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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동거남과 결혼한 산나 마린 핀란드 총리 인생 스토리

글 이보영 핀란드 통신원

입력 2020.08.12 10:30:01

동성 커플 부모 슬하에서 자란 마트 캐셔 출신의 세계 최연소 정치 지도자, 산나 마린 핀란드 총리. 그가 최근 15년간 동거해온 배우자와 결혼식을 올렸다. 그의 삶은 편견이 얼마나 쓸데없는지를 입증한다.
산나 마린 총리의 웨딩 사진.

산나 마린 총리의 웨딩 사진.

얼마 전 한 핀란드 선남선녀의 결혼사진이 세계 언론을 장식했다. 화제의 주인공은 2019년부터 핀란드를 이끌고 있는 젊은 총리 산나 마린(35)과 그의 동갑내기 배우자 마르쿠스 래이쾨넨이다. 이들 커플은 18세에 처음 만나 15년간 동거를 해왔으며 슬하에 두 살 된 딸도 있다. 

코로나19의 영향도 있었겠으나 산나 마린 총리의 웨딩은 실속을 중시하는 여느 핀란드 밀레니얼 세대의 결혼식처럼 소박했다. 총리는 여름휴가 기간에 맞춰 40명의 하객을 초대한 가운데 결혼식을 치렀으며 인스타그램에 웨딩 사진을 올려 결혼 사실을 알렸다. 그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임신, 모유 수유 등 사생활도 진솔하게 공개한다. 종종 패션으로도 화제가 되는데, 윤리적 공정을 거친 친환경 소재의 의상을 고집한다. 물론 한 나라의 총리로서 외국 브랜드보다는 마리메코(Marimekko), 우하나(Uhana), 파푸(Papu), 노우키(Nouki) 등 자국 브랜드를 선호한다. 

산나 마린 총리는 세계 최연소 지도자(현재는 올해 초 34세로 오스트리아 총리에 당선된 제바스티안 쿠르츠에게 ‘세계 최연소 국가 지도자’ 타이틀은 넘겨준 상태)로 핀란드를 이끌게 된 직후부터 세계 언론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핀란드는 한때 ’노키아의 나라’로 불렸다. 비록 노키아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경쟁에 밀리며 사람들에게 잊혔지만, 이제는 산나 마린 총리가 노키아를 대신해 핀란드 최고의 브랜드가 돼가고 있다. 총리로 임명되자마자 들이닥친 코로나 정국을 우려와는 달리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하며 선방해냈기 때문이다. 핀란드는 북유럽 4개국(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 중 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 수가 가장 적다. 현재 총리의 개인적 인기와 함께 총리가 소속된 사회민주당 인기도 덩달아 오르고 있다. 신문은 앞다투어 총리에 대한 장문의 특집 기사를 게재한다. 사실 무명의 정치인에서 단숨에 총리까지 올라선 이 젊은 여성 총리에 대해 핀란드 사람들도 잘 몰랐다.

성 소수자 가정에서 자란 마트 캐셔 출신 총리

핀란드를 이끌고 있는 35세의 산나 마린 총리.

핀란드를 이끌고 있는 35세의 산나 마린 총리.

성 소수자 권익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진 산나 마린 총리는 어릴 적 엄마만 두 명 있는 성 소수자 가정에서 자랐다. 어머니는 그가 2세 때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와 이혼하고 그 후에는 여자 친구와 함께 산나 마린을 키웠다. 총리의 표현에 의하면 어머니는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모든 일”을 하며 가정을 꾸려나갔다고 한다. 고등교육을 받지 못하고 15세부터 직업 전선에 뛰어든 어머니는 열심히 살았지만 크게 돈을 벌지는 못했다. 때로는 직장을 잃고 실업자로 전락하기도 했다. 

그런 어머니에 대해 총리는 한마디로 “긍정적인 분”이라고 얘기한다. 그의 어머니는 언제나 책을 가까이했고 어린 산나도 어머니를 닮아 독서를 즐겼으며 두 사람은 자주 정치, 사회와 관련된 문제를 토론하곤 했다. 산나의 질문에 어머니는 답변을 안 해준 적이 한 번도 없다. “너는 원하는 무엇이든지 될 수 있어”라며 딸을 믿어주고 용기도 북돋아주었다. 어머니의 이런 긍정적 에너지와 개방적 가정환경, 딸을 향한 적극적 지원은 그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기 충분했다. 어린 산나는 임대 아파트에서 가난하게 살면서도 가족 중 최초로 대학교 진학을 꿈꾸게 된다. 그가 녹록지 않은 생활 속에서도 훌륭하게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핀란드의 사회적 환경도 한몫한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모든 교육이 무상으로 제공되었고 어머니가 실업자로 돈을 못 벌었을 때는 생활자금도 지원받았다. 총리가 처음 정치에 입문할 때 약자의 목소리에 좀 더 귀를 기울이는 사민당을 택한 것도 이런 개인적 배경과 관련이 깊다. 



산나 마린 총리의 삶에 영향을 끼친 또 한 명의 여성이 있는데, 바로 핀란드 최초의 여성 대통령인 타르야 할로넨이다. 산나 마린은 2000년, 타르야 할로넨이 핀란드 역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선출되는 장면을 TV로 지켜보았다. 핀란드로서도 역사적 순간이었고 소녀 산나 마린에게도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이제는 성별에 상관없이 여성도 정상의 자리까지 오를 수 있다는 것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이다. 

타르야 할로넨 전 대통령과 산나 마린 총리는 평행 이론처럼 거의 비슷한 인생의 궤적을 그리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둘 다 사민당 소속으로 과감한 개혁을 지지한 쪽이며 평등, 인권, 성 소수자에 대한 관심이 많다. 개인사도 가난한 이혼 가정 출신(심지어 부모가 이혼한 시기도 2세로 같다)에 가족 중 대학에 진학한 최초의 인물이며, 부모 이혼 후 아버지를 거의 만나지 못한 것조차 비슷하다. 어머니가 보육원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것, 오랜 동거남과 대통령/총리 당선 후 늦게 결혼한 것까지 묘하게 서로 닮아 있다. 타르야 할로넨 전 대통령의 어머니도 가사 도우미로 일하며 딸을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했는데, 식견이 트인 분이셨던 것 같다. “세상은 평등하지 않단다. 그러나 딸아, 너는 이런 불평등한 세상을 평등하게 만드는 데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말해주었고 딸은 성장해 그 말을 실천했다.

남편의 적극적인 외조, 총리 된 후 유급 육아휴가 확대

국회의원 시절 출산한 산나 마린 총리는 아이와 함께 의회에 등원하기도 했으며 인스타그램을 통해 육아 등 개인적 삶의 모습을 공유한다.

국회의원 시절 출산한 산나 마린 총리는 아이와 함께 의회에 등원하기도 했으며 인스타그램을 통해 육아 등 개인적 삶의 모습을 공유한다.

어린 산나 마린은 사회와 정치에는 관심이 많았지만, 학교 공부에는 그다지 흥미가 없었다. 중학교 다닐 때 내신 성적이 별로 좋지 않아 원하는 인문계 고등학교를 턱걸이로 들어갔을 정도다. 고등학교 친구들의 증언에 의하면 그는 고등학생 시절에도 지극히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러나 가끔씩 쏟아내는 거침없고 자신감 가득한 언변에 친구들은 놀라곤 했다. 어릴 때 꿈꿨던 것처럼 그는 가족 중 최초로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입학 자격을 얻게 된다. 하지만 진로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해보고 싶어 대학 입학은 잠시 미룬다. 바로 이즈음 결혼사진 속의 또 다른 주인공인 마르쿠스 래이쾨넨 씨를 만나 사귀게 된다. 마르쿠스 씨는 당시 상업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축구가 장기인 미소가 아름다운 청년이었다. 이들은 20세 때부터 동거를 시작했고, 마르쿠스 씨는 친구들과 스타트업을 창업하며 젊은 창업가의 길로 들어선다. 20세의 산나도 월셋집에서 가까운 백화점의 캐셔로 일하기 시작한다. 이웃 나라 에스토니아 내무부 장관은 산나 마린이 총리로 선출된 직후, 이런 직업적 배경을 비웃으며 “일개 백화점 캐셔가 핀란드 총리에 올랐다”고 조롱해 핀란드인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이에 산나 마린 총리는 “전직 판매원이 총리가 될 수 있는 핀란드가 매우 자랑스럽다”고 응수했다. 

산나 마린은 총리 경선 전, 남편(당시 약혼남)에게 총리가 돼도 괜찮냐고 먼저 물어봤다고 한다. 마르쿠스 씨는 적극적 외조를 약속하며 기꺼이 동의해주었다. 사진에서 보이듯 마르쿠스 씨는 조용하며 침착한 성격으로 알려져 있다. 그에 비해 총리는 따뜻하며 유머가 풍부하지만 감정의 높낮이가 있는 성격이라고 한다. 마르쿠스 씨는 장수 커플의 비결에 대해, “그냥 우리는 서로 잘 맞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일상 속에서 서로를 향한 잔잔한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마르쿠스 씨는 아침에 먼저 일어나 아이를 돌보며 아내가 잠을 충분히 잘 수 있도록 배려한다. 그리고 총리는 이에 대해 너무도 고마워한다. 서로 바쁜 스케줄 속에서도 날짜를 맞춰 가능한 한 휴일과 휴가를 함께 보내려 노력한다. 큰 행복보다 일상에서 작은 것을 공유하고 배려하는 것이 관계를 잘 유지하는 열쇠라고 이 부부는 입을 맞춰 얘기한다. 

이 가족은 지난봄, 발트해변에 지어진 19세기 고풍스러운 건물인 총리 공관으로 이사했다. 딸을 “감사함의 근원”이라 부르는 친정어머니도 같이 이사했다. 손녀 엠마의 양육을 도와주기 위해서다. 총리 공관을 방문한 외신 기자가 모친에게 “굉장히 중요한 일을 하고 계신다”고 언급하자 모친은 “저도 지금 애국하고 있다고 생각해요”라는 재치 있는 답변을 내놓았다고 한다. 

산나 마린 정권이 들어선 후 처음으로 한 개혁도 자녀 양육과 관련된 것이다. 그는 유급 육아휴가를 남녀 모두 동등하게 164일 받을 수 있도록 개정했다. 개정 이전에는 아빠가 받을 수 있는 육아휴가가 엄마보다 훨씬 적었다. 또 이번 개정을 통해 성 소수자 부모도 처음으로 유급 육아휴가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됐다. 

핀란드 언론에 등장하는 산나 마린 총리에 관한 기사 중에는 그의 단점을 지적하는 내용도 있다. 사석에서는 총리가 가끔씩 욕도 하며, 보좌관에게 맡겨야 할 일도 스스로 처리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컨트롤 프릭(Control Freak, 통제광)이라는 것이다. 트위터 글도 직접 올리고, 연설문을 손수 쓰거나 다듬으며, 심지어는 스케줄을 따로 자기 수첩에 꼼꼼하게 적는다. 때로는 기사와 관련해 직접 기자에게 전화하기도 하는데 핀란드인들 중 일부는 이런 행동이 잠재적 위험 소지가 있다고 우려한다. 또 지나치게 깔끔해서 청소와 정리 정돈에 병적으로 집착한다. 심지어 총리의 한 지인은 예전에 총리가 자기 집을 방문하기로 했을 때, ‘우리 집까지 치우는 게 아닌가’ 걱정한 적도 있다고 털어놨다. 전담 청소부가 있는 총리 공관도 직접 청소할 정도다. 성격적으로는 불같은 면이 내재해 언성을 높일 때도 있으며 독선적이라는 평가를 듣기도 한다. 

기사의 이런 부정적 내용에 대해 산나 마린 총리는 그의 트위터에 이런 진솔한 포스팅을 올렸다. 

”저도 일이 끝난 후 가까운 사람들과 맥주도 마시고 허심탄회하게 얘기 나누는 것을 좋아합니다. 때로는 사석에서 욕도 하고 입이 좀 거칠어질 때도 있고요. 저에게 최고의 기분 전환법은 청소,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입니다. 불같은 성격은 아직도 고치지 못했지만, 다양한 경험이 쌓이며 모난 면들이 점차 둥글어지고 있어요.” 

자고로 완벽한 사람은 없는 법! 그도 그냥 우리처럼 ’보통 사람’일지 모른다. 그의 단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기사와 그에 대해 쿨하게 인정하는 그의 진솔함은 요즘처럼 필터로 보정된 사진이 난무하는 시대에 마치 무보정 민낯 사진처럼 신선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사진제공 산나 마린 총리 인스타그램 게티이미지



여성동아 2020년 9월 6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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