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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Interview

'남의연애' 임창혁PD "실제 커플 탄생… 사귀고 있다"

국내 최초 동성연애 리얼리티 기획

이경은 기자

2022. 08. 24

대한민국 예능에 새바람이 불었다. 커플 예능이라는 흔한 형식에 흔하지 않은 출연자를 더했다. 한 숙소에 8명의 남자만 모여 서로를 향한 마음을 알아간다. 웨이브(wavve) 오리지널 콘텐츠 ‘남의연애’를 기획한 임창혁 PD를 만나 프로그램 뒷이야기를 들었다. 

7월 15일 웨이브 오리지널 ‘남의연애’가 공개됐다. ‘남(男)의연애’는 말 그대로 남자가 출연하는 연애 예능이다. 종전의 ‘하트시그널’(채널A)이나 ‘솔로지옥’(넷플릭스)과 같이 처음 만난 성인들이 일정 기간 한 숙소에서 지내며 마음을 알아가는 과정을 다룬다. 언급된 프로그램의 화제성이 입증하듯 커플이 만들어지는 프로그램은 방송계가 사랑하는 흥행 보증수표다.

‘남의연애’는 기존 연애 예능 포맷을 그대로 차용하되, 이성애 중심에서 벗어나 남성 간의 사랑에 주목한다. MC도 없이 오직 남자 8명이 7박 8일 동안 숙소에서 함께 지낸다. 지금껏 방송에서 조명하지 않았던 성소수자들의 연애를 솔직하게 담아냈다는 점에서 관심이 뜨겁다. ‘남의연애’는 방영과 동시에 웨이브에서 신규 유료 가입자를 견인한 1위 프로그램(7월 16일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 예능의 진보’라는 평가가 나오지만 일부 반대 세력은 서울 여의도 웨이브 사옥 앞에서 시위를 열기도 했다. 누구나 떠올릴 법하지만 상상에서 그친, 머릿속 ‘뜨거운 감자’를 현실로 옮긴 이는 누굴까. ‘남의연애’를 비롯해 퀴어 커플의 삶을 조명한 예능인 ‘메리퀴어’ 등 웨이브 오리지널 콘텐츠를 기획하고 있는 임창혁(39) PD를 만났다.

프로그램 인기를 실감하시나요.

많은 관심을 체감해요. 댓글도 많지만 주변 지인들이 먼저 연락해와요. 친구들이 대부분 남자라 동성연애 콘텐츠에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의외였어요(웃음).

출연자들에 대한 관심도 높습니다.

응원한다는 댓글이 많아서 용기를 많이 얻었대요. 솔직히 첫 화 공개 전엔 악플 걱정을 많이 했어요. 근데 생각보다 특정 개인에 대한 악플은 없었어요. 정말 다행이죠. 출연자 부모님과 지인도 공격이나 실망보단 응원을 해줘서 굉장히 고무돼 있는 상태라고 해요.



국내에서는 파격적인 시도입니다. 프로그램을 기획하신 계기가 궁금해요.

동성연애 자체를 수면 위로 올리고 싶었어요. 지금은 그들이 숨어 있잖아요. 제가 인권운동가도 아니고, 프로그램 목적이 동성연애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는 데 있진 않아요.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게 아니라 함께 이야기할 계기를 마련하고 싶었어요.

올해 초 드라마 ‘시맨틱 에러’(왓챠) 흥행으로 BL(Boy’s Love)에 대한 수요를 확인했잖아요. 다만, 장르가 드라마이다 보니 꾸며진 느낌을 받았어요. 실제 성소수자의 삶이 언제나 아름답진 않으니까요. 편견과 차별도 분명 있잖아요. 그래서 예능에선 환상이 아닌 현실을 다루고 싶었어요. ‘메리퀴어’로 먼저 시작해서 성소수자들의 삶을 보여주고 이 프로그램을 통해 사랑의 보편성을 다룬 거예요.

실제 한국에 사는 성소수자의 삶은 결코 만만치 않다. 7월 16일 열린 ‘2022 서울퀴어퍼레이드’ 허가가 두 달 가까이 미뤄진 것도 일례다. 서울시와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의 갈등은 2019년부터 해마다 반복되고 있다. 일상 속에서도 성소수자는 쉽게 벽에 부딪힌다. 이성애자 커플처럼 밖에서 손을 잡고 다니는 일조차 이들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임 PD가 기획한 ‘메리퀴어’는 게이, 레즈비언, 트랜스젠더 등 퀴어 커플이 겪는 일상 속 차별을 다뤘다. 성별 정정부터 혼인 신고까지, 쉬운 일이 없다.

“사랑 빠지는 모습, 누구나 비슷해”

‘남의연애’ 출연자 섭외에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나요.

문제가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입주자 선발부터 굉장히 어려웠어요. 동성애자가 사회적으로 차별받는 위치에 놓여 있으니 대부분 처음엔 (제작진에게) 선뜻 확답을 못 했어요. 만남을 이어가고 프로그램 취지를 설명하니까 마음을 연 거죠. 또, 이미 대중에게 알려진 사람보단 생업이 있는 일반인 위주로 출연진을 구성하려다 보니 더 어려웠던 것 같아요. MC 섭외도 쉽지 않아 ‘남의연애’에선 MC를 아예 뺐고요.

MC가 상황을 설명하는 예능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신선했어요.

뒷걸음질치다 얻어걸렸네요(웃음). 가끔 이럴 때가 있어요. 프로그램 안에서 그들의 연애를 진정성 있는 모습으로 비추고 싶었는데 MC가 없어 가능했던 것 같아요. 시청자분들도 (방송 중간에) 몰입을 깨는 요소가 없어 더 좋다는 의견을 주셨어요.

처음 동성연애 프로그램을 제안했을 때 회사의 반응이 궁금합니다.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우려는 나왔어요. 동성애 반대 단체와 갈등이 예고됐으니까요. 실제로 어제도 저희 사옥 앞에서 반대 단체 시위가 있었어요. 그래서 기획부터 심혈을 기울였죠. 자극적이거나 이슈 몰이를 위한 내용은 아예 배제하고 밋밋하고 재미없더라도 진정성을 살리는 방식으로요. 그러면서 회사도 제작을 허락했어요.

‘남의연애’는 누구나 연애 초기에 느끼는 풋풋한 감정에 주목한다. 출연자들은 2명씩 짝을 지어 데이트를 즐긴다. 공방에 가서 양초를 만들거나 함께 추억을 쌓기 위해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식이다. 그 과정에서 삶이나 가치관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서서히 서로를 알아간다. 밤이 되면 전화 부스에서 데이트 상대와 30초 동안 통화하고, 아침이 되면 좋아하는 사람의 눈치를 보면서 어색한 아침밥을 준비한다. 마음에 드는 상대 앞에서 수줍어하고 그가 다른 남성과 있을 때 소심하게 질투하는 모습이 여느 사랑과 다르지 않다.

출연자 간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자주 나와요.

동성애자의 연애를 자극적으로 비추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외주 제작사에서 신경을 많이 썼죠. 경쟁이나 견제로 논란을 만드는 구성은 모두 빼는 게 기본이었어요. 신체 접촉이 많은 활동도 모두 배제했어요. 서로 생각과 가치관을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많이 준비했습니다.

예상과 달랐던 점도 있을 것 같은데요.

전체적인 흐름은 비슷했어요. 다만 동성 사이에서 생기는 친근감과 공감대를 예상하지 못했어요. 이성애자가 출연하는 기존 연애 예능에선 서로 긴장하고 ‘밀당’하는 기간이 꽤 길어요. 이 프로그램에선 그 시간이 매우 짧았어요. 긴장감이 떨어진다는 점은 좀 아쉬웠지만 빠른 전개가 재미를 더했다고 생각해요. 물론 모든 성소수자가 적극적이라는 말은 아니에요.

지금까지의 출연자 간 ‘케미’가 앞으로도 이어지나요.

사람이 그렇잖아요. 한두 번 만났을 땐 좋았다가도 서너 번 만나보니 별로고(웃음). 동성애자도 마찬가지예요. 초반엔 첫인상이나 목소리 같은 외형에 끌리지만 시간이 갈수록 삶의 방식과 성격을 많이 고려해요. 입주자가 추가되면서 심리 상태가 미묘하게 변하기도 하고요.

임 PD는 “(‘남의연애’에서) 성사된 커플이 있다”고 말했다. 1명의 시청자로서 임 PD에게 수차례 질문을 던져 얻은 답이다. 임 PD는 “함께 근무하는 동료에게도 결과를 알려주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대한민국 예능계에 성적(性的) 지향의 다양성을 넓힌 임창혁 PD는 누굴까. 햇수론 15년째 방송업계에서 종사하고 있는, 나름 잔뼈가 굵은 PD다. 아이돌을 좋아해본 사람이라면 들어봤을 법한 음악방송 ‘더쇼’(SBS M)를 연출했고, 웨이브에서 ‘엑소의 사다리 타고 세계여행’ ‘취향의 아이콘’ ‘반전의 하이라이트’ 등 아이돌 예능 기획을 맡았다. ‘아이돌 전문 PD’가 퀴어 콘텐츠 기획을 집도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이들과 함께 봐야 할 프로그램”

기존에 많이 하던 아이돌 예능과 퀴어 예능은 연관성이 적어 보이는데요.

의외지만 이전 프로그램 연출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됐어요. 출연자들을 보호하고 아끼는 방법을 알게 됐다는 점에서요. 자극적 요소를 쫓느라 출연진을 망가뜨리기보단 이들의 매력을 보여주고자 노력했습니다. 아이돌이든 퀴어든 시청자들은 출연자들이 보여주는 내용에 앞서 그 사람 자체를 콘텐츠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남의연애’도 출연진에 대중의 관심이 쏠리는 프로그램이죠.

앞으로 하고 싶은 아이템이 있나요.

회사가 원하는 아이템을 해야죠. 월급쟁이답게(웃음). 개인적으론 사회가 불편해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반갑든 아니든 할 때가 온 이야기요. 아직 구체적이진 않은데, 한국 사회의 분열에 대해 생각하고 있어요.

새로운 퀴어 예능이 또 웨이브에서 나올까요.

현재로선 별다른 계획은 없어요. 퀴어가 하나의 트렌드가 돼 여러 형태의 예능이 많이 나오면 공론화 목표는 달성했다고 봐요. 만약에 부족하다 싶으면 또 할 거예요. 좀 더 구체적인 대상을 설정한 상태로요. 물론 ‘남의연애’나 ‘메리퀴어’ 시즌2가 될 수도 있고요.

아직 ‘남의연애’를 안 본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퀴어 예능에 대한 우려는 이해해요. 학부모들은 아이가 이 프로그램을 보고 성소수자가 되면 어쩌나 걱정하죠. 하지만 반대로 저는 ‘메리퀴어’나 ‘남의연애’ 모두 아이와 함께 봐야 하는 콘텐츠라고 생각해요. 방송에선 그들의 현실이 나오거든요. 성소수자는 생각보다 가까이 있어요. 우리 사회가 어떻게 그들과 함께 살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볼 시기가 됐다고 생각해요. 진입장벽이 있고 이질감도 존재할 수 있지만, 한 회 두 회 보다 보면 끝까지 함께하게 되실 거예요. 한 번, 그 시작이 어려울 뿐이죠.

#남의연애 #임창혁 #웨이브 #여성동아

사진 지호영 기자 사진제공 웨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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