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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아이 러브 코리아

도보여행 하며 소외된 아이들에게 사랑 베푸는 미국인 론 파울러

글·강지남 기자 / 사진ㆍ정경택 기자

2006. 01. 04

미국인 영어강사 론 파울러는 우리 땅 8000km를 도보로 여행하면서 불우한 어린이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보육원 아이들과 어울려 떡볶이를 사먹고, 공원을 거닐 때 가장 행복하다는 마흔 살 노총각의 한국사랑 이야기.

도보여행 하며 소외된 아이들에게 사랑 베푸는 미국인 론 파울러

미국인 영어강사 론 파울러(40)만큼 우리 땅을 많이 걸어다녀본 외국인이 또 있을까. 그는 10년 전부터 해마다 한두 차례씩 짧게는 3∼4주, 길게는 6개월에 걸친 전국 도보여행에 나서고 있다. 지금까지 그가 걸은 거리를 모두 합치면 8000km가 넘는다고 한다. 평안북도 신의주와 전라남도 목포를 잇는 1번 국도의 총길이가 498.7km이므로 그는 신의주에서 목포까지 걷기를 16번이나 반복한 셈이다. 그는 지난해 11월 초 통산 15번째 도보여행을 마쳤다.
“도보여행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면 늘 다니던 직장에서 해고통보가 날아와 있어요(웃음). 오랜 시간 자리를 비우니 누가 참아주겠어요. 이번에도 직장에서 쫓겨났었는데, 다행히도 얼마 전 서울 압구정동에 있는 친구의 영어학원에 일자리를 얻었어요.”
한국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몸소 체험하고 싶어 도보여행을 시작한 론 파울러는 어딜 가나 짙푸른 산들로 뒤덮여 있어 즐겁지만, 특히 원시림이 울창한 강원도 태백과 문화유산이 가득한 경북 경주가 가장 좋다고 말한다. 10년 동안 줄기차게 걸어온 그는 우리 땅 구석구석의 변화된 모습을 몸소 체험한 산 증인이기도 하다.
“90년대 후반부터 지방에 새 도로가 많이 건설돼 여러 번 가본 곳임에도 길을 잃을 때가 있어요. 모텔이나 찜질방에서 잘 때도 있지만 산에서 텐트를 치고 자기도 하는데, 조용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자연을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어 좋아요.”
론 파울러는 20년 전 한국과 첫 인연을 맺었다. 미군에 입대한 그의 첫 부임지가 바로 한국의 동두천 미군기지였던 것. 당시 그는 아름답게 붉게 물든 가을 산들을 바라보며 언젠가는 다시 한국을 찾아와 도보여행을 떠나겠다고 마음먹었다. 복무기간이 끝나고 고향인 미국 일리노이주로 돌아간 그는 일리노이 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하면서 한국에 머물 수 있는 체재비를 마련하기 위해 ‘백마(白馬)’에서 이름 딴 마을버스 ‘백마(Backma)’를 운영했다. 그리고 93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2년 후 첫 번째 도보여행을 떠났다.
등산을 좋아하는 그는 웬만한 한국 사람보다 한국의 산들에 대해 더 많이 안다. 관악산, 북한산 등 서울에 있는 주요 산들은 눈감고 갈 수 있을 정도로 숱하게 오르내렸다고.
“서울에 있는 산들은 하도 많이 가봐서 이제는 잘 가지 않을 정도예요(웃음). 가끔 친구들이 안내해달라고 할 때만 등산에 나서고 있어요.”
한국의 아름다운 가을풍경이, 셀 수 없이 많은 산들이, 넉넉한 시골 인심이 그를 한국으로 불러들였지만 지금까지 한국을 떠날 수 없도록 그를 붙잡고 있는 것은 불우한 처지에 놓인 한국 아이들이다. 97년 서울의 한 보육원에서 희선이라는 여자아이를 알게 된 뒤 그 아이의 후원자를 자처하면서부터 론 파울러는 보육원 아이들을 위한 봉사활동에 나섰다. 틈만 나면 보육원을 찾아가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거나 영어를 가르쳐주는 것. 현재 그는 2천여 명의 회원을 보유한 자원봉사모임 ‘와이희선(www.yheesun.com)’을 운영하고 있다.
“외국인 회원이 1천5백여 명이고 한국인 회원이 5백 명 정도예요. 후원금만 내는 회원들도 있고, 직접 보육원을 찾아가 봉사활동을 하는 회원들도 있어요. 영어강사, 버스 운전기사, 치킨집 사장, 외교관 등 우리 회원들의 직업은 참으로 다양한데, 저는 이 점이 가장 중요한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회원들에게 보내는 보육원 아이들을 위한 메시지를 그들이 자기 주변 사람들에게 전달함으로써 그 아이들에게 더 많은 도움을 주고, 그들에 대한 사회 전체의 인식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버스 운전기사에서 외교관까지 다양한 직업 가진 회원들 모인 봉사모임 이끌어
도보여행 하며 소외된 아이들에게 사랑 베푸는 미국인 론 파울러

도보여행으로 찾은 경주 불국사 앞에서.


론 파울러를 만난 곳은 서울에 있는 한 보육원이었다. 그는 틈나는 대로 이 보육원을 찾아와 아이들과 신나게 놀아준다고 한다. 아이들이 그에게 붙여준 별명은 ‘혜란이 아저씨’. 혜란이라는 다섯 살짜리 여자아이를 특히 귀여워하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워낙 친하다 보니 그가 도보여행을 하느라 몇 개월 만에 나타나도 아이들은 그를 무척 반긴다고 한다. 아이들과 어떤 놀이를 하는 걸 좋아하냐고 물었더니 그는 “그냥 때려줘요(I just hit children)”라며 웃는다.
“다른 외국인 자원봉사자들이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주고 있고 저는 그냥 아이들과 어울려 놀아요. 아이들을 번쩍 들어 뒤집기도 하고 다 함께 어울려 밖으로 나가 떡볶이도 사먹고 공원을 거닐기도 하고 그래요. 그런 순간이 가장 행복해요.”
보육원 아이들과 인연을 맺은 후 그의 도보여행은 단순히 아름다운 자연을 만끽하는 여행이 아닌 아이들을 위한 모금운동의 일환으로 성격이 바뀌었다. 그는 또 도보여행을 하는 도중 지방도시의 보육원에 찾아가 영어를 가르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봉사활동을 하면서 그는 안타까움을 느낄 때가 많다고 한다.
“많은 보육원 운영자들은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는 제안을 거절해요. 외부인이 찾아와서 자신들이 하는 일을 들여다보고 어떤 점을 개선하는 것이 좋은지 제안하는 걸 원치 않는 거죠.”
론 파울러는 와이희선 회원들을 독려하며 보육원 봉사활동을 벌이는 일을 꾸준히 전개하는 동시에 우리나라 보육원의 시스템을 바꾸고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가 자주 찾는 보육원의 한 교사는 “론이 전국의 여러 보육원을 돌아다니면서 현장에서 보고 느낀 여러 문제점과 대안은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 많다”고 말한다.
“아이들이 보육원으로 들어가는 걸 아예 막는 노력이 시급해요. 아이를 양육할 형편이 안되는 부모들에게 각종 지원을 하거나, 정부가 아동 보호 프로그램을 통해 개입하는 거죠. 그리고 다른 형태의 가정이라고 할 수 있는 그룹홈(몇 명의 아이들이 교사와 함께 가정집에서 지내는 것)도 확대해야 하고요. 이런 문제들이 해결되기 전까지는 미국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 같아요(웃음). 한국 정부가 많은 관심을 기울였으면 좋겠어요.”
올해 마흔이 된 론 파울러는 아직 미혼이다. 몇 해 전 한국인 여자친구와 깊이 사랑했지만 여자친구 가족의 반대에 부딪혀 헤어진 아픈 경험이 있다고 한다. 그는 “미래의 배우자가 미국인이든 한국인이든 상관없지만 나처럼 걷는 것을 좋아하고 불우한 아이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이해해줄 수 있는 여자였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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