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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비디오 에세이스트 ‘이연’ 85만 구독자를 사로잡은 법

문영훈 기자

2023. 06. 14

2019년 2월, 200명의 구독자가 일주일 만에 2만 명으로 늘어났다. 디자이너 ‘이연수’가 크리에이터 ‘이연’으로 발돋움한 순간이다.

유튜브 채널 ‘이연LEEYEON’을 보면 가만한 밤, 스탠드만 켜진 책상에 혼자 있는 누군가가 떠오른다. 고자극만 살아남는 유튜브 생태계에서 드문 감각이다. 모노톤의 소묘와 흰색 고딕 폰트 문구가 섬네일에 박혀 있다. “안녕하세요, 이연입니다”라는 짧은 소개와 함께 그림 그리는 손이 등장한다. 그리고 조곤조곤 이야기가 시작된다.

여느 유튜버처럼 여행 브이로그나 Q&A 영상도 간혹 보이지만 높은 조회수를 기록한 영상은 ‘좋은 습관을 만드는 2가지 방법’ ‘애매한 재능으로 성공하는 법’ 같은 자기 계발이거나 ‘누구나 쉽게 얼굴 그리는 방법’ 같은 그림에 관한 영상이다.

중학교 미술 선생님 같은 잔잔한 자기 고백에 85만 명의 구독자가 모였다. 본업은 유튜버이지만, 최근 세 번째 원고를 털어낸 작가이자 강연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5월 12일 찾은 서울 성북구 이연수(31) 씨의 작업실은 그의 채널처럼 단정했다. 그가 좋아하는 미국 재즈 피아니스트, 빌 에반스 소묘가 햇살이 들어오는 창문 옆에 걸려 있었다.

직장인과 크리에이터의 이중생활



조형예술과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이 씨는 졸업 후 곧장 디자이너로 취업했다. 그는 “지금 생각하면 좀 짠하게 그리고 고맙게 생각한다”며 “지금의 제가 되기 위해 애썼던 시간”이라고 말했다. 그는 2020년 7월 스타벅스 코리아를 퇴사하기 전 프리랜서 생활을 포함해 6년간 디자이너로 일했다.



처음 회사에 다닐 땐 “디자인이 나와 안 맞지만 일단 잘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요.

결국 내가 왜 디자인을 잘해야 할까에 대한 이유를 못 찾았어요. 사실 거창한 구실이 없더라도 재밌으면 되거든요. 일을 잘하는 주변 디자이너에게 많이 물어봤어요. 다들 재밌다고 하더라고요. “그럼 나는 이 길이 아니다”라고 판단했죠.

꼭 재밌어서 일을 하는 건 아닙니다.

사람마다 다를 것 같아요. “돈 버는 일인데 재미까지 있어야 해” 생각할 수도 있죠. 저는 그게 안 됐던 거고요. 처음엔 자신에게 불만도 있었어요. ‘왜 난 재미까지 찾으려고 할까.’

그래서 유튜브를 시작했나요.

평일에는 회사원으로 살고, 주말에는 온전히 유튜브에만 집중했어요. 공교롭게도 제 이름이 이연수인데, 유튜브 이름은 ‘이연’이고 당시 직장에서 닉네임은 ‘수’였어요. 직장인과 크리에이터의 이중생활이었죠.

주말에도 일하는 건데 피곤하지 않았나요.

유튜브는 스스로 할 만해야 지속할 수 있어요. 스스로에게 투자한다는 생각에 재밌었고,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어요. 내 시간에 내가 재밌게 하고 싶은 걸 하는 느낌이었죠. 그건 지금도 그래요.

자신의 작은 세계를 만들기 위해 2018년 11월 시작한 유튜브 채널 ‘이연’은 2019년 2월 변곡점을 맞는다. 구독자 댓글에 영감받아 만든 ‘겁내지 않고 그림 그리는 10가지 방법’ 영상이 소위 ‘떡상’한 것. 이 영상으로 일주일 만에 구독자가 200명에서 2만 명으로 늘었다.

그날을 기억하시나요.

‘삶이 바뀌는 징조’라고 생각했어요. 하루 종일 몸이 떨렸죠. 그리고 이걸 잘 이어가지 않으면 여기가 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유튜브 알고리즘에 올라타는 건 유튜브 업계에서는 등단 같은 거거든요. 이제 유튜브를 시작한 지 5년이 돼가니 그런 기회가 꽤 있다는 걸 알았어요. 조회수가 크게 올라갈 때도 있고 반대로 떨어질 때도 있죠. 낙하에 대한 각오도, 상승했을 때 너무 오만하지 않는 태도도 필요해요.

다음 영상을 만들 때 부담을 느꼈겠어요.

좀 신났어요. ‘꿈꾸던 것들을 할 수 있겠다! 사람들이 내 영상을 이렇게 좋아해주면 이런 것도 보여줄까? 저런 것도 보여줄까?’ 그런 걸 꺼내는 기분이었죠.

그림 영상으로 떡상했지만 자기 계발에 대한 이야기도 많습니다.

기본적으로 생각이 많은 편입니다. 그걸 질문 형태로 스마트폰 메모장에 적어둬요. 최근에는 자전거를 열심히 타고 있는데요. “자전거를 잘 타는 게 뭐지?” 써두는 거죠. 자전거를 잘 타는 일이 다른 분야에도 적용된다면 ‘뭐든지 잘하는 법’에 대한 영상을 만들 수도 있는 거죠. 스스로 느끼는 것에 착안해 소재를 발견해요.

‘자기 계발 콘텐츠에 알레르기가 있을 텐데’라고 생각할 찰나, 그는 바로 대답을 이었다.

“누군가는 ‘당신이 뭔데 그 이야기를 하냐’고 할 수 있지만, 굉장히 개인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에 흥미로운 이야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용기를 내서 이야기를 해보는 겁니다.“

매력적인 친구와 대화하는 느낌인 거네요.

제 영상을 보는 게 엄청 사적인 일 같다는 댓글을 좋아합니다.

트렌드를 쫓아가진 않습니다.

유행을 잘 따라가지 못하고 크게 관심도 없어요. 트렌드를 따라가려고 애쓰기보단 제 안에 있는 생각을 따라가 보는 거죠. 저는 그냥 저희 세대의 평범한 사람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제가 가진 생각을 다른 사람도 하지 않을까 기대해보는 거죠.

유튜브 구독자를 늘린 비법이 있나요.

콘텐츠가 재밌는 것도 중요하지만 구독하고 싶은 채널이 돼야 해요. 구독자가 나를 구독한다고 사람들에게 말할 때 뿌듯함을 느낄 수 있을까? 적어도 나를 좋아하는 게 창피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애플이나 무라카미 하루키, BTS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걸 뿌듯해하잖아요. 나도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런 존재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콘텐츠 만드는 일의 핵심이 뭘까요.

디자이너로 일할 때였는데, 선배 이야기가 기억에 남아요. 네가 만든 걸 지나가던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남을 설득할 수 있어야 제대로 된 디자인 도안이라고 했어요. 영상 만들 때 제목이나 내용을 ‘모든 나이대의 사람들이 흥미로워할까’ 고민해요.

유튜브 성공 전략은 타깃을 좁히는 것 아닌가요.

많은 분이 “내가 포함된 신이 좁다”는 이야기를 해요. 우리끼린 재밌지만 더 커지긴 어렵다는 거죠. 그래서 저는 오히려 범용성이 핵심이라고 봐요. 스스로 전략을 짠다고 그 전략이 항상 통하는 건 아니거든요.

회사와의 좋은 이별

이 씨는 2020년 12월 스타벅스 코리아에서 퇴사해 전업 크리에이터가 된다. 그런데 그의 퇴사는 처음이 아니다. 2018년 1월 처음 들어간 직장에서 퇴사 후 온전히 스스로 자기 삶을 컨트롤하는 시간을 보낸다. 유튜브 채널은 그해 말 만들어졌다.

퇴사를 꿈꾸는 직장인이 많습니다. 뭘 먼저 생각해야 하나요.

우선 회사와 좋은 이별을 해야 해요. 마지막 회사는 최종 학력처럼 남아요. 퇴사를 마음먹더라도 영혼 없는 눈빛으로 회사를 다닌다든가, 해이한 태도를 보인다든가 하는 식으로 근무하는 건 좋지 않습니다. 결국 일이라는 게 다 연결돼 있거든요. 또 금전적인 준비가 필요합니다. 첫 회사를 퇴사할 때 2000만 원을 모은 상태였죠. 1년 정도 수입이 없어도 살아갈 수 있는 돈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돈이 얼마가 될지는 개인의 여건에 따라 다르겠죠. 연비가 좋은 분들은 더 적은 금액으로도 살아갈 수 있을 거고요.

퇴사 후 유튜버, 강연자, 작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어떤 작업이 제일 마음에 드나요.

저는 글이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그 글을 토대로 말하기를 하고요. 그림은 글과 말하는 것에 속하지 않는 영역입니다. 다른 언어 같은 느낌이죠. 그래서 소홀하기가 쉬워요. 글로 쓰고 말하면 뭐든 내뱉었다는 생각이 들어 그림 그리는 일에 허기짐을 잘 못 느끼는 것 같아요. 그래서 더 챙겨줘야 해요.

‘그림 유튜버’로 알려졌지만 그가 만드는 콘텐츠는 글로부터 뻗어 나온다. 아이폰 메모장에 끄적인 질문은 벼려져 유튜브 영상이 되고, 힘들었던 시기에 쓴 일기는 ‘매일을 헤엄치는 법’이라는 그림 에세이로 각색됐다.

글을 잘 쓰고 싶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도 글을 잘 쓰진 않지만…. 흥미로운 글이 재밌는 것 같아요. 그러려면 솔직함이 필요하죠. 그게 먼저고요. 솔직하기만 하면 투박하게 느껴질 수 있는데, 거듭 써보면서 다듬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혼자만의 시간이 중요하다고요.

고독해야 자신을 발견하고 발굴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사치스러운 일이죠. 가족 때문에 힘들거나 학업에 치이면 고독을 생각할 겨를이 없죠. 그런 문제가 해결된 시점이라면 호사스러우면서도 가장 두려운 게 고독 같아요. 그 시간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나면 살 수 있는 인생의 종류가 다양해지는 것 같아요. 스스로 가설을 만들어봤어요. 영혼이 있다면 기본적으로 우리를 좀 깔보고 있는 거죠. 그런데 내가 날이 서 있으면 그 영혼이 와서 내게 뭔가를 말해준다고 생각했어요.

스스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라는 거네요.

우선 공간을 마련하는 게 중요해요. 저는 감사하게도 초등학교 때부터 제 방이 있었고요. 성인이 돼서는 자취방이 생겼죠. 그게 아니라면 도서관이나 카페, 나를 아무도 괴롭히지 않을 그런 공간이 있어야 해요. 누군가에겐 나의 고독이 무책임함이 될 수도 있어요. 가족과 함께 살거나, 연인이 있는 경우죠. 그럴 때는 그들에게 나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해주는 것도 중요한 일 같아요.

‘출근하지 않는 삶’은 어떤 모습인가요.

오전 7시에 일어나 7시 30분에서 8시 사이에 아침 식사를 해요. 베이글과 그릭 요거트를 먹습니다. 자전거를 타거나 요가를 해요. 그 후 샤워하고 나면 일이 잘되거든요. 점심을 먹고 오후 2시부터는 미팅같이 밖에서 해야 하는 일들을 해요. 그리고 반드시 오후 6시 전에 퇴근합니다. 저녁 먹고 나면 꼭 산책을 하려고 해요. 이후엔 어머니와 통화하거나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거나, 하고 싶은 일을 그때 하나 정도 합니다. 그리고 샤워하고 오후 11시에 잠자리에 누워서 밤 12시에 잠이 듭니다. 주말도 크게 다르지 않아요.

정돈된 삶을 사시네요.

방금 이야기한 건 인터뷰 버전이죠(웃음). 사실 식사 시간만 잘 지키면 됩니다. 나머지는 변주에 가깝죠.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까.

“표현 방식에 제약이 없는 사람을 꿈꿔요”

크리에이터 이연수(31) 씨가 만든 영상.

크리에이터 이연수(31) 씨가 만든 영상.

자극적인 걸 좋아하지 않나 봐요.

자극적인 것도 보지만 저는 무해한 걸 더 좋아해요. 넷플릭스에서도 주로 다큐멘터리를 찾아봅니다. 동물에 관한 다큐도 좋아하고, 정리에 대해서도 무한한 관심이 있어서 ‘곤도 마리에: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정리법도 좋아합니다.

회사가 유해했나요.

사실 진짜 유해하다고 생각하는 건 창작이에요. 창작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그 재료로 고독이 필요한데 고독은 사람을 닳게 만들죠. 무라카미 하루키가 달리기에 대해 쓴 에세이에서 한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글쓰기는 너무 유해하니까 운동을 많이 해야 한다고 했죠. 유해한 일을 할 정도의 체력과 근육이 받쳐줘야 한다고. 우리가 하는 일이 겉으로는 좋아 보여도 유해한 게 많은 것 같아요. 유해한 일을 하기 위해서 무해한 시간이 필요하죠.

앞으로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나요.

그림만 그리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를 생각하고 있어요. 그게 제게는 그림이지만, 많은 분이 자기 분야를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 고민하잖아요. 세상엔 지금 하고 있는 일 말고도 할 수 있는 게 많다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요. 어릴 때 적성검사를 하면 직업이 50개, 100개가 나왔어요. 저도 이것저것 말하고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 그 표현 방식에 제한이 없는 사람이 됐으면 하고요.

#이연 #유튜버 #파워우먼 #여성동아

사진 김도균 
사진출처 유튜브채널 ‘이연LEEYEON’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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