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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지옥’ 유아인 “허세, 겉멋, 치기 가득한 내가 좋다”

글 이현준 기자

2021. 12. 28

유아인은 공식을 따라가지 않는다. ‘무엇’이라 명확히 규정지을 수 없어 한편으론 무엇이든 될 수 있다. 그는 겉멋, 허세, 치기로 가득한 자신도 좋다고 말한다. 그저 뜨겁고, 솔직한 존재로 살길 바랄 뿐이라며.

유아인(36)은 퍽 독특한 배우다. 소년처럼 앳되면서도 한편으론 관능적인 느낌을 풍기는 외모부터 그렇다. 지금까지 그가 걸어온 행보는 ‘정형성’을 거부한다. 그는 “학교는 큰 의미가 없다”는 판단에 고등학교를 자퇴한 후 연예계에 데뷔했고 드라마 ‘반올림’(2003)에서 ‘아인 오빠’로 인기를 얻었다. 그대로 ‘아이돌 스타’의 길을 걸을 수 있었지만 고향인 대구로 내려가 잠시 활동을 멈춘다. “연예인이 되고 싶었을 뿐 연기에 대한 꿈이 있는 건 아니었다. 연기자로서의 삶이 내가 원했던 것인지 고민되고 혼란스러웠다”는 것이 과거 인터뷰에서 유아인이 당시를 회상하며 밝힌 이유다.

‘반올림’으로 얻은 인기 덕에 ‘하이틴물’로 돌아올 거란 예상과 달리 유아인은 독립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2007)를 복귀작으로 택했다. “배우에게 상업영화, 독립영화는 차이가 없다. 어떤 캐릭터를 연기하느냐의 차이일 뿐”이라는 당찬 소신과 함께. 그가 연기한 ‘종대’는 희망 없는 삶을 벗어나기 위해 총을 찾아 헤매는 소년이다. 유아인은 영화 개봉 당시 인터뷰에서 “종대도 청춘이고 나도 청춘이다. 종대가 느낀 불안과 두려움이 연기를 하는 데 도움이 됐다”며 “난 스스로 주류가 되기 힘든 스타일이라 생각한다”고 털어놨다.

이후에도 그는 ‘주류’라는 틀에 자신을 가두지 않았고, 뻔한 공식을 거부할수록 그의 가치는 높아졌다.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2010)로 ‘걸오앓이’ 신드롬을 일으킨 그는 ‘멜로 배우’로 인기몰이를 할 수 있었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나의 진로를 깨고 싶다”며 영화 ‘완득이’(2011)를 후속작으로 택했고, 이는 유아인을 스타를 넘은 ‘연기자’로 굳건히 자리매김하게 했다. ‘완득이’에서 함께한 배우 김윤석은 당시 유아인을 “더디게 발을 내딛을지언정 엘리베이터를 타진 않을 것 같은 후배”라고 평했다.

유아인의 최대 흥행작인 천만 관객 동원 영화 ‘베테랑’(2015)도 그의 ‘독특함’으로 빛을 볼 수 있었다. 그가 연기해 “어이가 없네”라는 명대사를 남긴 안하무인 재벌 2세 조태오는 원래 캐스팅 단계에서 난항을 겪었던 캐릭터였다. 갑질과 폭행, 마약 흡입을 일삼는 극악무도한 조태오의 면모에 이미지가 손상될까 두려워 선뜻 맡으려 하는 배우가 없었다. ‘베테랑’이 개봉했을 때 감독 류승완은 “배우들이 광고에도 나와야 하고, 이미지를 관리하려 해 섭외가 쉽지 않더라. 몇몇 스타들에게 제안했지만 바로 거절당했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그러나 유아인은 달랐다. 류 감독은 유아인이 배역을 거부할까 하는 걱정에 조태오를 위한 ‘변명’으로 그가 악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가득 적어 시나리오를 보냈지만 유아인은 ‘쿨’하게 승낙하며 다음과 같은 말로 오히려 류 감독을 놀라게 했다. “감독님. 이 인물 설명이 너무 많아요. 그냥 나쁜 놈 아니에요?”

유아인은 배역에 자신을 맞추지 않고 오히려 그 반대를 가능하게 하는 배우다. 그의 ‘비정형성’이라는 거푸집은 배역을 유아인만의 형태로 재창조해내는 힘을 지녔다.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2015)의 이방원이 그랬고 영화 ‘사도’(2015)의 사도세자가 그랬다. 지금껏 볼 수 없었던 형태의 연기에 역사 속 인물 이방원과 사도세자는 ‘유아인식 이방원’과 ‘유아인식 사도세자’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그의 이번 작품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옥’의 정진수 또한 그렇다. 2021년 11월 19일 공개된 ‘지옥’은 평범한 일상을 살던 사람들이 알 수 없는 존재로부터 지옥행 ‘고지(告知)’를 받고 ‘지옥의 사자’에 의해 끔찍하게 사망하는 초자연적인 현상과 이 실체를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유아인이 맡은 정진수는 고지를 받은 사람이 죽는 ‘시연’을 두고 “신의 계시”라고 주장하는 사이비 종교 집단 새진리회의 초대 의장이다. ‘유아인식’ 사이비 교주는 기존의 그것과 궤를 달리한다. 화려한 옷차림에 성대한 의식, 큰 목소리 등으로 대중을 현혹하지 않는다. 허름한 고시원에 살며 소박한 옷차림을 한 채 읊조리는 양 차분하고 낮은 목소리로 교리를 설파한다.

정진수의 반전은 그가 20년 전 이미 고지를 받았다는 것. 그럼에도 그는 자신이 겪은 공포를 대중에게 심어주기 위해 이를 숨긴다. 그리고 “더 정의롭게 살아야 한다”는 대의로 대중의 눈을 가린 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시연당하며 진실을 묻는다. 정진수의 대의 앞에 세상은 새진리회의 교리에 장악되고 이를 의심하거나 반기를 드는 사람들에겐 사회적 폭력이 가해진다. 총 6화의 시리즈 중 1화부터 3화까지 등장하는 유아인의 강렬함은 극 초반에 힘을 불어넣었다. ‘지옥’은 공개 후 24시간 만에 넷플릭스 세계 1위(플릭스패트롤 기준)에 올랐고 유아인에겐 “인생 캐릭터를 경신했다” “대단한 배우”라는 호평이 쏟아졌다.

과거 유아인은 스스로를 배우를 넘은 ‘퍼포머(Performer)’로 지칭하고 싶다 말한 적이 있다. “배우 영역을 확장해가며 표현의 양식들을 사용해 대중과 호흡하고 의미 있는 순간을 만들어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창조적인 사람이 되길 바란다”는 게 그가 밝힌 의미다. 정형화할 수 없는 그의 모습과 뚜렷한 소신에 호불호가 갈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유아인은 하나의 모습으로 갇히길 바라지 않는다. 2021년 12월, 화상으로 마주한 유아인은 여전히 ‘성장통’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유쾌했지만 ‘심오함’이라는 단어가 어울릴 만큼 진지하게 답변을 이어갔다.


죽음 고지를 받은 것처럼 살았던 20대

유아인 씨의 연기에 대한 호평이 많아요. 소감이 어떤가요.

기분 좋으면서도 부담이 돼요. 연기가 점점 어려워요. 사람들이 저에게 박수를 많이 쳐주기도 하지만 기대치가 높으니까요. 조금의 빈틈도 허락되지 않을 것 같아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위험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매 순간 임하고 있죠. 좋은 연기에 대한 연구와 함께 저에 대한 선입견 혹은 기대감을 가지고 계신 분들과는 어떻게 호흡해야 할지 고민 중이에요.

‘지옥’은 다소 낯선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 그럼에도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저는 어려운 주제라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물론 지옥의 사자로 일컬어지는 괴물, 사람들이 고지를 받은 날 지옥에 가는 일이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부분이 비현실적이고 폭력적일 순 있죠. 하지만 달리 보면 지금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집단의 광기, 혐오, 폭력 등은 일상에서 지속해서 발생하고 있어요. ‘지옥’의 이야기처럼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정보를 맹신하고, 그걸 무기 삼아 다른 사람들을 공격하는 현상들 역시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죠. 작품이 공개된 지 1시간도 채 되지 않았는데, 6화까지 다 본 척하고 쓴 누군가의 악플을 봤어요. 이 외에도 어디선가 읽은 한 줄, 유튜브에서 5분가량 본 정보를 맹신하며 주변에 알리는 사람들도 있고요. 본인들 스스로는 과연 그걸 진정 믿고 있는 걸까요? ‘지옥’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많이 생각나더라고요.

‘지옥’의 세상이 현실에서 벌어진다면 어떨 것 같나요.

제가 세상과 부딪치며 살아온 거 보셨잖아요(웃음). 옳고 그름을 떠나 의구심이 드는 것들에는 항상 의문을 가지고 살아왔어요. 의문을 품는 것조차 금기시되는 분위기를 싫어하고요. 그런 세상은 인간다운 세상이 아니에요. 끊임없이 의심하고, 토론하고, 논의하며 다 함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세상을 살아가고 싶어요. 우리를 움직이는 힘, 주입되는 정보, 지식, 강요받는 믿음에 대해 검증의 과정을 거쳐야 편 가르기가 만연한 세상에서 정신 차린 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정진수의 대의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요. 대중을 속이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사람들이 더 선하게 살게끔 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는데.

정진수의 생각은 절대 ‘대의’가 될 수는 없다고 느껴요. 기껏해야 자기 소신인 거죠. 세상과 사람들을 향한 신념을 폭력적으로 강요하는 순간 신념이 아니에요. 그렇기에 정진수는 나름의 논리를 가진 양 보이지만 나약하고 초라한 인물이라 생각해요. 결국에 그가 하는 말은 다 궤변이에요. 정의를 부르짖지만 정작 자신을 구제하진 못하잖아요.

정진수처럼 죽음의 고지를 받는다면 어떨 것 같나요.

실제로 고지를 받은 건 아니지만 그랬던 것처럼 20대를 산 듯해요. 상당히 느끼한 겉멋과 허세에 찌들어 살았죠. 스스로를 더 과감하게 던지고, 도전하고, 실험하면서요. 뒤가 없을 것처럼 살았어요. ‘난 한 서른 살쯤 죽을 거야’라고 생각하면서(웃음). 정진수를 연기하며 20대 시절이 상기됐고 그럴 때마다 그 시절의 치기를 비웃어보기도 했어요. 하지만 오히려 지금은 너무 몸을 사리고 있는 것 같아서 스스로가 달갑지 않아요. 자꾸 다음을 생각하고, 안정적으로 이어지는 스스로를 생각하는 게 예쁘게 보이지 않고요. 그동안의 삶은 죽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살아서 가능했던 건데(웃음).

바뀌게 된 계기가 있나요. 혹시 지우고 싶은 ‘흑역사’가 있는 건지.

지우고 싶었다면 말을 꺼내지 않았겠죠(웃음). 허세, 겉멋, 치기라고 표현하긴 해도 전 그런 제가 좋고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가고 싶은걸요. 딱히 계기가 있는 거라기보다는 결국 죽지 않고 살아 있기 때문에 염치껏 제 자신을 받아들이는 거죠(웃음). 이렇다 보니 ‘내가 충분히 뜨겁지 않거나 솔직하지 못한 건 아닐까’ ‘너무 때 묻고, 조심스럽게 사는 것 아닐까’ ‘마치 평생 살 것처럼 지내고 있는 건가’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되는 순간이 있는데, 저의 성장통인 것 같아요. 그러면서 떳떳한 인간으로 살기 위해 절충하고, 조절하며 스스로를 돌이켜보는 삶을 살고 있죠.

억지스럽지 않게, 자연스럽게

20대의 유아인과 30대의 유아인이 구별되는 지점이 있다면.

‘선명함’이 많이 희석된 것 같아요. 희미해졌죠. 마침표를 찍지 못하고 모호함 속으로 빠지고 마는 요즘이에요. 그래도 여전한 점은 소심함? 정말 소심해요(웃음).

그렇다면 30대 중반인 지금, 유아인 씨가 바라는 ‘이상적인 모습’은 무엇인가요.

글쎄요. 10대나 20대 때는 ‘내가 계속 살아가다 보면 결국 지금의 기성세대가 되겠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부정적인 기성세대의 관성에서 벗어난 존재로 살아가고 싶었죠. 그런데 그렇게 되기 위한 노력들이 오히려 사람을 이상하게 만들기도 하더라고요. 솔직한 삶을 살아가고, 표현하고, 마음의 끌림대로 자유롭게 움직이는 게 아니라 눈치를 보게 되는 거예요. ‘나’라는 것이 무엇인지 결정짓지 못하고 사는 이 느낌이 솔직한 삶인 것 같으면서도 편하진 않아요.

데뷔 때엔 “연기자가 되고 싶었다기보다는 연예인이 되고 싶었다”고 말했었잖아요. 배우로 성공한 지금 ‘배우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나요.

이 생각도 매일 바뀌어요. 어떤 날은 배우로 살아서 너무 행복하고 재밌다 싶다가도, 또 어느 날은 아니에요. 많은 배역들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정작 스스로를 찾고 성장시키는 데엔 에너지를 쓰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나’라는 사람을 내팽개쳐버리고 작품 속의 다른 것이 되기 위한 삶을 살아가다 보면 정작 스스로가 어디 있는지 모르겠는 감정을 느끼곤 해요. 바로 전 작품 때 인터뷰만 해도 “배우로 살아서 행복해요”라고 말했는데(웃음). 요즘은 후자에 가깝네요.

유아인 씨는 항상 주목받고 있는 배우죠. 부담감이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이겨내지 못하고 있어요(웃음). 저는 계속 떨리고, 긴장되고, 무섭고, 공포스러워요. 이길 수 없는 것 같아요(웃음). 하지만 이러한 마음을 원동력으로 치환하는 방식을 습득하려 노력 중이고, 오직 일에만 집중하려 해요. 즐길 수 있는 부분은 즐기되, 될 수 있으면 공포심은 최대한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고요. 배우로서 기대감과 믿음을 드리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기대를 깨버리는 표현을 해내고 싶기도 한 갈등 속에 살고 있어요. 또 비교적 어린 배우, 젊은 배우라는 말을 오래 듣고 살았는데 이런 말이 계속 잘 어울리는 배우로 남길 바라요. 정답을 내놓는 사람이나 완성된 느낌을 주는 배우가 되기보다는 계속 변화하고 다음이 어떨지 예측하기 어려운, 젊은 에너지를 가진 배우로서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크고요.

2007년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개봉 당시에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연기하겠다. 서른 살에도 연기하고 있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목표를 이룬 셈인데 소감이 어떤가요. 또 다음 목표가 있다면.

일단 생존을 이룩했고(웃음). 직업전선에서 ‘이상 없음’인 상태 자체를 감사히 여겨야겠네요. 자축할 만해요(웃음). 다음 목표는… 모르겠어요. 도전, 성장 이런 것들이 제 삶의 키워드였고 중요한 비전이었는데 사실 이젠 버겁게 느껴지기도 해요. ‘강박’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무겁기도 하고요. 부담스러운 상태예요. 근래엔 노는 게 전처럼 재미가 없었어요(웃음). 자유로운 시간이 전처럼 자유롭게 느껴지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 스스로의 한계를 깨야 한다는 강박 때문인 듯해요. 등 떠밀리는 기분으로 애써 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도 들었고요. 사람들이 저에게 기대하는 것 이상으로 스스로를 못살게 굴면서 살아온 측면이 있어요. 이제 제 자신을 너무 혹사시키지 않고 살려내면서, 생명력 있는 연기를 하는 배우가 됐으면 합니다. 억지스럽지 않게,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싶어요.

사진제공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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