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LIFE

동양의 나폴리, 냐짱 가을 여행기

문영훈 기자

2023. 11. 10

여기저기서 들리는 익숙한 언어, 어느 식당을 들어가도 건네지는 한글 메뉴판. 저렴한 가격만 아니었으면 여기가 해운대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동양의 나폴리’라 불리지만 물가는 지중해보다 5배 이상 저렴한 베트남 냐짱으로 떠났다. 

베트남 냐짱 시내 전경.

베트남 냐짱 시내 전경.

2023년 1월부터 7월까지 베트남을 다녀간 한국인은 190만 명으로 전체 외국인 관광객(680만 명) 중 단연 1위다. 베트남에는 호찌민, 하노이, 다낭 등 대부분 아는 유명 도시나 한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해 화제가 된 달랏도 있지만 최근 냐짱의 주목도가 커지고 있다. 지난해 현지 조사에서 냐짱 관광객 중 75%가 한국인이라는 발표도 나왔다.

냐짱은 1800년대 말 프랑스 지배 당시 휴양지로 개발된 도시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엔 러시아 관광객이 많이 방문하는 휴양지였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급격히 줄어 침체를 맞은 이 도시는 한국인의 방문으로 다시 성장하고 있다. 기자는 차가운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한 한글날 연휴, 다시 여름을 즐기러 냐짱 3박 5일 일정을 택했다. 냐짱 대신 나트랑(Nah Trang)이라는 이름이 더 익숙할 수도 있다. 나트랑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주둔하면서 부르기 시작한 이름으로, 현지인들은 냐짱으로 부른다.

인천국제공항에서 깜라인국제공항까지는 5시간이 소요된다. 비수기인 가을·겨울에 방문하면 30만 원 초반대로도 비행기 티켓을 구할 수 있다. 깜라인국제공항에 도착하니 습한 동남아시아의 공기가 물씬 느껴졌다.

비행기에 오르기 전 가장 걱정한 것은 날씨였다. 구글에 냐짱 날씨를 검색하자 여행의 모든 일정에 비구름 표시가 나타났다. 냐짱의 기후는 크게 9~12월 우기와 1~8월 건기로 나눠져 있다. 연간 강수량의 75%가 우기에 집중된다. 이 때문에 가을 베트남 여행을 피하는 이들도 많지만 비는 스콜(열대 지방에서 오후 시간대에 규칙적으로 내리는 소나기) 형태로 1시간 내에 그치며 습하고 더운 베트남의 공기를 식혀주기도 한다. 기자 역시 냐짱에서 보낸 나흘 중 이틀만 드문드문 비가 왔다. 또 비성수기인 우기엔 항공료와 숙소를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이용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다.

우기여도 괜찮아

베트남 냐짱 해변 풍경

베트남 냐짱 해변 풍경

깜라인국제공항은 냐짱 시내로부터 35km 정도 떨어져 있다. 택시로 40분가량 소요되는 거리다. 5만 동(2500원)에 이용할 수 있는 공항버스가 있지만 물가가 저렴한 냐짱을 방문한 여행객들은 택시를 타는 경우가 많다. 그랩이나 카카오T 앱을 통해 택시를 부를 수도 있고 직접 공항에서 택시 기사와 흥정할 수도 있다. 시내까지 45만 동(2만5000원) 정도면 적당한 가격이다.



여기서 베트남의 화폐단위 ‘동’을 짚고 넘어가자. 주기적으로 리디노미네이션 이야기가 나올 만큼 화폐단위가 큰 것이 원화지만 동은 더하다. 10월 20일 기준으로 100동은 5.53원. 베트남에서 얼마를 쓰는지를 계산할 때 0을 하나 빼고 절반으로 나눈다고 생각하면 쉽다. 그러니까 2만 동은 1000원, 10만 동은 5000원인 셈이다. 동은 주요 통화가 아니기에 한국에서 달러로 환전해 현지에서 다시 동으로 환전하는 방식이 가장 흔하다. 냐짱 시내에서는 카드를 사용하기 어려운 식당이나 편의시설이 많으므로 생각보다 넉넉하게 달러를 챙겨 가는 것이 좋다.

공항 환전소에서 하루 정도 쓸 금액을 환전한 후 그랩을 불러 예약해둔 호텔로 향했다. 해안선을 따라 북쪽으로 30여 분을 달리니 ‘냐짱 해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6km 가까이 이어진 긴 해안선에 청록빛 바다, 여기가 냐짱을 동양의 나폴리로 불리게 한 곳으로 베트남 왕실의 여름 휴가지로도 이용됐다.

냐짱 해변의 핑크 타워.

냐짱 해변의 핑크 타워.

호텔 대신 리조트를 택할 수도 있다. 냐짱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빈펄 리조트로 빈 그룹의 냐짱 지점이다. 섬 내에는 워터 파크, 골프장은 물론 4개의 리조트가 있어 가족과 함께 냐짱을 찾는 이들에게 안성맞춤이다. 그 외에도 냐짱 북동부에 위치한 식스센스 닌반베이, 비교적 가장 최근에 생긴 아나만다라 등이 있다. 리조트는 공항 근처나 냐짱 북부에 있는 경우가 많아 시내 관광을 하려면 이동 수단이 필요하지만 대부분의 리조트는 시내로 가는 셔틀버스를 제공한다. 호텔과 마찬가지로 5성급 고급 리조트 역시 2인 기준 20만 원이면 묵을 수 있다.

해변을 따라 줄지어 선 야자수를 제외하면 넓게 펼쳐진 백사장과 유명 호텔이 들어선 모습이 부산 해운대를 떠올리게 했다. 이곳에선 여행객들을 위한 서핑 클래스나 다이빙 클래스를 운영해 서퍼들은 바다를 제대로 만끽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해변 인근 호텔값은 4성급 기준 하루 10만 원, 5성급 20만 원 수준으로 한국과 비교해 절반도 안 되는 가격에 오션 뷰를 즐길 수 있다.

바다 보며 진하고 달콤한 커피 한 잔

냐짱 대부분의 식당에서 먹을 수 있는 모닝글로리 볶음(왼쪽). 베트남식 부침개 반쎄오.

냐짱 대부분의 식당에서 먹을 수 있는 모닝글로리 볶음(왼쪽). 베트남식 부침개 반쎄오.

결국 여행의 9할은 식도락이다. 유명 레스토랑이 아니더라도 베트남 음식은 입맛에 맞았다. 관광도시 냐짱의 대부분 식당에서는 한글 메뉴판도 함께 제공하니 베트남어를 번역기에 넣어보지 않고도 쉽게 주문할 수 있다. 대표 음식은 역시 쌀국수. 해안 도시 냐짱에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소고기 쌀국수 외에 생선으로 국물을 낸 쌀국수가 있으니 참고하자. 멸치국수와 생선탕을 섞은 듯한 생선 쌀국수 국물은 해장으로 적극 추천한다.

베트남어로 빵을 뜻하는 반미도 빼놓을 수 없다. 프랑스의 지배를 받을 당시 바게트에 고기와 채소를 넣어 만든 샌드위치다. 고수의 향이 첨가돼야 진정한 반미의 맛을 느낄 수 있으므로 고수에 익숙하지 않더라도 따로 달라고 해 함께 먹어보자. 기름에 마늘을 넣고 볶은 모닝글로리 볶음이나 느억맘 소스에 찍어 먹는 베트남 전통 요리, 반쎄오도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음식이다. 시내엔 해산물 레스토랑이 즐비하다. 저녁엔 사이공이나 타이거 맥주를 곁들여 해안 도시의 신선함을 즐길 수 있다.

카페 투어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베트남은 세계 2위의 커피 생산국으로 전체 생산량의 95%는 로부스타 원두다. 이는 아라비카 원두에 비해 쓰고 강렬한 맛을 자랑한다. 자국 커피에 대한 자부심이 강해 스타벅스가 자리 잡지 못한 대표적인 국가이기도 하다. 베트남은 고유의 주석 드리퍼 핀을 갖고 있는데, 핀에 내린 커피는 에스프레소처럼 적은 양에 진한 맛을 자랑한다. 여기에 부드러움을 더할 연유를 섞어 마시는 커피가 잘 알려진 ‘까페 스어 다’이다. 콩 커피, 하이랜드 커피 등 베트남에서 유명한 프랜차이즈도 많지만 동네 마실 가듯 아무 카페나 들어가도 커피의 맛이 수준급인 편이었다. 커피는 한 잔에 2만~3만 동(1000~1500원) 수준이므로 다양한 종류의 커피를 시켜 함께 맛보는 것도 추천한다.

냐짱은 휴양도시라 유적지가 많은 편은 아니지만 힌두교와 천주교, 불교를 상징하는 건축물이 제법 있다. 특히 뽀나가르사원과 냐짱대성당, 롱선사가 유명하다. 이 중 가장 오래된 뽀나가르사원은 8~13세기에 지어진 고대 참파 왕국의 유적지다. 참파 왕국은 힌두교와 불교가 섞인 특유의 문화를 꽃피우며 1300년간 베트남 중부를 지배했다. 뽀나가르는 10개의 팔을 가진 여신의 이름이다. 24m 높이의 좌불상이 자리한 롱선사는 냐짱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어 ‘냐짱의 몽마르트르 언덕’이라고도 불린다. 냐짱대성당은 고딕양식 건물로, 프랑스 지배의 영향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베트남은 동남아시아에서 치안이 좋은 국가로 알려져 있다. 관광객이 많은 냐짱 역시 혼자 밤거리를 돌아다녀도 괜찮을 만큼 안전한 편이다. 다만 냐짱 밤거리를 처음 걷는 이들은 오토바이가 거리를 점령한 모습에 놀랄 수 있다. 건널목을 건널 땐 신호등이 없다고 우선 겁먹지 말고 천천히 발을 내디뎌보자. 내 주변을 피해 요리조리 운전하는 베트남 바이커들의 실력을 확인할 수 있다.


#냐짱 #베트남 #여행 #여성동아

사진 게티이미지 사진제공 문영훈 기자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