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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star

프로 이직러 진기주 배우 예찬

글 이현준 기자

입력 2021.07.29 10:30:02

삼성 사원에서 기자, 기자에서 슈퍼모델. 진기주가 가진 독특한 이력은 양분이 돼 그를 배우로서 꽃피게 했다. 과거의 경험 덕에 현재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다는 진기주의 이야기. 
“다시 대학 졸업 무렵으로 돌아간다면 바로 연기를 할 거냐고요? 아뇨. 제가 다른 일을 해보지 않고 배우를 시작했다면 지금의 일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얼마나 소중한지 알 수 없었을 거예요.”

찰나의 망설임 없이 나오는 또렷한 목소리. 6월 25일 마주한 배우 진기주(32)에게선 과거에 대한 후회를 찾아볼 수 없었다. 마치 그때의 경험들이 지금의 정답을 찾게 해준 실마리가 되었다는 듯이 말이다. 이는 매 순간을 그저 흘려보내지 않고 자신 안에 차곡차곡 쌓아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확신이다.

진기주에겐 ‘외유내강’이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린다. 앳되고 순한 겉모습 안에 단단한 속을 지녔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마음 한편에 품고 살지만 차마 하지 못하는 ‘퇴사’를 두 번이나 결행했다. 중앙대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진기주는 졸업 후 삼성SDS에 공채 52기로 입사, 3년 만에 퇴사했다. 부러움을 살 만한 직장을 박차고 나온 이유는 연기를 하고 싶다는 열망 때문이었다. 그는 회사 생활을 하면서 짬이 날 때마다 연기학원을 알아보며 꿈을 키웠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회사를 나오긴 했지만 20대 중반으로 접어든 나이에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연기에 도전하는 일이 쉬울 리 없었다.

“연기를 하고 싶긴 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영역이라는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우선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자 마음먹었죠.”

진기주의 선택은 기자였다. 대학 때 신문방송학을 부전공으로 공부한 그는 G1 강원민방에 기자로 입사해 3개월간의 힘든 수습 기간을 마쳤다. 그러나 ‘이것이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게 맞나’ 하는 고민이 밀려왔다. 결국 다시 퇴사, ‘백수’가 됐다. 연기를 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만 가지고 있었던 진기주에게 내려진 동아줄은 2014년 개최된 제23회 슈퍼모델 선발 대회였다. 새벽에 언니와 TV를 보던 중 대회 광고를 접하게 된 것. 모델이 아니라 엔터테이너를 뽑는다는 광고 문구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삼성에 입사하고 나서야 처음으로 눈썹 화장을 시작한 진기주에겐 ‘멋쟁이’로 가득한 슈퍼모델 대회 역시 낯선 세계였다. 운동으로 체지방을 4kg 감량하고 머리를 빨갛게 물들이는 등 심사 위원의 눈에 들기 위해 노력했다. 진기주가 생애 처음 한 염색이었다. 이러한 노력 덕분일까, 그는 슈퍼모델 3위에 해당하는 올리비아로렌상을 수상하고 소속사를 얻으며 연예계에 발을 들였다. 본격적으로 연기를 배우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대회 입상 1년 만에 드라마 ‘두 번째 스무 살’로 데뷔한 후 ‘퐁당퐁당 LOVE’(2015)에 이어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2016)로 얼굴을 알리기 시작, 2018년 ‘미스티’에서 김남주(고혜란 역)에게도 밀리지 않는 욕망의 화신 한지원 역으로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에 주인공급으로 발돋움해 드라마 ‘이리 와 안아줘’(2018)와 ‘초면에 사랑합니다’(2019), ‘오! 삼광빌라!’(2020) 등에선 주연으로 활약했다. 오랜 기간 무명 생활을 해온 연예인이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대적으로 빠르게 배우로 자리매김한 셈. 송곳은 주머니에 있어도 티가 난다는 말이 있듯, 진기주의 영민함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연기 수업을 받을 때 선생님께선 늘 배역 안에 살아 있으라고 말하셨어요. 여러 번의 오디션과 방송 출연을 거치면서 그 말을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죠. 제가 활발히 활동을 이어온 건 그 말의 참뜻을 일찍 알아차렸기 때문 아닐까요? 하하.”

사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진기주의 웃음소리는 ‘히히히’에 가깝다. 특유의 앙증맞은 눈웃음이 더해지니 영락없는 소녀 같은 모습이 매력적이다. 하지만 이번 작품에선 소녀와는 거리가 먼 ‘센’ 역할을 맡았다. 진기주는 6월 30일 극장·티빙을 통해 동시 공개한 ‘미드나이트’에서 청각장애인 경미 역으로 분했다. 영화로는 첫 주연이다.

수어 상담사로 일하는 경미는 집으로 돌아가던 중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소정(김혜윤)을 도우려다 연쇄살인마 도식(위하준)의 새로운 목표물이 돼 쫓김을 당한다. 경미는 도식이 접근하는 소리도 들을 수 없고 위급한 상황에 처하지만 다른 피해자와 청각장애인 엄마를 지키기 위해 맞서 싸우는 강인한 인물이다. 진기주는 수어를 공부해 청각장애인을 능숙하게 연기하는 것은 물론 진통제를 먹으며 추격 신과 액션 신을 소화하는 등 몸을 사리지 않았다.

“실제의 저는 경미와 닮은 점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출연 배우들끼리 게임을 하던 중 위하준 씨가 저에게 ‘악바리’라고 하더라고요. 그런 점에선 닮은 것 같기도 해요. 하하.”



쓸모 없는 경험은 없다

진기주는 원래 스릴러 장르를 좋아하지 않았다. 때문에 ‘미드나이트’ 대본을 받았을 때 수락을 망설였지만 경미에 대한 애정이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경미를 연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위기의 순간에 나오는 번뜩이는 기지가 멋졌고 소리가 전혀 없는 경미의 세상이 영화로 구현되면 어떨까 궁금했어요.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머릿속에 영화가 펼쳐지는 기분이었거든요. 그래서 스릴러지만 한번 해보자 마음먹었죠.”

흔히 작품에서 장애인은 소심하고 수동적이며, 나약하게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점에서 경미는 차별화되는 인물이다. 진상 고객에게 기죽지 않고 단호히 대처하며, 귀가 들리지 않는다고 회식 자리에서 성희롱 발언을 일삼는 거래처 사람들에겐 수어로 욕을 안겨준다. 도식에게 생명의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도 말을 할 수 없어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데 번번이 실패하지만 살아남기를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이렇듯 영화에서 표현된 경미의 주체적인 모습을 구현하는 데엔 진기주의 시나리오 해석 능력과 연기를 향한 열정이 크게 기여했다.

“농인들의 가족 구성원 중에 청인이 있는 경우가 많아요. 이들은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청인을 겪었기에 사회에 나왔을 때 그들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 학습이 돼 있죠. 하지만 경미는 유일한 가족인 엄마도 농인이고 단둘이 오랫동안 살았어요. 집에선 수어로만 소통하고 밖에선 오롯이 혼자 모든 걸 헤쳐나가야 했죠. 저는 경미가 일반 학교를 다녔을 거라 상상했어요. 자신이 청인들에게 먼저 다가갔을 거라 생각했고요. 회사에서도 그랬을 거예요. 그러면서 적극적이고 강한 사람으로 성장했으리라 여겨졌어요.”

청각장애인 역할을 소화하기 위한 진기주의 해법은 ‘관찰’이었다. 농인에 대해 일반적으로 알려진 상식만으론 연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한 진기주는 수어 학원 선생님들을 한 명 한 명 관찰하며 연기 방법을 익혔다.

“관찰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수어 선생님들은 성격도, 소통 방식도 다르더라고요. 어떤 분은 소리를 전혀 내지 않고 수어만 하시고, 어떤 분은 소리를 내거나 수어를 하면서 가쁘게 호흡을 내쉬기도 했어요. 유튜버들도 참고했죠. 농인임에도 발음을 정확하게 내는 사람이 있더라고요. 젊은 농인들 사이에 쓰이는 비속어, 신조어도 익혔죠. 그걸 영화에서 쓸 수 있었고요.”

기자는 관찰력을 필요로 하는 직업이다. 진기주는 “기자로 활동했던 경험이 연기에 도움이 됐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이번 영화를 준비하며 관찰에 집중할 때 과거에 했던 경험들이 생각난다거나, 직접적인 도움을 얻고 있다고 의식하진 못했어요. 하지만 지금까지 해왔던 것들이 안에 차곡차곡 잘 쌓여 내가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은연중에 도움을 받는다고 믿고 있어요.”

이야기의 주제는 진기주의 이력으로 옮겨졌다. 진기주가 배우로 주목받았던 이유로 과거의 이력이 한몫을 했고, 무엇보다 진기주가 그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기주는 삼성과 방송사 입사, 슈퍼모델 입상 등 모든 ‘합격’의 순간이 기뻤지만 최고를 꼽으라면 단연 배우로서의 데뷔라고 말했다. 그렇기에 좀 더 일찍 데뷔했으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있을 법도 하련만 진기주는 그리 생각하진 않았다.

“배우 생활을 좀 더 일찍 하지 그랬냐는 말을 오디션 볼 때 많이 들었어요. 엄마는 그럴 거면 뭐 하러 밤새워가며 열심히 공부했냐고 말하기도 했죠. 하하. 하지만 그 당시엔 그게 제 삶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해요. 고지식한 면일 수도 있는데, 저는 학창 시절엔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설령 공부와 상관없는 일을 하게 된다고 해도요. 인내심을 길러주는 시간이거든요. 공부를 하고 싶어서 하는 사람은 드물 거예요. 하지만 꾹 참고 밤새워 시험공부도 해보고, 그러다보면 책임감도 길러지고요. 전 후회하지 않아요. 그때의 인내가 지금의 저를 만들어준 것 아닐까요?”

그렇다고 해서 진기주에게 어려움이 없었던 건 아니다. 늦게 입문한 연기자의 길, 낯설었던 연기의 영역은 그를 여러 번 무너지게 만들었다. 그 전까지 큰 실패를 겪어보지도 않았고, 다른 사람 앞에 나서는 데 전혀 주저함이 없었을 만큼 자존감이 높고 자기애가 강했던 진기주이기에 연기는 그에게 더 힘들게 다가왔다.

“어릴 때부터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걸 좋아했어요. 초중고 시절 늘 학급 반장을 맡았고, 학생회 참여는 필수였고요. 중학생 때는 학생회장도 했고,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는 교실을 돌아다니며 교탁을 점령하고는 가입을 촉구하기도 했죠. 하하. 회사에서 홍보 모델이나 사내 아나운서를 모집하면 지원했고요. 사내 뉴스 진행도 맡았죠. 하하. 그런데….”


헤매고 넘어지며 찾은 인생 최고의 직업

진기주는 생각에 잠겼다. 배우의 길을 선택한 후 힘들었던 순간이 머릿속에 스치는 듯했다. 잠시 침묵의 시간이 흐른 후 말을 이었다.

“학창 시절,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은 감정적으로 어려운 시간을 경험해보지 못한 것 같아요. 스스로에 대한 사랑만으로 가득했죠. 이 모든 것들이 사라진 건 배우의 길을 걷고 나서부터인데… 오디션을 보는 몇 달 동안 계속 탈락만 했어요. 시작도 늦었는데 속절없이 시간만 가니까 ‘이렇게 늙는구나’ 싶으면서 그동안 느껴보지 못한 불안감이 밀려왔어요. 오디션뿐 아니라 본격적으로 연기 활동을 하면서도 종종 무너지는 순간이 있었지만 자세한 건 비밀로 하고 싶어요. 하하.”

결국 배우의 길에 안착한 진기주. 그는 웃으면서 “이제 다른 일은 안 할 거예요”라고, 더 이상의 이직은 없으리라 장담했다. “그럼에도 만약 또 이직을 한다면 무엇을 할 것이냐” 묻자 진기주는 “저한테 왜 그러세요” 하며 웃으면서도 “설령 이직을 한다 해도 이 업계 근처에서 맴돌 거예요. 제작에 참여하지 않을까요?”라고 연기에 대한 애정을 보였다.

진기주는 비로소 자신이 원하는 일을 찾은 듯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진정 바라는 일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한다. 안다 해도 그것을 직업으로 삼지 못하고 현실과 타협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진기주는 안정적인 직장을 버리고 도전을 택해 스스로가 원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있다. 사람들이 그를 보며 용기를 얻는 까닭이다. 올 초 한 방송에 ‘프로 이직러’로 출연한 그의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진기주에게 “잘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 중 어느 것을 직업으로 선택해야 하는가” 물었다. 진기주의 대답은 이렇다.

“저는 좋아하는 일을 선택해놓고 다른 사람에겐 잘하는 일을 하라고 할 순 없겠죠? 하하. 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더라도 삶의 질이 너무 떨어진다면, 좋아하는 일을 하지 못하는 것보다 더 괴로울 수 있거든요. 금전적인 문제나 워라밸 등에 대한 기준이 높지 않고, 이런 점에서 완전히 만족하진 못하더라도 행복 충족이 될 거라는 확신이 있을 때만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 나아가고 있는 진기주. 성공적으로 커리어를 쌓고 있는 그이지만 아직 하고 싶은 연기가 많다.

“아직 안 해본 연기가 많아 하고 싶은 게 무궁무진해요. 액션도 하고 싶고, 멜로 영화의 주인공도 돼보고 싶고요. 원하는 역이 있냐고요? 하하하. 너무 어려운 질문인데요. ‘액션’이라고 할게요. 하하하. 영화 ‘니키타’의 니키타 같은 역할이 좋을 것 같아요.”

하고 싶은 게 많기 때문일까. 진기주는 스스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지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 과거 그가 한 인터뷰를 살펴보면 2015년 데뷔 땐 “잘 모르겠다. 순리대로, 닥치는 대로 연기하고 싶다” 했고, 2016년엔 “인기 많은 배우보단 캐릭터가 확실한 배우가 되고 싶다. 어떤 배역이 있을 때 ‘이건 진기주 거야’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배우”라고 했다. 2018년엔 “시청자들에게 자주 얼굴을 보일 수 있는 배우가 목표다”라고 했다. 매번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지 대답이 바뀌는 이유를 묻자 진기주는 멋쩍은 듯 웃었다.

“저도 진짜 잘 모르겠어서 그랬어요. 제가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지. 하하. 또 바뀔 수도 있지만 지금 드는 생각은… 매년 한 작품은 하고 있는 배우였으면 좋겠어요. 차기작을 검토 중인데, 아직 결정된 게 없거든요.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하고 싶어요. 지금은 물론 5년, 10년 나이가 들어서도 꾸준히, 매년 작품을 선보였음 좋겠어요. 전 계속 연기를 하고 싶거든요.”

돌고 돌아 안착한 길이기에 지금의 일을 더 사랑할 수 있다는 진기주. 그는 작품에서 ‘진기주’가 아니라 캐릭터 자체로 봐줄 때 가장 기쁘다고 했다. 그가 일에 대해 갖는 사랑만큼 사람들에게도 사랑받는 배우로 남길 기대해본다.

사진제공 티빙 CJ ENM



여성동아 2021년 8월 69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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