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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특집기획 | 세계의 여성 리더

성공을 꿈꾸는 여성 위한 3가지 키워드

Interview | 골프 여제 아니카 소렌스탐

글·김명희 기자|사진·홍태식, 아니카 소렌스탐 블로그

2014. 12. 16

요즘 스웨덴 사람들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두 가지가 그룹 아바와 아니카 소렌스탐이라는 말이 있다. LPGA 역사상 최고의 여성 골퍼로 꼽히는 소렌스탐은 결혼 후 사업가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그가 커리어와 가정 사이에서 고민하는 여성들에게 던지는 메시지.

성공을 꿈꾸는 여성 위한 3가지 키워드
지난 9월 LPGA 메이저 대회인 프랑스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김효주 선수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롤 모델로 아니카 소렌스탐(44)을 꼽았다. 스웨덴 출신 소렌스탐은 LPGA 역대 최고 선수로 꼽힌다. 현역 시절 그는 통산 93승을 올렸으며 이 가운데 메이저 대회 우승이 10번이나 된다. 1998년과 2001~2005년 세계 랭킹 1위를 차지했으며 그가 획득한 상금 총액은 2천2백만 달러(약 2백40억원)에 이른다. 2001년 세운 한 라운드 최저타(59타)는 지금까지 난공불락의 기록으로 남아 있다. 2003년에는 LPGA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김효주가 소렌스탐을 롤 모델로 꼽은 이유는 현역 시절의 화려한 성적 때문만은 아니다. 은퇴 후에도 활발히 활동하는 모습을 보며 골프뿐 아니라 인생에서도 프로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2008년 그린을 떠난 그는 이듬해 네 살 연하의 스포츠 매니지먼트 사업가와 결혼, 자신의 이름을 딴 ‘아니카(ANNIKA)’ 브랜드로 골프 아카데미, 골프 코스 디자인, 화장품, 의류 사업을 벌이고 있다. 한화리조트가 충남 태안에 조성한 ‘골든베이 골프 · 리조트’도 소렌스탐이 설계한 것이다. 슬하에 딸 아바와 아들 윌을 둔 워킹맘이기도 한 그는 요리와 육아에도 관심이 많아 그의 공식 사이트와 블로그 등에는 아이들의 사진과 근황, 요리 레시피 등이 다양하게 올라와 있다. 10월 초 제3회 세계여성경제포럼 참가차 방한한 그에게서 사업가로, 아내로, 그리고 아이들에게 꿈을 불어넣어주는 엄마로 살아가는 법을 들었다.

First Keyword | Goal&Passion

아니카 소렌스탐 하면 박세리의 라이벌, 혹은 얄미울 정도로 완벽한 골퍼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직접 만난 그는 자신감 넘치면서도 소탈했다. 부드러운 미소와 여전히 균형 잡힌 몸매에선 여유와 꾸준한 자기 관리의 흔적이 엿보였다. 보통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성들이 사생활을 드러내길 꺼려하는 것과 달리, 그는 가족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골프 선수로서 저는 제가 목표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이뤘어요. 가끔 그 사실이 믿기지 않아 제 자신을 꼬집어볼 때도 있죠. 스웨덴에서 온 작은 소녀에 불과했던 제가 골프 선수로 성공할 수 있었던 건 부모님, 그리고 경쟁자이기도 했던 동생 등 가족들의 도움과 헌신 덕분이었죠. 그래서 저도 아이들에게 자상한 엄마, 좋은 롤 모델이 되려고 노력해요.”

그의 인생은 열정이라는 단어를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육상 선수였던 아버지와 농구 선수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때 잉게마르 스텐마르크(스키), 비외른 보리(테니스) 같은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들을 보며 운동선수의 꿈을 키웠다. 처음에는 그들처럼 스키와 테니스를 배웠던 소렌스탐은 열여섯 살 때 골프로 전향했다. 이때부터 그의 마음속에서 최고가 되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운동을 하면서 항상 제가 속한 그룹 중 최고 실력을 가진 사람과 대결하는 걸 머릿속으로 그려보곤 했어요. 그가 남자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죠. 저는 경쟁심이 강한 편인데, 그런 성향 덕분에 더 강해질 수 있었어요.”

소렌스탐은 스무 살 때 스웨덴을 떠나 미국으로 골프 유학을 갔다. 처음 부모 곁에서 떨어져 뒷바라지해주는 사람도 없이 시작한 유학 생활이었지만 그는 학교생활과 골프, 그리고 친구들과의 관계 등에서 스스로 균형을 잡아나가는 일이 즐거웠다고 한다. 그렇게 목표에 매진한 덕분에 그는 프로로 데뷔한 이듬해인 1994년 LPGA 신인상을 거머쥔 데 이어 1995년부터는 줄곧 정상을 내달렸다. 하지만 목표를 이룬 후에는 정작 그 자리가 불편하게 느껴졌다고 한다.

“분명 1등이 목표였는데, 그 자리에 오르고 보니 제 자신이 준비가 안 돼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사람들이 1등에게 기대하는 다양한 역할들을 소화해내는 게 벅차게 느껴졌죠. 경험이 부족했던 탓인데, 지금 돌아보면 마치 서커스에서 저글링을 하는 것처럼 아슬아슬한 상황이었어요.”

성공을 꿈꾸는 여성 위한 3가지 키워드


성공을 꿈꾸는 여성 위한 3가지 키워드

역대 여성 골퍼 가운데 최고로 꼽히는 소렌스탐은 2008년 은퇴 후 이듬해 스포츠 매니지먼트 사업을 하는 남편과 결혼, 슬하에 남매를 두고 있다. 그는 살림과 자녀교육에도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고 있다.

목표를 상실한 그는 처음으로 흔들렸고, 이는 성적에도 반영돼서 2000년 호주 출신 골퍼 캐리 웹에게 정상의 자리를 내줬다. 뼈아픈 경험이었지만 소렌스탐은 이를 도약의 계기로 삼았다.

“먼저 슬럼프의 원인을 분석했어요. 스윙, 퍼팅, 체력과 정신력 등 모든 것을 검토한 끝에 체력과 퍼팅에 문제가 있다는 걸 깨닫고 훈련 방법을 바꾸고 트레이너를 고용해 체력을 키웠죠. 덕분에 그다음 시즌엔 1위 자리를 되찾을 수 있었어요. 정상에 올라서 느낀 건, 그 자리에 오르는 것도 힘들지만 유지하는 건 더 힘들다는 거예요. 수년에 걸쳐 힘들게 정상에 올랐다고 해도 꾸준히 자신을 점검하고 계속해서 새로운 목표를 세우지 않으면 추락하는 건 시간문제죠.”

Second Keyword | Challenge

소렌스탐은 골프를 비롯한 다른 운동과 사업, 그리고 인생은 여러 가지로 비슷한 점이 많다고 했다. 성공하기 위해선 자신에게 충실해야 하고, 시간을 투자해서 노력해야 하며 도전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도 기회가 닿는 한 이런 삶의 자세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하려 노력한다.

“딸은 다섯 살이고 아들은 세 살인데, 제가 아이들에게 종종 하는 이야기가 있어요. ‘엄마는 용기를 갖고 오는 기회를 주저하지 않고 잡았다. 너희도 할 수 있다는 꿈과 비전을 가지고 자라나길 바란다는 말이죠. 또한 딸에겐 여자이기 때문에 못한다는 생각을 버리라고, 아들에겐 여자들이 얼마나 뛰어난 사람들인지 조심해야 한다고 말하곤 해요.”

그는 커리어의 정점을 찍던 2003년 PGA 콜로니얼 대회에 출전을 선언했다. 남자 선수들은 물론 대중 가운데도 그의 도전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이들이 있었다. 당시 남자 골퍼 가운데 최정상으로 꼽히던 선수 중 한 사람인 비제이 싱은 “소렌스탐이 도대체 무엇을 증명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우스꽝스러운 일이다”라고 비난하며 경기에 불참했다. 하지만 소렌스탐에게 콜로니얼 대회는 남녀 구분을 뛰어넘어 자신의 한계를 시험해보기 위한 도전의 연장선상이었다. 비록 컷오프에서 탈락하기는 했지만 소렌스탐은 이 대회를 자신의 골프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도전으로 꼽는다.

“당시 저는 최고의 위치에 있었고, 뭔가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죠. 어릴 때부터 남자들과의 경쟁에 익숙했고, 이웃에 사는 타이거 우즈와 함께 연습을 하면서 집중력이라든가 열정 등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우즈 역시 마찬가지였으리라고 생각해요(웃음). 그런 것들이 콜로니얼 대회 참가를 결정하는 배경이 됐죠. 컷오프를 통과하지 못했으니, 누군가는 그걸 실패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제겐 세계 최고의 남자 선수들에게 도전해보는 기회였고 그 경험은 고스란히 제 자산이 됐죠.”

결국 소렌스탐은 그해 10월과 11월 열린 두 번의 스킨스 대회(각 홀마다 우승자를 가리는 경기 방식)에서 내로라하는 남자 선수들을 제치고 각각 2위를 차지, 자신의 실력을 입증해냈으며 무모한 도전이라는 비난도 잠재웠다.

Third Keyword | Relation&Reputation

스포츠의 세계는 정직해서 실력이 없으면 설 자리가 없다. 하지만 경쟁만 하면서 인생을 살 수는 없다. 그래서 소렌스탐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타인과의 관계와 평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관계와 평판의 힘은 특히 인생의 고비에서 빛을 발한다. 현역 시절 소렌스탐은 아놀드 파머, 타이거 우즈 등 다른 선수들과 자선 경기에 나서거나 소장품 경매 등을 통해 소외된 이웃을 돕는 일에 동참했다. 그리고 결혼 후 둘째인 윌을 가졌을 당시 7개월 만에 조산을 했는데, 당시 아놀드 파머가 설립한 자선 병원 중 한 곳인 위니 파머 병원에서 아이를 출산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2009년 처음 사업을 시작했을 당시,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경기 침체와 맞물려 위기를 맞았을 때도 평소 좋은 관계를 맺어두었던 지인들의 믿음과 도움으로 힘든 시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저는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먼저 연락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뭔가를 배우는 걸 좋아해요. 사회적으로 여성이 성공하는 것은 남성보다 훨씬 더 어려울 뿐 아니라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합니다. 혼자 모든 일을 해내려고 하기보단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것이 효율적이죠. 주변엔 자신보다 현명하고 똑똑한 사람들이 많답니다. 그들을 믿는 거예요. 소통과 공감은 여성들의 장점이지만 여성의 적은 여성인 경우도 종종 있죠. 골프 선수로 활동하던 시절 선수들끼리 소통이 부족해 오해가 생기기도 하고 뒷말이 나왔던 적도 있거든요. 시기와 질투는 인생에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아요. 여성들이 힘을 발휘하기 위해선 존중과 협력, 유대에 기반을 둔 견고한 네트워크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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