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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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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날, 멍한 정신을 깨워줄 호러 영화 7편

심미성 프리랜서 기자

2022. 08. 07

장르는 영화를 분별하는 유용한 기준일 뿐, 관객은 스스로 느끼는 것을 믿으면 그만이다. 호러(horror)의 감각을 어디에서 발견하느냐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는 의미. 서늘한 공포를 안기는 영화가 있는가 하면, 지각을 매섭게 일깨우는 영화도 있는 법이다.축축한 햇빛과 에어컨 아래의 추위 사이에서 멍하니 풀려버린 동공을 ‘고자극’ 영화들로 극복해보자. 

더 위치(The VVitch·2015)

호러 영화는 비교적 제작비가 적게 들고, 아이디어나 콘셉트로 승부를 걸 수 있다는 점에서 재능 있는 신인 감독의 등용문이 되기도 한다. 최근 떠오른 로버트 에거스는 이 분야의 새로운 예술적 가능성을 열어내고 있는 감독이다. 그는 첫 장편 ‘더 위치’를 통해 17세기의 미국을 배경으로 마녀의 재해석을 시도했다.

영화는 공동체로부터 배척당한 한 가족의 일상에 포커스를 맞춘다. 가난에 붙들린 어머니와 오직 신실한 삶만이 전부인 아버지가 있다. 어린 동생들 틈에 집안일을 도맡은 장녀 토마신의 매일은 고단하게 흘러간다. 그러던 어느 날 토마신이 돌보던 아기가 감쪽같이 사라지면서, 토마신은 가족에게 닥친 모든 불행의 원흉으로 지목당한다. 외딴 숲에서 뿜어져 나오는 알 수 없는 공기, 가족 내부에서 서서히 응집되는 기이한 분노. 그들이 말하는 사탄이 진짜 존재하기라도 하는 듯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서양 오컬트물의 소재로 빈번하게 활용되는 중세 마녀사냥 이야기는 전설이나 설화가 아니라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다. 감독은 ‘더 위치’에 쓰인 대사도 “역사적 기록을 참조하고 인용한 결과”라고 설명한다.

로스트 하이웨이(Lost Highway·1997)

잘린 귀와 개미 떼가 집 앞마당에서 발견된다면(‘블루 벨벳’). 다른 차원과 만날 수 있는 빨간 방이 있다면(‘트윈 픽스’). 그동안 감독 데이비드 린치가 창조해온 독창적인 감각을 어찌 글로 다 설명할 수 있으랴. 백문이 불여일견. 많은 이들이 그의 영화가 ‘악몽’을 닮았다고 말하는 이유는 그 속에서라면 어떤 일도 가능하기 때문인지 모른다.

심원한 불안의 이미지를 창조한 ‘로스트 하이웨이’는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무한한 고속도로를 연상시킨다. 누구나 지우려 해도 지울 수 없는 과오에 대한 기억 하나쯤 있을 것이다. 이 영화에 흩뜨려진 이미지들은 그런 기억으로부터 짓눌린 무의식을 떠오르게 한다. 집으로 배달된 비디오테이프 하나. 거기엔 나도 몰랐던 살인의 행각이 기록돼 있다. 진위를 파악하기 힘든 혼란에 휩싸여 극심한 공포를 느끼는 주인공. 어둠 속에서 끝이 보이지 않는 고속도로를 무한히 달리는 감각은 자기 부정의 끝에 영원한 불안이 기다리고 있다고 말하는 듯해 섬찟하다.

어딕션(The Addiction·1995)

‘어딕션’은 뱀파이어를 가장 철학적인 접근으로 다룬다. 애초에 뱀파이어는 윤리와 본능 사이의 치열한 대결을 필연적으로 내포한 개체이지 않은가. 지금까지 뱀파이어를 다룬 많은 영화가 창백한 얼굴과 검붉은 핏빛을 대조하는 방식으로 미학을 성취해왔다면, 이 영화는 과감한 흑백 필름을 사용해 보다 실존적 고민을 향해 나아간다. 하필이면 뱀파이어에 물린 주인공이 철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대학원생이라는 점부터 흥미롭다.



전쟁을 일으킨 인류의 책임에 대해 골몰하던 캐슬린이 뱀파이어에게 물리면서, 날카로운 이성을 재련하던 지식인은 크게 진동한다. 학살의 역사에 대한 이미지에 연민과 분노를 보이던 그가 어떤 참상을 스스로 불러낼지를 생각해보자. 중독(addiction)에 깊숙이 영혼을 담근 캐슬린의 모습은 그 전과 비교해 철학을 몸소 이해한 사람처럼 보인다. 영화의 초반부, 캐슬린을 문 뱀파이어가 남기고 간 말이 인상적이다.

“너도 이제 공모자야. 이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두고 봐.”

드래그 미 투 헬(Drag Me To Hell·2009)

‘스파이더맨’ 오리지널 시리즈를 만들고, 올해 마블의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로 돌아온 감독 샘 레이미. 그는 사실 피와 살점이 튀는 스플래터(splatter) 무비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다. 1981년 이 장르의 고전이 된 ‘이블 데드’ 시리즈를 탄생시켰으며, 히어로 무비를 만들며 재능을 펼치는 동안에도 각종 호러 영화의 기획과 제작에 힘써왔다. 그동안 얼마나 자신만의 호러에 목말랐을까.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끝내곤 ‘드래그 미 투 헬’이라는 매우 개성적인 공포 영화를 만들었다.

한 노파가 은행에 들러 대출 상환 기간을 연장해달라고 호소한다. 대출 상담사 크리스틴은 마음이 쓰였지만 승진이 불리해질 것을 염려해 거절한다. 그러자 노파는 갑자기 돌변해 크리스틴을 마구 공격한다. 거의 액션 신이라고 봐도 무방할 노파의 공격은 무시무시하다. 이후 저주에 들린 크리스틴이 겪는 고통은 상상 이상이지만, 감상은 꽤 즐겁게 할 수 있다. 특유의 과장 어법으로 B급 감수성이 물씬 배어나는 스플래터 장르의 영향 덕. 호쾌하고 시원한 호러 영화를 원한다면 단연 이 작품이다.

신체 강탈자의 침입(Invasion of the Body Snatchers·1956)

‘신체 강탈자의 침입’은 고전 영화는 도저히 심심해서 못 보겠다는 이들을 그런 선입견에서 벗어나게 해줄 영화다. SF적 상상력 속에 근원적인 공포가 담겨 있다.

의사 마일즈는 마을 사람들에게서 이상한 낌새를 포착한다. 생김새나 말투는 그대로인데 다른 사람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생긴다. 알고 보니 외계에서 날아든 꽃씨가 번지면서, 잠든 사람들을 고치 속에 가둔 채 복제 인간이 만들어진 것. 이들은 점점 세를 불려간다. 마일즈와 베키는 그들의 모략, 쏟아지는 잠으로부터 필사적으로 달아난다.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불안을 두렵고 무섭게 묘사한 ‘신체 강탈자의 침입’은 전체주의와 매카시즘의 공포로 해석하기에도 흥미로운 텍스트다. 잭 피니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영화에 구현된 이미지들이 매력을 더한다. 이후 ‘신체 강탈자의 침입’은 1978년 ‘외계의 침입자’, 1993년 ‘보디 에일리언’, 2007년 ‘인베이젼’ 등 꾸준한 리메이크와 변주의 대상이 됐다.

이제 그만 끝낼까 해(I’m Thinking of Ending Things·2020)

타인의 머릿속에 들어가는 통로를 발견하는 ‘존 말코비치 되기’, 창작의 고통에 빠진 각본가가 직접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버린 ‘어댑테이션’, 이별의 고통을 덜기 위해 기억을 제거하는 ‘이터널 선샤인’. 세 영화의 각본을 쓴 찰리 카우프만이 이 영화의 감독이라면 구미가 당길까. 각본은 물론 연출까지 맡은 작품들을 보면 그가 얼마나 특색 있는 세계관을 만들어내고 싶은지, 그의 야심이 드러난다. ‘이제 그만 끝낼까 해’는 그중에서도 특히 난해하다는 평가를 받는 작품. 누군가는 걸작이라 평하고, 누군가는 괴작이라 말한다. 하지만 그렇기에 이 영화는 컬트(소수의 열광적인 팬이 있는) 영화가 되기에 충분해 보인다.

남자 친구의 부모님이 사는 농장으로 함께 여행을 떠난 여자. 이들의 대화는 계속 미묘하게 어긋나고, 부모님은 수시로 늙거나 젊은 모습으로 바뀐다. 도통 분간할 수 없는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는 이 세계는 무의식으로 지어진 초현실주의자의 집처럼 보인다. 불가해함에서 비롯되는 음울한 분위기가 공포스럽다.

터스크(Tusk·2014)

충격적인 이미지로부터 새로운 인사이트를 얻는 데 보디 호러(body horror)만 한 것이 없다. 호러의 다양한 세부 장르 가운데서도 매우 특수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보디 호러는 괴기스러운 돌연변이나 신체의 재배치, 인간과 동물의 결합 등을 서슴없이 묘사하곤 한다. 일종의 트라우마를 유발할 만한 ‘터스크’의 궁극적인 이미지는 신체의 재배치다. 만약 불쾌감에 예민한 관객이라면 섣불리 도전하지 않길 바란다.

팟캐스트를 진행하는 윌레스가 새로운 소재를 찾아 헤맬 때쯤, 그의 눈에 흥미로운 광고 문구가 들어온다. 그렇게 윌레스는 캐나다로 떠나 탐험가 하워드를 인터뷰하게 된다. 하워드가 내 온 차를 음미하며 놀랍고도 흥미진진한 모험담을 듣는데, 바다코끼리와의 특별한 우정을 회상하는 대목에서 정신을 잃는다. 하위 장르 영화답게 영상미, 개연성, 연출력에 대한 기대는 반쯤 접어두는 감상의 태도가 필요하다. 나도 몰랐던 보디 호러에 대한 취향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공포영화 #여름밤 #호러 #여성동아

사진출처 다음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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