상황에서 메이크업을 하면 이상할 것 같아서 제가 (감독님께) ‘메이크업을 안 해도 되겠냐’고 여쭤봤거든요. 맨얼굴로 촬영하니 굉장히 자유로워지더라고요. 훨씬 과감하게 연기했고, 그 자체로 얻어지는 효과도 있었어요. 분장 팀도 제 맨얼굴의 느낌이 좋다고 했죠. 정말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아요.”

촬영하며 카시오페이아 같은 존재들 깨달아

영화 ‘카시오페아’ 기자간담회에서 배우 서현진을 캐스팅한 신연식(오른쪽) 감독은 “엄마, 딸, 커리어 우먼 역할에 모두 합당한 배우는 서현진뿐이었다”고 말했다.

영화 ‘카시오페아’ 기자간담회에서 배우 서현진을 캐스팅한 신연식(오른쪽) 감독은 “엄마, 딸, 커리어 우먼 역할에 모두 합당한 배우는 서현진뿐이었다”고 말했다.

영화 속 아빠 안성기와 딸 주예림은 서현진에게 카시오페이아 같은 존재였다. 특히 그는 대선배 안성기와 함께 연기하는 시간 동안 기적 같은 체험을 했다고 회고했다. 차 안에서 아빠에게 교육받는 장면에서였다. 인우는 인지 능력이 떨어진 딸이 자신이 없는 곳에서 피해를 볼까 두려워 반복적인 교육을 시킨다. “아빠가 하는 말 따라 해. 만지지 마, 때리지 마! 우리 아빠가 싫어해요. 우리 딸이 싫어해요”라고 하면서.

“촬영 당일까지도 그 장면을 어떻게 연기해야 할지 결정을 못 하고 있었어요. 너무 아기 목소리가 나와도 안 될 것 같고, 너무 멀쩡해도 안 될 것 같아서요. 그래서 난감한 마음으로 선배님을 바라봤는데, 순간 제가 연기를 하는 건지 실제 안성기라는 사람과 대화하는 건지 분간이 안 되는 거예요. 선배님의 말을 따라 했던 제 목소리에 제가 놀랐어요. 생각하지도 못한 톤의 목소리가 나왔거든요. 아마 선배님의 성품이 인우에 많이 녹아 있어서 그렇게 느꼈던 것 같아요. 정말 신기한 체험이었어요.”

영화 속 수진의 딸 ‘지나’를 연기한 주예림은 어린 나이임에도 범상치 않은 이력을 가지고 있는 아역 배우다. 주예림은 KBS 드라마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로 KBS 연기대상 여자 청소년 연기상을 받은 바 있다. 현재는 JTBC 드라마 ‘그린마더스클럽’에서 추자현의 딸 역을 맡아 놀라운 연기를 선보이는 중이다.
“예림이는 성인 배우와 다름없어요. 트레이닝이 따로 필요 없을 정도로 어떤 상황에 놓이면 이미 알아서 연기를 하고 있더군요. 앞으로 얼마나 더 잘할까 궁금한 친구입니다.”

서현진도 이 영화를 찍으며 간접적으로나마 부모의 사랑을 경험하는 순간이 있었다. 아빠와 딸, 손녀가 함께 별을 보는 장면에서다. 그 장면에서 포착된 시선이 그의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3대가 함께 별을 보는 장면을 찍고 나서 모니터를 했는데, 저는 제 자식(예림)만 보고 있고, 안성기 선배님은 저만 보고 계셨어요. 전혀 인식하지 못했던 시선이라 너무 놀랐죠. 엄마에게 전화해서 그 이야기를 했더니 ‘원래 자식은 부모가 아프기 전까지는 돌아보지 못한다’면서, ‘그걸 영화 찍으면서 느꼈구나’ 하시더군요. 제게는 굉장히 뜨끔한 장면이었죠.”

서현진은 “제 연기에 만족하지 못하지만, 이 영화는 완전히 제 취향이다”라며 영화를 추천했다.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딸과 그 딸을 돌보는 아버지라는 설정은 언뜻 신파적으로 느껴지지만, ‘카시오페아’는 그 이상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많은 것을 느끼게 할 영화다. 영화는 6월 1일 개봉한다.

“처음 이 영화가 수진의 이야기라고 생각했고, 찍으면서는 아빠와 딸의 이야기라고 느꼈어요. 기술 시사회를 한 뒤에는 가족에 관한 이야기, 부모와 자식의 유대에 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족은 가장 가까우면서도 많이 싸우는 애증 관계잖아요. 저는 3대에 걸쳐 드러나는 이야기가 슬프기보다는 따뜻하게 느껴졌어요. 각박해진 요즘 상황에서 마음을 건드릴 수 있는 영화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서현진 #안성기 #카시오페아 #여성동아

사진 동아DB 
사진제공 트리플픽처스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