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 속 트렌치코트를 입고 서 있는 오드리 헵번의 모습은 명장면 중 하나로 기록된다.(좌) 영화 ‘카사블랑카’에서 냉소적인 로맨티스트를 열연하며 스타텀에 오른 험프리 보가트의 트렌치코트 패션. (우)
트렌치코트의 기원은 19세기 후반 영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본래는 제1차세계대전 당시 참호(trench)에서 싸우던 병사들을 위해 개발된 군용 외투로, 이름에서부터 그 기원을 엿볼 수 있다. 버버리의 창립자 토머스 버버리가 영국 국방부의 정식 승인을 받고 방한과 방수 기능을 갖춘 트렌치코트를 개량했다. 혁신적인 선지자였던 그는 트렌치코트의 상징적인 원단인 개버딘을 처음 개발해 혹독한 전장 환경에서도 병사들이 활동성과 내구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기능성을 바탕으로 한 구조적인 디테일 역시 지금의 트렌치코트를 만든 핵심 요소다. 보온을 위한 더블브레스트 여밈과 먼지가 소매에 스며드는 것을 방지하는 스트랩, 장갑이나 선글라스 따위를 거는 어깨 견장, 수류탄과 탄약 등을 부착하기 위한 금속 D링, 소총 견착을 위한 플랩 등등. 오늘날 하나의 스타일로 여겨지는 모든 디테일은 철저히 실용성을 염두에 두고 설계된 디자인이었다.

트렌치코트는 현시대의 기류인 젠더리스와 지속가능성, 다양성을 반영해 계속해서 진화 중이다. 2025 S/S 컬렉션에서도 그 흐름은 명확히 드러난다. 가장 눈에 띈 건 구조적인 실루엣이다. 사카이는 코트 소매를 과감히 잘라낸 비대칭 디자인으로 어딘가 불완전한 듯하면서도 분방한 매력을 드러냈다. 로크는 또 다른 결의 실험을 이어갔다. 어깨선을 무너뜨린 튜브톱 스타일의 트렌치코트를 우아하게 끌며 완전히 새로운 실루엣을 창조했다. 단출하게 잘라낸 짧은 기장의 트렌치코트도 줄을 이었다. 조르지오아르마니와 크리스찬디올은 무릎 아래를 휘감던 전통적인 실루엣 대신 허리선 위에서 뚝 끊긴 쇼트 트렌치코트로 젊고 쾌활한 분위기를 강조하고 나섰다. 에르메스 역시 트렌치코트의 디자인 요소들을 살린 중성적인 점프슈트 룩으로 젠더리스한 접근을 시도했다. 고정된 이미지를 벗고자 하는 디자이너들의 실험은 소재에서도 이어졌다. 실크, PVC, 가죽 등 다양한 소재로 트렌치코트의 한계를 시험하는 듯하다. 일례로 산드라웨일은 흐르듯 부드러운 실크 소재를 활용해 마치 바람에 흩날리듯 우아한 신을 연출했다. 컬러 역시 크림, 아이보리 등 뉴트럴 계열을 사용해 더욱 자연스러운 무드다. 레오퍼드 패턴을 가미한 PVC 트렌치코트로 런웨이를 호령한 드리스반노튼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한편 정통 클래식 디자인을 고집한 브랜드도 존재한다. 고전적인 스커트 슈트 룩에 오리지널 트렌치코트의 품격을 강조한 스텔라맥카트니와 알프레도마르티네즈가 대표적. 이들은 전통적인 더블브레스트 여밈과 어깨 견장, 고급스러운 베이지 컬러와 개버딘 소재로 타임리스한 우아함을 고수했다. 빅토리아베컴은 정통 트렌치코트의 실루엣은 살리되 작은 디테일에서 세련된 감각을 추가하며 클래식과 모던의 균형을 맞췄다.

#트렌치코트 #버버리 #여성동아
기획 강현숙 기자 사진 게티이미지 사진제공 산드라웨일 알프레도마르티네즈 크리스찬디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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