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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환골탈태 중인 오랜 부촌 동부이촌동 & 스즈란테이

김명희 기자

2023. 12. 11

한강맨션, 한강자이, 한가람아파트 등이 자리잡은 동부이촌동 전경.

한강맨션, 한강자이, 한가람아파트 등이 자리잡은 동부이촌동 전경.

서울 용산 동부이촌동은 미식의 동네다. 이촌로를 사이에 두고 양쪽에 자리 잡은 상가 식당 어딜 들어가도 기본 이상의 맛을 보장한다. 어쩌다 들르는 외지인 없이 거의 ‘동네 장사’로 승부를 봐야 하는 터라 실력 있는 가게만 살아남은 덕분이다. 동부이촌동은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가 이루어지고 일본 공무원, 기업 주재원들이 둥지를 틀면서 자연스레 ‘재팬타운’이 형성됐다. 식문화도 여기에 영향을 받아 스시, 돈가스, 덮밥, 아자카야 등 일식 요리를 내놓는 다양한 식당이 들어섰다. 이 가운데 로얄상가에 자리 잡은 스즈란테이는 일본인 오너 셰프 미타니 마사키 씨가 일본식 가정 요리를 표방하며 1998년 오픈한 곳이다. ‘스즈란테이’의 스즈란(鈴蘭·영란)은 미타니 셰프 부인의 이름(영란)에서 따온 것이라고.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인테리어며 분위기가 일본 요리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에 나오는 노포를 떠올리게 한다. 이곳은 일본 도시락을 기본으로 덮밥, 튀김, 소바 등 다양한 일본 가정식을 내놓는데 재료가 신선하고 자극적이지 않으며 깊은 맛이 특징이다. 덕분에 나이 지긋한 동부이촌동 토박이들이 영업 시작 시간에 맞춰 오픈런을 할 만큼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동부이촌동 토박이들이 즐겨 찾는 맛집 스즈란테이.

동부이촌동 토박이들이 즐겨 찾는 맛집 스즈란테이.

서울의 중앙에 위치하지만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은 동네 동부이촌동이 요즘 조용히 들썩이고 있다. 스즈란테이가 있는 이촌로를 중심으로 길 건너 한강 변에 자리한 한강맨션과 한강삼익아파트, 왕궁아파트는 재건축을, 이촌역 방향의 현대맨숀·건영한가람아파트·강촌아파트 등은 리모델링을 추진하고 있어 오래된 부촌의 환골탈태가 기대된다.

한강 모래사장에서 서울 대표 부촌으로!

동부이촌동 한강변의 왕궁아파트. 재건축을 추진 중이다.

동부이촌동 한강변의 왕궁아파트. 재건축을 추진 중이다.

남쪽으로는 한강, 북쪽으로는 남산을 두르고 있는 동부이촌동은 배산임수의 명당이지만 1960년대까지만 해도 한강 변 허허벌판 모래사장이었다. 여름엔 서울 시민들의 피서지였고, 선거철엔 유세장으로도 이용됐다. 1956년 제3대 대통령 선거 당시 신익희 후보의 유명한 선거 구호 ‘못 살겠다, 갈아보자’도 바로 이곳 유세 중에 탄생했다고. 당시 서울 인구의 5분의 1인 30만 명의 인파가 몰렸다고 하니 모래사장의 규모가 짐작되고도 남는다.

문제는 지대가 낮아 비만 오면 상습적으로 침수가 된다는 것이었다. 정부는 주택난과 침수 문제 해결을 위해 1968년부터 이촌동 모래사장에 제방을 쌓고 그 안쪽 땅을 메워 택지로 개발한다. 그렇게 조성된 땅에 들어선 것이 한강맨션과 외인아파트, 공무원아파트다. 김학렬 스마트튜브부동산조사연구소장은 “시멘트와 함께 건축 자재로 사용되는 모래는 강모래가 으뜸이고 바다 모래를 그다음으로 치는데, 이들 아파트는 이촌동 한강 변 백사장의 모래를 이용한 덕분에 특히 더 튼튼하다는 얘기도 있다”고 설명했다.

공무원아파트 자리에는 현재 건영한가람아파트(2036세대·1998)와 강촌아파트(1001세대·1998)가, 외인아파트 자리에는 한강자이(656세대·2003)가 들어섰다. 한강자이는 당시 LG건설(현 GS건설)이 드라마 ‘대장금’으로 인기를 끌던 배우 이영애를 모델로 내세워 고급화를 추구한 자이 브랜드를 처음 적용한 곳으로, 전용 92㎡ 46세대를 제외하고 전 세대를 177~309㎡로 구성한 럭셔리 아파트다. 당시 3.3㎡당 분양가는 800만~1400만 원이었으며 펜트하우스는 25억 원에 거래돼 비슷한 시기에 분양된 타워팰리스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김 소장은 “한강자이는 대형 평형 위주고 워낙 잘 지었기 때문에 한번 들어오면 계속 사는 분들이 많다. 그래서 분양 이후로 한 번도 시세가 빠진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50년간 동부이촌동 대장 아파트로 자리매김해온 한강맨션은 2017년 조합설립인가를 받은 데 이어 지난해 1월 GS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하고 11월 관리처분인가까지 받아 재건축이 가시화됐다. 계획대로라면 올 연말 이주를 시작하고 2024년 1월 착공해 3년 뒤 지상 35층 15개 동, 총 1441가구로 거듭난다. 그런데 서울시가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에서 재건축 35층 층고 제한을 폐지함에 따라 조합이 지난 4월 용산구청에 최고 층수를 68층으로 설계한 정비계획 변경안을 신청, 재건축 방향에 변화가 예상되고 있다.

1971년 준공된 한강맨션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전신인 대한주택공사가 중산층을 겨냥해 지은 아파트다. 당시는 국민소득이 빠르게 늘면서 고급 주택에 대한 니즈가 생겼고, 부동산 재테크로 재미를 보는 사람이 생겨나던 시기다. 한강맨션은 전용면적 88㎡부터 180㎡까지 다양한 세대로 구성되었으며 국내 아파트 가운데 처음으로 모델하우스도 선보였다. 동부이촌동엔 한강맨션, 현대맨숀 등 ‘맨션(mansion)’이란 이름이 붙은 아파트가 유난히 많다. 원래 맨션은 대저택이라는 뜻이지만 우리나라에선 상류층을 겨냥해 엘리베이터 등을 두고 호화스럽게 지은 아파트란 의미로 통용됐다. 김학렬 소장은 “한강맨션은 서울신용산초·용강중·중경고 등 학교를 짓고 상가와 파출소 등을 배치해 주거의 편의성을 높였다. 배우 강부자와 고은아, 가수 패티김 등 연예인들이 입주하면서 선망의 대상이 됐고, 준공 이후 이 일대를 중심으로 고가 아파트 붐이 일어 점보맨션·타워맨션 등은 프리미엄이 붙어 거래됐다”고 설명했다.

한강맨션은 이름처럼 한강을 끼고 있는 데다 4~5층 저층 단지라 용적률이 낮고 대지 지분이 높다. 한마디로 재건축 시 사업성이 좋다는 이야기다. 김학렬 소장은 “앞으로 재건축 시장에서 한강맨션이 단연 이슈가 될 것이다. 가구당 평균 대지 지분이 126.06㎡(약 38평)에 달한다. 사업성이 높기 때문에 추가 분담금 부담이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전용면적 101㎡ 아파트의 최근 실거래가는 39억 원(2023년 8월)이며, 현재는 36억~42억 원에 호가가 형성돼 있다.

한강맨션 바로 옆 한강삼익은 1979년 준공된 12층짜리 2개 동 252세대의 소규모 아파트다. 1동은 중경고등학교를 앞에 두고 한강이 정면으로 보이는 데다 전용면적 158㎡ 대평 평형 위주지만 2동은 중형 평형 위주에 한강 조망권도 1동에 비해 떨어진다. 한강삼익 역시 조합설립에 이어 사업시행인가까지 얻어 재건축 본궤도에 진입한 상태다.

재건축 대장주 한강맨션, 성공 사례 래미안첼리투스, 리모델링 중인 현대맨숀

1:1 재건축의 성공사례로 꼽히는 래미안 첼리투스(왼쪽)와 기부채납으로 조성된 한우리 공원.

1:1 재건축의 성공사례로 꼽히는 래미안 첼리투스(왼쪽)와 기부채납으로 조성된 한우리 공원.

1974년 준공된 렉스아파트가 모태인 래미안첼리투스는 재건축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힌다. 보통 재건축 아파트는 조합원분 외에 일반분양분을 추가해 건축비 부담을 낮추지만 래미안첼리투스는 과감하게 일반분양분을 포기하고 1:1 재건축으로 고급화 전략을 추구했다. 렉스아파트는 전 세대 전용면적 121㎡ 460가구였는데, 래미안첼리투스는 전용면적 124㎡ 460세대다. 이 과정에서 조합은 전체 부지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부분을 공원(한우리공원)으로 서울시에 기부 채납해 328.5%에 달하는 용적률을 승인받았다. 덕분에 한강 변 입지에 당시로서는 최고층인 56층 아파트를 건설할 수 있게 됐다. 라틴어로 ‘하늘로부터, 천국으로부터’라는 뜻을 담고 있는 아파트 이름 첼리투스(Cæ´lı˘tus)도 여기서 유래했다. 전 세대 한강 뷰 3개 동, 17층에 자리 잡은 커뮤니티센터를 연결하는 독특한 외관의 스카이브리지 덕분에 지금은 동부이촌동을 대표하는 랜드마크가 됐다. 김학렬 소장은 “재건축 당시 렉스아파트 가격이 10억 원 정도였고 추가 분담금이 5억6000만 원이었으니 원가가 16억 원 정도 되는데, 현재 시세는 40억~50억 원 선이다. 1:1 재건축이 신의 한 수였던 셈이다. 더군다나 기부 채납한 땅에 들어선 공원은 래미안첼리투스 주민들만의 프라이빗한 앞마당이 됐다. 기부 채납에서도 성공한 사례”라고 분석했다.

래미안첼리투스에서 이촌로를 건너 자리하고 있는 현대맨숀은 동부이촌동 첫 리모델링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1974년 8개 동 653세대로 준공된 이 아파트는 2025년 리모델링을 마치면 9개 동 750세대로 거듭난다. 비어 있는 용지에 수평 증축을 통해 27층짜리 건물을 신축하는 것. 리모델링 후 단지명엔 시공사 롯데건설의 하이엔드 브랜드 ‘르엘’이 적용된다. 김 소장은 “보통의 구축 아파트들은 층고가 낮아 리모델링을 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현대맨숀은 층고가 3m 가까이 되기 때문에 리모델링을 해도 시스템에어컨 등을 넣기에 부담이 없다”고 설명했다.

리모델링을 진행 중인 현대맨숀.

리모델링을 진행 중인 현대맨숀.

이 외에도 이촌코오롱(삼성물산), 강촌(현대건설), 건영한가람(GS건설·현대엔지니어링 컨소시엄), 우성(SK에코플랜트) 등도 시공사를 선정하고 리모델링을 추진 중이다. 이들 아파트는 재건축 연한이 되지 않았고 용적률도 높지 않다는 공통점이 있다. 김 소장은 “동부이촌동 단지들이 리모델링 수요 조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동의율이 굉장히 높았다. 리모델링은 기본적으로 입지가 좋은 부자 동네에서 동의율이 높다. 건축비를 일정 부분 부담하더라도 새 아파트에서 살고 싶은 니즈가 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미 리모델링을 진행 중인 현대맨숀 외에 다른 아파트들은 리모델링에 반대하는 주민 여론도 있어 실제 진행 여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동부이촌동 #스즈란테이 #여성동아

도움말 김학렬 스마트튜브 부동산조사연구소장 
사진 이상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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