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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life

3040, 거울 앞에 서다

EDITOR 이나래

입력 2019.12.10 16:00:02

나이의 앞자리 숫자가 바뀌면 ‘내 인생 이대로 괜찮은 걸까?’ 하는 반추가 시작된다. 아쉬움과 두려움 사이, 여성들은 무엇을 고민하고 있을까.
Edvard Munch, ‘Woman-Looking in the Mirror’.

Edvard Munch, ‘Woman-Looking in the Mirror’.

기대 수명 80세 시대, 마흔 살은 인생이라는 마라톤의 전반과 후반을 가르는 전환점처럼 여겨진다. 이때 목을 축이거나, 신발 끈을 조이거나, 페이스를 조절해야 후반을 제대로 뛸 수 있다. 그래서일까. 서른 중·후반부터 마흔에 이르기까지 나아갈 길에 대한 여성들의 고민이 깊어지는 추세다.


나는 누구일까? 질문을 던진 여자들

변화의 시작은 정확하지 않지만, 확실한 움직임이 포착된 시점에 ‘82년생 김지영’이 있다. 소설이 세상에 처음 나온 2016년에 일으켰던 사회적 파장은 상상을 초월했다. 20대를 ‘된장녀’로 보내고, 30대에 ‘맘충’이 된 여성들은 언니나 동생, 어쩌면 본인을 꼭 닮은 듯한 김지영에게 깊은 동질감을 느꼈다. 책은 1백만 부의 판매고를 올렸고 일본, 중국, 대만, 프랑스 등 세계 17개국에 수출되기도 했다. 10월 개봉한 영화 역시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누적 관객 3백50만 명을 넘어섰고, 관람객 평점 9.23(네이버 영화 기준)을 기록하며 단단한 공감대를 확인시켰다. 

30~40대 여성들은 김지영에게 동질감을 느낀다. 영화 속 지영이 그랬던 것처럼 3040 여성은 1인 다역을 맡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체로는 아내이자 엄마이고, 딸이자 며느리이다. 워킹맘이라면 과장이거나 차장이거나, 아니면 여사님이기도 하다. 

직함이 많다는 것은 할 일이 많다는 것과도 같다. 회사 일은 기본이고 아이의 숙제, 남편의 식사, 친정 부모님의 건강, 시댁의 경조사까지 모두 그녀의 일이 된다. 책임이 많으니 스트레스도 많지만 어느 하나 소홀히 하다가는 금세 눈총을 받기 일쑤다. 심지어 이토록 많은 일을 처리하다가 정작 본인은 가장 뒷자리로 밀려나는 경우도 잦다. 이런 상황인데 충족되지 않는 인정 욕구와 줄어들지 않는 업무 사이에서 우울감을 가지는 이들을 찾기란 어렵지 않다.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여성을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가정주부 전미선(41) 씨 역시 종종 공허한 감정을 느낀다고 말한다. 



“아이를 낳은 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육아에 전념했어요. 예쁜 아이와 묵묵히 일하는 남편을 보면서 행복을 느끼지만, 아이가 내 마음을 모를 때나 남편이 육아의 고단함을 알아주지 못할 때 서운한 마음이 들어요. 가끔은 다시 일을 하고 싶고, 나에게 아낌없이 투자할 수 있었던 시간이 그리워지기도 해요.”


마음은 청춘, 몸은 노화

영화 ‘82년생 김지영’ 스틸컷.

영화 ‘82년생 김지영’ 스틸컷.

이런 감정을 느끼던 엄마들은 아이가 좀 자라고 나면 다시 사회생활을 시도한다. 대구시에 사는 김현숙(43) 씨도 최근 시간제로 일할 수 있는 직장을 구하는 중이다. 

“아이 셋을 낳은 후 자연스레 어린이집 교사를 그만두고 전업주부로 살았어요. 막내를 어느 정도 키우고 나니 다시 일을 하고 싶어 여기저기 지원서를 내는 중이에요. 그런데 함께 일해야 하는 교사들이 저보다 한참 어리다 보니 부담스러운 눈치더라고요. 이해가 안 되진 않지만, 서운한 마음이 드는 것은 사실이죠.” 

게다가 최근에는 몸의 변화로 인해 느껴지는 불안감도 있다. 사회적 위치에 따른 불안감보다 삶과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문제일수록 고민의 무게가 무겁다. 김씨 역시 최근 신체적 변화를 감지하고 병원을 찾았다. 

“40대가 넘어가면서 생리불순이 나타났어요. 갱년기가 빨라지는 추세라기에 덜컥 겁이 나 병원을 찾았죠. 다행히 아직까지는 정상이라고 해서 안심했지만, 호르몬제를 먹어도 바로 호전되지는 않더라고요.” 

김현숙 씨처럼 40대 이후로 신체적 변화를 느끼는 이들을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40대에 접어드니 건강검진 유소견이 줄줄이 나와 충격을 받았다” “내년에 마흔인데 주변에서 자궁근종, 고지혈증, 고혈압, 지방간 같은 성인병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40대 초반인데 주 3일씩 운동해도 저질 체력이 해결되지 않는다” “40대 중반이 되니 한 해 한 해가 다르게 느껴진다” 등 비슷한 사례에 공감 댓글이 줄줄이 달린다. 노화를 직면한 이들은 우울감도 한 세트처럼 느끼기 일쑤다.


커리어우먼과 슈퍼맘 사이, 갈등은 계속

가정 대신 일을 선택한 이들에게도 고민은 있다. 직장인으로 바쁘게 살던 신서영(41) 씨는 늦은 나이에 임신을 고려하다가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고 하소연한다. 

“결혼도 늦었고 일 욕심도 많아 신혼을 딩크족(Double Income No Kids, 정상적인 가정생활을 영위하면서 의도적으로 자녀를 두지 않는 맞벌이 부부)으로 보냈어요. 어느 정도 생활이 안정돼 아이를 가지려니 어느새 노산으로 분류되더라고요. 병원에서 임신 가능성이 낮으니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해서 몸도 마음도 고단하네요.” 

임신에 성공해도 해피 엔딩만은 아니다. 일찍 아이를 낳은 친구들은 이미 학부형이 됐는데, 자신은 50대에야 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낼 수 있을 것 같아서다.
내년이면 40대가 시작되는 대기업 과장 윤지연(39) 씨는 또 다른 고민에 직면해 있다. 예상치 못한 둘째가 생긴 것이다. 

“아이는 하나만 낳기로 결혼 전부터 합의를 했던 터라 첫째 때는 최대한 육아휴직을 활용해 제 손으로 키웠어요. 그런데 복직을 하는 시점에 회사 내 조직 개편이 이루어졌어요. 분위기는 뒤숭숭했고, 전혀 다른 부서에 적응하는 일도 쉽지 않았죠. 다행히 이제는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덜컥 둘째가 생겼어요. 남편은 낳고 싶은 눈치인데, 저는 커리어를 포기할 생각이 없거든요. 임신, 출산, 육아와 커리어를 병행할 방법은 정말 없는 걸까요?” 

이 땅의 많은 여성들이 비슷한 고민을 안고 살아간다. 마음은 청춘인데 노화는 어느새 눈앞으로 다가왔고 학창 시절 가졌던 꿈과 녹록지 않은 현실 사이의 괴리는 크기만 하다. 엄마라서 힘든 사람도, 엄마가 되지 못해 힘든 사람도 각자의 사정은 있다. 정답은 없지만 최선은 찾아내야 하는 상황.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되찾고 누구보다 ‘나’를 위해 살아가기 위한 여성들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기획 정혜연 기자 디자인 김영화 사진제공 소더비 롯데엔터테인먼트




여성동아 2019년 12월 6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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