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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모습도 매력적인 이 남자, 정해인

글 이현준 기자

2021. 09. 29

배우 정해인이 지금껏 사랑받아온 부드러운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거친 느낌 물씬 나는 군인으로 돌아왔다. 성공에 도취되지 않고 새로운 도전에 나선 그를 응원하지 않을 수 없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독일 작가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의 문구다. 8월 27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D.P.’의 정해인(33)을 보면 마침내 알을 깨고 나온 새가 떠오른다. 정해인이 대중적인 인기를 얻는 데엔 그의 소년과도 같은 부드러운 이미지가 큰 몫을 했다. 그는 2014년 드라마 ‘백년의 신부’로 데뷔한 후 드라마 ‘도깨비’(2016)에서 주인공 지은탁(김고은)의 첫사랑 최태희 역을 통해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으며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드라마 ‘당신이 잠든 사이에’(2017)와 ‘슬기로운 감빵생활’(2017)을 거쳐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2018)에서 손예진과 뛰어난 합을 선보이며 ‘국민 연하남’ 칭호를 획득했다. 이어진 드라마 ‘봄밤’(2019),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2019) 등에서도 감성적인 멜로 연기를 선보이며 ‘멜로 장인’ 자리를 굳혔다. 그에겐 우유같이 하얗고 부드럽다는 의미로 ‘밀크남’이라는 애칭이 붙었다.

그에게 인기를 안겨다 준 이러한 이미지는 양날의 검이 되기도 했다. 비슷한 특성의 캐릭터가 반복되다 보니 기시감이 느껴진다는 평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변화가 꼭 성공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수많은 별들이 수시로 뜨고 지는 연예계에서 자신에게 인기를 가져다 준 이미지를 포기하는 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정해인은 영화 ‘시동’(2019)에서 반항아 ‘상필’ 역을 맡아 ‘정해인의 연기 변신’이라는 화제를 모으기도 했지만 기존의 이미지를 탈피할 만큼의 임팩트를 남기진 못했다.

그러나 이번엔 다르다. 드라마 ‘D.P.’는 탈영병을 잡는 군무 이탈 체포조(Deserter Pursuit)에 소속된 이등병 안준호와 상병 한호열(구교환)이 다양한 사연을 가진 탈영병을 쫓으며 미처 알지 못했던 현실과 마주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누적 조회수 1천만 이상을 기록한 김보통 작가의 웹툰 ‘D.P 개의 날’을 원작으로 했다. 8월 27일 공개 후 넷플릭스 국내 콘텐츠 순위 1위를 기록하고 일본, 홍콩, 싱가포르 등에서도 상위권에 랭크되며 인기를 끌고 있다. 정해인은 남다른 눈썰미와 권투를 한 이력 덕에 D.P.로 차출된 안준호 역을 맡았다. 안준호는 가난, 아버지의 폭력 등 불우한 가정환경과 암울한 현실을 견디지 못하고 도피하듯 입대를 선택한 인물로, 인간미를 잃지 않으면서도 마음 깊은 곳에 원망과 분노를 지녔다. 정해인은 그동안의 부드러운 이미지가 무색할 만큼 살기 어린 눈빛 연기는 물론 거친 액션도 마다하지 않으며 안준호를 훌륭히 소화했다. 첫 촬영 당시 연기에 몰입한 나머지 “이병 안준호”가 아니라 “이병 정해인”이라고 외칠 만큼 캐릭터에 몰입했다는 후문. ‘인생 캐릭터’를 만났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D.P.’의 배경은 2014년 강원도의 한 육군 헌병 부대다. 실제 2014년은 제22보병사단 총기난사 사건(임 병장 사건), 제28보병사단 의무병 살인사건(윤 일병 사건) 등 군 문제가 떠들썩했던 해다. ‘못 참으면 임 병장, 참으면 윤 일병’이라는 말이 나온 것도 이때다. 9월 1일 화상으로 마주한 정해인은 정장을 차려입고 있었다. 대부분의 배우가 비대면 인터뷰 때 편안한 옷차림으로 임하는 점을 고려하면 다소 특별했다. 그는 “인터뷰에 격식을 갖추고 싶었다”며 정장을 입은 이유를 밝혔다. “‘D.P.’는 무겁고 우울하고 착잡한 이야기다. 2014년은 실제 군에서 사건 사고가 잦았다. 촬영하며 이 부분을 계속 염두에 뒀다. 절대 가볍게 연기해서는 안 될 작품이기에 고민하고, 신중하게 잘 풀어내야겠다고 생각했다”는 정해인의 말에서 진정성이 느껴졌다.



‘독종’으로 불렸던 실제 군 생활 경험 녹여내

‘D.P.’가 시청자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는데,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넷플릭스 콘텐츠 순위 1위에 올랐다고 하는데 얼떨떨하고 실감이 안나요. 주변 동료 배우들, 선배님들, 관계자분들에게 이렇게 많은 연락과 축하 메시지를 받은 적이 없었어요(웃음). 해외에서도 반응이 좋다고 하던데, 다른 나라에서도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군대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크게 보면 직장이나 학교 등 사회 전반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거든요. 군대는 사회의 축소판이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것 같아요.

예비역들 사이에선 사실적인 묘사 때문에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유발한다는 말이 나와요.

실제 사건을 기반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군 생활을 하신 분들은 ‘D.P.’를 보며 많은 생각이 드셨을 듯해요. 저도 연기할 때 군에서 느꼈던 감정들을 많이 참고했고 큰 도움을 받았어요. 관등 성명, 경례, 걸음걸이, 군화 닦기, 관물대 정리하는 법, 선임을 대하는 자세까지 전반적인 군 생활 기억을 되짚었죠. 군 특성상 이등병들은 군대에서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최대한 ‘각’을 유지할 뿐이죠. 그래야 혼이 안 나거든요. 그래서 각을 가장 신경 썼어요. 처음 관등 성명을 대는 장면을 고민하기도 했죠. 저는 군 생활 때 크게 소리를 지르곤 했어요. 계급이 올라갈수록 관등 성명이 짧아져요. 저도 그랬고요. 톤과 볼륨, 목소리에 대해 고민을 했어요.

첫 촬영 때 “이병 정해인”이라고 외쳐서 NG를 냈다고요.

참 부끄러운 순간이었어요(웃음). 분명히 몰입한 건 맞지만 안준호가 아닌 정해인으로서의 몰입이었던 것 같아요. 첫 촬영이라 긴장됐는데, 세트와 선임 역할 배우들의 연기가 너무 리얼한 거예요. 저도 모르게 “이병 정해인!”이라고 외쳤어요. 그때 저도 순간적으로 PTSD가 발현됐던 것 같아요(웃음).

정해인에게 군대란 배우 생활의 시작점과도 같았다. 정해인은 우리 나이로 27세, 비교적 늦게 데뷔했지만 조급해하지 않았다. 그는 과거 인터뷰에서 “내가 다른 배우들보다 시작이 늦은데, 조급한 마음을 가지면 이 세계에서 버틸 수 없다. 비교하게 되면 한도 끝도 없이 작아질 뿐이다. 나와 또래 혹은 더 어린 나이에 성공한 친구들이 많은 까닭이다”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또 그가 이렇게 자신을 다잡을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배우가 되기 전 깊은 고민을 거쳤기 때문이다. 과거 정해인은 “스무 살 전까지는 혼돈의 시기를 보냈다. 스물 한살에 군대에 가서 앞으로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고, ‘연기를 하자. 시작했으니 끝을 보자’는 마음으로 준비하기 시작했다. 당시 빵을 정말 좋아해서 살이 많이 쪘었는데, 독하게 마음먹고 12kg을 뺐다. ‘내가 이걸 하지 못하면 연기를 하지 않겠다’는 생각이었다. 주위 사람들에게 ‘독종’ 소리까지 들으며 악착같이 했다”고 군 시절을 회상했다.

정해인 씨의 군 생활은 어땠나요.

저는 운전병이었는데, 2008년에 입대해 2010년에 제대했어요. ‘D.P.’에서 만큼은 아니지만 제가 복무하던 때에도 작은 사건 사고들이 있었죠. 물론 힘든 일도 많았지만 좋았던 기억도 많아요. 저는 나름 후임을 잘 챙겨줬고 선임들과도 잘 지냈어요. 지금도 연락하고 지내고요. ‘D.P.’를 보고 축하 메시지를 보내거나 전화도 많이 걸려왔어요. 아마 제 기사도 다 찾아볼 거예요(웃음). 그래도 가혹 행위는 꼭 없어졌으면 해요. 군 생활을 먼저 했던 사람으로서 감히 드릴 수 있는 이야기는 하나예요. 요즘 병영 문화가 많이 개선됐다고 알고 있는데, 장병분들이 몸도 마음도 다치지 말고 건강하게 전역하셨으면 좋겠어요.

‘슬기로운 감빵생활’도 그렇고, 군인으로 나왔던 작품의 반응이 좋아요.

저는 평소에 기대를 잘 안 하는 편이에요. 실망하고 싶지 않거든요. 모든 작품의 결과를 예상할 수는 없는데, 하늘의 뜻인 것 같아요(웃음).

군의 어두운 면을 다루는 것에 대한 부담은 없었나요.

어떤 사회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겠다는 마음은 없었어요. 그저 안준호라는 캐릭터를 최대한 진지하게 연기해야겠다는 생각에 부담감이 컸죠. 거짓 없이 깨끗하고 순수하게 그리려고 했어요. 외적으로 많이 표현하기보다는 상황에 녹아들며 인물과 섞이려고 했죠.

정해인 씨가 생각하는 안준호는 어떤 인물인가요.

기본적으로 죄의식이 있는 사람이에요. 자신의 잘못으로 탈영병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안고 살면서 이를 극복하려 하고요. 이등병이라 주변 반응을 기민하게 캐치하고, 돌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늘 눈과 귀를 쫑긋 세워야 하고요. 지금까지 쉽게 연기를 한 건 아니지만 이번은 특히 더 어려웠어요. 평소에는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지만 한번 터트릴 때마다 온 감정을 쏟아내야 했거든요. 사실 안준호가 가지고 있는 모습들은 다 제 안에 있는 것들이에요. 또 제가 이번 작품을 통해 스스로 발견한 점이기도 하고요. 안준호를 연기하면서 정해인이라는 사람이 가진 우울함을 한번 돌이켜볼 수 있었어요. 사람은 누구나 우울한 감정을 느낄 수 있고, 힘들 때 그걸 표현하는 방법도 다 다르잖아요. 이번에 안준호를 연기하면서 제가 우울할 때 어떻게 표현하는지 보여드릴 수 있었죠.

어두운 이야기를 연기하고 나서 후유증은 없었나요.

있었어요. 공허했죠. 대개 이런 촬영을 마치면 시간을 갖고 스스로를 비워내는 과정이 필요한데, ‘D.P.’ 촬영이 끝나기 전에 다음 드라마에 들어가느라 그럴 여유가 없었네요. 최근에서야 다음 드라마 촬영도 끝나서 시간을 갖고 있어요.

모든 작품마다 배우고 성장할 것

피소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지키기 위해 탈영한 허치도 병장의 이야기가 가장 큰 울림이 있었어요. 저도 할머니 밑에서 자랐고 사랑을 많이 받았거든요. 이 에피소드를 촬영하며 울컥했던 적이 많았어요. 또 기억에 남는 건 조석봉 일병의 에피소드죠. 마음이 정말 안 좋고 무거웠어요. 촬영하면서도 갑갑하고, 슬프면서 화가 났어요. 조 일병을 연기한 조현철 씨도 많이 힘들었을 텐데, 어려운 연기를 잘해줘서 참 고마워요.


드라마 ‘D.P.’에서 환상의 호흡을 보여준 배우 정해인과 구교환.

드라마 ‘D.P.’에서 환상의 호흡을 보여준 배우 정해인과 구교환.

정해인은 “주연으로서 현장을 이끌어야 해 큰 부담을 느꼈지만 다른 배우들과의 합을 통해 부담을 풀어나갔다”며 동료들에게 감사함을 드러냈다. ‘D.P.’는 각 배역을 맡은 배우들의 실감 나는 열연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 중에서도 눈길을 사로잡는 건 정해인과 한호열 상병 역을 맡은 구교환의 ‘브로맨스’다. 차분한 안준호와 유쾌한 한호열의 상반된 ‘케미’가 오히려 극의 숨통을 틔워준다. 정해인은 구교환 이야기를 꺼내자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온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작품에서 안준호와 한호열의 브로맨스가 인상 깊었어요. 구교환 씨와의 호흡은 어땠나요.

저도 교환이 형과의 케미를 빼놓을 수 없네요(웃음). 사실 저와 교환이 형 모두 낯가림이 있어서 서로를 탐색하는 시간이 필요했죠. 교환이 형이 선하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라 친해지는 데 어려움은 없었어요. 저도 친해지기 위해서 교환이 형이 얘기할 때 어떤 것이든 잘 들으려 했어요. 또 애드리브를 할 때엔, 사실 저는 애드리브를 많이 할 수 없는 위치였거든요. 이등병이 애드리브를 할 수는 없잖아요. 거의 대답만 해야 하니까요(웃음). 교환이 형이 무슨 말을 해도 리액션을 해야 하는 상황인데, 모든 것에 다 리액션을 하니 형이 너무 좋아하더라고요(웃음). 나중엔 웃음을 참느라 NG가 많이 났죠.

둘이 예능에 나와도 재밌을 것 같다는 반응이 있어요.

교환이 형이 마음의 준비만 된다면 저는 언제든지 할 계획이 있어요(웃음).


드라마 ‘D.P.’

드라마 ‘D.P.’

‘D.P.’는 벌써 시즌 2에 대한 기대를 받고 있다. 주연으로서 호평을 이끌어낸 정해인 역시 작품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모든 작품과 현장을 통해 많이 배우는데, ‘D.P.’ 또한 내게 큰 가르침과 메시지를 줬다”고 고백했다. 이어 “시즌 2가 나오길 간절히 소망하고 있다”며 기대를 드러냈다.

이전에는 ‘국민 연하남’이라는 애칭으로 많이 불렸는데, 이번 작품을 통해 수식어가 바뀌길 원하나요.

수식어가 붙는다는 건 참 감사한 일인 것 같아요. 그만큼 작품이 흥하고 시청자분들이 재밌게 즐기셨다는 뜻이니까요. 이번 작품으로는 어떤 수식어가 붙을지 모르겠지만 어떤 수식어든 생기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지금까진 주로 멜로 장르에서, 선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로 많이 사랑받았잖아요. ‘시동’에서 반항아 역할을 맡았고, 이번에도 어두운 그늘이 있는 캐릭터예요. 선한 이미지로만 머물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 같기도 해요.

그렇진 않아요. 감독, 작가 등 관계자들이 어떤 작품의 어떤 역할에 제가 어울리겠다고 생각해서 절 찾아주는 거죠. 제 의지는 항상 같았어요. 저는 연기하는 사람이기에 자존감을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연기를 잘하는 것’이고, 제 작품을 사람들이 즐겁게 봐주는 게 가장 큰 보람이고 기쁨이에요. 어떤 모습을 보여줘야지, 혹은 보여주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은 없어요. 매 순간 모든 작품마다 배우고 성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번 작품 또한 같아요. 한 발짝 성장한 느낌이에요.

사진제공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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