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ULTURE

와인은 춤춘다 | 진심을 나누고 싶은 그대와 건배

이찬주 무용평론가

2024. 07. 19

무심코 바라본 와인 라벨 속 춤. 전 세계 와인과 그에 얽힌 춤 이야기를 연재한다.

부르고뉴의 피노 누아 ‘한여름 밤의 꿈(Le Songe d’une Nuit d’ete)’

부르고뉴의 피노 누아 ‘한여름 밤의 꿈(Le Songe d’une Nuit d’ete)’

7월 26일, 100년 만에 다시 파리에서 하계올림픽이 열린다. 파리에서 1시간 거리에 와인 성지 부르고뉴가 있다. 프랑스 동부에 위치한 부르고뉴의 대표 포도 품종은 피노 누아다. 20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피노 누아(Pinot Noir)는 소나무(fine tree)와 검정(noir)을 합친 프랑스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포도알이 달린 포도송이가 솔방울을 닮았다 하여 이름 붙었다.

서늘한 기후에서 자라며 재배하기 까다로운 품종으로 알려져 있는데, 특히 프랑스 중동부 ‘황금 언덕’이라는 뜻의 코트도르(Cote-d’Or)에서 생산되는 피노 누아가 지금의 피노 누아 와인을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지역의 동쪽으로 향한 언덕은 오후의 뜨거운 태양을 피하면서 장시간 햇빛에 노출될 수 있으며, 배수가 잘되는 석회질 토양으로 피노 누아에게는 최적의 환경이다. 그 덕분에 부르고뉴 피노 누아는 토양의 향기를 한껏 품고 있는 좋은 와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부르고뉴의 피노 누아 ‘한여름 밤의 꿈(Le Songe d’une Nuit d’ete)’. 이 와인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라 칭송받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한여름 밤의 꿈(A Midsummer Night’s Dream)’을 떠올리게 한다. 셰익스피어의 상상력이 가장 잘 발휘됐다는 평가를 받는 이 작품에 매료된 독일 작곡가 멘델스존은 17세에 ‘한여름 밤의 꿈’ 서곡을 작곡했고, 17년 후 나머지 12곡을 작곡했다.

‘한여름 밤의 꿈’은 낭만 희극이 다루는 사랑이라는 로맨틱한 주제와 ‘마법’이라는 초자연적인 요소를 합쳐 재미와 감동을 함께 주는 작품이다. 요정의 왕 오베론과 요정 여왕 티타니아, 서로 사랑에 빠진 라이샌더와 허미아, 허미아에게 마음을 빼앗긴 드미트리우스, 그런 드미트리우스를 사랑하게 된 헬레나, 아테네의 영주 테세우스, 아마존의 여왕 히폴리테까지 각각의 캐릭터가 살아 있을 뿐 아니라 사랑에 빠진 4쌍의 남녀가 겪는 갈등과 해결을 유쾌하게 풀어나간다. 사랑을 지키기 위해, 시련을 극복하기 위해 마법의 힘을 빌렸다가 더 큰 어려움에 처하지만 결국 각자의 방법을 찾아 갈등을 해결하고 진정한 사랑을 찾는다는 교훈적인 내용도 담고 있다. 여기에 감초 노릇을 톡톡히 하는 요정 퍽과 여왕의 사랑을 받는 당나귀가 된 보텀이 극에 입체감을 더한다.



모나코 몬테카를로 발레단 ‘꿈’.

모나코 몬테카를로 발레단 ‘꿈’.

‘한여름 밤의 꿈’은 모나코 몬테카를로 발레단을 위해 프랑스 안무가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가 안무한 모던 발레 ‘꿈’(2005)으로 재탄생하기도 했다. 이 작품에서 오베론은 티타니아를 안고 좌우로 물결치듯 움직이며, 티타니아는 자신의 몸을 쓰다듬는 오베론의 손길에 농염한 움직임으로 반응한다. 이 둘의 열정적인 몸짓은 격정적인 사랑의 행위로 이어지는데, 이 장면에서 관객들은 눈을 떼지 못한다.

윌리엄 블레이크의 ‘춤추는 요정들과 함께 있는 오베론, 티타니아 그리고 퍽’, 런던 테이트 브리튼 미술관.

윌리엄 블레이크의 ‘춤추는 요정들과 함께 있는 오베론, 티타니아 그리고 퍽’, 런던 테이트 브리튼 미술관.

런던 테이트 브리튼 미술관에서 요정 퍽과 당나귀 머리를 한 직공 보텀을 그린 작품도 만나볼 수 있었다. 윌리엄 블레이크의 ‘춤추는 요정들과 함께 있는 오베론, 티타니아 그리고 퍽’(1786)이다. 왼쪽에 오베론과 티타니아가 서 있고, 퍽은 티타니아 옆에서 마법의 힘이 깃든 꽃잎을 양손에 꼭 쥐고 있다. 그의 장난기 어린 얼굴이 시선을 끈다. 그 옆에서 요정들이 손에 손을 맞잡고 빙글빙글 돌면서 춤을 추며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조셉 노엘 페이튼의 ‘오베론과 티타니아의 화해’(1848), 스코틀랜드 국립미술관.

조셉 노엘 페이튼의 ‘오베론과 티타니아의 화해’(1848), 스코틀랜드 국립미술관.

2023년 가을, 셰익스피어의 출생지로 유명한 마을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Stratford-upon-Avon)을 방문했다. ‘한여름 밤의 꿈’에 등장하는 요정들이 사는 숲은 실제로 셰익스피어가 거닐던 곳이다.

잠에서 깨면 허무할 정도로 덧없는 일을 비유할 때 우리는 ‘한여름 밤의 꿈’이라고 한다. 셰익스피어는 헬레나의 입을 빌려 사랑의 본질에 대해 말한다. “사랑은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보는 것이다(Love looks not with the eyes. But with the mind).” 눈으로 쫓는 것들은 한여름 밤에 꾼 꿈처럼 허무하지만, 마음으로 바라본다면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을지 모른다.

부르고뉴 피노 누아 ‘한여름 밤의 꿈’은 진심을 나누고 싶은 사람과 마시고 싶은 와인이다. 어쩌면 또 다른 눈으로 서로를 바라볼 수 있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와인과춤 #한여름밤의꿈 #여성동아

사진제공 이찬주 안재용 Francois Parent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