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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성희롱’ ‘가정폭력’ ‘맨스플레인’ 세상을 바꾼 단어들

성지연 에세이스트, 국문학 박사

2024. 01. 22

한 단어가 만들어져 널리 쓰이는 건 그 단어가 중요한 현상을 명확히 포착해내기 때문이다.

리베카 솔닛이 2014년 출간한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는 흥미로운 이야기로 시작된다. 어느 날 솔닛이 한 파티에 참석했다. 주최자는 돈이 많고 당당한 남자였다. 남자가 솔닛에게 어떤 책을 썼는지 물었다. 솔닛이 에드워드 마이브리지란 사진작가에 관한 책을 냈다고 하자 그는 마이브리지에 대한 아주 중요한 책이 나왔다며 설명을 시작했다. 남자는 솔닛의 친구로부터 솔닛이 바로 그 책의 저자라고 여러 번 들은 다음 잠깐 말을 잃었다. 그런데 남자는 잠시 후 다시 장광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솔닛은 이런 순간이 평소 은밀하고 모호했던 힘이 우리 눈에 들어오는 순간이라고 말한다. 남자는 자신의 눈앞에 있는 여자가 ‘뉴욕타임스 북리뷰’에 실린 책의 저자일 리 없다고 확신했다. 한편으론 정보의 격차에서 생기는 권력을 자신이 충분히 누릴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솔닛이 제기하는 문제는 간단하다. 남자는 왜 자신만만하게 여자에게 무언가를 설명해줄 자격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것이다. 물론 모든 남자가 그렇다는 건 아니다.

맨스플레인 글에 대한 맨스플레인

“남자들은 자꾸 나를, 그리고 다른 여자들을 가르치려 든다. 자기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든 모르든. 어떤 남자들은 그렇다.”

솔닛은 물론 남자만 그런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솔닛이 지적하는 건 경험상 아무것도 모르면서 자신감이 넘쳐 정면 대결을 일삼는 이들이 유독 남자 중에 많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젊은 여성에게 세상이 그들의 것이 아님을 암시함으로써 여성을 침묵으로 몰아넣는다는 것이다.

책에 실린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Man explain things to me)”라는 문장은 솔릿이 2008년에 썼다. 솔닛은 이 글을 쓰자마자 온라인에 게재했다. 이는 이전의 글과는 비교할 수 없이 빠르게 퍼졌다. 논란도 불러일으켰다. 솔닛이 받은 이메일에서 한 남자는 자신의 경우 그런 적이 없다고, 솔닛이 글을 쓰기 전 조사를 해야 했다고 충고했다. 그러고는 솔닛에게 열등의식이 있다고까지 지적했다. 결국은 솔닛에게 잘못이 있다는 말이었다.



솔닛의 글이 화제가 된 시점, ‘맨스플레인(mansplain)’이란 신조어가 쓰이기 시작했다. 이 단어는 2010년 ‘뉴욕타임스’ 올해의 단어로 뽑히고, 2014년 ‘옥스퍼드 영어 사전’ 온라인판 에도 실렸다. 한 단어가 만들어져 널리 쓰이는 건 그 단어가 중요한 현상을 명확히 포착해내기 때문이다. 맨스플레인은 남자들이 무턱대고 여자들에게 아는 척 설명하려 든다는 뜻을 가졌다.

솔닛의 지적처럼 맨스플레인이 여성에게 미치는 영향은 결코 적지 않다. 맨스플레인은 여성들이 발언하고 경청할 권리를 빼앗는다. 자유로운 한 인간이 될 공간을 닫아버린다. 맨스플레인에 내재된 이러한 남성과 여성 간 권력의 차이는 점잖지 않은 대화, 물리적 협박과 폭행, 세상의 조직 방식에서 여성을 침묵시키고 제거하기까지 한다.

여성의 격리가 폭력을 막는 배려인가

솔닛은 폭력에 인종도, 계급도, 종교도, 국적도 없지만 젠더는 있다고 말한다. 미국에서는 6분 12초마다 강간이 경찰에 신고되고, 여성 5명 중 1명은 살아가면서 강간당한다. 2012년 인도 뉴델리에서는 버스에 탄 젊은 여성 승객이 집단성폭행을 당한 후 사망했다. 미국에서도 집단성폭행 사건이 드물지 않게 일어나며, 우리나라에서도 이를 관찰할 수 있다.

한 걸음 물러서서 볼 때 폭력을 피해갈 수 있는 이는 없다. 남자도 폭력을 당할 수 있고 여자도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 폭행과 폭력적 죽음은 다 끔찍하다. 그런데 차이가 있다. 여성의 폭력은 심각한 부상이나 죽음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드물다. 미국의 경우 누구나 총기에 접근할 수 있지만 살인의 90%는 남성이 저지른다.

솔닛이 주장하려는 바는 분명하다. 폭력에서 남성과 여성 사이에는 차이가 존재하고, 남성이 여성보다 더 폭력적이라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솔닛에 따르면, 이러한 사실에 주목할 때 폭력의 기원과 대처법에 대한 이론이 훨씬 생산적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

폭력은 일단 자신에게 상대방을 통제할 권리가 있다는 전제하에서 시작한다. 남자는 지배하려는 욕망과 퇴짜 맞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품고 여자에게 접근한다. 두려움이 종종 분노로 바뀌면서 이러한 욕망과 분노는 폭력으로 나타난다. 헤어지고자 하는 여성이 친밀한 파트너였던 남자에 의해 살해당하는 건 폭력이 통제의 체계라는 걸 보여준다.

다시 말하면, 강간을 비롯한 폭력적 행동은 일부 남성이 일부 여성을 통제하려는 시도다. 주목할 건 일부 남성의 이러한 폭력이 일부 여성을 넘어 전체 여성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많은 여성은 남성의 폭력에 대한 두려움으로 자신을 제약하고, 나아가 그 두려움에 익숙해져서 나중에는 폭력적 상황을 인식하지 못하게 되고 만다.

폭력 외에도 여성을 배제해온 건 많다. 솔닛은 친구의 집안에 있던 오래된 족보에서 사라진 여자들을 주목한다. 거기에는 당장 본인은 없고, 가지가 뻗어갈수록 자매들, 고모들, 어머니들, 할머니들이 사라진다. 지난 수천 년 동안 여자들이 공적 영역에서, 계보에서, 법적 신분에서 사라져갔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솔닛이 젊었을 때 대학 캠퍼스에서 여학생들이 강간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대학 측은 모든 여학생에게 나다니지 말고 건물 안에 있으라고 일렀다. 그러자 누군가 해가 진 뒤 캠퍼스에서 남자들을 몰아내자는 포스터를 붙였다. 남자들은 한 남자의 폭력으로 “모든 남자는 사라지라”는 말을 들은 데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어딘가 시원한 이 처방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다. 반대로 여성은 폭력의 희생자가 될 가능성이 있으니 안전한 곳에 머무르라는, 늦은 시간에 돌아다니지 말라는 말 같은 데 익숙하다.

심지어 남자의 성적 욕구를 자극하지 않게 얌전한 옷차림을 하라는 말에도 익숙하다. 성폭력 피해자를 비난하는 발언에 항의하는 슬럿워크(slut walk) 운동은 이에 대한 항의였다. 2011년 캐나다 토론토의 한 경찰관이 대학에서 안전교육을 하면서 여학생들에게 슬럿(잡년)처럼 옷을 입지 말라고 했다. 젊은 여성들은 이에 대한 항의로 섹시한 옷을 입고 공공 공간을 행진했다. 이 슬럿워크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폭력의 원인을 피해자와 결부하지 말라는 항의였고, 폭력의 책임은 절대적으로 가해자에게 있다는 항의였으며, 여성을 어떤 식으로든 가둬두려는 시도에 대한 항의였다.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모든 여자는 지금도 그들을 사라지게 하려는 세력들과 싸우고 있는 셈이다. 여자의 이야기를 자기가 대신 말하려는 세력들과, 여자를 이야기와 족보와 인권 헌장과 법률에 기록하지 않으려는 세력들과. 자신의 이야기를 단어로든, 이미지로든 스스로 말할 수 있는 능력은 그 자체로 이미 승리다.”

‘다시 만난 그녀들’이라는 이 기획에 이렇게 어울리는 선언은 다시 없을 것이다. 여성들은 자신을 둘러싼 많은 장애물을 극복하고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왔다. 때로 그건 자신의 말을 찾는 것이고,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해내는 것이고, 여성으로서의 자신을 자각하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여성들과 연대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모습을 드러낸 많은 여성은 지금을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무한한 지지로 다가온다.

세상을 재정의한 단어들

솔닛이 책에서 다루는 작가 버지니아 울프와 여성운동가 베티 프리던은 이러한 지지의 선구자들이다. 먼저 울프는 ‘자기만의 방’에서 여성의 자유를 요구했다. 그것은 지리적 차원에서든, 상상력의 차원에서든 이 세상을 자유롭게 쏘다닐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었다. 프리던은 ‘여성의 신비’에서 미국 여성들이 인간으로서의 능력을 온전히 계발하지 못하도록 저지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름 없는 문제’로 명명했다. 이 이름 없는 문제가 그 어떤 질병보다 미국의 물리적·정신적 건강에 큰 해를 끼치고 있다고 프리던은 분석했다. 프리던이 불러낸 이 문제들에는 남성우월주의, 성차별, 여성혐오, 불평등, 억압이라는 이름이 붙기 시작했다.

맨스플레인에 앞서 여성해방의 역사에서 중요한 무기가 됐던 새로운 개념들 또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성희롱’은 미국에서 1970년대에 처음 고안됐고, 1980년대에 사법 체계에서 쓰이기 시작했다. 1986년 대법원으로부터 승인된 이 단어는, 1991년 의회 상원 대법관 청문회에서 대법관 후보 클래런스 톰스의 직원 애니타 힐이 그에게 지속적인 성희롱을 당했다고 증언함으로써 미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당시 청문회에 참여한 남성 질문자들은 음란한 말과 성적 서비스 요구가 왜 문제가 되는지 이해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런 일이 벌어진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했다고 한다.

성희롱 외에 다른 개념들도 많다. ‘가정폭력’은 ‘아내 구타’를 대체했다. 2012년부터 널리 쓰인 ‘강간 문화’는 또 다른 개념이다. 강간 문화는 미디어와 대중문화가 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규범화하고 용인하는 환경을 말한다. 이 용어는 강간을 이례적 사건으로 치부하는 시각을 벗어나 전체 문화에서 문제의 근원을 찾게 했다.

솔닛은 이 새로운 개념이나 용어들이 여성들이 매일 접하는 세상을 재정의하고 그 세상을 바꿔나갈 방법을 열어준다고 주장한다. 성희롱이란 개념은 적절한 사례다. 과거에는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던 말과 행위가 이제 성희롱이란 단어를 통해 여성이 느끼는 불쾌감과 굴욕감을 분명하게 드러낼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다 같이 노예가 될 수는 없다

여성해방운동의 다른 말은 페미니즘이다. 이 페미니즘을 둘러싸고 우리 사회에서도 적잖은 갈등이 있어왔다. 특히 온라인 공간에서 페미니즘에 강하게 반발하는 남성들과 거기에 다시 강하게 반발하는 여성들 간의 갈등은 ‘젠더 전쟁’을 방불케 한다. 이른바 ‘이대남’과 ‘이대녀’의 갈등이 대표 사례다. 솔닛은 말한다.

“여성해방운동은 남성의 힘과 권리를 침해하거나 빼앗으려는 의도를 가진 것처럼 묘사되곤 했다. 마치 한 번에 한 성만 자유와 힘을 누릴 수 있는 암울한 제로섬 게임인 것처럼. 그러나 우리는 함께 자유인이 되거나 함께 노예가 될 수 있을 뿐이다.”

솔닛이 전하려는 바는 젠더 갈등이 제로섬 게임은 아니라는 것이다. 남성의 권리와 여성의 권리를 제로섬 게임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현실적으로 맞지 않을뿐더러 규범적으로도 옳지 않다.

남성과 여성의 관계가 적대적이지만은 않은 사례들은 많다. 앞서 말한 2012년 인도 뉴델리 버스 집단성폭행 사건의 피해자는 조티 싱이었다. 이후 싱에게 가해진 폭력에 대한 항의가 전 세계적으로 일어났다. 솔닛은 온라인은 물론 뉴델리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오프라인에서 번졌던 집단행동에서 여성들과 함께 나선 남성들이 많았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이러한 사례는 과거에도 있었다. 1848년 뉴욕에서 최초의 여권 대회가 열렸을 때, 여권 선언서에 서명했던 100명 중 32명이 남성이었다. 남성과 여성의 관계를 적대적인 것으로만 파악하는 일은 온당하지 않다. 오늘날 여성해방운동에서 남성들은 점점 더 좋은 동맹의 파트너가 돼가고 있다는 게 솔닛의 판단이다. 나 역시 공감한다.

남성과 여성의 협력을 부각하는 이러한 생각에 남성과 여성의 갈등을 너무 피상적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반론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노동시장에서의 임금격차부터 일상생활에서의 가부장적 폭력에 이르기까지 남성과 여성 사이에 존재하는 구조적인 차별을 나 역시 모르지 않는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러한 현실을 해결하기 위한 여성과 남성 간의 적극적인 연대다.

딸의 안전한 귀가는 아버지가 바라는 일이다. 어머니가 직장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인격적 훼손을 당하지 않는 건 아들이 바라는 일이다. 아내가 임신이나 출산을 이유로 부당하게 해고되지 않는 건 남편이 바라는 일이다. 여성이 안전하지 않은, 여성의 인권을 보장하지 않는 사회는 결국 모두에게 불행을 가져다줄 뿐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다 같이 노예가 될 수는 없지 않은가. 다 같이 자유인이 되기 위한 실현 가능하고 지속 가능한 협력과 연대의 여성해방운동, 역사는 이 길로 나아갈 것이다.



성지연의 다시 만난 그녀들
1970년 출생. 연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 ‘어른의 인생 수업’이 있다.


#리베카솔닛 #남자들은자꾸나를가르치려든다 #다시만난그녀들 #여성동아

사진 게티이미지 사진제공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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