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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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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된 고현정의 화양연화

글 이미나

2021. 10. 28

고현정이 오랜 공백기를 끝내고 전성기 시절 이상의 미모를 장착하고 돌아왔다. 명불허전이란 이럴 때 쓰는 말인 듯하다. 

딱 ‘한 장면’이면 충분하다. 배우 고현정(50)이 이제부터 연기할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무표정한 얼굴로 부하들을 연달아 베고는 얼굴에 피가 묻은 채로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지만 내 사람은 그럴 수 없다”고 선언했던 드라마 ‘선덕여왕’(2009) 속 미실, 표정도 말도 없이 무기력한 삶을 살다 마치 그간의 설움과 고독을 단번에 토해내듯 파도 소리보다 큰 울음을 쏟아내던 드라마 ‘봄날’(2005)의 서정은, 사복경찰로부터 미행을 당하다 천만다행으로 이를 따돌리곤 말갛게 웃음 짓던 드라마 ‘모래시계’(1995) 속 윤혜린이 모두 그랬다. 그 한 장면에 이를 지켜본 이들은 그 인물의 과거와 현재를 이해했고, 작품이 전개되며 다가올 미래를 기대했다. 물론, 때론 고현정이 연기한 역할이 기대와 다른 상황 속에 놓이거나 주인공과 대척점에 서 갈등 관계를 빚다 비극적 결말을 맞기도 했다. 그럼에도 보는 이들이 그 인물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었던 건 ‘고현정’이라는 인장이, 쉽게 잊을 수 없는 딱 한 장면이 뇌리에 남은 덕분이었다. 연기 지도가 혹독하기로 유명했던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작별’(1994)을 거치며 쌓아 올리고, ‘선덕여왕’ 속 미실에서 제대로 꽃피운 연기력은 든든히 그 뒤를 받친다.

지난 10월 13일 첫 방송된 드라마 ‘너를 닮은 사람’도 이 공식을 빗겨 가지 않는다. 2년 만에 브라운관에 복귀한 고현정은 이 작품에서 가난한 젊은 시절을 보냈지만 행복한 가정을 꾸린 뒤 화가이자 에세이 작가로 성공적인 삶을 사는 정희주 역할을 맡았다. 제작발표회에서 그는 “복귀해서 행복하다.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운명적이었던 것 같다”고 밝혔다. 몸과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이상하게 이 작품이 눈에 들어와 읽어봤는데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너를 닮은 사람’에서 고현정은 다정한 남편(최원영)을 배웅하고, 갑자기 들이닥친 불청객 구해원(신현빈)과도 큰소리 한번 내지 않으며 우아하게 대화를 이어가다 그가 돌아서자 일순 표정을 굳히고 머리를 쓸어 올린다. 그 찰나의 순간에, 남부럽지 않은 우아한 삶 이면에 드리운 그늘이 스쳐 지나간다. 아직은 앞으로의 전개를 가늠할 수 없다 해도, 왜 이 드라마의 전면에 미스터리와 서스펜스라는 수식어가 나섰는지를 단번에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데뷔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고현정의 빛나는 외모도 드라마 방영 전부터 연일 화제를 모으고 있다. 야위어 보일 만큼 날씬해진 몸매와 주름 하나 없는 탱탱하고 뽀얀 피부는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특히나 ‘너를 닮은 사람’ 제작발표회에서는 포니테일 헤어에 미니 트위드 원피스를 발랄하게 입어 걸 그룹 포즈를 해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다는 팬들의 찬사까지 받았다.

사람들을 납득시키는 무한한 삶의 내공

물론 이른 은퇴부터 10년 만의 복귀까지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삶의 여러 과정을 겪어온 만큼, 고현정에게는 작품과 별개로 꼬리표처럼 뒤따르는 갖은 이야기들이 있다. 하지만 과거 예능 프로그램 ‘무릎팍도사’에서 “(예전에는) 다 잘해야 하는 줄 알았는데, 못해도 되는 것도 있다. 이제는 (그런 것들을 포기할 수 있는) 머리나 용기가 생겼다”고 털어놨던 것처럼, 자신을 둘러싼 여러 이야기들에 그는 애써 노력해 이해받으려 하지 않는다. 때로는 책으로, 때로는 다큐멘터리로, 그리고 종종 그가 선택한 작품으로 자신을 뚜렷하게 드러내 보일 뿐이다. 이런 명료한 태도는 2012년 영화 전문지 ‘씨네21’ 속 배우 배두나와의 대담 속에서도 정확히 드러난다. “우리가 자진해서 올라간 거야. 저 도마엔 나만 올라가겠다고 보채기도 하고. 붕장어는 싫다고, 광어가 되겠다고도 하고. 우리가 귀족처럼 가만히 있고 싶은데 억지로 이 세계에 끌려와서 마지못해 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말이지.



할 때는 하는 거야.” 그리고 흥미롭게도, 고현정은 늘상 그만의 방식으로 사람들을 납득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배우이자 연예인으로서 오늘날까지 대중과 공명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고현정을 이야기할 때 빼놓아선 안 될 것이 있다. 앞서 언급한 ‘무릎팍도사’에서 고현정은 “늘 일인자가 아니었다”는 고민을 전했지만, 이제 와 생각해보면 그건 그가 반 발짝씩 시대를 앞서갔기 때문일 수도 있다.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을 미실을 비롯해 ‘곱게 자란 부잣집 맏딸’이라는 클리셰를 보기 좋게 부쉈던 드라마 ‘엄마의 바다’(1993) 속 김영서, 강력범죄수사대 팀장으로 강력한 카리스마를 보여줬던 드라마 ‘히트’(2017) 속 차수경 등은 진취적이고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에 대한 수요와 필요성이 여느 때보다 커지고 있는 요즘의 작품들에 견줘봐도 손색이 없다. 자신의 발로 땅을 딛고 서서, 자신의 손으로 삶을 개척하고, 스스로의 목소리로 말하는 작품 속 여성들의 모습은 그러니까 모두 고현정을 거쳤다. “지금만 같으면 좋겠다.” 고현정은 최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누가 알겠는가. 언젠가 그가 또 반 발짝을 앞서 ‘모래시계’와 ‘선덕여왕’과 자신을 둘러싼 모든 이야기들을, 보란 듯이 훌쩍 뛰어넘어 보일지.

사진 김도균 
사진제공 뉴트리원 아이오케이컴퍼니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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