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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마루’ 남궁민 데뷔 10년 만에 야누스의 얼굴로 인기 급상승

글·이혜민 기자 사진·지호영 기자, MBC

2011. 07. 15

섬세하고 따뜻한 봉마루, 분노의 화신 장준하. 두 캐릭터를 연기하는 남궁민은 어느 쪽에 더 가까울까. 데뷔 10년 만에 드라마 ‘내 마음이 들리니?’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남궁민에게 직접 물었다.

‘다크 마루’ 남궁민 데뷔 10년 만에 야누스의 얼굴로 인기 급상승


배우 남궁민(33)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MBC 드라마 ‘내 마음이 들리니?’(이하 ‘내마들’)에서 선과 악을 넘나드는 야누스의 매력을 선보이며 연기력을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그는 드라마에서 봉마루와 장준하라는 두 이름으로 살아간다. 봉마루는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나자마자 버려져 외할머니(윤여정)의 손에 크는 인물. 외할머니는 마루를 자신의 양아들인 바보 봉영규(정보석)의 아들로 호적에 올려 키워주지만, 마루는 지긋지긋한 가난으로부터 도망쳐 재벌가 사모님 태현숙(이혜영)의 양아들 준하로 성장한다. 하지만 준하는 태현숙이 남편인 최진철(송승환)에게 복수하고자 자신이 그의 친아들인 줄 알면서 입양했다는 사실을 알고 분노가 폭발한다. 시청자들은 드마라가 진행될수록 남궁민이 앞으로 어떻게 변해갈까 궁금해하며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장준하는 내 인생 최고의 캐릭터
서울 강남 한 카페에서 만난 남궁민은 선한 듯 날카로운 장준하의 인상 그대로였다. 며칠 밤을 새우며 촬영을 한 탓에 저절로 감기는 눈을 애써 크게 뜨려는 그의 모습에 연민이 느껴지기도 했다. ‘내마들’도 쪽 대본으로 악명이 높다. 출연진은 대본이 나오는 월요일부터 일요일 아침까지 항상 촬영장에서 대기해야 한다.
“배우에겐 참 열악한 상황인데 막상 대본을 받아보면 어쩔 수 없겠구나 싶어요. 작가가 대사 하나하나에 깊은 뜻을 담고자 공을 들인 흔적이 보이니까 대본이 늦어지는 걸 탓할 수가 없죠. 감독님이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 워낙 꼼꼼하게 찍기 때문에 뭐라고 불평할 수도 없고요. 다만 촬영 순서가 바뀌어서 앞부분의 상황을 대략 듣고 뒷부분을 먼저 촬영하려면 감정이입을 하기 어려울 때가 있어요.”
그는 ‘장준하’를 자신의 연기 인생에서 만난 최고의 캐릭터로 꼽는다. 배역의 비중도 비중이지만 캐릭터에 대한 이해도 역시 높다. 그는 “연기하기가 어려워서 날마다 외줄 타기를 하는 것 같지만 그만큼 깊이 있는 연기를 할 수 있어 좋다”고 말한다.
“봉마루란 캐릭터는 지극히 현실적이에요. 진짜 엄마는 나를 자식으로 인정하지 않고, 바보인 아버지 아래서 가난하게 사는데 ‘이상적인 엄마’ 같은 사람이 나타나 자기 아들로 살자고 제안하면 저라도 흔들릴 것 같아요. 정보석 선배님이 ‘바보 아빠’를 워낙 좋은 이미지로 만들어서 상황이 아름답게 보이기도 하지만, 어린 마음에 그런 환경을 감내하기란 쉽지 않죠.”
더욱이 그는 봉마루가 태현숙에게 분노하며 어두운 마루, 즉 ‘다크 마루’로 변신하는 것에도 절대 동감한다. 실제로 자신이 그 상황에 처하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 거라고. 물론 연기할 때마다 배역의 모든 상황에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가능한 한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매끄럽게 연기할 수 있고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전할 수 있다고 믿는다.
새 가족에 편입돼 선한 아들, 좋은 형으로 살다가 복수의 화신이 된 기분은 어떨까. 악한 감정을 내뱉으면 카타르시스가 느껴지지 않은지 묻자 고개를 완강히 내젓는다. 다만 “갈등구조를 잘 이끌어가야 드라마가 잘 운용된다고 판단해, 몰입하려고 애쓴다”고 답했다.
“존경하는 윤여정 선배님을 내 할머니라 생각하며 ‘당신은 날 30년 동안 속였다’고 외치며 분노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에요. 좋아하는 이혜영 선배님을 증오의 대상인 태현숙으로 대하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태현숙과 싸우면서 ‘최진철! 내 아버지 데려와’라고 말하는데 바람이 척추로 밀려와 머리끝을 타고 나가는 기분이 들면서 기운이 쫙 빠지더라고요.”

‘다크 마루’ 남궁민 데뷔 10년 만에 야누스의 얼굴로 인기 급상승

남궁민은 ‘내마들’에 함께 출연 중인 김재원과 마음이 잘 통해 연기에 대한 조언을 주고받는다고 한다.



한 작품에서 착한 사람과 복수에 눈먼 냉혈한까지 다양한 연기를 펼치는 일이 쉽지는 않아 보인다. 하지만 그는 동료 배우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자신의 부족한 점을 채워나간다. 특히 정보석과 윤여정 등 연기 베테랑들이 자신들의 모습이 카메라에 비치지도 않는데 상대 배우의 감정 연출을 위해 눈물까지 흘리는 모습을 보며 새삼 배우의 자세를 배운다. 그 덕분에 그는 “‘진심으로 연기하자’는 연기관이 더욱 뚜렷해졌다”고 한다.
“촬영 들어가기 전에 윤여정 선배님이 ‘난 너의 할머니가 될 테니까 넌 내 손자가 되는 거야. 우리 가짜로 하지 말고 진짜로 해보자’고 하면서 다독여주세요. 그간 촬영한 것 중에서 준하가 할머니를 찾아가 출생의 비밀을 확인하고 절규하는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데, 당시 도저히 연기를 할 수 없을 것 같았어요. 그때 윤여정 선배님께서 ‘연기가 구구단 외우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이 중요한 장면을 급하게 찍느냐’고 저 대신 말씀해줘서 그 장면을 1주일 뒤로 미뤘다가 장장 7시간에 걸쳐 찍었어요. 진짜라고 생각하고 몰입한 덕에 연기하는 법을 조금 알게 됐죠. 그날 이후로 매일 악몽을 꾸고 있어요. 몽유병 증상 같은데 자다가 중얼거리는 저 자신을 발견해요. 그만큼 배역에 대한 강박이 큰 거겠죠.”
그는 동료 배우 김재원에게도 고마움을 표했다. 남궁민은 평소 촬영장에서 배우들과 친하게 지내면 배역에 대한 몰입도가 떨어진다고 생각해 일부러 거리를 두는 편이다. 하지만 김재원과는 마음이 잘 통해선지 연기에 대한 조언을 주고받는 사이로 발전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소통에 주저하는 편이다. 특히 ‘트위터’ ‘미투데이’ 같은 SNS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데 익숙하지 않다. 사생활을 노출하는 게 싫고, 내 일을 열심히 하면 되지 일부러 홍보를 할 생각은 없다. “다른 작품을 보면서 탐나는 배역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런 건 생각해본 적 없다. 내가 맡은 역에 충실한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모습에서도 고지식한 성격이 엿보인다.



단역 전전하다 3년 만에 고정 출연 따내
남궁민은 교사인 아버지와 가정주부인 어머니 아래서 자라, 중앙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했다. 집과 공부밖에 모르다 어느 날 갑자기 연기에 입문해서인지 아직도 모범생 기질이 남아 있다. 배우가 된 건 정말 우연이었다. 대학 2학년 때 무심코 TV에서 ‘공채 탤런트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곤 마음이 움직였다. “군대 가기 전 경험 삼아 한번 나가볼까” 했더니 어머니가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보라”고 권했다. 오디션을 봤고 그날부터 새로운 인생을 살기 시작한다.
“그때까지 구체적으로 꿈을 가져본 적이 없었어요. 부모님이 하라는 대로 공부했고, 취직 잘되는 학과에 들어가서 착실하게 살 궁리만 했죠. 하지만 오디션을 받는 사람들이 꿈을 향해 노력하는 모습이 좋아 보였고, 연기도 재미있어 보였어요. 그때부터 행복이란 뭘까, 내가 좋아하는 일이 뭘까 고민하면서 입대를 미뤘죠. 당연히 첫 공채 시험에서 떨어지고 이후로도 주르륵 낙방했지만 연기가 하고 싶어서 단역을 전전했어요. 남궁민이 하고 싶은 일이 연기일 수 있겠다 싶어서 무작정 덤빈 거예요. 그렇게 3년여를 보내고 2002년 ‘대박가족’에 고정 출연을 하면서 정식으로 데뷔했죠.”
하지만 부모님은 아들의 결정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평범하지 않은 삶을 택한 아들의 미래가 우려됐던 것이다. 특히 어머니는 “연기는 뭔가 특별한 사람이 하는 거지, 너처럼 평범한 사람이 하는 게 아니다”라며 헛된 꿈을 꾸지 말라고 충고했다. 그럴 때마다 곁에서 응원해준 이는 하나뿐인 남동생이었다. 지금도 남궁민은 동생을 “보물 1호”라고 말한다.
“자랄 때는 많이 다퉜지만 지금은 둘도 없는 사이죠. 동생은 은행에 다니느라 바쁘고, 저는 저대로 바쁘게 살다 보니 자주 보지는 못하는데, 무의식중에 가장 소중한 사람이 됐어요. 앞으로 여자친구가 생기면 물론 “네가 내 보물 1호”라고 얘기하겠지만 동생이 보물 1호란 생각은 바뀌지 않을 거예요. 그게 어디 쉽게 바뀌겠어요?(웃음)”

‘다크 마루’ 남궁민 데뷔 10년 만에 야누스의 얼굴로 인기 급상승


데뷔한 지 어느덧 10년. 드라마 ‘장밋빛 인생’ ‘어느 멋진 날’, 영화 ‘비열한 거리’ 등으로 얼굴을 알렸지만 오랜 무명 시절을 보낸 건 사실이다. 혹시 그간 힘들었던 순간이 없었느냐고 묻자 “위기는 없었다”며 담담하게 답한다. 시트콤에서 비중 있는 인물로 캐스팅됐다가 촬영 며칠 전에 무산된 적도 있고, 특정 감독과 연이어 작품을 하는 것이 문제가 돼 배역이 없어지기도 했지만 그런 정도의 일을 어려움이라고 여기지 않는다고. ‘살면서 이런 일 저런 일 겪을 수 있는 거니까 고민할 시간에 차라리 연기 공부하자’는 게 그의 생각이다.
“힘든 일이 닥치면 ‘내가 뭔가 보여주겠어’라면서 이를 갈기 마련인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여긴 정글이니까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쓰는 게 당연하다’라고 생각했죠. 그런 일로 마음을 독하게 먹지는 않아요. 그 대신 쉬지 않고 영화, 드라마 보면서 연기 연습하고, 뮤지컬 배우들에게 발성 레슨 받고, 볼펜 물고 발음 연습하면서 자신감을 키워갔어요. 밟히면 밟힐수록 꿈틀대는 사람이라 언젠가 좋아지리라 생각했죠.”
평소 감정을 잘 컨트롤하는 성격이어서 오히려 장준하의 폭발적인 감정 연기가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내마들’ 촬영장에서 남궁민을 지켜본 황정음은 “오빠가 독기 서린 연기를 잘하는 건 그만큼 감정을 꾹꾹 담아두는 사람이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할 정도다.

지금부터가 연기 인생의 시작
물론 덤덤한 그도 좌절의 시간이 있었다. 허리 디스크 때문에 3년 가까이 일상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할 만큼 고생을 했다. 그때도 그는 좌절하지 않고 ‘언젠가 낫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그 시기를 버텼다. 아침에 일어나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운동하고, 병원 다녀오고, 다시 작품을 보면서 연기 연습을 반복했다.
“허리 디스크만 나으면 뭐든지 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다행히 드라마 ‘부자의 탄생’에 캐스팅돼 일을 시작했는데, 그 역을 준비하면서 헬스 트레이너와 척추 근육 강화 운동을 해 4개월 만에 완치됐어요. 건강을 되찾아 눈물이 날 정도로 기뻤죠. 아마 그때가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던 것 같아요. 역시 사람은 일을 해야 하나 봐요.”
남궁민은 공백기의 공허함과 힘겨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듯했다. 배우로서 전성기에 막 들어선 그에게 어떤 연기자가 되고 싶은지 묻자 “공백기가 있으면 연기력을 어느 수준 이상으로 만들어내기 어렵기 때문에 쉬지 않고 연기에 매진하겠다”는 답이 돌아온다.
“지금부터가 시작인 것 같아요. 방송계에서는 잠시만 활동을 안 해도 잊히잖아요. 사람들이 저를 알아본다고 해서 자만하지 않고, 정신 바짝 차리고 연기에 몰입할 거예요. 방송을 보면서 제 연기에 대해 반성하곤 하는데, 이 열등감을 계속 가져가면서 쉬지 않고 연기하려고요. 복합적인 인물을 연기했으니까 다음에는 밝은 연기를 해도 좋을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그에게 ‘내마들’의 결말이 어떻게 나면 좋겠느냐고 묻자 “어떤 결론을 기대하기보다 작가님께서 만들어주신 내용을 받아들이면서 그 상황을 이해하고 싶다”는 답을 내놓는다. 자신의 바람을 반영하기보다 주어진 배역에 자신을 투영하는 남궁민. 그의 배우 인생은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의상협찬·디그낙 셔츠 팩토리 컬렉션by퍼플리시드
헤어·선애(순수미용실)
코디네이터·박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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