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안녕하시죠? 제가 말하는 걸 들으실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열심히 해서 오늘도 좋은 모습 보여드릴게요.”
지난 3월16일 미국 애너하임에서 열린 WBC 2라운드 일본전에 앞서 이승엽(30·일본 요미우리)은 TV 인터뷰를 통해 대구에 있는 어머니 김미자씨(58)에게 안부를 전했다. 그의 어머니는 2001년 뇌종양 수술을 받은 후 현재까지 투병 중이다.
승리가 확정되자 이승엽은 평소와 달리 마음껏 기쁨을 발산했다. 동료들을 끌어안고 펄쩍펄쩍 뛰며 운동장을 돌았다. 첫째는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켰기 때문이고 둘째는 그에게 마음의 상처를 안겼던 미국과 일본에 진 빚을 갚았기 때문. 그는 앞서 미국전에서도 솔로 홈런을 터뜨리며 한국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오늘의 영광을 어머니께 바칩니다. 그리고 미국이 저를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이 가장 좋습니다. 3년 전 메이저리그 진출을 시도했을 때는 대우를 못 받아서 정말 섭섭했거든요.”
이번 대회는 ‘이승엽을 위한 무대’라고 할 만하다. 한국이 2라운드까지 6연승을 하는 동안 그는 홈런만 5방에 10타점을 올렸다.
메이저리그 애너하임구단 빌 스맨턴 단장은 3월16일 한 인터뷰에서 “이승엽의 타격을 좋아했다. 아니 그의 모든 것을 좋아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제안을 하지 못했다”며 후회하기에 이르렀다. 2003년 이승엽이 미국에 와 애너하임 등 몇몇 구단과 접촉했지만 헐값의 계약조건을 내걸었다 놓친 데 대한 아쉬움을 나타낸 것.
2003년 이승엽은 한 시즌 아시아 홈런 신기록인 56개의 홈런을 때린 후 해외 진출을 선언했지만 원했던 메이저리그에서는 제대로 대접을 못 받아 결국 일본 롯데구단으로 갔다. 이에 대해 당시 이승엽은 “미국 팀들이 내 입으로 말하기도 싫을 정도로 초라한 조건을 제시했기 때문”이라고 털어놓았다.
일본의 벽도 만만치 않았다. 전혀 다른 야구 스타일에다 집요하게 약점을 물고 늘어지는 일본 투수들 앞에 이승엽은 일본 진출 첫해 2군 추락의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딱 1년만 더 일본에서 야구를 하자며 이를 악물었습니다. 시즌이 끝난 뒤 거의 하루의 휴식도 없이 훈련에만 매진했죠. 손바닥 껍질이 벗겨지고 굳은살이 박이는 과정이 여러 번이었습니다.”
이승엽은 2002년 이송정씨와 결혼, 두 살배기 아들을 두고 있다.
이승엽은 이듬해 30홈런을 날리며 체면치레를 했다. 일본시리즈에서도 3홈런을 치는 맹활약을 하며 올해 초에는 최고 명문 구단이라는 요미우리로 팀을 옮겼다. 이번 대회에서는 그동안 일본에서 받은 설움을 단번에 날려보내는 홈런을 때렸다. 3월5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일본과의 아시아 예선에서 8회 역전 2점 홈런을 친 것.
“일본에서 정말 많이 배웠어요. 근력을 키웠고, 투수와의 수 싸움도 늘었고, 타격 기술도 몰라보게 좋아졌어요. 그때의 고생이 없었으면 아마 이번 대회에서의 이승엽도 없었을 겁니다.”
한국은 물론 미국, 일본에서 쏟아지는 관심 때문에 부담스럽지 않을까?
“사실 힘들어요. 부담도 너무 크고…. 못 치면 비난이 저한테 쏟아질 거잖아요. 물론 지금처럼 잘 치면 영웅이 되기도 하겠지만…. 저는 프로 선수입니다. 프로라면, 한 분의 팬이라도 저를 지켜보고 응원을 한다면, 그분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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