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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반가운 얼굴

아침드라마 ‘빙점’으로 8년 만에 브라운관 복귀한 최수지

“결혼 생활이 가져다준 여유와 부드러움, 연기로 표현할래요”

■ 기획·구미화 기자 ■ 글·조득진 ■ 사진·조영철 기자

2004. 11. 10

드라마 ‘토지’의 서희 역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최수지가 다시 브라운관으로 돌아왔다. 결혼 후 화려한 연예계 생활을 미련 없이 접고 미군 군의관인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훌쩍 떠난 지 8년 만. 어느덧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의 엄마가 되어 돌아온 그를 만났다.

아침드라마 ‘빙점’으로 8년 만에 브라운관 복귀한 최수지

‘청춘스타의 원조’ 최수지(36)가 안방극장으로 돌아왔다. 80년대 후반 KBS 드라마 ‘사랑이 꽃피는 나무’를 통해 청춘스타로 떠오른 이후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그는 지난 97년 결혼과 함께 연예계를 떠났다. 96년 SBS ‘부자유친’ 이후 8년 만에 복귀하며 그가 선택한 작품은 지난 10월4일 첫 방송된 MBC 아침드라마 ‘빙점’이다.
일본의 여류작가 미우라 아야코의 동명소설을 각색한 ‘빙점’은 이미 영화와 드라마로 방영된 적이 있는, 시청자들에게 익숙한 내용. 이 작품에서 그는 남편의 후배와 밀회를 나누다 유괴범의 손에 딸을 잃고, 남편이 복수를 하기 위해 입양한 유괴범의 딸을 키우는 비련의 여주인공을 맡았다. 겉으로는 조신하지만, 내면엔 뜨겁게 농익은 열정이 흐르는 여인이다.
“40년 전에 발표된 작품이지만 시대적인 차이를 전혀 느끼지 못할 만큼 공감대가 넓은 원작에 끌려 망설임 없이 선택했어요. 여주인공은 평소엔 물처럼 잔잔하지만 한순간 끓어 넘치기도 하고 차갑게 얼어붙기도 하는 매력적인 여자예요.”
그는 드라마 촬영을 시작하기 전까지 소설을 두 번 읽으며 여주인공 ‘하윤희’ 역에 푹 빠졌다고 한다. 극중 피아노 연주 장면을 소화하기 위해 아는 대학교수로부터 틈틈이 개인레슨까지 받고 있다고. 제대로 칠 수는 없어도 비슷하게 흉내라도 내고 싶은 욕심 때문이다.
미군 군의관인 남편과 결혼하며 미국으로 훌쩍 떠났던 그가 다시 한국에 돌아온 것은 2년 전. 대구로 발령을 받은 남편을 따라 귀국한 이후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간 딸을 키우며 평범한 주부로 살고 있던 그는 드라마 출연 제의를 받고 한참을 망설인 끝에 연기 복귀를 결심했다.
“8년의 공백기 동안 몇 차례 출연 제의가 있었지만 고사할 수밖에 없었어요. 아직은 아이가 어리고, 남편이 그냥 평범한 아내로 살아주기를 원했거든요. 또 공백 기간도 길고 활동 당시에도 많은 작품에 출연한 건 아니어서 두렵기도 했고요.”
하지만 이번 작품은 달랐다. 남편 백진범씨가 ‘당분간’이라는 꼬리표를 달기는 했지만 그의 연기 활동 재개를 찬성한 것. 또한 케이블 TV 등을 통해 엄마가 유명 탤런트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딸 진아도 “엄마 일해” 하며 응원해주었다고 한다.
“오랫동안 쉬었지만 막상 카메라 앞에 서니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듯 편안해요. 하지만 함께 연기하는 배우들 대부분이 처음 호흡을 맞추는 사람들이라 서먹서먹한 면이 없지 않죠. 그러다 보니 어색한 장면이 나오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점점 익숙해지고 있어요. 어느 드라마나 초반엔 시행착오를 겪게 마련이잖아요. 한 달 정도면 연기의 ‘감’을 잡을 수 있을 거예요.”


사실 시청자들의 뇌리 속에 그는 여전히 ‘토지’의 주인공 ‘서희’로 남아 있다. 쇠락해가는 명문가를 홀로 지탱하는 주인공의 서늘한 분위기와 그의 도도한 아름다움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던 것. 하지만 그 강렬한 이미지는 이후 그의 연기 생활에 장애가 되기도 했다. 너무 일찍 정상에 오른 나머지 다른 이미지를 표현할 수 없었던 것. 이후 그는 ‘서희’를 넘어서는 새로운 이미지를 갖지 못했다.

아침드라마 ‘빙점’으로 8년 만에 브라운관 복귀한 최수지

매일 새벽에 집을 나서는 게 아이에게 미안하다는 그. 한 사람의 아내,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은 좀더 넉넉한 연기를 펼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아직도 저를 ‘토지’의 서희로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저를 스타로 만들어준 배역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이번 드라마를 통해 그 한계를 넘고 싶어요. 8년 동안의 결혼 생활이 가져다준 여유와 부드러움을 표현하고 싶어요.”
그래서일까. 그는 연기를 처음 시작할 때와는 달리 마음의 여유가 많이 생겼다고 한다. 예전 같으면 짜증이 났을 법한 상황에서도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게 되고, 촬영만 하고 바람처럼 떠나버렸던 과거와는 달리 이젠 스태프며, 선후배 연기자들과 편하게 어울리게 됐다는 것. 그는 이 모든 것이 결혼과 가정생활이 가져다준 선물이라고 말했다.
그는 오랜만에 시청자들 앞에 모습을 보이다 보니 살이 많이 빠졌다는 소리를 종종 듣는다고 한다. 양쪽 볼에 패는 보조개며, 아이 엄마 같지 않은 몸매 탓에 ‘처녀 적 그대로’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고.
“젊어 보인다는 말을 듣고 싫어할 사람이 있나요? 하지만 전 나이 먹는 것에 신경쓰지 않아요. 나이에 맞는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다는 게 연기자란 직업의 매력이잖아요. 눈가의 주름을 훈장처럼 달고 시청자를 만날 수 있는 게 연기자고요.”
한창때와 지금 달라진 게 있다면 챙겨야 할 가족이 있고, 주위 시선을 덜 의식하게 되고, 주름살이 많아졌으며, 예전만큼 대본이 빨리 외워지지 않는다는 것.
“쉬면서도 연기가 천직이란 생각을 버린 적이 없어요. 하지만 하루빨리 복귀해야겠다고 조바심을 내지는 않았죠. 나이가 들면 그에 맞는 아름다움이 있잖아요. 오랜만에 복귀했다고 ‘그래 연기 얼마나 잘하나 보자’며 보시기보다는 졸업 후 몇 십 년이 지나 초등학교 동창을 만나면 ‘야, 너 누구지!’ 하듯 반갑게 맞아주시면 좋겠어요. 시청자들과 친구처럼 함께 나이 들어가면서 공감을 줄 수 있는 연기자로 남고 싶거든요.”
매일 새벽 고속철로 서울행, 어린 딸과 남편에게 미안해
그는 요즘 드라마 촬영을 위해 대구에서 서울까지 ‘출퇴근’을 하고 있다. 2년 전 가족과 함께 미국에서 돌아온 뒤 남편의 근무지인 대구에 보금자리를 마련했기 때문. 일주일에 4번 촬영을 위해 서울을 찾는 그는 아무리 늦은 시간이라도 어김없이 집으로 향한다고. 다행히 고속철이 있어 두 시간이면 대구에 닿을 수 있다. 인터뷰가 있던 날도 그는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동대구역에서 6시9분 첫차를 타고 올라왔다고 한다.
“제가 욕심을 부려 연기를 하는 만큼 집안일을 소홀히 할 수 없잖아요. 또 일곱 살 난 딸 진아를 혼자 놔둘 수 없어 촬영이 끝나면 아무리 늦고 피곤해도 바로 열차에 오르죠.”
그의 딸은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진아에게 한국 문화를 배울 기회를 주고 싶어 한국행을 택했다는 그는 “미국에서는 말수가 적었던 아이가 한국에 살면서부터 활기가 넘친다”고 말했다.

아침드라마 ‘빙점’으로 8년 만에 브라운관 복귀한 최수지

80년대 후반 청춘을 보낸 시청자들에게 최수지의 컴백은 무척 반가운 일이다. 팬들은 이제 그가 시청자와 함께 웃고 울며 나이 들어가기를 바란다.


그는 남편에게도 고마움을 표시했다. ‘현모양처’를 바랐던 남편이 어렵게나마 연기 복귀를 허락해주었고, 아내의 빈 자리를 알아서 척척 채워주고 있는 것. 미국에서 자라 연애 시절 그가 연기자라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했던 남편은 아직도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아내의 모습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한다고 한다. 행여 키스신이나 포옹신이 나오면 가슴이 아플까 봐서라고.
“촬영하느라 집을 비울 때면 남편은 아이 숙제도 도와주고 엄마 역할을 대신해줘요. 극이 초반부를 벗어나면 여유가 생겨 일주일에 3일만 촬영한다고 하니 촬영이 없는 날 남편과 아이에게 더 잘해야죠.”
169cm의 큰 키에 오똑한 콧날, 세련되고 도회적인 이미지 탓에 ‘예쁘지만 가까이 하기엔 어려운 여자’라는 느낌을 주었던 최수지. 그러나 실제 만나본 그의 큰 눈엔 정겨움이 담겨 있었고, 재미있게 풀어내는 말솜씨 또한 뛰어났다. “옛날엔 예쁜 척, 도도한 척 내숭도 떨었지만 지금은 내 그대로의 모습을 보이려 한다. 이것이 결혼 생활이 준 여유로움”이라고 말하는 그의 모습이 새롭기만 하다.
8년 만의 복귀, “앞으로는 평생 연기를 하고 싶다”는 그의 다짐이 많은 시청자들에게 반가운 소식일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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