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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여성 인권 변론 20년 김재련 변호사 “완벽한 피해자란 없어요”

김현미 기자

2023. 03. 29

“도대체 무슨 피해를 입었다는 거야? 겉으로 봐서 멀쩡한데...”
“그런 일 있고 친구들과 클럽 가서 노는 게 정상이야?” “피해자 맞네. 그런데 저 사람은 이제 제대로 살 수 있겠어?” 성폭력 피해자를 보며 한 번이라도 이런 말을 아니 잠시라도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면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 변호사가 쓴 ‘완벽한 피해자’를 권한다.





지난해 말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22년 여성폭력통계’를 보면, 평생 성폭력 피해를 경험한 여성은 38.6%로 2.6명 중 1명꼴(2019년 기준). 강간, 강간미수, 성추행 같은 신체적 성폭력 피해를 1회 이상 경험한 사람도 5.1명 중 1명꼴이다. 2021년 한 해 동안 형사 입건된 성폭력 범죄 사건은 3만9509건. 그중 절반 이상(51.3%)이 강간·강제추행이었다. 신종 디지털 성폭력의 증가 속도도 심상치 않다. 전체 성폭력 범죄 사건 중 2020년 25%에서 2021년 33%로 비중이 크게 증가했다. 여기에 신고되지 않은 사건까지 포함한다면 ‘그날 하필 재수가 없었던 어떤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가족, 내 이웃, 내 동료도 언제든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김재련(51) 변호사는 지난 20년 동안 성폭력, 가정폭력, 성매매 피해자, 결혼이주여성, 아동학대 사건 1000여 건의 변론을 맡았고 그중 600여 건은 무료법률구조 활동이었다. 40대 연예 기획사 대표가 열다섯 살 여중생을 임신시켜 논란이 됐던 사건, 명문대 의대생들이 함께 여행 간 여자 동기를 성추행한 사건, 60대 여성이 병원에서 남자 간호조무사에게 성폭행을 당하고도 오히려 꽃뱀으로 몰려 투신자살한 사건(영화 ‘69세’로 만들어졌다) 등 사회적 이슈가 됐던 수많은 사건을 맡았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여비서 성추행 사건도 그중 하나였다. 하지만 2021년 국가인권위원회가 “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피해자에 대한 행위는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판정한 뒤에도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계속되고, 심지어 피해자의 법률대리인인 김 변호사를 향해 “노랑머리 변호사(김 변호사는 한동안 금발로 염색하고 다녔다)가 고소하라고 꼬셨다”는 식의 음해가 이어지는 것을 보면서 그는 20년간 쌓인 사건 기록들을 다시 꺼내들었다.

사흘이 멀다 하고 구타를 당하고 다음 날 새벽같이 일어나 남편에게 해장국을 끓여주는 아내, 중고등부 태권도 선수로 활동하던 시절 사범으로부터 성추행·성폭력을 당하고 성인이 된 후에도 트라우마에 시달리다 고소를 결심한 피해자들, 재혼한 남편이 의붓딸을 성폭행하는 것을 목격하고 이혼을 결심했지만 끝내 이혼 대신 남편을 두둔한 아내 그리고 이로 인해 무고죄 가해자로 법정에 서야 했던 딸, 상습 가정폭력범인 친아버지로부터 지속적으로 성폭행을 당해온 딸과 뻔뻔하게도 딸이 먼저 자신을 유혹했다고 주장한 아버지. 의뢰인들은 합리적 이성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연들을 품고 김 변호사에게 구조를 요청했다. 심지어 친오빠에게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가 부모님께 이 사실을 말하자 “집안 망신시키지 말고, 오빠 앞길 가로막지 말고 네가 집을 나가라”고 해서 집을 나왔다는 사연도 있었다.



“우리 사회에서 성폭력 피해자는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다. 가해자를 향해야 할 비난은 구부러진 화살처럼 피해자를 향한다. 가해자가 유죄 판결을 받았거나 말거나 아랑곳하지 않은 채 피해자가 가해자다. 성폭력 증거가 없으면 피해자는 ‘명확한 가해자’가 되고, 성폭력 증거가 명백하면 ‘합의도 해주지 않는 야박한 가해자’가 된다. 가해자가 자살하면 피해자는 ‘살인녀’가 되고, 가해자가 이혼하면 ‘가정 파탄범’이 되고, 가해자가 파면되면 ‘잘나가는 직장 상사 모가지 자른 사람’이 된다. 지독한 편견이다. 이 견고한 편견에 균열을 내고 싶다.”(‘완벽한 피해자’에서)

편견에 둘러싸인 성폭력 피해자들은 움츠러들고 입을 다문다. ‘완벽한 피해자’는 지난 20년간 그 숨겨진 목소리를 대변해온 김재련의 기록이다.

“집안 망신시키지 말고”

‘완벽한 피해자’라는 제목은 어떤 의미인가요.

살인사건이 발생했을 때 ‘정말 죽은 거 맞아?’라고 의심하지는 않잖아요. 눈으로 피해 결과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의심하지 않고 피해자와 그 가족에게 공감하게 되죠. 그러나 성폭력은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 눈으로는 도무지 확인할 수 없어요. 그래서 사건을 담당한 형사, 검사, 판사는 피해자를 의심해요. ‘이해가 안 되는데 왜 그 당시에는 이렇게 못 했어?’ ‘왜 그 후에는 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어?’ ‘피해를 입었다면서 왜 그 후 가해자가 초청하는 집들이 행사에 갔어?’라는 식으로 머릿속에서 생각하는 조건을 충족하지 않은 것에 대해 질문하고 추궁하고 의심하죠. 친아빠에게 성폭행을 당한 아이에게 ‘아빠가 그런 행동(성행위 시 콘돔을 사용)을 했다면 너무나 충격적인 일인데 그걸(정확한 시기) 기억하지 못하다니 납득이 안 되는데’라고도 하죠. 그건 우리 머릿속에 ‘피해자라면 이러이러한 행동이나 말을 할 것이다’라는 고정관념이 있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실제 피해자들은 그렇게 완벽하게 사고하고, 합리적으로 조치를 취하고, 이후 절대 의심받을 행동은 하지 않는 게 아니거든요. 저는 이런 견고한 편견에 균열을 내고 싶었어요. 완벽한 사람이 없듯이 완벽한 피해자는 없다는 의미를 담은 제목이죠.

‘피해자다움’이란 편견에 균열을 내고 싶다

‘피해자다움’을 요구하는 사회에 대한 일침이군요.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고 해서 당장 직장을 그만둘 수는 없잖아요. 그런데 가해자인 직장 상사가 집들이를 해요. 직장 동료들이 다 가해자 집에 가는데 ‘나’만 빠지면 주위에서 무슨 일이 있었냐고 눈치챌까 봐 어쩔 수 없이 가는 거죠.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고 해서 모든 일상을 포기해야 하는 것은 아닌데 사람들은 ‘어떻게 그럴 수 있어’라는 식으로 판단하죠. 성범죄 사건은 전체적인 맥락 속에서 들여다보고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침해되는 행위였는지, 그 과정에서 피해자가 거부 의사를 표현할 수 없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이후 가해자와 일상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지 등 피해자가 처한 특별한 사정을 고려하는 것이 성인지 감수성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맥락을 모르는 사람들에 의한 2차 가해도 적지 않죠.

그것은 ‘가해자 중심주의’와도 연결되는데, 피해자가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고 하면 사람들은 ‘왜 이제야… 무슨 의도가 있는 것 아냐?’라고 피해자를 의심하죠. 가해자는 신줏단지처럼 모셔놓고 집요하게 피해자만 추궁하고 흔들어대요. ‘정말 싫었으면 소리를 질렀어야지.’ ‘원치 않는 성관계였으면 신고를 했어야지.’ ‘옆방에 동료들이 있는데도 가만있었던 건 본인도 좋아서 그런 거 아냐?’ 그러나 원치 않는 성적 접촉이 있었을 때 피해자에게는 소리 지를 권리가 있지만 소리 질러야 할 의무는 없어요. 단둘이 있는 공간에서 소리 지르고 저항할 경우 가해자는 더 큰 폭력을 가할 수도 있죠. 이런 식으로 피해자가 매번 해명하고 증명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2차 가해가 이뤄지고 어느새 피해자가 싸워야 할 사람은 가해자 1명이 아니라 이런 편견을 가지고 있는 수많은 사람이 되는 거죠. 결국 지쳐버린 피해자는 그냥 나 하나 참고 말 것을 괜히 문제 제기를 했다며 자책하고 후회하게 됩니다. 직장 내 성희롱, 성추행에 대해 문제 제기를 했다가 동료들이나 사회의 이런 시선에 상처받은 피해자들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어요.

성폭력 피해를 드러낸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인데 공감과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거네요.

성폭력 사건으로 고소를 하고 기소가 되고 최종 판단이 나올 때까지 피해자는 몇 개의 산을 넘고 몇 개의 강을 건너야 해요. 그 과정에서 만신창이가 됩니다. 도마 위에 오른 생선 취급을 당하는 거죠. 비늘을 떼고 살을 바르고, 마지막엔 앙상한 뼈만 남게 되는 거죠. 그 험난한 과정을 거쳐 가해자에게 유죄 판결이 나와도 의심은 멈추지 않아요. ‘요즘 법원은 여자 말만 믿어줘’라는 식으로 진술의 가치를 폄하하고 피해자가 여전히 나쁜 의도를 가지고 가해자의 인생을 망쳤다는 듯 마녀 취급을 하죠. 직장 내 성폭력으로 가해자가 징계 혹은 형사처분을 받았음에도 여전히 피해자가 ‘잘나가는 김 부장 모가지 자른 사람’으로 낙인찍혀 괴로워하다가 결국 직장을 그만둔 사례에 대해 통계라도 내보면 좋겠어요. 저는 이런 일련의 과정이 굉장히 폭력적이라고 생각해요. 만약 우리 사회가 이런 편견을 거두고 2차 가해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했다면 피해자들이 덜 참고 좀 더 빨리 문제 제기를 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두려워하고 위축된 피해자들에게 어떤 말을 건네나요.

당신의 용기 있는 행동이 누군가 또 입을 수 있는 피해를 막아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목소리를 낸 것이고, 당신은 응원받고 지지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사실 피해자가 어렵게 용기를 내줌으로써 그 이득은 우리가 갖는 거거든요. 직장 내 성폭력이라면 가해자가 더 이상 직장에서 그런 행동을 할 수 없게 만들잖아요. ‘완벽한 피해자’를 쓰면서 과거 이런 경험이 있거나 현재 사건이 진행 중이거나 언젠가 이런 상황에 노출될 수도 있는 분들이 자책하지 말고 용기를 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좀 더 빨리 문제 제기를 하도록 도왔더라면

최근 논쟁이 되고 있는 비동의 간음죄 입법화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인가요.

성폭력 범죄의 보호법익은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입니다. 보호법익이란 어떤 범죄로부터 국가가 법적으로 보호해주려고 하는 개인의 권리 또는 사회의 가치를 말합니다. 판례는 ‘원하지 않는 사람으로부터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성적 자유를 침해당하지 않을 권리’를 보호법익으로 보고 있어요. 추행이든 강간이든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 성적 접촉인지가 관건이죠. 허락하에 만졌다면 죄가 되지 않지만, 허락 없이 만졌다면 범죄인 거죠. 비동의 간음죄가 논쟁이 되는 것은 동의 여부에 따라 성폭력·성추행 유무죄가 판가름 나기 때문인데, 동의한 것을 입증하지 못해 억울한 처벌을 받을까 봐 염려하는 사람이 꽤 많은 것 같습니다. 염려란 동의해놓고 피해 입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다는 전제에서 비롯된 것인데 과연 그럴까요. 실제 성폭력 사건에서 무고죄 비율이 다른 범죄의 무고죄 비율보다 높지 않아요. 전제부터 잘못된 매우 불쾌한 염려라고 생각합니다. 강간죄를 비동의 간음죄로 개정하는 것은 뒤처진 법 규정을 현실에 맞추는 지극히 당연한 과제라고 봅니다. 여전히 형법에 폭행, 협박을 강간의 성립 요건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 오히려 법에 의한 폭력이 아닐까요.

2년 동안(2013. 6. 2.∼2015. 7.) 여성가족부 권익증진국장으로 근무하면서 성폭력 피해자 지원 정책 전반을 정비하는 데에도 참여하셨죠.

그때 폭력 예방 동영상 세 편을 만든 게 기억에 남아요. 성폭력은 ‘허락’, 가정폭력은 ‘관심’, 성매매는 ‘공감’이라는 제목을 달았어요. 성적 접촉에서 ‘허락’이 없으면 바로 멈춰라, 그 이상은 성폭력이라는 의미죠. 아동학대의 80%가 가족 내에서 발생한다는 점에서 ‘남의 집 일에 개입하면 안 돼’라고 생각하지 말고 옆집 아이가 철 지난 옷을 입고 다니지는 않는지, 얼굴이나 손 등에 멍이 들지 않았는지 관심을 가져주면 폭력을 멈추게 할 수 있다는 뜻이죠.

성매매업소로 유입되는 가출 청소년이 70% 가까이 된다는 통계가 있어요. 대부분 가정폭력, 아동학대, 가난, 부모의 이혼 등으로 가출하거든요. 이들이 가출할 수밖에 없는 이유, 당장 생존을 위해 성매매를 하게 된 이유에 조금만 공감해줘도 이들이 성매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됩니다. 허락, 관심, 공감 세 단어는 지금도 우리 사회에 유효합니다.

#김재련변호사 #완벽한피해자 #비동의간음죄 #여성동아

사진 박해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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