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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법 여야 핑퐁 게임…“결국 애먼 국민만 피해”

문영훈 기자

2023. 05. 25

5월 11일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한 보건의료 단체가 여의도에서 간호법 국회 통과 규탄 집회를 열었다. 다음 날, 대한간호협회 회원들은 간호법 제정을 촉구하고자 광화문광장에 모였다. 간호법을 두고 의료계가 갈등으로 치닫는 원인을 살펴봤다.

5월 12일 대한간호협회 소속 간호사들이 서울 세종대로에서 열린 국제간호사의 날 기념 집회에서 피켓을 들고 간호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5월 12일 대한간호협회 소속 간호사들이 서울 세종대로에서 열린 국제간호사의 날 기념 집회에서 피켓을 들고 간호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5월 16일 간호법 제정안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간호법 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지 19일만이다.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윤 대통령은 “간호법안은 유관 직역 간의 과도한 갈등을 부추긴다”고 말했다. 같은 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간호법 제정은 윤 대통령의 공약이었다”며 “공약 파기는 민주주의 파괴”라고 맞섰다. 전문가들은 “간호법이 정쟁의 중심에 서면서 애먼 국민들만 피해를 본다”고 평가한다.

18년 만에 국회 통과했지만…

대통령 거부권 행사 후 대한간호협회(간협)는 즉각 반발했다. 5월 17일 기자회견을 연 김연경 간협 회장은 “PA(진료 보조) 간호사 준법투쟁을 전개하고 19일 광화문에서 규탄대회를 개최하겠다”고 말했다. 의료 현장의 혼란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PA 간호사는 의료 현장에서 수술실 보조, 검체 의뢰, 응급실 지원 등의 업무를 수행하지만 의료법상 관련 규정이 없어 관행적으로 해당 업무를 수행해왔다. 의료계는 PA 간호사 인력을 1만여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주열 남서울대학교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준법투쟁이 가시화하면 PA 간호사 의존도가 높은 종합병원 수술실에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할 것”이라며 “해당 인력을 의사로 대체하는 것도 일주일 이상 지나면 피로가 누적돼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 거부권 행사에 간호계가 이토록 분노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간호법 제정은 간호계의 숙원 사업이었다. 현행 의료법이 다양해지는 간호사의 업무를 포괄하지 못하며, 열악한 근무 환경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유다. 2005년 17대 국회를 시작으로 관련 법안이 수차례 발의됐지만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간호사의 열악한 처우 개선에 대한 관심이 커지며 2021년 3월 간호법 제정 관련 3개의 법안이 발의됐다. 최종 본회의에 상정된 간호법 개정안에는 간호사 근무 환경 개선에 대한 국가 책무 등이 규정됐다. 간호법 제21조는 “국가 및 지방자치 단체는 근무 환경 및 처우 개선을 통한 간호사 등의 장기근속 유도 및 숙련 인력 확보를 위하여 필요한 정책을 수립하고 그에 따른 지원을 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4월 27일 간호법 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의사 단체를 비롯한 의료 단체가 크게 반발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를 비롯한 13개 보건의료 직역이 모인 보건복지의료연대(의료연대)는 연석회의를 갖고 연대 총파업을 선언했다.

이들이 간호법 제정에 반대하는 이유는 크게 2가지다. 간호법 제정안 제1조는 “모든 국민이 의료기관과 지역사회에서 수준 높은 간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간호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의료의 질 향상과 환자 안전을 도모하여 국민의 건강 증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의협은 ‘지역사회’라는 단어에 근거해 “간호사의 단독 개원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반발은 간호조무사와 요양보호사 측에서 나왔다. 간호사가 지역사회에서 독자적으로 일할 수 있게 되면 이들의 일자리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간호사 출신 최연숙 국민의힘 의원은 4월 27일 국회 간호법 찬성토론에서 “간호법에는 의료 기관 개설 조항이 없으며 간호법은 간호사 직역만을 위한 법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의료 단체의 주장에 반박했다. 최 의원 말대로 간호법 통과만으로 현행 의료 체계에 변화가 일어나기는 어렵다. 2022년 5월 간호법 관련 발의안 3개를 하나로 모으는 과정에서 간호사의 업무 범위는 현행 의료법과 동일하게 유지됐기 때문이다. 간호법 제정안 31개 조항 중 7개를 제외하고는 현행 의료법과 보건의료인력지원법 등에서 그대로 가져왔다.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는 “국회를 통과한 간호법이 그대로 시행되더라도 현장에서 달라질 것은 없다”고 말했다.

“애꿎은 국민만 피해”

5월 11일 대한의사협회, 대한간호조무사협회, 13개 보건의료 단체가 참여한 보건복지의료연대 회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간호법 국회 통과를 규탄하고 있다.

5월 11일 대한의사협회, 대한간호조무사협회, 13개 보건의료 단체가 참여한 보건복지의료연대 회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간호법 국회 통과를 규탄하고 있다.

간호법이 첨예한 갈등으로 번진 데는 기존 의료법이 원인으로 꼽힌다. 현행 의료법은 1951년 제정된 ‘국민의료법’에 근간한다. 이후 수십 차례 개정됐지만 각 직종에 대한 모호한 규정은 그대로다. 의료법은 간호사의 역할 중 하나를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의 지도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로 규정한다. 의사의 경우 “의료와 보건지도를 임무로 한다”가 전부다. 김 교수는 “의사는 의사 일을 하고, 간호사는 간호사 일을 한다는 식의 모호한 내용의 법 규정으로 인해 직역 간 분쟁이 발생할 때마다 이에 대한 해석을 두고 불필요한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의료법 해석을 두고 직역 간 치열한 법적 다툼이 계속되며 의료계 ‘밥그릇 싸움’으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1951년 제정된 의료법이 치료에서 돌봄·요양으로 확장된 의료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갈등 요소가 된 ‘지역사회’ 문구 역시 이와 같은 맥락에서 간호법 제정안에 반영됐다. 고령화시대가 되면서 병원 밖에서 간호와 돌봄이 필요한 환자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70여 년 전 만들어진 의료법 대신 의료·돌봄·요양을 모두 담을 수 있는 새로운 법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를 위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여야 간사와 전문가를 포함한 TF를 만들 것을 제안했다.

여야의 극한 대치 국면도 문제를 키웠다. 민주당은 간호법 제정안을 본회의로 직회부해 통과시켰다. 여기에 정부는 거부권 카드로 맞섰다. 2021년 3월 간호법 제정안이 발의된 뒤 2년 넘는 시간 동안 여야 협의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셈이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소장은 “결국 민주당과 정부, 여당이 적극적으로 협의에 나서지 않았다”며 “타협의 정치가 실종되며 그 피해를 애꿎은 환자와 국민이 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학교에서 아이들끼리 싸우는데 선생님이 내버려두는 것”이라며 “직역 갈등 문제를 방치해둔 정부 책임이 크다”고 말했다.

대통령 거부권 행사에 따라 국회로 돌려보내진 간호법은 재의결이나 수정 의결 혹은 폐기 절차를 밟게 된다. 수정 의결 가능성은 크지 않다. 배 소장은 “수정 의결이 바람직한 방법이겠지만 민주당 처지에선 간호사까지 등을 돌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재표결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민의힘은 간호사 처우 개선 등을 담은 별도 중재안을 만들겠다는 입장이지만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입장문을 통해 “간호법 재의결을 추진해 국민과 했던 약속을 끝까지 지켜낼 것”이라 말했다.

재표결 시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에 출석 의원 2/3 이상 찬성이 필요하다. 간호법에 반대한 여당 의원 수가 전체 의원의 1/3에 해당하는 100명을 넘기 때문에 재의결을 시도하더라도 통과는 어려운 상황이다. 윤 대통령이 첫 거부권을 행사한 양곡관리법은 4월 13일 재의결에 부쳐졌지만 부결됐다.

#간호법 #준법투쟁 #의료법 #거부권 #여성동아

사진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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