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지가 ‘영지소녀’에서 ‘문화 대통령’ ‘MZ세대의 아이콘’ 등의 수식어로 불린 지도 벌써 몇 해가 흘렀다. 그사이 이영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대에 들어서며 조금씩 변화 중이지만, 여전히 ‘힙함의 의인화’로 사랑받고 있다. 그러니까 업그레이드된 이영지를 들여다본다는 건 MZ에 대한 이해이자 좀 더 거창하게는 세대 통합의 코드를 알려는 시도다.
일단 이영지는 본업을 잘한다. 2019년 힙합 경연 프로그램 ‘고등래퍼 3’에서 열일곱 살 최연소이자 여성 최초로 우승을 차지했다. ‘고등래퍼 3’ 1회에서 단정한 교복 차림에 깔끔한 단발머리로 등장한 이영지는 또래 래퍼들이 “넥타이 풀어 헤쳐야, 학교를 자퇴해야 힙합”이라며 허세 가득한 모습을 보일 때 실력으로 승부했다. 단정해서 더 튀고, 자신감 넘치지만 밉지 않은 영지소녀에게 또래의 관심이 쏟아지는 건 당연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완성형에 가까웠던 탓일까, tvN ‘뿅뿅 지구오락실’과 웹 예능 ‘차린 건 쥐뿔도 없지만’(이하 ‘차쥐뿔’) 등 대박 난 예능 활동에 비하면 음악 작업은 그리 왕성하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예능인이냐”는 비판이 늘 따라다녔다. 이에 이영지는 2022년 가을 랩 서바이벌 ‘쇼미더머니 11’에 나가 여성 래퍼 최초로 우승 메달을 목에 걸었다. “무명 래퍼들의 밥그릇을 뺏는다” “인기투표가 될 것이다” 등의 비아냥을 견뎌내고 말이다. 지난 6월 총 6곡을 담은 첫 미니앨범 ‘16 Fantasy’를 내놓으면서는 더욱 칼을 갈았다. 2019년 싱글앨범 ‘암실’ 이후 5년 만에 내놓는 앨범이었기 때문이다. 인트로를 제외한 5곡을 작곡했고, 작사 전부에 참여했다.
특히 타이틀곡 ‘Small girl’은 같이 노래를 부른 엑소 도경수와의 달콤한 보컬 합이 매력적인 곡이다. 이영지의 연애 경험담을 담은 가사도 귀엽고, 뮤직비디오 속 도경수와의 볼 뽀뽀 장면은 더 귀엽다. 이 곡으로 이영지는 생애 처음으로 음악방송 1위를 했다. 그것도 3주에 걸쳐 6관왕이란 쾌거를 이뤘다. 그럼에도 이영지는 한 방송에 출연해 이런 소감을 밝혔다.
“1위를 한 게 완전 처음인데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아요. 앨범 낸다고 돈을 무지하게 갖다 써서 원금 회수만 바라고 냈던 앨범이었어요. 음원차트 1위에 이름이 올라가 있는 것만으로는 크게 인생이 바뀐 느낌은 아니에요. 대단한 성과지만, 다음이 중요할 것 같아요.”
구구절절 핑계대지 않고 깔끔하게 결과로 보여주는 것, 남들 신경 안 쓰고 나답게 사는 것. 이게 이영지가 생각하는 힙함이다.
이영지가 진행하는 웹 예능 ‘차쥐뿔’을 보면 게스트들이 하나같이 “같이 술을 마셔보고 싶었다” “촬영하는 것 같지 않게 재미있게 놀다 간다”고 말한다. 심지어 더 있다 가고 싶다는 게스트를 취기가 오른 이영지가 내쫓는 때도 있다. ‘차쥐뿔’에서 화장하지 않은 맨얼굴의 이영지는 게스트와 신나게 논다. 편안하게 수다 떨며 술을 마시다보니 게스트들은 그 어디에서도 하지 않은 이야기를 털어놓기도 하고, 평소라면 조심 또 조심했을 인간미 넘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최근 인기 팝 스타 타일라가 출연한 편에서는 MC로서 이영지의 장점을 모두 볼 수 있었다. 일단 이날 이영지에게 주어진 녹화 시간은 단 1시간. 1시간 동안 영어로 대화 나누며 음식을 만들어 먹었는데 30분의 방송 분량이 나왔다. 이영지가 매끄럽게 시간 안배를 잘했다는 의미다. 타일라와의 대화 내용도 좋았다. 평소 이영지는 게스트에 대한 칭찬을 진심으로 한다. 특히 아이돌이 출연했을 때는 거의 팬덤의 입장에서 칭찬하고, 사소한 행동을 캐치해 불편함이 없도록 배려해준다. 어려서부터 K-팝 팬이었던 이영지가 아이돌 문화를 꿰고 있는 덕분이다. 앞서 이영지는 NCT 마크와 재현의 유료 메시지 플랫폼 버블을 구독 중이라고 말하며, 팬이라면 공감할 에피소드를 밝혀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중학생 때 세븐틴 호시의 직캠에 단 주접 댓글이 네티즌들에게 뒤늦게 발견됐을 때도 “각자 누군가를 뜨겁게 사랑하던 시절이 있는 법이에요”라며 세븐틴 팬클럽 ‘캐럿’ 출신임을 쿨하게 인정했다.
같은 일을 하는 아티스트이자 누군가를 좋아했던 덕후의 마음으로 게스트와 대화를 나누니 게스트도 진심을 보일 수밖에 없다. 타일라와는 겨드랑이 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타일라가 녹화 중 더워하며 겨드랑이에 손부채를 부치는 시늉을 하자 영지는 자연스럽게 “나도 겨드랑이 땀 때문에 고민이 많다”고 대화를 이어갔다. 무대에 오르고 대중 앞에 서는 직업인지라 보이는 모습에 대한 공감이 있었던 것. 레이저 제모를 해도 효과가 없다는 이야기를 세계적인 팝 스타와 첫 만남에서 나누는 진행 방식은 이영지니까 가능하다.
‘차쥐뿔’로 진행 능력을 인정받은 이영지는 최근 공중파에 진출해 음악 프로그램 ‘더 시즌즈-이영지의 레인보우’ 단독 MC까지 맡았다. ‘더 시즌즈-이영지의 레인보우’는 KBS가 최초로 시즌제를 도입한 심야 음악 프로그램이다. 앞서 박재범, 최정훈, 악뮤, 이효리, 지코가 마이크를 잡았고 그 후임이 이영지다. 김태준 PD는 ‘이영지의 레인보우’라는 타이틀에 대해 “이영지라는 아티스트를 하나의 색으로 정의할 수 없다. 그런 이영지가 호스트가 됐을 때 무대 역시 여러 장르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이 담긴 제목”이라고 말했다. 또 최승희 PD는 “이영지는 ‘이 나이가 맞는 분인가’ 싶을 정도로 성숙하고 다방면으로 끼도 많다. 이영지가 이 세대를 대표할 수 있고 선배와 후배, 우리나라와 해외의 음악 가교 역할을 해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이영지 역시 자신의 쓰임을 알고 있었다. “제작진이 내게서 타고난 진행 능력이나 음악적으로 깊은 식견을 기대하진 않았을 것 같았다. ‘색다른 식견, 젠지 마인드가 환기처럼 필요하구나’란 생각이 들었다”며 “‘차쥐뿔’에서는 알코올이 가미되고 상당히 격양된 텐션으로 혼란을 드렸다면, 여기서는 조금 더 정돈된 고퀄리티의 대화를 보여드리겠다. 너무 염려치 않으셨으면 한다”고 화답했다.
바로 ‘알잘딱깔센’이다. 일이든, 사람 사이 관계든 ‘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 있게’ 하는 게 중요한 요즘 젊은 층에게 이영지는 보고 있으면 즐겁고 편안한 사람인 것이다. 개그를 해도 무리수가 없고, 심각한 상황에서도 예민해지기보단 유머러스하게 ‘으쌰으쌰’를 택한다. 온갖 밈과 유행을 알고 빠르게 변하는 숏폼 시대의 흐름을 잘 이용하기도 하지만, 이영지스러움을 밀고 나가는 자신감도 있다. 물론 이영지도 우승 상금으로 플렉스하는 영상을 찍고, 래퍼 래원을 향한 실패한 짝사랑을 고스란히 보여주던 러프한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빠와 까를 미치게 하는 자만이 슈퍼스타”라는 나훈아의 말을 이해할 줄 안다. 지난 9월 10일 생일날 자신의 SNS에 남긴 글만 봐도 알 수 있다. 이영지의 새 시대가 열렸다.
“생각해보니 요 몇 년은 생일을 발전 없이 나이만 먹는 것 같은 한심한 나를 한껏 나무라는 날로만 보내왔어요. 뭐가 그렇게 조급한지 어제보다 더 나은 내가 되어야 한다는 다짐들이 강박이 되어서 일상 속 작은 축하조차 어떠한 자격 없이는 받지 못한다고 여기게 된 거 같아요. 그런데 인생이 매번 멈추지 않고 빠르게 나아가야만 할 필요는 없잖아요. 삶에도 큰 맥락이라는 게 있는 건데, 자꾸 쇼츠처럼 하이라이트만 남기려고 하니 마음이 계속 어지럽고 줏대가 없을 수밖에요. (중략) 자꾸 옹졸해지려는 마음을 이런저런 스팀들로 다려 펴줘서 고맙습니다. 받은 만큼 배로 돌려드릴게요! 나 이제 스물셋이다!”
#이영지 #차쥐뿔 #스몰걸 #여성동아
사진출처 이영지 SNS ‘차린 건 쥐뿔도 없지만’ 유튜브 캡처
일단 이영지는 본업을 잘한다. 2019년 힙합 경연 프로그램 ‘고등래퍼 3’에서 열일곱 살 최연소이자 여성 최초로 우승을 차지했다. ‘고등래퍼 3’ 1회에서 단정한 교복 차림에 깔끔한 단발머리로 등장한 이영지는 또래 래퍼들이 “넥타이 풀어 헤쳐야, 학교를 자퇴해야 힙합”이라며 허세 가득한 모습을 보일 때 실력으로 승부했다. 단정해서 더 튀고, 자신감 넘치지만 밉지 않은 영지소녀에게 또래의 관심이 쏟아지는 건 당연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완성형에 가까웠던 탓일까, tvN ‘뿅뿅 지구오락실’과 웹 예능 ‘차린 건 쥐뿔도 없지만’(이하 ‘차쥐뿔’) 등 대박 난 예능 활동에 비하면 음악 작업은 그리 왕성하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예능인이냐”는 비판이 늘 따라다녔다. 이에 이영지는 2022년 가을 랩 서바이벌 ‘쇼미더머니 11’에 나가 여성 래퍼 최초로 우승 메달을 목에 걸었다. “무명 래퍼들의 밥그릇을 뺏는다” “인기투표가 될 것이다” 등의 비아냥을 견뎌내고 말이다. 지난 6월 총 6곡을 담은 첫 미니앨범 ‘16 Fantasy’를 내놓으면서는 더욱 칼을 갈았다. 2019년 싱글앨범 ‘암실’ 이후 5년 만에 내놓는 앨범이었기 때문이다. 인트로를 제외한 5곡을 작곡했고, 작사 전부에 참여했다.
특히 타이틀곡 ‘Small girl’은 같이 노래를 부른 엑소 도경수와의 달콤한 보컬 합이 매력적인 곡이다. 이영지의 연애 경험담을 담은 가사도 귀엽고, 뮤직비디오 속 도경수와의 볼 뽀뽀 장면은 더 귀엽다. 이 곡으로 이영지는 생애 처음으로 음악방송 1위를 했다. 그것도 3주에 걸쳐 6관왕이란 쾌거를 이뤘다. 그럼에도 이영지는 한 방송에 출연해 이런 소감을 밝혔다.
“1위를 한 게 완전 처음인데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아요. 앨범 낸다고 돈을 무지하게 갖다 써서 원금 회수만 바라고 냈던 앨범이었어요. 음원차트 1위에 이름이 올라가 있는 것만으로는 크게 인생이 바뀐 느낌은 아니에요. 대단한 성과지만, 다음이 중요할 것 같아요.”
구구절절 핑계대지 않고 깔끔하게 결과로 보여주는 것, 남들 신경 안 쓰고 나답게 사는 것. 이게 이영지가 생각하는 힙함이다.
내 진심을 먼저 보여주는 털털함과 배려
‘차쥐뿔’과 ‘Small girl’(아래)이 인기인 이유는 이영지가 어느 누구와 있든 황금 케미를 보여주기 때문.
최근 인기 팝 스타 타일라가 출연한 편에서는 MC로서 이영지의 장점을 모두 볼 수 있었다. 일단 이날 이영지에게 주어진 녹화 시간은 단 1시간. 1시간 동안 영어로 대화 나누며 음식을 만들어 먹었는데 30분의 방송 분량이 나왔다. 이영지가 매끄럽게 시간 안배를 잘했다는 의미다. 타일라와의 대화 내용도 좋았다. 평소 이영지는 게스트에 대한 칭찬을 진심으로 한다. 특히 아이돌이 출연했을 때는 거의 팬덤의 입장에서 칭찬하고, 사소한 행동을 캐치해 불편함이 없도록 배려해준다. 어려서부터 K-팝 팬이었던 이영지가 아이돌 문화를 꿰고 있는 덕분이다. 앞서 이영지는 NCT 마크와 재현의 유료 메시지 플랫폼 버블을 구독 중이라고 말하며, 팬이라면 공감할 에피소드를 밝혀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중학생 때 세븐틴 호시의 직캠에 단 주접 댓글이 네티즌들에게 뒤늦게 발견됐을 때도 “각자 누군가를 뜨겁게 사랑하던 시절이 있는 법이에요”라며 세븐틴 팬클럽 ‘캐럿’ 출신임을 쿨하게 인정했다.
같은 일을 하는 아티스트이자 누군가를 좋아했던 덕후의 마음으로 게스트와 대화를 나누니 게스트도 진심을 보일 수밖에 없다. 타일라와는 겨드랑이 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타일라가 녹화 중 더워하며 겨드랑이에 손부채를 부치는 시늉을 하자 영지는 자연스럽게 “나도 겨드랑이 땀 때문에 고민이 많다”고 대화를 이어갔다. 무대에 오르고 대중 앞에 서는 직업인지라 보이는 모습에 대한 공감이 있었던 것. 레이저 제모를 해도 효과가 없다는 이야기를 세계적인 팝 스타와 첫 만남에서 나누는 진행 방식은 이영지니까 가능하다.
무리수 없는 ‘알잘딱깔센’의 표본 이영지
‘Small girl’은 음악방송 1위 6관왕을 비롯, 빌보드 차트에도 진입했다.
이영지 역시 자신의 쓰임을 알고 있었다. “제작진이 내게서 타고난 진행 능력이나 음악적으로 깊은 식견을 기대하진 않았을 것 같았다. ‘색다른 식견, 젠지 마인드가 환기처럼 필요하구나’란 생각이 들었다”며 “‘차쥐뿔’에서는 알코올이 가미되고 상당히 격양된 텐션으로 혼란을 드렸다면, 여기서는 조금 더 정돈된 고퀄리티의 대화를 보여드리겠다. 너무 염려치 않으셨으면 한다”고 화답했다.
바로 ‘알잘딱깔센’이다. 일이든, 사람 사이 관계든 ‘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 있게’ 하는 게 중요한 요즘 젊은 층에게 이영지는 보고 있으면 즐겁고 편안한 사람인 것이다. 개그를 해도 무리수가 없고, 심각한 상황에서도 예민해지기보단 유머러스하게 ‘으쌰으쌰’를 택한다. 온갖 밈과 유행을 알고 빠르게 변하는 숏폼 시대의 흐름을 잘 이용하기도 하지만, 이영지스러움을 밀고 나가는 자신감도 있다. 물론 이영지도 우승 상금으로 플렉스하는 영상을 찍고, 래퍼 래원을 향한 실패한 짝사랑을 고스란히 보여주던 러프한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빠와 까를 미치게 하는 자만이 슈퍼스타”라는 나훈아의 말을 이해할 줄 안다. 지난 9월 10일 생일날 자신의 SNS에 남긴 글만 봐도 알 수 있다. 이영지의 새 시대가 열렸다.
“생각해보니 요 몇 년은 생일을 발전 없이 나이만 먹는 것 같은 한심한 나를 한껏 나무라는 날로만 보내왔어요. 뭐가 그렇게 조급한지 어제보다 더 나은 내가 되어야 한다는 다짐들이 강박이 되어서 일상 속 작은 축하조차 어떠한 자격 없이는 받지 못한다고 여기게 된 거 같아요. 그런데 인생이 매번 멈추지 않고 빠르게 나아가야만 할 필요는 없잖아요. 삶에도 큰 맥락이라는 게 있는 건데, 자꾸 쇼츠처럼 하이라이트만 남기려고 하니 마음이 계속 어지럽고 줏대가 없을 수밖에요. (중략) 자꾸 옹졸해지려는 마음을 이런저런 스팀들로 다려 펴줘서 고맙습니다. 받은 만큼 배로 돌려드릴게요! 나 이제 스물셋이다!”
#이영지 #차쥐뿔 #스몰걸 #여성동아
사진출처 이영지 SNS ‘차린 건 쥐뿔도 없지만’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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