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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의 눈으로 부부를 탐구하던 권성희 변호사, ‘성과 양성의 진화 메커니즘’을 발견하다

글 정혜연 기자

2021. 11. 05

권성희 이혼전문변호사, 본인의 이혼 위기에 이르러 이혼 소송 고객들과 자신의 부부 사이에 공통적으로 관찰되는 성격유형을 발견하고 진화생물학의 눈으로 결혼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5년 이후 그녀는 생물학의 오랜 과제인 ‘동물과 식물이 왜 유성생식을 하느냐’에 대한 해답을 얻었다며 최근 그에 대한 책을 출간했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다른 매력을 지닌 이성에게 호감을 느낀다. 내가 갖추지 못한 특별한 무언가를 가진 상대에게 매혹되는 것이다. 살을 부대끼며 살다 보면 그 매력이 도리어 칼날이 되어 자신을 괴롭히기도 하는데, 이럴 때 결국 갈라서기를 선택하기에 이른다. 30년간 변호사로 일하며 2011~2012년 KBS ‘아침마당’의 ‘수요가족탐구’ 코너 패널로 출연한 바 있는 권성희(58) 이혼 전문 변호사는 소송을 하는 부부의 65%가 완전히 상반되는 성격끼리 만난 것을 발견했다. 호기심을 느낀 그녀는 여기에는 반드시 생물학적 비밀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연구를 시작했다.

현대 생물학은 DNA의 특정 부분을 자르거나 편집해 유전자를 교정하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가 나올 정도로 발전을 거듭해왔다. 그러나 아직 해결하지 못한 과제들도 많은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유성생식의 기원’과 ‘다세포생물이 양성인 이유’다. 인간을 포함한 많은 동물은 암수로 나뉘어 유성생식을 하며, 꽃도 암술과 수술로 나뉘어 유성생식을 한다. 2백여 년에 걸친 생물학의 역사상 수많은 학자들이 유성생식의 메커니즘을 규명하려 애썼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 누구도 성의 진화를 둘러싼 시원한 메커니즘을 제시한 바 없다.

보니따의원 정광섭 원장의 아내이기도 한 권성희 변호사는 5년 전 찰스 다윈의 자연선택설을 기반으로 ‘성과 양성의 진화에 관한 메커니즘’ 연구를 시작했다. 그런데 공부를 시작하고 10개월이 지났을 때 도무지 자연선택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고. 이후 2년여 동안 생물학서 2백50여 권을 더 읽은 끝에 이것이 완전히 틀렸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한다. 공부를 할수록 장바티스트 라마르크의 ‘용불용설’ 쪽으로 믿음이 기울어졌다. 용불용설이란, 생물에는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이 있어 자주 사용하는 기관은 발달하고 그렇지 않은 기관은 퇴화한다는 이론이다.

이후 권 변호사는 1년여간 생물학서 1백50여 권을 읽으며 찰스 다윈의 3대 미스터리인 속씨식물의 기원, 공작의 꼬리 등의 성적 이형성, 여왕개미 등 무리 일부만 번식하는 이유 등에 대해 연구, 8월 말 출간한 ‘생활사 상속으로 본 성의 진화와 용불용으로 본 종의 분화’라는 책에 그간의 성과를 담아냈다. 권 변호사에게 지금까지의 공부로 밝혀낸 성과 양성의 진화 메커니즘의 연구 결과에 대해 들었다.


책의 제목이 다소 긴데, 이렇게 지은 이유가 있을까요.

책을 판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과학적 발견을 다루는 논문의 성격을 가진 책이기 때문에 길더라도 정확하게 짓고 싶었어요. 아마추어 학자는 큰 과학적 발견을 얻었다 하더라도 과학 잡지와 저널 등에 접근하기 어려워요. 찰스 다윈이 1858년 린네 학회지에 진화론으로서 ‘자연선택설’ 논문을 실었을 때도 식물학자 한 사람밖에 반응하지 않았다고 해요. 생전 다윈은 “사회에 새로운 견해를 발표할 때는 상당한 분량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다”며, 2년간 ‘종의 기원’을 썼죠. 그래서 저도 논문을 대신할 저서 작업에 들어갔고, 연구 내용을 가장 충실하게 담을 수 있는 제목을 고민한 끝에 이렇게 지었습니다.



법학을 전공한 변호사인데 어떻게 생명과학 연구를 시작하게 됐나요.

사실 저도 이혼 위기를 겪었는데 오래 알고 지낸 지인들의 조언 덕분에 겨우 위기를 넘길 수 있었어요. 이를 계기로 제가 이혼 소송은 잘 알지만 정작 결혼 생활과 이혼 이후 삶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런데 이혼 소송 고객들과 저희 부부 사이에 공통적인 패턴이 보이더군요. 남녀를 불문하고 사람들은 경제력을 중시하는 ‘이성형’과 관계를 중시하는 ‘감성형’으로 나뉘는데, 1백 쌍 중 65쌍이 자신과 반대형인 사람을 선택해 결혼하곤 성격 차이로 다투더군요. 이 현상 이면에 생물학적인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해서 진화생물학적으로 접근했어요. 인류의 두뇌 진화 과정을 공부한 후 전두엽을 우세하게 사용하는 사람이 이성형, 편도체를 우세하게 사용하는 사람이 감성형이라고 분석했어요. 일부일처제가 대세인 인류는 부부 한 쌍이 적응 단위이므로 제대로 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배우자는 상반된 성격의 소유자를 선택하는 것으로 판단했어요. 2017년에 이 내용으로 ‘사피엔스 성격 유형 가설’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써서 세계 최대 규모 학회 HBES에 보내 포스터 발표자로 초대받았으나 아버지께서 돌아가셔서 참석하지 못했죠.

책에서 생물을 3계로 분류했는데 왜일까요.

생물은 진화 순서에 따라 원핵생물, 원생생물과 다세포생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생물학 교과서에서는 원핵생물, 원생생물, 균류, 동물과 식물의 5계로 분류하죠. 제가 균류, 동식물을 다세포생물로 하여 3계로 분류한 이유는 생물을 단세포냐 다세포냐 여부 및 핵의 유무 등으로 쉽게 구분해 ‘생활사 상속’이라는 저만의 분석틀을 적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연구의 핵심인 ‘성의 진화 메커니즘’이란 무엇인가요.

제가 발견한 성의 진화 메커니즘은 지구에 최초로 등장한 원핵생물이 20억 년 동안 안정적으로 생존하며 형성한 생활사를 후손 생물이 상속하되 자신들의 유전체와 몸체에 맞게 수정하여 적용하며 살고 있고, 그 과정에서 유성생식이 진화했다는 것입니다. 사실 다윈이 ‘종의 기원’을 발간했을 때 사람들이 “우리가 원숭이냐?”라며 조롱했는데, 저의 논리는 일명 박테리아라고도 불리는 원핵생물의 생활사를 상속했다는 것이어서 사람들의 반응이 더더욱 신경 쓰입니다.

원핵생물의 어떤 생활사를 상속했다는 것인가요.

유전자 수평 이동, 내생포자형성, 면역 및 이분법이 바로 그것이에요. 앞에 3가지는 생존하는 데 필요한 형질이고, 이분법은 번식 방법이죠. 모든 생물은 생존하고 번식하는 생명 활동을 합니다. 유전자 수평 이동은 종을 불문하고 유전자 조각인 플라스미드를 따로 가지고 다니면서 세포벽을 뚫고 일방적으로 취득하는 것이에요. 내생포자형성은 환경이 좋지 않을 때 딱딱한 내구성의 포자가 되는 것이죠. 면역은 원핵생물을 침입하는 바이러스에 대한 방어 체계죠.

그러면 유성생식은 어떻게 진화했나요.

생물학에서 원생생물은 원핵생물끼리의 포식으로 먹힌 원핵생물이 미토콘드리아가 되어 진화했다고 합니다. 원생생물은 두 원핵생물의 공동생활로 진화한 것이죠. 따라서 이들은 환경이 어려울 때 원핵생물이었던 시절의 ‘유전자 수평 이동’ 생활사를 적용할 수 있다고 봐요. 이를 적용한다면 원생생물의 유전체와 몸체의 체제에 맞게 수정해야 하고, 그것이 두 세포의 접합 후 핵융합했다가 감수분열하는 방식이라고 봤어요. 또한 내생포자형성도 상속할 수 있는데 그 경우는 그냥 딱딱해지는 거죠. 유성생식은 원생생물이 어려운 환경에서 안정성을 강화하기 위하여 생식세포로 변한 후 유전자 수평 이동과 내생포자형성의 두 생활사를 결합하여 적용하고, 환경이 좋아진 후에 감수분열한 원생생물이 안정성을 이용하여 이분법에 의한 번식까지 하는 거죠. 이는 환경이 좋지 않을 때 생존과 번식 모두를 추구할 수 있으니까 하나의 세트로 구성돼 무성생식과는 독립된 번식 방법이 된 것이라고 봤어요.

다세포생물은 왜 양성인가요.

다세포생물은 다세포화 인자를 얻었을 뿐 본질에서는 원생생물이라고 봤어요. 다세포생물은 세포마다 같은 염색체를 가지고 있지만 사용하는 유전자가 다를 뿐이고, 생명이 시작되는 번식 시기에 원생생물과 동일하게 생식세포를 형성하는 점에서 그렇게 봤죠. 원생생물은 생식세포를 2가지만 형성했는데 이는 과접합 방지책으로 보여요. 평소의 염색체 수보다 많으면 기형이나 불임이 되거든요. 다세포생물에서 생식세포를 형성하는 생명체를 배우체라고 해요. 배우체가 암수 양성인 이유는 생식세포가 2가지밖에 없으니까 그것을 형성하기 위한 생명체도 2가지밖에 필요 없어서죠. 정자와 난자인 이유는 신속하게 결합해도 과접합되지 않게 구분한 것으로, 암컷은 난자, 수컷은 정자를 형성하니까 암수 양성이 된 것입니다.

정자와 난자를 형성할 때 부모의 상동염색체를 교차한다는 것은 무슨 말일까요.

다세포생물 중 상동염색체를 가진 동물과 속씨식물은 이배체 배우체입니다. 이들이 생식세포를 형성할 때 각 부모로부터 한 세트씩 이어받은 상동염색체를 교차하면 원핵생물의 유전자 수평 이동 생활사를 다세포생물의 유전체와 몸체에 맞게 한 번 더 상속하는 것이 됩니다. 바로 이 교차로 인해 정자와 난자는 고유한 염색체를 가진 것이 되고, 그 둘이 결합함으로써 다세포생물의 적응의 꽃인 유전적 다양성으로 이어지죠.

결론적으로 성의 진화의 생물학적 의의는 무엇인가요.

원래 상속이란 죽은 조상과는 상관없이 후손들이 능동적으로 하는 행위입니다. 따라서 생물이 생존과 번식을 잘하기 위하여 선조 생물의 생활사를 결합하여 독립된 번식 방법을 형성했다는 것은 생물의 놀라운 주체성을 나타내는 것이죠. 생물이 유전자가 부리는 대로 끌려다니는 기계가 절대로 아니라는 뜻입니다.

사진 김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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