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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메타버스 아바타 성희롱도 트라우마 안길 수 있어요”자주스쿨 김민영·이석원 대표

윤혜진 프리랜서 기자

2023. 08. 15

디지털 세상이 삶의 일부가 되면서 메타버스 성범죄가 늘고 있다. 가해자가 되는 것도 순식간이다. 아직도 성교육이 “아기는 어떻게 생겨요?”에 머물고 있다면 요즘 시대에 맞는 현실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여름방학을 맞아 로블록스, 제페토, 마인크래프트, 동물의 숲 등 메타버스 플랫폼 안에서 친구를 만나고 하루 종일 그 속에서 노는 아이들이 많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이 올봄 내놓은 메타버스 이용행태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연령대가 낮을수록 메타버스 서비스 이용률이 높게 나타났다. 대부분의 연령대가 한 자릿수를 기록한 반면 6~10세 미만은 20.1%, 만 10~19세는 19.1%로 월등히 높았다.

메타버스는 전 세계인을 연결해주고 그 안에서 다양한 경험을 해볼 수 있다. 문제는 가상 캐릭터로 소통하는 경우 성별, 연령을 감출 수 있어 성범죄가 일어나기 쉽다는 점이다. 성교육 전문 기관 자주스쿨의 김민영(39)·이석원(35) 대표가 얼마 전 ‘이제는 피할 수 없는 메타버스 성교육’을 출간한 이유도 여기 있다. 지난해 6월 ‘지금 해야 늦지 않는 메타버스 성교육’을 낸 데 이어 1년 만에 문제해결 방법과 대안을 제시하는 심화서를 내기까지 또 많은 디지털 성폭력이 발생했다.

상담학 박사이자 성교육·성치료 전문가로 14년간 다양한 사례를 접해온 김민영 대표는 “예전에 비해 아이가 위험에 빠졌다며 도움을 구하는 부모가 늘었고 변호사의 권유로 성교육을 받으러 오는 가해자 케이스도 생겨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사건이 발생하고 나서야 성교육의 중요성을 알게 되는 현실이 안타깝다. 교육을 통한 예방이 우선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혼날까 봐 감추는 최악의 상황 막으려면

메타버스 성교육이라는 단어 조합이 생소한데, 왜 이런 성교육이 필요한가요.

이석원(이하 이) ‘N번방’ 사건이 터지고 나서 국가에서 디지털 성범죄 법을 강화하겠다고 했지만 아직도 현실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는 양육자의 역할이 중요한데, 부모 대상 강연에 가서 “메타버스를 사용하고 있느냐”고 물으면 “들어본 적은 있는데 사용하진 않는다”는 답이 대부분이에요. 줌, 포켓몬GO 게임, 인스타그램 등도 다 ‘디지털 현실’이기 때문에 메타버스의 일종이라고 설명하면 그제야 깜짝 놀랍니다. 제페토나 로블록스도 어른이 모르니까 아이에게 안전한 사용법을 알려주지 못하는 거예요.

김민영(이하 김) 메타버스 속 내 아바타가 성희롱당하는 것도 아이에게는 엄청난 트라우마가 될 수 있어요. 오프라인으로 이어지는 범죄는 말할 것도 없고요. 어릴 때부터 스스로 경계를 세우고, 경계를 침범당했을 때 신고하거나 도움을 요청할 수 있도록 훈련받아야 해요.



메타버스 안에서 사진이나 영상을 보내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분명 아이가 이상하다고 느낄 텐데 왜 부모에게 바로 알리거나 거절하지 못하는 걸까요.

아동, 청소년 피해자들의 사례를 보면 온라인 그루밍이 필수적으로 들어가 있어요. 모르는 사람이 몸 사진을 보내달라 했을 때 보내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아이들이 물론 압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가족보다 더 나를 알아준다면 알면서도 당하는 거죠.

그리고 양육자가 평소 아이에게 “하지 말라”는 교육을 많이 하다 보니까 아이들이 어떤 위험에 노출됐을 때 ‘내가 엄마 아빠가 하지 말라는 걸 해서 이렇게 됐나 보다. 솔직하게 말하면 혼나겠지?’ 하는 생각을 하게 돼요. 적어도 아이가 혼날까 봐 말 못 하는 상황은 오면 안 되죠. 무조건 하지 말라고 막기보단 “잘못하면 위험해져.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네 잘못이 아니니까 빨리 얘기해줘야 해”라고 꼭 덧붙여주세요.

그러려면 아이에게 왜 플랫폼 이용 중 위험한 일이 발생할 수 있는지, 이럴 때 도움을 요청하라면서 피해 사례를 공유해야 하잖아요. 그것이 오히려 그쪽으로 관심을 끌게 만드는 것은 아닐지 걱정됩니다.

뉴스에 나오는 피해 사례를 필터링 없이 겁주듯이 얘기하는 건 좋지 않은 방법이에요. 아이의 눈에서 일어날 법한 상황을 제시하고 “너라면 어떻게 할 거야?” “신고하면 가만히 안 둔다고 하면 어떡할래?” 등 시뮬레이션을 반복해 아이가 스스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줘야 합니다.
부모가 모르는 세계에서는 아이도 다른 모습을 보일 수 있잖아요. 아이가 메타버스 안에서 잘못된 언행을 하거나 성 착취물을 주고받은 사실을 부모가 알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온라인 세계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단순한 장난으로 여기고 잘못된 일이라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현실에서라면 하지 못할 ‘패드립’도 쉽게 하고요. 다만 아동, 청소년으로 인식될 수 있는 성 착취물은 시청하거나 소지 또는 유포만 하더라도 처벌받을 수 있어요. 순식간에 가해자도 피해자도 될 수 있는 게 메타버스 세상이에요.

이때 부모가 알아야 하는 게, 가해자이든 피해자이든 지금 아이는 위험한 상황에 빠져 있다는 거예요. 가해자라도 자신의 인생을 파괴하는 행동을 한 것이고 또 다른 피해자를 낳을 수 있잖아요. 아이를 위험에서 구해내야 한다는 마음으로 감정을 배제하고 훈육하세요. 아이가 자신의 성적인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상대방을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지 않고 이용했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눠야 합니다. 그래야 ‘그럴 수도 있지’라고 안일하게 생각해 잘못을 반복하거나 입을 꾹 닫아버리는 상황을 막을 수 있어요.

가해자 입장이라면 피해자 부모를 접촉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게 우선 아닌지요.

성범죄 관련해서는 가해자가 피해자 측을 만날 수가 없어요. 피해자의 부모가 알게 되어 신고하고 경찰로부터 연락이 오기 전까지는 상대방 보호자도 못 만납니다. 부모 입장에서는 우리 아이가 다른 사람을 괴롭힌 것도 똑같이 가슴 무너지는 일이죠. 그래서 어릴 때부터 성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거예요. 성교육은 인간에 대한 존중을 가르치는 인권 교육이자 인성 교육이에요.

애초에 플랫폼 자체에서 언어폭력이나 음란 행위가 일차적으로 걸러진다면 좋을 텐데요.

전적으로 기업의 윤리 의식에 기대야 하는 부분이에요. 예를 들어 그루밍만 해도 아이템을 선물하면서 친해지는 거잖아요. 선물하기를 막으면 되지만 이윤을 포기하면서까지 아이들을 지킬 기업이 많지 않죠. 또 메타버스는 전 세계가 연결되어 있는 만큼 어떤 일이 있을 때 대처가 늦어질 수밖에 없어요. 아예 고객센터가 없거나 경찰 조사에 잘 협조하지 않는 플랫폼도 있어요. 그래서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남자, 여자가 아닌 ‘사람’에 대한 존중부터

어린이와 청소년 이용 비율이 높은 제페토(왼쪽)와 로블록스. 모르는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어린이와 청소년 이용 비율이 높은 제페토(왼쪽)와 로블록스. 모르는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늘 법은 기술의 발전보다 뒤처진다. 정부는 올 3월에서야 ‘선허용-후규제’를 기반으로 하는 ‘메타버스 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선제적 규제혁신 방안’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메타버스 내 성범죄 행위를 처벌할 제도를 도입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를 위해 법무부, 방송통신위원회, 여성가족부가 메타버스에서 발생하는 성범죄 유사 행위에 대한 입법을 논의하고 성 착취 상담 지원제도 등을 추진할 예정이다. 이제 발을 뗐으니 정교한 법망 아래서 보호받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걸린다. 결국 가상세계 속 익명으로 존재하는 개개인의 윤리 의식에 서로의 안전이 달려 있다. 이석원 대표는 “현실 세계와 마찬가지로 메타버스 내에서도 관계에서 출발해 태도로 수렴되는데, 좋은 관계와 태도를 맺는 윤리 의식을 가장 먼저 배울 수 있는 곳이 바로 가정”이라며 “가정에서 성에 대한 건강한 기준을 제시해줘야 한다. 그 첫걸음이 바로 대화”라고 강조한다.

아이와 대화가 힘들면 놀이식으로 성교육을 접근하는 것도 방법이다.

아이와 대화가 힘들면 놀이식으로 성교육을 접근하는 것도 방법이다.

가정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건 알지만, 성에 대한 대화를 어떻게 나눠야 할까요. 집에서 따로 교육 시간을 마련해야 하나요.

그렇지 않아요. 앉혀놓고 하는 교육은 학교와 성교육 전문 기관의 역할이에요. 가정에서는 평소 대화를 잘하면 됩니다. 예를 들어 아이와 마트나 극장에 가면 손잡고 다니는 청소년들이 눈에 띌 거예요. 그때 “너희 반에도 사귀는 아이들 있지? 너는 괜찮게 생각하는 친구 있어?”라고 슬쩍 물어보세요. 그러면 아이 얘기를 통해 곧 연애를 하겠구나 혹은 아직 이런 쪽에 관심이 없구나 파악이 되고 다음 대화를 이어갈 수 있죠.

대화를 통해 아이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수집하는 게 중요해요. 다만 아이가 부끄러워할 때는 굳이 성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려 하지 마세요. 어설프게 시도했다가는 역효과가 납니다. 몽정, 월경, 자위 등은 사생활이므로 꼬치꼬치 캐묻지 않도록 하고요.

그럼 이런 성 대화를 나눌 때는 동성 간이 더 효율적인가요.

아닙니다. 예를 들어 성인물을 본 아들에게 “우리 때도 다 봤어. 남자는 그러면서 크는 거야”라고 가볍게 넘기는 아빠들이 있어요. 지금은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아이가 본 성인물이 더 수위가 높고 자극적일 확률이 높아졌어요. 구시대적인 성교육은 가치관 정립에 혼란을 주고 오히려 아이의 시야를 넓히는 데 방해가 될 수 있어요.

사실 부모 세대는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아본 적이 거의 없잖아요. 올바른 정보를 주고 있는 건지 의심도 들고, 아이로부터 성에 대한 질문이라도 받으면 난감한 부모들이 많습니다.

성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는 것은 아이가 정상적인 발달 과정을 밟고 있다는 의미예요. 질문에 바로 답해주기 어렵다면 “나도 잘 모르겠으니 같이 공부해보자”라고 말하고 함께 서점을 가거나 도서관에서 나이에 맞는 책을 빌려 보세요. 이때 아이와 함께 유튜브에서 영상을 찾아보는 방법은 그다지 추천하지 않아요. 영상은 책보다 휘발성인 데다 성 관련 영상을 검색해 시청했다면 알고리즘이 연관 영상을 계속 추천해 정말 민망한 장면이 튀어나올 수 있어요.

성교육은 일회성 이벤트가 아닙니다. 유아기부터 고등학생 시기까지 아이의 발달 과정에 맞게 계속해줘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전달할 양이 방대합니다. 부모가 이걸 다 공부하고 가르치려 하니까 부담이 되는 거예요. 아이의 연령대에 맞는 내용 중 하나만 제대로 전달해도 괜찮아요. 일단 대화를 나누려는 시도부터 해보세요.

어린 자녀와는 그나마 수월하게 대화가 이어지나 사춘기 청소년 자녀와는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기도 쉽지 않잖아요. 성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는 게 가능할까요.

그래서 평소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두라고 강조하는 거예요. 유아 때는 안전 교육, 초등학교 때는 경계선과 2차 성징, 디지털 성폭력 예방에 대해 가르쳐주세요. 중학교 때부터는 훨씬 더 구체적으로 들어갑니다. 청소년기에 임신과 피임, 성병, 데이트 폭력 등을 알면 스무 살이 됐을 때 스스로 자기 인생에서 성을 어떻게 컨트롤하며 살아갈지 기준이 설 수 있어요.

왜 꼭 부모가 직접 부딪혀 다 해결하려고 하세요(웃음). 사춘기는 독립적인 인간으로 커가는 과정이잖아요. 성은 사생활의 영역이에요. 양육자가 사생활을 파고든다면 불편할 수밖에 없어요. 더군다나 그동안 신뢰나 친밀감이 쌓이지 않은 관계라면 더 갈등이 생기죠. 이럴 때는 무리하지 말고 전문가한테 맡겨보세요. 부모 말은 안 들어도 제3자가 전문성을 가지고 상담해주면 더 와 닿고 마음을 열 수 있어요.

#메타버스성교육 #자주스쿨 #여성동아

사진 이상윤 
사진출처 제페토·로블록스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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