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6일 한 남자가 이별하자는 여자 친구를 잔인하게 살해하고 자신은 살해 현장인 서울 강남대로 변 빌딩 옥상에서 자살 시도를 하다 검거됐다. 일명 의대생 살인 사건. 그가 수학능력시험에서 만점을 받고 명문대 의대에 입학한 인물임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놀라움을 넘어 혀를 찼다.
어쩌다가 한때 모범생이었을 그가 극한의 선택을 하기에 이르렀을까? 이별 통보가 뒤늦게 그를 괴물이 되게 했을까? 아니면 원래부터 그런 사람이었던 것일까? 끔찍한 사건 뒤에는 으레 “원래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는 세평이 따라오지만 이번 사건은 그런 두둔조차 들리지 않는다.
교제 폭력이 인명 피해로 이어지는 사건은 드물지 않다. 한국여성의전화가 매년 집계하는 ‘파트너 살인 통계’(언론에 보도된 사건 중 집계)에 따르면 2023년 한 해 동안 적어도 138명의 여성이 배우자나 애인 등 파트너에 의해 살해됐다. 즉, 2.7일 만에 한 명꼴로 여성들이 파트너 혹은 파트너였던 사람에 의해 살해됐다. 이는 매년 발생하는 살인 사건(약 300건, 살인미수 제외)의 절반 가까이 된다. 물론 파트너 살인이라고 하면 남성이 피해자인 경우도 있으나 한국여성의전화 통계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파트너 간 폭력에서 성별을 따지지 않는 통계로는 경찰청 입건 자료가 있다. 이때 대상 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 관계를 연인으로까지 넓히면 ‘교제 폭력’의 실체를 알 수 있다. 2023년 경찰청 통계에서 교제 폭력으로 검거된 피의자 수는 1만3939명. 2020년 대비 55.7% 증가한 수치다.
이처럼 건수가 크게 늘어난 데는 ‘스토킹’을 형사 사건으로 처벌하기 시작한 것과도 관련이 있다. 이별 후 전 연인에 대한 스토킹은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률로서 규율된다. 2021년 10월 21일 법 제정 후 2023년 7월 개정했는데, 그 결과 온라인 스토킹까지 처벌 대상이 넓혀졌다. 그러다 보니 스토킹으로 입건된 사건은 2021년 1만4509건에서 이듬해 2만9565건으로 늘었다가 2023년에는 3만1824건으로까지 급등했다. 이 가운데 파트너 간 이별 폭력이 절반가량 된다.
그렇다면 이별 후 스토킹 사건을 일으키는 사람은 누구일까. 이 질문에 답을 찾고자 오래전부터 많은 연구가 진행돼왔다. 스토커들의 정신질환을 평가 분석한 연구들에서 이들이 통상 정신병리적 측면과 성격장애적 측면 모두에 결함이 있음을 지적했다. 특히 우울증, 양극성기분장애와 함께 사회적인 적응 문제를 지님과 동시에 감정적으로 극적인 특징을 보이는 경계성성격장애나 반사회성성격장애를 보인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이들은 자아정체성에 문제가 있어 자존감이 무척 낮은 경향을 보인다. 근본적으로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유기불안을 가지고 있다. 열등감, 외로움, 사회적 무능감을 보상할 기전으로써 피해자에게 과도하게 집착하며, 나아가 상대를 통제함으로써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려 한다. 결과적으로 파트너의 이별 통보를 곧 자신의 모든 것을 상실하는 상태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수용이 거의 불가능하다.
상대를 지배하고 통제하여 군림해온 사람일수록 피해자의 이별 통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스토킹 행위에 몰두하게 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제3자(그것이 실재하든 그렇지 않든)가 연인 관계에 끼어들어 관계가 망가졌다고 여기는 병적 질투심이나 피해망상을 가지기도 한다.
이들이 대부분 어린 시절 부모와의 안정적인 애착 관계 형성에서 실패했다는 연구도 있다. 멕캔지(2008) 등은 스토킹 가해자가 자라난 가정은 부모가 자녀를 잘 보살피지 않고 정서적으로 방임하는 경우가 빈번하다고 보고했다.
가정폭력 피해자들에게 파트너에 의한 스토킹은 일상적이다. 멀튼(2007)의 연구에 따르면, 가정폭력 피해 여성의 약 90%가 스토킹을 경험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형사사법기관의 개입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중 50% 이상의 응답자가 스토킹을 지속적으로 경험했다.
피해자에 대한 또 다른 연구(멕팔란 등, 2002)에서는 파트너에 대한 살인과 살인미수 사건의 68%가 사건 발생 1년 전부터 스토킹이 존재했음을 보고했다. 이는 국내 파트너 살인 사건의 판결문 분석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파트너를 살해하기 전 가해자가 스토킹을 한 사건은 전체 사건 중 약 37.5%를 차지했다(김성희·이수정, 2022). 특히 혼인 관계에서보다 연인 관계에서 이런 스토킹은 상대적으로 더 많이 관찰됐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 법무부에서 시범 시행한 피해자 신변 보호 정책이 유의미한 결과를 얻은 점이다. 지난 4개월간 스토킹 범죄자들에게 전자 감시를 집행하고, 가해자가 일정 거리 안으로 접근할 경우 피해자에게 휴대전화로 가해자의 위치 정보를 전송하는 피해자 보호 시스템을 시행했다. 또 가해자의 접근 시 관제 센터에 경보가 울리도록 하고, 보호관찰관과 경찰이 즉시 현장으로 출동하도록 했다. 그 결과 단 한 건의 스토킹 사건도 재발하지 않았다.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 보호 시스템을 스토킹 피해자들에게도 이용할 수 있게 범위를 넓힌 것이다. 법무부는 앞으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해 보급할 계획이다.
이처럼 첨단기술을 활용하면 피해자 보호는 좀 더 용이해질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서울 강남에서 일어난 의대생 교제 살인 사건과 같은 파트너 살인을 줄이려면, 먼저 상대의 이별 의지를 무시하는 것이 상대방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무척 위험한 짓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첨단기술을 도입하는 것보다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는 기본 소양교육이 절실하다. 결국 살인을 막는 최선의 방법은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교제살인 #데이트폭력 #이수정 #여성동아
사진 뉴스1
일러스트 게이티이미지
어쩌다가 한때 모범생이었을 그가 극한의 선택을 하기에 이르렀을까? 이별 통보가 뒤늦게 그를 괴물이 되게 했을까? 아니면 원래부터 그런 사람이었던 것일까? 끔찍한 사건 뒤에는 으레 “원래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는 세평이 따라오지만 이번 사건은 그런 두둔조차 들리지 않는다.
교제 폭력이 인명 피해로 이어지는 사건은 드물지 않다. 한국여성의전화가 매년 집계하는 ‘파트너 살인 통계’(언론에 보도된 사건 중 집계)에 따르면 2023년 한 해 동안 적어도 138명의 여성이 배우자나 애인 등 파트너에 의해 살해됐다. 즉, 2.7일 만에 한 명꼴로 여성들이 파트너 혹은 파트너였던 사람에 의해 살해됐다. 이는 매년 발생하는 살인 사건(약 300건, 살인미수 제외)의 절반 가까이 된다. 물론 파트너 살인이라고 하면 남성이 피해자인 경우도 있으나 한국여성의전화 통계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파트너 간 폭력에서 성별을 따지지 않는 통계로는 경찰청 입건 자료가 있다. 이때 대상 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 관계를 연인으로까지 넓히면 ‘교제 폭력’의 실체를 알 수 있다. 2023년 경찰청 통계에서 교제 폭력으로 검거된 피의자 수는 1만3939명. 2020년 대비 55.7% 증가한 수치다.
이처럼 건수가 크게 늘어난 데는 ‘스토킹’을 형사 사건으로 처벌하기 시작한 것과도 관련이 있다. 이별 후 전 연인에 대한 스토킹은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률로서 규율된다. 2021년 10월 21일 법 제정 후 2023년 7월 개정했는데, 그 결과 온라인 스토킹까지 처벌 대상이 넓혀졌다. 그러다 보니 스토킹으로 입건된 사건은 2021년 1만4509건에서 이듬해 2만9565건으로 늘었다가 2023년에는 3만1824건으로까지 급등했다. 이 가운데 파트너 간 이별 폭력이 절반가량 된다.
열등감, 외로움, 사회적 무능감에서 비롯된 집착
여자 친구 살해 혐의를 받고 있는 의대생이 구속 전 피의자심문을 받기 위해 법원에 출석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이들은 자아정체성에 문제가 있어 자존감이 무척 낮은 경향을 보인다. 근본적으로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유기불안을 가지고 있다. 열등감, 외로움, 사회적 무능감을 보상할 기전으로써 피해자에게 과도하게 집착하며, 나아가 상대를 통제함으로써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려 한다. 결과적으로 파트너의 이별 통보를 곧 자신의 모든 것을 상실하는 상태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수용이 거의 불가능하다.
상대를 지배하고 통제하여 군림해온 사람일수록 피해자의 이별 통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스토킹 행위에 몰두하게 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제3자(그것이 실재하든 그렇지 않든)가 연인 관계에 끼어들어 관계가 망가졌다고 여기는 병적 질투심이나 피해망상을 가지기도 한다.
이들이 대부분 어린 시절 부모와의 안정적인 애착 관계 형성에서 실패했다는 연구도 있다. 멕캔지(2008) 등은 스토킹 가해자가 자라난 가정은 부모가 자녀를 잘 보살피지 않고 정서적으로 방임하는 경우가 빈번하다고 보고했다.
가정폭력 피해자들에게 파트너에 의한 스토킹은 일상적이다. 멀튼(2007)의 연구에 따르면, 가정폭력 피해 여성의 약 90%가 스토킹을 경험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형사사법기관의 개입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중 50% 이상의 응답자가 스토킹을 지속적으로 경험했다.
피해자에 대한 또 다른 연구(멕팔란 등, 2002)에서는 파트너에 대한 살인과 살인미수 사건의 68%가 사건 발생 1년 전부터 스토킹이 존재했음을 보고했다. 이는 국내 파트너 살인 사건의 판결문 분석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파트너를 살해하기 전 가해자가 스토킹을 한 사건은 전체 사건 중 약 37.5%를 차지했다(김성희·이수정, 2022). 특히 혼인 관계에서보다 연인 관계에서 이런 스토킹은 상대적으로 더 많이 관찰됐다.
살해 협박 있으면 바로 피해자 보호 시스템 가동해야
헤어진 파트너에 대해 일단 죽이겠다고 살해 협박을 하는 경우, 재발할 가능성은 그렇지 않은 단순한 스토킹 사건보다 훨씬 높다(멜로이, 1998·1999). 대부분의 살해 협박은 피해 당사자에 대한 위협 행위로 나타나지만, 스토킹에 방해가 되는 가족 등 대상이 있을 경우에는 제3자도 마찬가지로 협박의 표적이 될 수 있다(캐나다 사법연감, 2005). 따라서 신체적인 폭력과 살해위협이 함께하는 스토킹 사건에서 피해자를 보호하려는 노력은 매우 실효성 있게 집행돼야 한다.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 법무부에서 시범 시행한 피해자 신변 보호 정책이 유의미한 결과를 얻은 점이다. 지난 4개월간 스토킹 범죄자들에게 전자 감시를 집행하고, 가해자가 일정 거리 안으로 접근할 경우 피해자에게 휴대전화로 가해자의 위치 정보를 전송하는 피해자 보호 시스템을 시행했다. 또 가해자의 접근 시 관제 센터에 경보가 울리도록 하고, 보호관찰관과 경찰이 즉시 현장으로 출동하도록 했다. 그 결과 단 한 건의 스토킹 사건도 재발하지 않았다.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 보호 시스템을 스토킹 피해자들에게도 이용할 수 있게 범위를 넓힌 것이다. 법무부는 앞으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해 보급할 계획이다.
이처럼 첨단기술을 활용하면 피해자 보호는 좀 더 용이해질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서울 강남에서 일어난 의대생 교제 살인 사건과 같은 파트너 살인을 줄이려면, 먼저 상대의 이별 의지를 무시하는 것이 상대방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무척 위험한 짓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첨단기술을 도입하는 것보다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는 기본 소양교육이 절실하다. 결국 살인을 막는 최선의 방법은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교제살인 #데이트폭력 #이수정 #여성동아
사진 뉴스1
일러스트 게이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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