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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진양혜의 그 여자 그 남자

늘 푸른 소나무처럼 피사체와 조우하다 배·병·우

글·진양혜 아나운서 사진·조영철 기자

입력 2015.01.16 09:32:00

어느덧 2015년 1월이다. 저마다의 삶은 다르겠지만, 어쨌든 우리는 새로운 한 해를 같이 시작하고 어제와 그리 다르지 않은 24시간을 보내며 인생의 레이스를 이어갈 것이다.
지금까지 이어온 시간들, 때로는 지쳐서 쓰러질 것 같은 그 순간까지도 버텨내면서 포기하지 않고 지켜온 것이 있던가?
사진작가 배병우 선생을 신년 첫 손님으로 만난 후 던지게 되는 질문이다.
늘 푸른 소나무처럼 피사체와 조우하다 배·병·우
배병우(64) 선생과의 만남은 늘 유쾌하다. 큰 나이 차에도 상대를 격의 없이 대하는 태도, 부담 없는 외모, 넉넉한 웃음을 지닌 그에게서 예술가의 예민함 같은 것을 찾기란 쉽지 않다. 배 선생은 고등학교 시절 유도 선수로 명성을 날리며 다진 체력으로 지금도 여전히 20kg이 넘는 장비를 메고 산을 바람(?)처럼 탄다. 장소 헌팅을 위해 하도 많이 걸어선지 사람들은 그가 발로 사진을 찍는다고도 한다. 어린 시절 전남 여수 바닷가에서 뛰어논 그는 해산물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더불어 좋아하는 생선이 먹고 싶을 때 스스로 회를 뜰 정도의 요리 솜씨까지 갖췄다. 새해를 앞두고 찾은, 경기 파주 헤이리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에는 언제든 요리를 해 먹을 수 있는 주방이 있었다. 수십 명의 손님을 치르기에도 부족함이 없는 너른 주방이다.

작업실에는 국내에서 보기 힘든 진귀한 사진 관련 서적이 즐비하다. 40여 년간 국내외에서 사진작업을 하며 모은 것들이다. 전 세계의 거의 모든 큐레이터가 알 정도로 ‘소나무 작가’로 명성을 쌓았고, 해외 각지에서 사진 작업을 해달라는 요청이 끊이지 않는데도 노장은 자화자찬에 인색하다. “세계적 수준에 아직 못 미치지만 꾸준히 하다 보면 종국에는 세계적 작가가 되지 않겠느냐”며 자신을 낮춘다. 그의 겸손의 말이 귀에 거슬리지는 않았다. 오랜 세월 그가 초심을 잃지 않고 살아온 비결의 하나를 찾은 듯해서다.

유럽의 고성과 한국의 궁은 닮았다

▼ 많이 바쁘셔서 인터뷰 일정 잡기가 힘들었습니다. 지금 어떤 작업을 하고 계신가요.

2016년이 한불 수교 1백30주년이라서 이와 관련된 문화 행사가 2014년부터 끊이지 않고 있어요. 그 일환으로 프랑스에서 의뢰받은 사진 작업을 하고 있어요. 루아르 지역 샹보르 성(Chateau de Chambord)을 찍고 있지요. 1년 정도 진행해왔는데, 2015년 4월까지 마무리하고 나면 9월 현지에서 전시회를 열 예정입니다.



▼ 샹보르 성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16세기 프랑수아 1세가 건축한 성입니다. 앙부아즈에 머물던 프랑수아 1세가 이탈리아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불러들여 후원도 하고 이 성을 설계하도록 한 것으로 알려져 있죠. 작고 아름다운 성입니다.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죠. 4년 전쯤에 의뢰받았는데 스케줄이 차 있어서 작업을 바로 시작하지 못했죠.

▼ 사진 작업을 의뢰받으면 어떤 준비 절차를 거치나요.

먼저 역사적 의미, 건축 과정, 지역 사람들의 이야기나 관련 에피소드 등의 자료를 수집합니다. 역사서도 찾아보고 관리자나 현지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직접 듣기도 하죠. 기본적인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면 작업하기 힘들죠.

▼ 몇 년 전에는 스페인 그라나다의 알람브라 성과 프랑스 샤몽 성도 사진 작업을 의뢰받아 찍은 걸로 압니다. 고성을 많이 찍게 되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다양한 외국의 성을 찍었는데 참 이상하게도 우리나라 고궁과 같은 게 보였어요. 선과 각도에서요. 특히 알람브라 성에 가서 사진 작업을 할 때는 공간 배치와 지붕의 선이 우리나라의 창덕궁과 놀랍도록 같더라고요. 더욱이 알람브라 궁전의 조경수 가운데 중심을 이루는 것이 신기하게도 소나무였어요. 그 무렵 현지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창덕궁을 직접 관람했는데 느낌이 알람브라 성과 정말 똑같다며 좋아했어요. 이번에 찍는 샹보르 성도 비슷하고. 자신들의 것을 동양적으로 해석한 사진이 그들에겐 신선했나 봅니다.

▼ 특히 유럽에서 선생님의 작품을 좋아한다고 들었습니다.

유럽에서는 제 작품을 산수화의 연장이라고 평가해요. 독일에서 발간한 소나무 작품집은 ‘성스러운 나무(sacred wood)’라는 제목으로 세상에 나왔고,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포스터에 제 작품을 쓴 아티스트는 저를 ‘포토 포에트(photo poet)’라고 표현했어요.

▼ 사진으로 시를 쓰는 사람이라? 근사한 표현이네요.

제가 자연을 사랑하는 건 맞지만 자연만을 사진에 담는 건 아니에요. 자연의 감정을 읽는다고 할까.

▼ 얼마 전 제주도 오름을 찍은 선생님의 사진집 ‘제주도-Elements between Sea and Sky of Jeju’를 보면서 에로틱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얼굴이 살짝 달아오르며 ‘제주 오름 능선의 곡선이 이렇게 아름다웠나’ 생각했죠. 서문을 쓴 미술 평론가 시미즈 토시오는 ‘제주의 형상에 의지해 보여주는 배병우의 상상력’이란 표현을 썼더군요.

사진을 제대로 봤네요. 하하. 제주 오름은 상당히 여성적이에요. 소나무가 힘차고 남성적이라면 제주 오름은 여인네의 속살 같은 아름다움이 있어요. 사진은 자연에서 시간과 공간을 끌어오는 거죠.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선택과 압축을 통해 세상을 해석하는 거죠. 그래서 같은 곳에서 찍어도 다른 사진이 나오는 거죠. 오랜 시간 수련을 거치면 자신의 해석을 카메라라는 기계를 통해 자유롭게 보여줄 수 있습니다.

여수 바닷가는 작품의 밑천

늘 푸른 소나무처럼 피사체와 조우하다 배·병·우

경기 파주 헤이리에 있는 배병우 작가의 작업실은 ‘야동’보다 야한 일본의 춘화 서적부터 여행 캐리어보다 크고 무거운 해외 유명 작가의 사진집까지 그가 세계 각지에서 수집한 진귀한 책들로 가득하다.

▼ 어린 시절을 어떻게 보내셨나요.

전남 여수의 바닷가에서 바다 보고 바람 맞으며 자랐죠. 제가 자연을 찍는 것도 제가 자란 환경의 영향일 겁니다. 얼마 전 서울대 환경대학원에서 학생들과 간담회를 했는데 한 여학생에게 좋아하는 나무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없다고 하더라고요. 나무에 관심 없다고, 안 좋아한다고. 요즘 젊은이 대부분이 그럴 거예요. 그런 친구들과는 정서적으로 판이한 거죠. 제 안에는 태생적으로 보고 느끼면서 체화한 자연이 있어요. 제 정서적 뿌리이자 영감의 원천은 고향 여수의 바다라고 할 수 있어요.

▼ 지금 작업실에도, 몇 년 전 제가 방문했던 여수의 선생님 댁에도 책이 정말 많더라고요. 어릴 때부터 책 읽기를 즐기셨나요.

읽는 걸 좋아했죠. 그리는 건 더 좋아했고요. 형제자매가 많아서 각자 관심 있는 분야의 책들만 모아도 그 양이 엄청났죠. 미대 진학 후 사진을 선택한 터라 실제로 사진을 독학으로 전문 서적을 읽으면서 배웠어요. 저를 위해서 아버지가 일본 서적을 직접 번역해주시기도 했고요. 어린 시절 읽은 책들과 크레파스를 갖고 배 위에서 그렸던 여수의 자연이 축적돼서 지금의 제가 있게 된 거죠.

▼ 사진 찍을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인가요.

그건 상당히 복합적인 거예요. 카메라는 도구예요. 도구를 써서 어떤 작품을 만드느냐는 작가의 마음과 기량에 달렸죠. 사진작가로서 제 역할은 자연을 보고 느낀 아름다움과 사상을 사진에 담아 보는 이들이 공감하게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사진 안에는 제 영혼이 담겨 있어요.

▼ 선생님의 작업에는 ‘사진을 찍는다’는 표현이 잘 어울리지 않네요.

만년필을 갖고 누군가는 시를 쓰고, 누군가는 소설을 쓰죠. 또 누군가는 붓 같은 그림 도구를 이용하기도 하겠죠. 저는 카메라를 이용해서 그림을 그리는 거죠. 포토그래피는 빛으로 그린 그림이라는 뜻이에요. 카메라는 일종의 미디어(예술 표현의 수단)죠. 누군가가 카메라로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면 포토 저널리스트라 할 수 있고, 아까 언급했듯이 저는 포토 포에트라는 얘기를 듣죠.

제가 소나무 사진을 즐겨 찍어온 경북 경주에서 요즘 작업을 거의 안 해요. 전국 각지에서 소나무를 찍겠다고 몰려들어 그곳에서 작업을 할 수가 없어요. ‘그런 식으로 누가 이렇게 찍었으니 나도 그렇게 찍어야지’ 한다고 해서 작품이 되는 건 아니에요. 무엇보다 개념이 잡혀 있어야 해요. 자신이 뭘 해야 할지 방향성을 갖고 일생 동안 추구해도 뜻을 이룰까 말까죠.

▼ 선생님도 방향성을 갖고 일생 동안 추구하셨습니까.

사진을 시작하고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한국적인 느낌을 찾기 위해 노력했어요. 그러다 소나무를 만났어요. 저는 그림 속의 소나무를 찍고 싶었어요. 겸재 정선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소나무를 사진에 담고 싶어서 동양화를 꾸준히 봤어요. 학고재에서 열리는 전시를 10년 동안 빼놓지 않고 봤죠. 이후 30여 년간은 전 세계 유명 전시들도 꾸준히 봤고요. 동양화를 보면서 이 그림들을 카메라로 어떻게 표현할지 계속 고민했죠. 요 며칠은 조선 후기 화가인 신안 출신 조희룡의 책을 읽었는데 이 사람이 시·서·화에 능해요. 글씨도 추사만큼 써요. 그림보다 글씨가 좋아요. 이렇게 자꾸 보고 또 보고 하죠. 결국은 축적된 것들이 사진으로 나타나는 거예요. 유행을 좇지 않고 자신의 것을 지속적으로 하는 게 중요해요. 유행을 좇다 보면 늘 뒷북만 치는 결과를 낳죠.

소나무 사진이 잘 팔리지만 바다가 더 좋아

배병우 선생은 메모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다. 가끔 사석에서 만나면 메모해둔 것을 보여주는데, 필체가 힘 있고 아름다운 데다 세세한 것까지 기록돼 있다. 한번은 유럽에서 몇 개월을 머무를 때 먹고 싶은 생선 이름을 뭐라고 말해야 하는지 몰라 정말 힘들었다며 스페인 말과 우리나라 말로 생선 이름을 빼곡하게 적어놓은 메모장을 보여준 적도 있다. 당시 스페인에서 맛있기로 유명한 생선 이름도 알려줬는데 메모해두지 않아 잊어버렸다.

▼ 좋아하는 글이나 말을 틈틈이 메모해서 항상 지니고 다니시던데, 요즘은 어떤 글에 매료됐나요.

당나라 왕유는 ‘시는 말로 하는 그림이고, 그림은 말 없는 시’라 했고, 두보는 책 1천 권을 읽으면 신필이 된다고 했어요. 명나라 동기창은 ‘독만권서 행만리로 교만인우’라 했지요. 1만 권의 책을 읽고 1만 리를 여행하고 1만 명의 사람을 만나면 예술의 경지에 이른다는 뜻이죠.

늘 푸른 소나무처럼 피사체와 조우하다 배·병·우
▼ 평소 ‘나는 끝까지 찍는 스타일이다’라는 얘기를 자주 하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처음 종묘를 촬영해달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 촬영 기간을 3개월로 이야기하더라고요. 그래서 2년으로 늘려달라고 했죠. 비가 많으면 단풍이 곱지 않고, 내린 눈이 적으면 설경이 제대로 나올 리 없거든요. 방법이 없어요. 다음 계절에 다시 찍어야지. 그러다 보니 눈 내린 종묘 풍경만 15번을 찍었죠. 제가 원하는 그림이 나올 때까지 찍어야만 직성이 풀리거든요.

▼ 촬영 기간이 길어지면 비용을 더 청구할 수 있으니 나쁘지만은 않겠네요.

하하. 비용은 더 안 줘요. 한번 계약하면 끝이에요.

▼ 여수 오금도였나? 제가 촬영 현장에 따라간 적이 있어요. 해 뜨기 전 사진을 찍어야 한다며, 전날 음주를 했음에도 새벽부터 산행을 하셨더랬죠(전날 마침 미리 가 있던 김기덕 감독과 더불어 술자리에 참석한 나는 새벽녘 능선 오름 500m를 못 넘기고 포기한 탓에 촬영 순간을 놓친 안타까운 기억이 있다).

저는 작업을 해 질 녘이나 해 뜨기 직전에 하죠. 렌즈는 하나만 쓰고 줌 기능은 안 써요. 빛이라는 놈이 시시각각 변하니 몸을 빨리빨리 움직여야 하거든요. 장비까지 들고 산을 타야 하니 체력이 좋아야 해요. 촬영할 때는 전날 술을 아무리 많이 마셔도 꼭 새벽에 일어나요. 웬만한 체력으로는 사실 동행하기 어렵죠. 현장에서 최대한 많은 작업을 하기 위해 사전에 밑그림도 그려보고 생각도 많이 하고 나서 카메라를 들어요. 그러면 빛이 허락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남아 한 장이라도 더 찍을 수 있죠.

▼ 최종 작품 선택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나요.

많이 찍어서 의뢰인에게 다양한 선택권을 주는 편이에요. 10장을 원하면 20장쯤 찍어서 고를 수 있도록 하죠. 베스트 컷에 대한 생각도 저와 미묘하게 다를 때가 많아요. 개인적으로는 바다가 더 좋은데 주로 팔리는 것은 소나무인 것처럼요.

▼ 아~! 선생님의 바다, 저도 좋아요. 여수 본가 거실에 걸려있는 그 푸른 바다를 잊을 수가 없어요. 저를 계속 끌어당겨서 그 앞에 오래 서 있던 기억이 나요. 그런데 작품에 색감이 있는 자체가 ‘배병우’다워 보이지 않던걸요.

그러니 저는 계속 소나무를 찍어야 해요. 하하.

▼ 자신을 ‘비로소 작가구나’ 하고 보게 된 건 언제부터인가요.

사진 작업을 한 10년 하니까 사진이 뭔지 좀 알겠더라고요. 지금은 디지털 시대라 바로 영상을 볼 수 있지만 아날로그로 암실 작업을 하기는 상당히 까다롭죠. 꾸준히 끈기 있게 했어요. 그리고 지쳤죠. 지쳐도 너무 지쳤다 싶을 때 소나무가 팔리기 시작했죠.

그의 작품은 미국의 마이클 베이 감독이나 벨기에 국왕 같은 세계적 유명 인사에게 인기가 좋다. 2006년에는 영국 가수 엘튼 존이 그의 작품을 구입해 화제가 된 바 있다.

▼ 작품 구매자 가운데 특히 기억에 남는 사람은 누군가요.

유럽에서 제 작품을 구입한 후 저녁 식사에 저를 초대한 사람이 있어요. 제 작품을 사려면 목돈이 필요해서 3년 동안 적금을 부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분이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죽는 날까지 사진 찍고 싶을 뿐

사진을 시작하면서 세계적 작가를 목표로 삼은 그는 이미 그 꿈을 이룬 듯 보인다. 이탈리아 피렌체에 본사를 둔 유명 화장품 회사에서 나오는 향수 ‘알바디 서울(서울의 새벽)’ 케이스에 그의 사진이 실려 있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음악제 중 하나인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그의 작품을 포스터 사진으로 쓰고 있지 않은가. 드리스 반 노튼 같은 유명 패션 디자이너가 그의 전시를 보러 오프닝 행사에 참석하는 것도 예삿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목표에 도달하려면 멀었다고 말한다.

“아직은 아니죠. 더 해야죠. 평생을 작업한 소나무도 아직 제가 원하는 만큼 완성이 안 됐어요.”

▼ 소나무 사진은 여기저기서 차용되고 있을 정도로 성공한 작품입니다. 원작자로서 기분이 어떤가요.

유명하다고 성공한 것은 아닙니다. 처음으로 창의적인 생각이나 변화된 생각을 한 사람들을 보호해줘야죠. 이미지 차용이 훈련이나 연습을 위한 거라면 상관없어요. 반 고흐도 밀레와 렘브란트의 작품을 모사했으니까요. 하지만 상업적으로 이용한다면 분명히 문제가 있죠. 얼마 전 자연경관은 만인이 공유하는 창작 소재로 이를 담은 예술작품은 저작권의 대상이 아니란 판결이 있었는데, 이전에 없던 것을 처음으로 창조한 사람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으면 창작의 미래는 없을 거예요.

▼ 지금 선생님 작품 가격은 어느 정도인가요.

4만~6만 유로요. 한화로 5천만원에서 8천만원 정도죠. 작품 하나를 팔면 제작비와 운송비를 제하고 화랑에 50%를 내줘요. 남은 금액에서 세금 40%까지 제하고 나면 수중에 들어오는 돈은 얼마 안 돼요. 생각만큼 그리 많이 못 벌죠. 그런데도 다들 돈을 아주 많이 버는 줄 알아요. 하하하. 사진 중 가장 비싸게 팔린 건 아파트의 창문들이나 북한의 매스게임을 소재로 한 독일 작가 안드레아스 구르스키의 작품이에요. 무려 47억원에 팔렸죠(하지만 그와의 인터뷰 이후 그 기록이 깨졌다. 외신에 따르면 호주 풍경을 즐겨 담는 사진작가 피터 릭이 미국 애리조나에서 촬영한 작품 ‘팬텀’은 6백50만 달러, 한화로 약 72억원에 팔리며 세계 기록을 경신했다).

▼ 작가로서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이 있습니까.

일본 에도시대에 활동한, 일본 역사상 최고의 화가인 가쓰시카 호쿠사이(1760~1849)가 89세까지 살았어요. 그런데 죽기 전에 ‘10년만 더 살 수 있다면 훌륭한 화가가 될 수 있을 텐데’라는 말을 했어요. 저는 그저 죽는 날까지 사진을 찍고 싶을 뿐입니다. 특별한 게 뭐 있겠어요. 젊은 시절처럼 밥 걱정하며 사는 것도 아니고. 미술에는 흐름이 있어서 소나무 사진이 얼마나 더 사랑받을지 몰라요. 저는 바다를 더 좋아하지만 소나무가 꾸준히 팔리니 그걸 계속 찍어야죠. 그래야 바다도 더 찍을 수 있지 않겠어요. 유행에 연연하지 않고 제가 좋아하는 사진을 계속 찍을 겁니다.

◇ EPILOGUE

늘 반짝이기만 하는 인생은 없다

늘 푸른 소나무처럼 피사체와 조우하다 배·병·우
배병우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지금 이 순간에 도달하기까지 험난했던 그의 젊은 시절이 보이는 듯하다. 또한 겉으로는 “세계적 작가가 될 수 있도록 돕겠다”고 말하던 아내와의 사별을 담담하게 말하지만, 실은 아내를 떠나보낸 후 이기적이기만 했던 자신을 고통스럽게 자책해온 그의 속내도 보인다.

그럼에도 나이가 드니 주책이라며 요즘은 예쁜 여자들을 보면 마음이 동한다는, 여전히 열정적이고 솔직한 그에게서 자기 길을 항상 우직하게 걸어온 작가 배병우의 뚝심이 느껴진다. 그렇게 걷다가 꼭 그가 스스로 인정하는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닿기를 바란다. ‘지쳐서 쓰러질 것 같은 그 순간까지도 버텨내면서 포기하지 않으며 지켜온 것이 있던가’라는 질문을 다시 한 번 내게 던지면서 말이다.

디자인·최진이 기자

여성동아 2015년 1월 6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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