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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interview

18년차 암 전문의가 말하는 암, 삶, 그리고 죽음 김범석 서울대 혈액종양내과 교수

글 이현준 기자

입력 2021.01.06 15:22:30

암과 죽음. 살면서 결코 만나고 싶지 않은 단어들이지만 이를 피해갈 방법은 없다. 때문에 암을 어떻게 맞이하고, 슬기롭게 극복할 것인가, 혹은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란 숙제가 남는다. 18년째 암 환자들을 치료해 온 김범석 서울대 의대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암. 한 글자만으로 이토록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말이 또 있을까. 암은 1983년부터 37년간 우리나라 사람들의 사망 원인 부동의 1위다. 통계청의 ‘2019 사망원인통계 결과’에 따르면 2019년 사망자(29만5천1백10명)의 27.5%가 암으로 사망했다. 2위 심장 질환이 10.5%, 3위 폐렴이 7.9%인 걸 감안하면 압도적인 수치다. 

김범석 교수는 이러한 죽음의 병을 다루는 의사다. 18년차 ‘암 전문 의사’로서 현재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임상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2003년 서울대병원 내과에서 전공의 과정을 마친 뒤 동대병원 혈액종양내과에서 전임의 과정을 마쳤다. 또 미국임상암학회, 미국암학회, 유럽종양내과학회, 대한항암요법연구회, 대한종양내과학회 등 여러 학회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 교수는 자신의 의학적 지식 및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터득한 암에 대한 ‘앎’을 나누는데 주저함이 없다. 2007년부터 블로그를 통해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블로그 방문자는 1월 4일 기준 75만1천여 명에 달한다. 처음 블로그를 시작할 땐 인터넷에 암에 대한 잘못된 정보가 너무 많아 제대로 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단순히 의학 정보만 담겨있는 건 아니다. 그의 글에선 ‘삶’과 ‘죽음’이 묻어난다. 암으로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 죽음을 앞두고 결혼을 택한 환자, 항암 치료 말기에 자살을 택한 환자 등의 사례는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김 교수는 “수많은 죽음을 목도하며 환자의 삶이 사망과 함께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고 말한다. 그럴 때마다 그는 추모의 마음으로 펜을 들었고 이렇게 써내려간 글은 모여 책으로 엮였다. 그가 펴낸 책은 ‘항암치료란 무엇인가’, ‘암 나는 나 너는 너’, ‘암환자의 슬기로운 병원’ 등 기존의 저서에 1월 18일 출간하는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흐름출판)’까지 6권에 이른다. 서울대병원에서 만난 그에게 “참된 의사 같다”라는 말을 건네자 “그저 밥값을 한 것뿐”이라는 말과 멋쩍은 웃음이 돌아왔다.

암이란 무엇인가

18년차 종양내과 전문의로 암 환자를 돌보고 계십니다. 많은 과 중 종양내과를 선택하신 이유가 있나요. 

솔직히 저는 제가 의사가 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어요. 고등학교 때까진 공대에 가고 싶었습니다. 항공 우주 관련해 비행기를 만드는 엔지니어가 되는 게 꿈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서울대 공대(기계공학과)에 지원했는데 떨어졌지 뭐예요(웃음). 2지망이었던 동대 화학공학과에 진학하게 됐는데, 사실 별 고민 없이 썼던 과였기에 ‘전공 선택을 이렇게 생각 없이 해도 되나’ 싶었습니다. 이왕이면 사람들한테 도움을 줄 수 있으면서 내가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 과를 가리라 마음먹었고 답은 의대였죠. 의대 안에도 여러 과가 있는데, 암과 같은 어려운 병을 돌보는 과를 택하고 싶었어요. 고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께서 폐암으로 돌아가셨는데, 그 영향이 컸던 것 같아요. 의대 1학년 때부터 ‘나는 암을 치료하는 사람이 될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렇게 살고 있죠(웃음).

암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정확히 아는 사람은 드문 것 같습니다. 암은 무엇인가요. 

몸의 세포들이 비정상적으로 자라나는 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포는 늘 분열하는데, 늙은 세포는 죽고 새로운 세포로 바뀌어야 해요. 그런데 세포 분열 관련 유전자가 손상되면 세포가 죽지 않고 계속 자라나게 됩니다. 마치 여기저기 움직이며 나쁜 짓을 일삼는 ‘조직폭력배’와 같아 주변 세포를 침범해 나쁜 영향을 주게 되죠. 그래서 결국 생명을 잃게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늙는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암에 걸리지는 않습니다. 암에 걸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크게 유전적인 요인과 환경적인 요인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환경적인 요인이란 발암물질에 많이 노출돼 암에 걸릴 확률이 높아지는 걸 말합니다. 발암물질이라는 건 유전자 변형을 일으키는 물질을 말해요. 대표적으로 담배 속 발암물질을 예로 들 수 있는데, 흡연을 하게 되면 세포가 손상돼 유전자 변형이 일어나 암이 유발되는 겁니다. 그런데 사람마다 유전자를 복구하는 능력이 달라요. 체질적으로 유전자가 튼튼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유전적인 요인이죠.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담배를 하루에 몇 갑씩 피워도 암에 걸리지 않는 반면 누군가는 담배를 전혀 피우지 않아도 암에 걸리기도 하는 겁니다. 하지만 생활습관만 교정해도 상당부분의 암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생활습관 교정이라면. 

음주와 흡연은 적게 하고 적절히 운동하기, 주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기 등이죠. 사실 다 아는 건데 실천이 어려워요(웃음). 하루 안 지킨다고 티도 안 나고요. 하지만 이런 습관을 10년, 20년 꾸준히 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엄청난 차이가 납니다. 건강한 생활습관만 유지해도 암 발생률을 3분의 1이상 낮출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어요.

그렇다면 본인은 어떻게 건강관리를 하고 있으신지요. 

특별한 건 없습니다만 틈 날 때마다 운동하려 노력합니다. 유튜브를 틀어놓고 해도 되고 찾아보면 할 수 있는 게 많아요. 5분, 10분이라도 땀이 날 수 있게끔 스쾃, 팔굽혀펴기, 유산소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는데, 확실히 몸이 달라지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 여성들이 조심해야 할 암이 있을까요. 

남성들은 대개 흡연과 관련된 암에 많이 걸리는 반면 여성들은 여성 고유 호르몬에 의한 암이 많습니다. 소위 ‘여성암’이라고 하는 것들이죠. 자궁암, 난소암 등이 있지만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건 유방암입니다. 유방암의 발생률이 계속 늘고 있거든요. 평균 수명이 늘어난 게 가장 큰 원인입니다. 암은 기본적으로 오래 살다보면 언젠간 걸리는 병이기에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 암 발생률이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또 출산을 하지 않거나 늦게 하는 것, 폐경을 늦게 하는 등의 위험요소들이 있는데, 이는 모두 현대 여성들에게 해당되는 사항이죠. 미국의 경우 여성 7명 중 1명이 유방암에 걸립니다. 우리나라도 생활습관이 서구화 되다 보니 이를 따라가고 있는 듯해요. 조기에 발견하면 치료도 수월하고 수술 예후도 좋으니 평소 자가 검진을 꾸준히 하는 게 좋습니다.



암에 걸리면 어떻게 할까

그래도 암에 걸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기도 하고, 굉장히 막막한 심정이 들 것 같은데요. 

암이 무척 무서운 질병인 건 맞습니다. 하지만 꽤 흔한 질병이기도 해요. 우리가 평균 수명만큼 산다고 가정하면 암에 걸릴 확률은 3분의 1에 달해요. 저 역시 3분의 1의 확률로 예비 암환자인 셈이죠. 즉, 굉장히 흔한 질병이라는 걸 받아들여야 해요. 환자들이 암 판정을 받으면 ‘왜 나만 이런 병에 걸릴까’하며 괴로워하는데, ‘나만’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는 순간 마음이 편해지거든요. 또 ‘책망’을 해선 안 돼요. ‘남편이 담배를 피워서 내가 암에 걸린 것 아닌가’ 같은 거요. 괜히 가족이나 이웃이 미워지게 되죠. 암은 어느 원인 하나로 인해 걸리는 경우가 많지 않아요. 과거를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지금부터 어떻게 치료해나갈 지에 집중해야 합니다.

김 교수의 신간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엔 죽음의 순간을 앞두고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마지막을 보내는 인간 군상들이 담겨있다. 죽음이 임박한 순간에도 오랜만에 만난 동생에게 빌려준 돈을 갚으라며 세속적인 것에 집착하는 환자가 있는 반면 지금의 삶은 덤이라며 검진 때마다 되레 김 교수에게 요구르트를 선물할 만큼 긍정적인 환자도 있다.

암 판정을 받으면 환자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암을 초기에 발견하면 대개 수술을 통해 깔끔히 도려낼 수 있습니다. 이건 주로 외과에서 담당하죠. 그런데 암이 여기저기 전이된 상태에서 진단을 받아 수술이 어려운 상태가 있습니다. 이런 환자들이 종양내과에서 항암치료를 권유받는 거죠. 따라서 종양내과 특성상 상당히 암이 진행된 환자를 의뢰받게 됩니다. 대부분 완치 목적의 치료보단 생명 연장 목적의 치료를 받게 되죠. 그렇다보니 대부분의 환자는 판정 결과에 너무나 놀라고 마음을 추스르지 못하곤 합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현실을 받아들이고 순응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항암치료가 굉장히 힘들다고 알려져 있어요. 

항암치료도 여러 종류가 있어요. 크게 세 가지인데, 소위 ‘세포독성 항암(제)치료’라는 게 있고 표적항암제 치료, 면역항암제 치료가 있습니다. 이 중 세포독성 항암제가 가장 초창기의 것이죠. 이건 암세포‧정상세포를 가리지 않고 빨리 분열하는 세포를 죽여요. 대부분의 빨리 분열하는 세포들이 암세포예요. 그렇기에 암세포가 죽게 되는 거죠. 하지만 정상세포도 같이 죽게 되는데, 대표적인 게 모근세포입니다. 그래서 머리가 빠지게 되는 거죠. 또 장 점막세포도 있어요. 이 세포가 영향을 받으면 설사가 나고 입맛이 없어져 음식 섭취가 힘들어집니다. 그리고 항암제는 체내에 없는 물질이다 보니 몸이 독극물로 인식해 뇌에서 뱉어내라 명령이 내려오게 돼요. 그래서 구토를 하게 되는 거고요. 표적항암제나 면역항암제는 암세포만 골라 죽일 수 있어서 이런 부작용이 덜하죠.

더 좋은 항암제가 있는데 세포독성 항암치료를 해야 하는 이유가 있나요. 

암세포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독해져요. 항암치료에도 불구하고 살아남는 더 질긴 녀석들이 있거든요. 이 암세포들이 다른 곳으로 전이를 일으키고요. 암세포의 생존 욕망도 인간의 그것 못잖아요. 살아남으려고 악착같이 버티는 거죠. 암세포가 독해지는 만큼 강한 약을 쓸 수밖에 없을 때가 있습니다.


환자에게 시간을 선물하는 의사

김범석 교수의 저서엔 항암치료를 중단할지 말지 갈등하는 환자, 보호자와 김 교수의 모습이 종종 나온다. 고통이 가득하지만 그래도 살아갈 것인가, 얼마 남지 않은 삶이지만 고통 없이 살다 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김 교수는 가망 없는 항암치료로 남은 삶을 고통으로 채우는 게 과연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삶을 잘 마무리하기 위해선 죽음도 존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수님이 생각하는 존엄한 죽음이란 어떤 것인지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긴 합니다. 우선 신체적으로 고통이 없는 평안한 상태로 맞이하는 죽음입니다. 이를 도와주는 걸 ‘완화의료’라고 하죠. 두 번째는 사랑하는 가족에게 둘러싸여 맞이하는, 외롭지 않은 죽음입니다. 세 번째는 여한 없는 죽음입니다. “아, 이 정도면 충분히 잘 살았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홀가분한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항암치료와 완화 의료 사이에서 내적갈등이 일어나진 않나요. 

많죠. 어떤 치료를 선택해야 할지는 물론이고 윤리적인 갈등도 많이 일어나요. 그럴 땐 동료나 선배 의료진과 상의해요. “이게 정답이야!”라고 말할 순 없겠지만 비슷한 일을 겪었던 사람들이기에 도움이 돼요.

보호자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어려운 문제예요. 하지만 ‘긴 병에 효자 없다’라는 말이 있죠. 우리나라에서 보호자 노릇은 잘해야 본전이에요. ‘가족 중 누가 환자를 간병할 것인가’라는 문제부터 가족 간 갈등이 일어나요. 환자 대부분이 거동이 불편하기 때문에 대소변도 모두 받아 내야하죠. 이렇게 온 종일 간병하다 잠깐 한 눈이라도 팔았을 때 환자가 낙상이라도 하면? 모든 비난은 보호자에게 향해요. 이렇다보니 보호자들이 환자보다 먼저 지치기도 합니다. 보호자들이 우울증에 걸리는 경우가 많아요.

김범석 교수는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에서 보호자들이 환자의 항암치료에 최선을 다하려는 의지가 오히려 환자에게 더욱 비참한 죽음을 가져올 수 있음을 생생한 필체로 전달한다. ‘최선을 다하는 것이 최선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 그는 의사이면서 수필가이기도 하다. 공중보건의였던 청년시절, 1년간 소록도 병원에서 근무하며 한센병 환자들을 돌본 체험을 녹여낸 책 ‘천국의 하모니카’로 제3회 보령의사수필문학 대상을 수상했고 ‘에세이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했다.

글을 쓰는 능력이 뛰어나십니다. 학창시절부터 글 쓰는 걸 좋아하셨나요. 

문학소년 같은 거 전혀 아니었어요. 많이 쓰다 보니 는 것 아닐까요(웃음). 죽음을 앞둔 환자들을 보면 마음이 너무 괴로울 때가 있어요. 환자분들 마다 각자의 사연이 있는데, 사망하면서 이들의 삶도 함께 사라져버리는 것 같아서 안타까워요. 그럴 때마다 글을 쓰며 이분들을 기억하려 했어요. 저에겐 글을 쓰는 게 스스로의 마음을 치유하는 행위였던 것 같아요.

블로그를 통해 대가 없이 많은 정보를 나누고 계신데 이유가 있으신가요. 

거창한 뜻을 갖고 시작한 건 아니에요. 대형병원의 문제점 중 하나가 ‘3분 진료’예요. 환자는 많은데 시간은 한정돼 있으니 어쩔 수가 없거든요. 환자는 궁금한 게, 저는 설명할 게 많은데 시간은 없고. 블로그에 정보를 게시해 놓으면 환자들이 볼 수 있잖아요. 그걸 보고 방문하시면 제가 진료하기가 무척 편해요. 제 설명도 금방 이해하고요. 제가 그렇게 ‘참 의사’는 아니에요(웃음).

앞으로 어떤 의사가 되고 싶으신가요. 

정년이 약 20년 남았어요. 제가 하는 모든 일의 본질은 하나예요. 치료를 통해 환자들이 의미 있고 편안한 삶을 더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예컨대 1년간 암이 악화되지 않도록 한다면 환자에겐 1년의 시간이 더 주어지는 거죠. 저는 어쩌면 치료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시간을 더 주는 사람인지도 모르겠어요. 그렇게 주어진 시간을 환자가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게 제 보람이에요. 아, 한 가지가 더 있네요. 후학을 많이 키워내고 싶어요. 저도 언젠간 은퇴할 거고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누군가를 만들어 놓아야죠. 속상한 건, 종양내과가 3D과로 여겨져서 지원자가 적다는 거예요. 은퇴할 때까지 후학을 양성하면서 환자에게 의미 있는 시간을 선물할 수 있다면 제 밥값은 한 것 아닐까요(웃음).

사진 지호영 기자



여성동아 2021년 1월 68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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