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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interview

트로트 DNA로 행복 전하는 요요미 & 박시원

글 두경아

입력 2020.06.29 10:30:01

엄마 배속에서부터 아버지의 노래를 들으며 자란 딸은 대세 트로트 가수가 됐다. 딸은 아버지가 우상이지만, 아버지는 딸에 대해 “음악적인 면은 딸이 한 수 위”라고 칭찬한다. 노래 실력부터 웃는 모습, 두둑한 배짱까지 쏙 빼닮은 부녀를 만났다.
그야말로 신드롬이라고 불릴 만큼 트로트 열풍이 거세다. 그 어느 때보다 실력 좋고 매력 넘치는 젊은 트로트 가수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요즘, 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며 미소를 짓게 하는 가수가 있다. ‘트로트계의 아이유’ ‘리틀 혜은이’ ‘중통령(중년들의 대통령)’이라 불리는 요요미(26)가 그 주인공이다. 

요요미는 2018년 첫 싱글 타이틀 곡 ‘이 오빠 뭐야’로 데뷔한 후 각종 가요·예능 프로그램에서 종횡무진 활동하며 사랑받고 있다. 귀엽고 통통 튀는 매력과 요들송까지 섭렵한 개인기, 화려한 입담으로 JTBC ‘아는 형님’과 MBC every1 ‘비디오스타’와 SBS ‘런닝맨’ 등 출연하는 TV 프로그램마다 검색어 순위 1위를 기록할 정도다. 또 구독자가 26만 명에 달하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트로트는 물론 팝까지 다양한 장르의 커버송 영상을 꾸준히 업로드해 세대를 아울러 인기를 모으는 중이다. 지난해 혜은이 닮은꼴 콘셉트로 출연한 한 저축은행의 ‘저축가요’ 캠페인은 2019년 대한민국광고대상 오디오 부문 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지난 5월에는 ‘불후의 명곡-2020 가족특집’에 출연해 최종 우승을 거머쥐었다. 무명 가수인 아버지 박시원(53) 씨와 함께였다. 부녀는 조용필의 ‘나는 너 좋아’를 불렀는데, 놀라운 가창력과 아름다운 하모니에, 흐뭇한 웃음이 절로 나게 하는 무대 매너로 기립 박수를 이끌어냈다. 

박 씨는 1987년 KBS ‘신인가요제’에 출연해 데뷔한 34년 차 가수다. 청주 지역 라이브 카페에서 꾸준히 활동해온 베테랑으로, KBS ‘아침마당’의 ‘도전 꿈의 무대’ 코너에 딸과 함께 출연해 그간의 사연을 들려준 바 있다. 그런 그에게 ‘불후의 명곡’은 오랜 무명 생활의 설움을 보상받는 무대이기도 했다. 공연을 마친 후 그는 “딸과 무대에 설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며 감격하는 모습을 보였다.


요즘 두 분이 여러 TV 프로그램에 동반 출연하며 화제가 되고 있어요. 인기를 실감하나요. 

요요미(이하 요)
방송에 출연하면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고, 식당에 가도 사람들이 알아봐서 신기해요. 데뷔 초반에는 팬들이 제가 예능 프로그램에 나가는 걸 걱정했어요. 말투가 독특하니까 오해받을 수 있다고요. 헬륨 가스 먹은 목소리 같다는 말도 들었으니까요. 그래서 일부러 어른처럼 보이려 하고 똑똑한 척도 해봤는데 잘 안 되더라고요. 그런데 활동을 많이 하고 팬들이 늘어나면서 요즘은 저만의 독특한 느낌을 인정해주는 것 같아요. “특이하고 이상한데 뭔가 매력이 있는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웃음). 



박시원(이하 박) 지인들에게 전화가 많이 와요. 새벽부터 전화를 받은 적도있을 정도랍니다. 제가 운영하는 청주 라이브 카페에 일부러 찾아오는 팬들도 계시고요. 요요미를 보면서 무명 시절 34년을 보상받는 느낌이에요. 처음에는 딸로 인해 주목받는 것이 편치는 않았어요. 하지만 요요미가 제 딸이고, 방송을 하고 싶다고 해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편하게 받아들이기로 했죠. 저뿐 아니라 온 가족이 요요미 덕분에 바쁘게 지내고 있어요. 요요미 오빠는 친구들 만나면 동생 이야기만 한다고 하고, 군대에 있는 막내는 누나랑 아버지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고 해요. 

붕어빵 부녀로 주목받고 있는데, 서로를 닮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요. 

요요미와 저는 참 많이 닮았어요. 배짱이 두둑한 것은 물론 식성도 비슷하고요. 제 모토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감정을 잘 컨트롤하며 욕심을 부리지 말자예요. 그런 점에서도 딸이 저를 닮은 것 같아요. 

제가 가수를 할 수 있는 건 아버지의 DNA를 물려받은 덕분이에요. 요즘 아버지와 방송을 하면서 느낀 건데, 말씀을 재치 있게 잘하세요. 제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할 수 있는 것도 아버지의 재치를 닮아서일 거예요. 

함께 방송에 출연하거나 무대에 서면 든든할 것 같아요. 

제가 고정 게스트로 출연하고 있는 ‘정선희, 문천식의 지금은 라디오 시대’에 아버지와 함께 출연한 적이 있어요. 정선희 선배님이 “아버지랑 방송하니 요요미 입꼬리가 올라간다”고 하시더군요. 아무래도 아버지와 같이 있으면 아이 같은 면이 나오는 듯해요. 

방송은 딸이 선배라 요요미가 하는 것을 보고 배우고 있어요. 방송을 정말 잘하더라고요. 그런 모습을 보면 딸이 다 컸다고 느껴져요. 요즘은 오히려 딸이 저를 다독거려요. “아버지 힘내세요”라면서 저를 아이 다루듯 하죠(웃음). 

‘요요미’라는 이름이 참 특이해요. 

본명은 박연아인데, 소속사 대표님이 활동명으로 지어주셨어요. 계약을 하고 나서 얼굴을 보자마자 지은 거예요. 요요미는 ‘어여쁘고 아름답다’는 뜻이에요. 이름의 어감 때문에 일본인으로 오해받기도 하는데, 저는 충청북도 청주 출신의 한국인이랍니다. 

‘트로트계의 아이유’ ‘중통령’ 등 별명 부자인데 어떤 게 애착이 가나요. 

‘해피 바이러스’라는 수식어가 제일 좋아요. 예전에 우울증을 앓고 있던 팬에게 ‘제 유튜브를 통해 노래를 들으며 행복해졌고 우울증이 나았다’는 편지를 받은 적이 있어요. 사람들이 제 노래를 듣고 행복하게 느낄 때마다 저도 행복해져서 ‘해피 바이러스’라는 별명이 더 소중하게 느껴져요. 

요요미는 어릴 때부터 해맑았어요. 지금처럼 그야말로 해피 바이러스였죠. 

‘미스트롯’에 나갔지만 통편집됐다고 들었어요. 

큰 경험을 했다고 생각해요. 제가 속한 현역부 A팀에는 송가인·홍자 언니까지 쟁쟁한 분들이 많았어요. 현역부에서 제가 가장 어리고 신인이다 보니 긴장을 많이 했어요. 작가님과 2시간 동안 인터뷰하면서 잘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미스트롯’을 통해 가수로서의 꿈을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욕심을 버리니 무대가 달리 보이더라고요. 가수가 행복하게 노래해야 듣는 사람도 그 모습을 보고 행복한 생각이 들지 않겠어요.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됐고,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많구나,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배우는 계기가 됐답니다. 아마 그때 통편집되지 않았으면 지금처럼 많은 사랑을 받지 못했을 것 같아요. 

딸에게 처음부터 확신이 있었어요. 그래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떨어져도 실망스럽지 않았습니다. 요요미 역시 배포가 크다 보니 크게 실망하지 않더라고요. “미스트롯 안 됐어” 그러고는 끝이었어요. 

사실 가수 데뷔가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무명 기간이 5~6년 됐어요. 지금 소속사 이전에 다른 곳에서 세미 트로트로 데뷔를 준비했는데 방송에 나간 적이 없어요. 연습생 생활을 하다가 지금의 소속사를 만나 데뷔하게 됐죠. 데뷔가 좀 늦어져도 조급한 마음은 없었어요. 

저는 무명 가수로 활동하면서 힘들 때마다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래도 포기가 안 되더군요. 한 번도 가수의 꿈을 접어본 적은 없어요. 힘들 때마다 아이들이 자는 얼굴을 보고 마음을 다잡았죠. 

딸이 고생하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아프셨을 듯한데 어떤 조언을 해주셨나요. 

가수는 쉬운 직업이 아니에요. 아이가 가수가 되겠다고 했을 때 “본인이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상황에 따라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이 생기니 크게 실망하지 마라. 열심히 연습하다 보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말해줬어요. 

노래 지도도 따로 해주시나요. 

딸이 어렸을 때 6개월 정도 노래를 가르친 적이 있어요. 그때는 저한테 많이 혼나면서 배웠죠. 지금은 워낙 본인이 갖고 있는 목소리 자체가 좋으니 더 가르치지 않아요. 코치를 잘못 만나면 가수는 오히려 재능을 버릴 수 있거든요. 지금 상태에서는 내버려둬야 해요. 저는 요요미 목소리만 딱 들어도 어디가 불편한지 느낄 수 있어요. 

요요미는 유튜브로 커버 곡을 올리며 인기를 얻었잖아요. 

데뷔하고 나서 브이로그로 시작했어요. 그러다 제가 좋아하는 곡들을 커버하기 시작했는데, 혜은이 선생님의 ‘새벽비’와 ‘제3한강교’가 인기를 얻으면서 구독자가 늘기 시작했어요. 

가수 혜은이 닮은꼴로도 유명하더라고요. 

어릴 때부터 혜은이 선생님의 엄청난 팬이었어요. 여섯 살 때 차 안에서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다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듣게 됐어요. ‘제3한강교’였는데 어린 나이였지만 목소리가 너무 좋아서 충격을 받았지요. ‘이렇게 사랑스러운 느낌의 목소리가 있구나’ 하고 놀랐고 그때부터 혜은이 선생님을 바라보며 가수의 꿈을 키웠답니다. 아직 실제로 만나뵙지는 못했지만 제가 더 열심히 하면 기회가 있지 않을까요. 

혜은이 선배님을 닮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비교를 해봤어요(웃음). 그런데 제가 보기엔 다르더라고요. 외모와 목소리 닮은 구석이 몇 군데 있지만 창법은 달라요. 요요미 나름대로의 개성이 있으니까요. 

외모는 딱 걸 그룹 멤버인데, 어떻게 트로트 가수가 됐나요. 

제 외모를 보고 걸 그룹 출신으로 오해하는 분들이 많아요. 저는 어릴 때부터 트로트를 좋아했어요. 아버지가 트로트 가수고, 처음 들었던 장르가 트로트였으니까요. 아버지도 인정하시지만 제 목소리에는 일명 ‘뽕삘’이 있어요. 그걸 저도 알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트로트를 해야겠다고 생각해왔죠. 요즘에는 젊은 분들도 트로트에 열광하는 분위기라 힘이 나요. 


트로트 좋아하던 꼬마, 무명 가수 아버지의 꿈을 이루다

트로트를 좋아했던 어린이라니, 요요미의 어린 시절이 궁금해지네요. 

딸이 태어났을 때 못생겨서 아내가 걱정했어요(웃음). 요요미 오빠는 신생아 때 모델처럼 예뻤거든요. 그래도 제 눈에는 딸이 크면 예쁠 것 같더라고요. 요요미는 세 살 무렵부터 예뻐졌어요. 다른 부모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딸이 너무 예뻐서 매일 일찍 집에 들어가고, 항상 카메라를 갖고 다니며 사진을 찍어줬어요. 물론 두 아들 앞에서는 너무 티 내지 않았고요(웃음). 사춘기 시절에도 크게 반항한 적 없이 착하게 잘 컸어요. 제가 새벽에 퇴근하더라도 등교할 때 차로 태워주고, 학원 라이딩도 하면서 금이야 옥이야 키웠습니다. 

사업이 망해서 힘들었던 시절도 있었다고 들었어요. 

2000년도에 음악 사업을 하다가 부도가 나서 집이 경매로 넘어가고 5억 정도 빚이 생겼어요. 빚을 청산하니 수중에 딱 2백만원이 남더라고요. 그야말로 세 아이 데리고 단칸방에서 살아야 하는 상황이 된 거죠. 건물을 갖고 있던 지인에게 사정해 40평대 상가주택에 보증금 2백만원을 내고 들어가게 됐어요. 그 후 20년 동안 밤무대에서 열심히 노래를 불렀죠. 돌이켜보면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입장이니 가장으로서 최선을 다해 일했던 것 같아요. 요요미 엄마는 말이 없고 무던한 성격인데, 묵묵히 집안일을 하며 아이들 잘 키워줘 무척 고마워요. 특히 뜨개질 솜씨가 뛰어난데, 아이들에게 아내가 직접 만든 옷을 입혀 데리고 나가면 모두들 깜짝 놀라곤 했어요. 

가수를 반대하는 아버지를 노래방에서 설득했다고 들었어요. 

요요미가 중학교 2학년 때쯤 가수를 하겠다고 하더군요. 가수로 성공하는 건 너무 힘든 일이잖아요. 제가 어렵게 해온 직업을 딸아이가 이어서 한다고 생각하니 안쓰럽더라고요. 딸이 그런 어려움을 겪지 않았으면 해서 화를 내며 많이 혼냈어요. 그런데 요요미가 노래방에 가자고 하더니, 제 앞에서 처음 노래를 불렀어요. 노래를 들어보니 말려서 될 일이 아니더라고요. 그 자리에서 허락했죠. 

가수의 꿈은 어린 시절부터, 아니 엄마 배속에서부터 아버지가 노래하는 걸 들으면서 키워왔던 것 같아요. 가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머리로만 하다가 아버지와 노래방에 가게 됐어요. 아버지 앞에서 평소 자신 있던 심수봉 선생님의 ‘사랑밖에 난 몰라’와 혜은이 선생님의 ‘제3한강교’를 불렀지요. 그때가 가장 떨렸던 것 같아요. 아버지는 오래전부터 가수가 힘든 길이라고 말씀해오셔서 기대 안 했는데, 제 노래를 듣고는 흔쾌히 가수의 꿈을 허락하셨어요. 

당시 요요미 노래를 직접 들으니 어떠셨나요. 

노래를 들어보니 자질이 갖춰져 있었어요. 노래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감성이 너무 좋았거든요. 느낌이 괜찮고 목소리도 개성 있어 무조건 잘될 것 같았어요. 대신 중간에 그만둘 생각하지 않기로 다짐을 받았어요. 

아버지가 허락했을 때 마음이 어땠나요. 

엄청 좋았어요. 그동안 방에서 혼자 노래 부르며 거울 보고 표정을 연습하곤 했거든요. 그걸 오빠에게 들키면 “쟤 또 자아도취 생쇼한다”고 놀림을 당했고요. 아버지가 허락한 뒤부터는 그런 행동을 마음 놓고 할 수 있으니 좋았던 것 같아요. 

선후배 가수로서 서로를 평가한다면요. 

음악적인 면에서는 제 위에 있다고 봐요. 노래 부를 때의 느낌은 타고난 것 같아요. 특히 노래할 때 표정이 압권이에요. 

아버지는 트로트뿐 아니라 록 음악도 잘하세요. 제 목소리를 잘 캐치해주시는 선생님이기도 하고요. 노래뿐 아니라 방송 감각도 있으신 것 같아요. 사람들이 “정말 유쾌하다”면서 놀라거든요. 

앞으로의 행보도 기대되네요. 

요요미가 잘되고 있으니 더 이상 크게 바라는 건 없어요. 가수로서 주어지는 일을 열심히 하며 살고 싶어요. 라이브 카페도 계속할 텐데, 딸을 생각해서 예전보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도 조심하려고 해요. 더 늦기 전에 유튜브 1인 방송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때문에 행사가 다 취소됐어요. 가수 활동이나 예능 프로그램 출연은 지금처럼 계속할 거고, 앞으로 뮤지컬이나 연기에도 도전할 계획이에요. 해외 공연도 생각 중이고요. 앞으로 다방면에서 좋은 모습을 선보이기 위해 열심히 준비 중이랍니다.

사진 김도균 



여성동아 2020년 7월 6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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