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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TY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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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전쟁 중인 엄마들에게 김의숙 작가

“엄마가 조금 게을러져야 아이가 행복해져요”

EDITOR 정혜연 기자

2020. 03. 17

우리는 아이에게 완벽한 엄마가 되길 꿈꾼다. 하나에서 열까지 챙겨줘야 안심이 된다. 과연 아이는 만족할까. 김의숙 작가는 엄마들이 한발 뒤로 물러서야 아이가 행복해진다고 말한다.

요즘 엄마들은 다르다. 아이를 가졌을 때부터 수십 권의 육아서를 섭렵하고, 전문가의 조언에 따라 육아의 정석대로 키우며, 학습적으로 뛰어나고, 감정적으로도 충만한 아이를 키워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마치 수능을 앞둔 수험생처럼 육아에 있어서도 실수가 없도록 열심이다. 그런데 하나에서 열까지 완벽을 기하는 엄마 밑에서 자란 아이들이라고 모두 행복할까. 지난 1월 ‘만약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미다스북스)이란 육아서를 낸 김의숙(46) 작가는 아니라고 말한다. 엄마가 완벽에 가까워지려 할수록 아이가 숨 쉴 공간과 여유는 줄어든다는 것. 김 작가는 “워킹맘으로 아이 셋을 키우며 모두 잘 챙겨야 한다는 생각에 힘들었지만 막상 아이들은 그냥 뒀을 때 스스로 할 일을 찾아서 하게 된다는 걸 깨달았다”고 강조했다. 

김 작가는 이 땅의 어떤 워킹맘과 견줘도 뒤지지 않을 만큼 치열하게 살아왔다. 결혼과 출산 후 사업에 실패한 남편을 따라 지방으로 거처를 옮겼다가 첫아이 갓난아이일 때 남편 일을 돕는 것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남편 사업이 더욱 어려워져 그가 실질적 가장이 됐을 때는 경기도의 한 사회복지시설 간호사로 일하며 가계를 도왔다. 그렇게 김 작가는 올해로 10년 째 워킹맘으로 세 아이를 키우고 있다. 

모든 워킹맘이 마찬가지겠지만 김 작가 역시 퇴근 후 주어진 집안일과 육아를 모두 자신의 몫으로 여기며 만능이 되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우울증이 찾아왔고, 자신의 우울한 감정이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지는 줄도 모르고 힘든 시간을 홀로 견뎌야 했다. 다행히 시간이 흐르면서 자녀들은 ‘돌보아야 할 존재’가 아닌 ‘엄마를 위로하는 존재’로 자라났다. 그가 육아라는 짐을 조금씩 내려놓으면서부터 찾아온 변화였다. 김 작가를 만나 세 아이 육아에서 겪은 시행착오와 아이들이 진정 행복해지는 육아 방식에 대해 들었다.

아이보다 엄마의 감정부터 돌보세요

세 아이 엄마이자 간호사로 살다가 작가가 됐는데 책을 발간하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 형편이 좋지 않아 어디 놀러 가기 마땅치 않았어요. 그럴 때 우리 가족은 늘 도서관으로 향했죠. 아이들이 책을 읽는 동안 저 역시 읽고 싶은 책을 읽으며 생각을 정리해왔어요. 그러던 중 지난해 오빠가 심장마비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 큰 슬픔에 빠졌어요. 그때 ‘사람은 왜 세상에 태어났다가 떠나가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하게 됐어요. 내가 누군지 찾고 싶었고,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죠. 아이들에 관한 글을 전부터 정리해둔 것이 있어 그것을 토대로 생각을 정리해 책을 냈어요. 

책 제목에서 추측건대 과거 자신의 육아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후회되는 점이 있나요. 

아이를 키우며 매 순간 행복했지만 후회되는 일도 참 많았어요. 엄마로서 성숙하지 못한 상태에서 육아라는 과제를 해결해야 했기 때문이죠. 세 아이를 낳고 키울 때마다 다른 상황이 펼쳐졌고, 삶의 굴곡도 심했어요. 남편 사업이 어려워져 지방으로 이사한 뒤 제가 실질적인 가장이 돼 아이들까지 돌봐야 했을 때는 정말 감정을 다스리지 못했어요. 우울증이 찾아와 아이들에게 짜증도 많이 냈어요.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소극적으로 바뀌고, 덩달아 우울증을 겪기도 했죠. 정말 미안해지더라고요. 그 일을 계기로 제 감정과 마주하고 극복해가면서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죠. 



책에서 엄마가 우울한 감정을 떨쳐내는 것이 육아의 시작이라고 했는데 작가님은 어떻게 떨쳐냈나요. 

어릴 때 기독교 재단의 학교를 다녀서 신앙으로 이겨내려고 했어요. 하나님께 기도로 의지하면 도와준다고 했지만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죠. 제가 일하는 사회복지시설이 불교 재단으로 운영돼 스님이 상주하고 계신데, 어느 날 그분이 “모든 결과는 나의 행동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해주셨어요. 그 이야기를 듣고 다른 사람을 원망하는 일이 줄었어요. 남편 때문에, 아이 때문에 내 인생이 힘들어졌다는 생각을 접었고 내 안의 문제를 찾으려 108배를 시작했죠. 그 전까지 아이들에게 “저리 가 있어”라며 밀어내기만 했는데 아이들과 같이 108배를 하면서 마음이 풀어지더라고요. 일부러 같이 한 건 아니고 아이들이 엄마가 노는 줄 알고 108배를 옆에서 따라 하는 통에 재미있는 놀이 시간이 됐죠(웃음). 그렇게 아이들과 산책, 도서관 등을 다니며 조금씩 우울감에서 벗어나게 됐어요. 

워킹맘으로 자녀를 키우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요. 

지적장애인 생활 시설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을 때였는데, 신종플루가 전국적으로 유행한 적이 있어요. 근무 중에 어린이집으로 아이가 아프다는 전화가 걸려왔어요. 당장 다른 사람을 돌봐야 해서 제 아이가 아픈 것은 제대로 케어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죠. 그럴 때 참 힘들었어요. 배려를 받고 퇴근하긴 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제가 온전히 아이를 돌보지 못하는 현실이 아쉬웠죠.

아이에겐 만능 엄마보다 기다려주는 엄마가 필요해요

‘육아, 너무 열심히 하지 마세요’라는 챕터가 인상적이었어요. 모두가 육아에 최선을 다하는데 지나치면 독이 된다는 말 같아요. 

요즘 엄마들은 만능이 되려고 노력해요. 하루하루 에너지를 다 쏟아붓죠. 그러고 돌아서면 감정적으로 짜증이 날 수밖에 없어요. 몸이 힘들면 정신적으로도 힘들잖아요. 아이들 삶에 개입하려고 하지 말고 그저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는 게 더 중요해요. 그러려면 엄마가 자신을 바라보는 시간이 필요하죠. 내가 강해지면 아이들을 내버려둬도 괜찮을 거라는 자신감이 생기고, 여유를 가지게 된 아이들은 스스로 해나가게 돼요. 

책에 ‘그냥 괜찮은 엄마’ 정도로 아이를 대했을 때 오히려 바람직하게 자란다는 부분이 있는데 실제로도 그랬나요. 

아이들은 누구나 그 자체로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어요. 완벽한 엄마가 되려고 할수록 아이의 가능성은 줄어들기 마련이에요. 그런 부분을 깨달은 뒤로 저는 되도록 아이들의 눈을 보며 감정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어요. 아이들을 위로해주려고 할수록 아이들 역시 저를 위로해주는 사람으로 자라나더라고요. 나아가 가족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주는 마음을 가진 아이로 자라났죠. 첫째 아이가 순종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데,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 반에서 친구들이 다가가길 꺼려하는 아이들에게 먼저 다가가 돌보는 큰 언니 같은 역할을 하더라고요. 세 아이 모두 성향은 조금씩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마음이 따뜻한 아이들로 자라줘서 고맙죠. 

엄마가 조금 게을러질수록 아이가 행복해진다는 건 언제 깨달았나요. 

저희 집은 아침 시간이 전쟁 같았어요. 아이 셋을 깨우고, 챙기고, 아침을 먹이고, 차에 태워 학교와 유치원으로 보내는 게 전부 제 몫이었죠. 제가 챙기지 않으면 아이들은 스스로 못 할 거라 생각했거든요. 일어나자마자 아이들을 들들 볶고, 화를 내고, 지각을 면하기 위해 과속 운전을 하는 일상이 반복되니 너무 지치더라고요. 저녁 잠자리에 들 때부터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그런데 지난해 학교 근처로 이사를 하면서 시간 여유가 조금 생긴 뒤로 아이들을 깨우지 않고 내버려뒀어요. 신기하게도 알아서 하더라고요. 그때 ‘엄마가 챙겨주는 게 습관이 돼선 안 되겠구나’라는 걸 깨달았죠. 물론 아이들이 컸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만 외국에서는 일곱 살만 돼도 스스로 하도록 내버려두거든요. 그 이후 아침 시간이 매우 행복해졌어요.

조금 게을러지되 원칙만 지켜주면 충분해요

각기 다른 성향의 세 아이를 키우는 일도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균형을 맞췄나요. 

한 배에서 나왔나 싶을 정도로 세 아이 성향이 다 달라요. 첫째는 다른 사람을 돕는 데서 행복을 느껴요. 그러나 다른 사람을 위하기만 하다 보면 의기소침해지고 본인은 정작 외로워져요. 그럴 때는 아이만을 위한 시간을 가지고 “너는 소중하다”는 말을 반복적으로 해주는 게 좋죠. 둘째는 예술가적 성향을 가져서 개인의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자기 영역을 침범하는 걸 싫어했어요. 이런 아이들은 자기 생각에 갇혀 있기 때문에 불편해하지 않는 선에서 다른 아이들과 어울릴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줄 필요가 있죠. 막내는 외향적인 성격인데 이런 아이들은 좌절도 쉽게 해요. 울고 화내고, 감정을 바로 표출하죠. 그래서 욱하는 아이로 자라지 않도록 육체 활동으로 풀어주고 있어요. 제일 중요한 건 엄마가 가만히 자녀를 지켜보는 시간을 통해 아이 성향을 잘 파악하고 그에 맞게 균형을 잡아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첫째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아 원형탈모가 생겼다고 해서 놀랐어요. 아이에게 “너는 나의 전부야”라는 말도 부담이 될 수 있다고요. 

갓난아기조차도 엄마를 만족시키기 위해 표정을 살피는 등 눈치를 봐요. 부모의 말을 잘 듣는 아이일수록 감정을 표현하기보다 주변의 상황을 더 신경 쓰죠. 첫째 아이는 학교에서도 ‘좋은 아이’로 인정받았고 저 역시 “너는 나의 전부야”라는 말로 칭찬을 해줬어요. 그런데 어느 날 아이 머리가 동그랗게 탈모가 돼서 깜짝 놀랐어요. 병원에서 스트레스가 원인이라고 해 마음이 아팠죠. 알고 보니 초등학교에서 지적장애 친구를 챙겨주느라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더라고요.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칭찬만 받다 보니 부담이 컸던 거죠. 그 이후 아이에게 “다른 사람도 중요하지만 네 자신이 제일 중요하다”고 말하며 매일 안아줬고, 차츰 나아졌어요. 

엄마들이 조금 게을러지더라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게으르다’라는 말에 반감을 가지는 엄마들도 있을 텐데 단어 뜻과 동일한 의미의 게으름이 아니라는 걸 명확히 밝히고 싶어요. 요즘 엄마들은 ‘아이를 잘 키워야 한다’는 강박이 많기 때문에 그보다는 조금 게을러져도 된다는 거예요. 대신 아이들이 지켜야 하는 원칙과 규칙은 알려줘야죠. 그 원칙과 규칙을 지키는 선에서 여유를 가지길 바랍니다.

큰소리 내지 않고 아이를 키우는 8가지 방법

1. 아이를 귀한 손님처럼 대할 것 

아이의 독립을 방해하는 건 엄마의 집착이다. 손님을 대하듯 아이가 내게 있는 동안만 잘 대접하다가 엄마의 품을 떠나게 해주면 된다. 

2. 상처 주지 않고 말하는 법을 연습할 것 

남보다는 나와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가 많다. 아이에게 공격적인 말로 자극을 주기보다는 감정을 배려하는 대화를 하도록 하자. 

3. 우리 아이의 특성에 맞게 대할 것 

아이의 성향을 잘 살피고 그에 맞는 돌봄을 하는 것은 엄마의 중요한 임무이다. 아이가 어느 정도 크면 성향을 파악할 수 있는 에니어그램 테스트(성격유형검사)를 활용하길 권한다. 

4. 화내고 있는 엄마 자신을 먼저 들여다볼 것 

화가 날 때는 자신을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바라보자. 거울을 잠시 보는 것도 효과적이다. 화를 낼수록 아이와 멀어진다는 걸 명심하자. 

5. 아이가 스스로 선택하게 할 것 

인간이 자유로운 선택을 한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른다. 집에서 학교까지 걸어가는 것만으로 아이는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6. 엄마가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구분할 것 

엄마라고 모든 것을 다 잘할 수는 없다. 못하는 것은 포기하고 마음을 비우자. 요리를 못한다면 반조리 제품을 사서 정성껏 요리해주면 된다. 해줄 수 있는 일에 집중하면 아이도 엄마도 행복해진다. 

7. 아이에게 약속과 규칙을 가르칠 것 

규칙은 아이가 세상을 잘 살아가게 해주는 도구다. 아이가 도구를 잘 사용할 수 있도록 엄마가 가르쳐야 한다. 아이가 세상과 더불어 행복하게 살도록 돕는 것이 엄마의 역할이다. 

8. 스스로 할 수 있는 아이로 기를 것 

아이들은 엄마가 생각하는 것보다 스스로 알아서 잘한다. 지나치게 걱정하는 엄마가 아이를 의존적으로 만든다. 때로는 답답할 수 있지만, 아이에게 좋은 습관이 들도록 도와야 한다.

사진 김도균 디자인 김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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