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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후들이 일냈다! 한 끗이 다른 마니아 굿즈의 세계

EDITOR 이나래

입력 2020.02.09 10:00:01

소비자들은 안다. 무작정 팔려고 만든 물건인지, 영혼을 갈아 만든 물건인지를. 마니아가 수만 번의 사용 경험을 토대로 만든 물건은 그래서 다르다. 다양한 제품군의 ‘덕후’들이 직접 만든 ‘한 끗’이 다른 제품을 소개한다.

유명한 다이어리 덕후가 이름을 걸고 만든
‘루나파크 다이어리’

덕후들이 일냈다! 한 끗이 다른 마니아 굿즈의 세계
돌아온 ‘다꾸’(다이어리 꾸미기의 줄임말)의 시대다. 연초 인스타그램의 인기 태그에 #다꾸, #다이어리꾸미기가 빠지지 않았던 것도 되돌아온 다이어리의 트렌드를 보여준다. 그리고 다이어리 좀 써봤다 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사용해봤을 특별한 굿즈가 있다. 이름난 카피라이터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이고, 2018년에는 시인으로 등단한 작가 홍인혜 (닉네임 루나파크) 씨의 제작 다이어리다. 2008년부터 총 일곱 해의 다이어리를 선보였으니(2013년부터 5년간은 다이어리 업계의 불황으로 인해 부득이하게 제작이 중단되었다고) 마니아가 만든 굿즈의 원조 격이기도 하다. 

“영영 몰락할 줄 알았던 종이 다이어리가 부활의 낌새를 보이고 유통 방식이 다양해지면서, 이런 찬스를 놓칠 수 없어 2019년부터 다시 다이어리를 제작했죠. 7년 만에 부활하고 보니, 제 다이어리를 함께 써주던 분들이 다들 사회인이 되셨더라고요. 그래서 사회인들이 쓰기에 좋은 다이어리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회의실에서 꺼내놓아도 어색하지 않은 느낌, 다면화된 삶을 담아낼 수 있는 구성을 고민했죠.” 

그래서 ‘루나파크의 다이어리’는 월간 계획표를 매달 두 장씩 구성하는 ‘듀얼 먼슬리 플래너’를 채택했다. 1월 A면에는 일상생활을, B면에는 식단이나 육아 기록·가계부 등을 작성하는 식이다. 직장인으로서의 한 달과 워킹맘으로서의 한 달을 분리해 작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호응을 얻고 있다. 홍인혜 씨 역시 이 부분을 루나파크 다이어리만의 시그니처라고 꼽는다. ‘다이어리 열심히 쓰는 사람이 만든 다이어리라는 것이 느껴진다’는 평이 가장 뿌듯하다고. 실제로 그녀가 매년 다이어리를 쓰면서 깨알같이 메모해둔 개선점(예를 들어 페이지 구성부터 폰트, 줄 간격, 모눈 농도까지)을 바탕으로 다음 해 버전을 업그레이드한다. 

“2019년 다이어리를 출시한 후, 아기를 가지신 분이 임신과 관련한 이야기들을 다이어리에 빼곡하게 기록했다고 하신 것이 기억에 남아요. 초음파 사진을 붙인 다이어리의 한 페이지를 저에게 보여주셨는데 뭉클하더라고요. 다이어리에 우리 삶의 중요한 순간들이 기록된다는 점이 깊이 와 닿았답니다. 제가 그런 제품을 만들고 있다는 실감이 들었고요. 다이어리는 팬시 상품이지만 저는 책 또는 작품 같은 느낌으로 제작에 임해요. 영혼이 있는 다이어리가 되고 싶은 것이 제 소망이랍니다”


보드게임의 참맛을 알리는 인디 게임
‘그릴홀릭’

덕후들이 일냈다! 한 끗이 다른 마니아 굿즈의 세계
모바일 게임의 인기에 밀려 뜸해지긴 했지만, 보드게임은 분명 매력적인 오락거리다. 특히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입장에서는 온 가족이 둘러앉아 함께 시간을 공유할 수 있고, 아이들의 사고력과 창의력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에서 모바일 게임보다는 훨씬 반가운 존재임에 분명하다. 머리 쓰는 것을 좋아하는 어른들에게 뜻깊은 선물이 되는 것은 물론이다. 그래서일까. 최근에는 온라인 펀딩 플랫폼을 통해 보드게임 마니아들이 직접 기획하고 제작한 보드게임이 마니아들의 눈을 사로잡는 중이다. 



‘그릴홀릭’은 이미 마니아들 사이에서 전작 ‘튤립홀릭’ ‘스시홀릭’으로 재미는 물론 구성과 비주얼까지 갖췄다는 호평을 받은 그래픽 디자이너 정석현(닉네임 올린) 씨의 세 번째 출시작이다. 이 게임의 콘셉트는 플레이어가 직접 유명 레스토랑의 셰프가 되어 스테이크 요리를 완성해나간다는 것. 패키지 디자인부터 스테이크의 테마에 걸맞게 생고기가 포장된 느낌을 내고, 유저가 직접 고기를 뜯어 굽는 듯한 느낌을 주도록 설계했다. 유저는 패키지에 함께 구성된 불 조절 카드와 식재료 카드, 주문서 카드를 적절히 섞어가며 ‘조리’ ‘재료 바꾸기’ ‘서빙’의 미션을 수행해야 게임의 승자가 될 수 있다. 

그릴홀릭은 올 1월 종료된 텀블벅 펀딩에서 6백91명의 보드게이머를 대상으로 1141%의 달성률을 기록하는 데 성공했다. 참고로 같은 원리로 초밥을 만드는 전작 스시홀릭은 3백60명에게 1천1백3만원의 펀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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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보드게임 ‘부루마블’이나 ‘카탄’ ‘푸에르토리코’ 같은 유명 보드게임들이 즐비한데도 인디 게임 디자이너 정석현 씨의 작품이 이렇게 화제를 모으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보드게임을 즐겨 하지만 결국 게임이란 건 수백 번 플레이하다 보면 질리게 마련”이라는 것이 정석현 씨의 설명이다. 새로운 즐거움을 찾는 보드게임 마니아들의 수요를 저격했다는 것. 본인 스스로가 20년 차 보드게이머이고 매주 2~3일씩은 보드게임 모임에 나갈 만큼 열정적인 마니아이기 때문에 발견한 시장이기도 하다. 

“2000년대 초반, 보드게임이 국내에 보급되기 시작하던 때부터 몰두했어요. 친구들과 머리를 맞대고 게임을 하면서 하나, 둘 직접 사 모았죠.” 또래의 남학생들처럼 온라인 게임을 즐기던 그가 보드게임에 꽂힌 이유는 ‘다 함께 얼굴을 맞대고 웃으며 즐길 수 있는 시간을 통해서 정서적인 안정과 긍정적인 인간관계를 모두 얻었기 때문’이라고. 제품 출시 후 받은 피드백 중에서도 ‘온 가족이 함께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는 내용에 유독 힘이 난단다. 그래서 앞으로도 가족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보드게임을 선보이겠다는 계획이다. 차기작은 ‘스윗홀릭’이라는 이름의 마카롱 만들기 게임이 될 것이란다. 만약 이 게임이 궁금하다면 작가의 SNS나 홈페이지를 체크해봐도 좋겠다.


식덕(식물 덕후)은 흙까지 지배한다
‘모두의 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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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1일, 온라인 커뮤니티 곳곳에서 최대의 이슈를 불러일으켰던 ‘바나나 키우기’ 사건을 기억하는지. 모르는 이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실내 가드닝 블로그를 운영하던 김형기(닉네임 프로개) 씨가 바나나 줄기에서 싹을 틔우는 데 성공한 게시물을 올렸고, 이 게시물이 진실인지 아닌지에 대한 갑론을박이 국내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벌어진 것. 

실제로 이는 김형기 씨가 만우절을 맞아 올린 정교한 장난글이었지만, 노란 수박을 국내 최초로 재배하고 감자를 감자칩 회사에 납품하기도 할 만큼 식물에 대한 해박한 이해를 갖추고 있던 그를 유명 인사로 만들어준 계기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최근 ‘모두의 pH’라는 제목으로 출간을 준비하고 있어 화제다. 

“바나나 사건 이후로 블로그에 찾아오시는 분들이 많이 늘었어요. 지금은 블로그 친구인 가드너분들과 게임처럼 식물을 키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각종 식물의 이상 징후에 대해서 물어보시더라고요. 아는 만큼만 답해 드리던 중, 큰 문제점이 보였습니다. 흙의 pH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농업에 종사한 경험이 있었던 그에게 작물과 밭의 pH 그리고 양분의 함유량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지만, 가드닝 식물에서는 고려하지 않았던 문제다. 논문이나 연구 자료를 뒤져도 정확한 데이터를 찾을 수 없고 확인차 뒤져본 책, 사이트, 사람들이 모두 다른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직접 데이터를 확보해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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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의 뜻을 모를 때 사전을 찾는 것처럼, 식물을 키우기 전에 찾아보면 도움이 될 수 있는 ‘토질사전’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고 말하는 그는 1백여 종의 식물을 7종류의 흙에서 키우며 흙의 적정 pH 정보와 흙의 구성 비율, 화분 선택법, 온도 관리법, 햇빛의 양, 이상 징후 데이터 등을 만들기로 결정하고 텀블벅에 펀딩을 개설했다. 이를 위해 필요한 식물 수만 2천1백 그루, 화분과 흙이 각각 2천1백 개씩, 온실 임대와 설비, 급수 시설, 산도 측정기까지 원예업자에 가까운 수준으로 계획을 세웠다. 

“가장 큰 문제는 프로젝트 비용을 마련하는 것이었죠. ‘내가 부담해도 되겠다’ 싶은 만큼을 제하고 텀블벅에 펀딩 금액을 올렸습니다. 그래도 상당히 큰 금액이더라고요. 지금은 목표 금액을 넘겼지만, 처음에는 솔직히 달성하지 못할 확률이 크다고 생각했습니다. 실험 결과의 요약본을 모두에게 공개하겠다는 공익적인 약속이 공감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연구는 수익과 연결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마니아들이 필요성을 공감해주어 진행할 수 있었다”고 말하는 김형기 씨의 말처럼 식물 마니아 한 명은 네이버에 #가드닝입문서 #과습증상 #분갈이 #화분관리 #몬스테라키우기 등 50여 가지의 키워드로 파워링크(광고) 등록해주기도 했다. 

펀딩에 참여한 후원자가 남긴 ‘세상에 없던 실험적인 프로젝트’라는 댓글에 걸맞게 마니아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파워풀한 콘텐츠가 올 한 해 온실에서 무럭무럭 자라날 계획이다. 텀블벅 펀딩은 종료되지만 책 제작이 완료될 2020년 11월 말까지는 김형기 씨의 블로그를 통해서도 신청받을 계획이라고 하니 관심 있는 이들은 참고해도 좋겠다.


미감 좋은 아트 디렉터가 되살린 추억의 지우개
‘Eraser 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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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만한 스튜디오 오이뮤. 지금은 잊힌 성냥이나 향, 민화 등을 되살려 생산하는 이 스튜디오의 SNS에 어느 날 문득 추억의 지우개가 등장했다. 고양이, 두꺼비, 소나무, 달토끼가 그려진 흰색 고무 지우개는 그야말로 키치(Kitsch)한, 추억 속의 모양새를 하고 있어 눈 밝은 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오이뮤가 디자인하고 화랑고무가 생산한 ‘꾸러기’ ‘골든 에이지’ 시리즈 지우개 탄생의 주역은 바로 전민선 실장이다. 쉬는 시간마다 지우개 따먹기 놀이를 즐기고, 팝콘 통만 한 철제 깡통 가득 지우개를 수집했던 그가 화방에서 발견한 지우개 꾸러미에서 예전의 기억을 소환해낸 것. 

“화방에서 다양한 모양의 지우개를 미니 사이즈로 만들어 묶음 포장한 ‘모두다 지우개’를 발견했어요. 흔한 지우개를 하나로 모아두는 것만으로도 매우 새로워 보였죠. 그러다가 다양했던 필통 속 지우개들의 행방이 궁금해 화랑고무에 연락을 시도했습니다. 그렇게 지우개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직접 화랑고무를 찾아가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과정에서 1950년대부터 화랑고무에서 약 70년간 생산했던 지우개를 발견했고, 이를 잘 정리해서 보존해야겠다고 생각해 지우개도감을 만드는 데 착수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총 4백53가지의 지우개를 모아 펴낸 ‘Eraser 453’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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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엮으면서 보니 각각의 지우개는 그 시기의 유행이나 사회적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더라고요. ‘맵시’ ‘새앙쥐’ 등 쓰임이 줄어든 단어가 적혀 있거나, 당시 유행하던 세탁기의 기종이 그림으로 인쇄돼 있기도 했고요. 이런 재미있는 지우개들을 모아 지난 해 봄에는 ‘지우개 전성시대展’을 열기도 했어요.” 

이 과정을 통해서 그는 과거의 지우개 그래픽을 복원했다. 그 당시 가장 많이 사용하던 전사 방식으로 인쇄한 골든 에이지 시리즈 지우개, 오이뮤의 디자이너들이 자유 주제로 디자인에 참여한 꾸러기 시리즈 지우개, 미술용 지우개 등을 직접 만들어냈다. 그리고 지금도 화랑고무의 제품을 새롭게 리뉴얼하는 중이다. “다른 나라에 비해 국내 지우개 안전 검사 기준이 매우 까다로워 안전성 측면에서도 뛰어나다”고 설명할 만큼 지우개에 대해 빠삭하게 아는 모습이 진짜배기 마니아다. 


빵요정이 만든 만능 치트키 육수팩
‘국민육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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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창에 ‘육수팩’이라는 단어를 치고 엔터를 누르면 1만3천여 건의 검색 결과가 나온다. 대기업 제품부터 유명 요리연구가의 이름을 단 제품, 지역 농협의 제품까지. 같은 듯 달라 보이는 제품 가운데 의외의 인물이 론칭한 육수팩이 관심을 끈다. 

음식에 관련된 콘텐츠를 기획, 기록하는 일을 하는 김혜준컴퍼니의 김혜준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온라인에서 닉네임 ‘빵요정’으로 유명한 그녀의 SNS에는 빵 덕후라면 눈이 번쩍 뜨일 만한 맛있는 빵과 케이크가 한아름이고, 내로라하는 셰프와의 협업도 끊임없이 이어진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그녀가 빵도 아닌 육수팩을 출시한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2017년 ‘멸치 육수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한식의 기본이 되는 육수에 대해 다양한 조리법과 혼합 비율을 파고들었어요. 전문 셰프가 만든 블렌딩 비율, 100% 국내산 천연 재료, 299℃의 고온 로스팅으로 멸치 육수의 맛을 끌어올리고 나니 누구나 쉽게 이 맛을 느낄 수 있도록 제품화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고요.” 

셰프의 레시피를 바탕으로 100% 국내산 재료에 중량까지 든든하게 맞추다 보니 원가가 높아졌지만, 제철에 나는 좋은 식재료를 사람들의 식탁에 올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이 김혜준 대표의 설명. 대신 유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직접 포장과 배송을 도맡는 열정을 발휘 중이다. 

“엄마들은 자신만의 육수 레시피를 가진 경우가 많죠. 그런데 딸이 구매한 ‘국민육수’를 맛본 어머님들이 딸에게 더 사달라고 하셨다는 후기를 접했을 때 제일 감동받아요. 최근에는 선물용을 비롯한 해외 주문 건이 늘어 놀라고 있어요.”


기획 정혜연 기자 디자인 김영화 사진제공 김혜준컴퍼니 루나파크 오이뮤 올린스튜디오 프로개




여성동아 2020년 2월 6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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