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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일 인생 고백

서랍 속 비밀까지 털어놓다

글 | 김유림 기자 사진 | 조영철 기자, 동아일보 사진DB파트

입력 2012.01.16 17:24:00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짱짱한 체력과 패션 감각을 겸비한 노신사, ‘바람’도 당당하게 사랑으로 미화할 수 있는 유일한 남자, 바로 신성일이다. 그가 자신의 인생을 기록한 자서전을 출간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특히 아내 엄앵란도 몰랐던, 한 여인과의 밀애 스토리는 가히 충격적이다.
신성일 인생 고백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는 말은 배우 신성일(75)에게 딱 어울린다. 캐주얼하면서도 정장 느낌이 나는 도톰한 베이지색 재킷에 브라운색 중절모, 밝은 갈색 벨트까지. 일흔이 넘은 할아버지가 직접 코디한 패션임에도 흠 잡을 데 없다. 처음 연기 수업을 받을 때 배운 대로 신성일은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겨울에 늘 가죽 장갑을 갖고 다닌다. 진갈색의 반들반들 윤이 나는 가죽 장갑은 인터뷰 사진 촬영 중 멋스러운 소품으로도 사용됐다. 헤어스타일도 예사롭지 않다. 백발의 보글보글한 파마머리인데, 정확히 45일마다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 자택 근처에 있는 “마누라 단골집”에서 파마를 만다.
최근 신성일은 인터넷 검색어 실시간 1위를 기록했다. 이유는 바로 그가 얼마 전 펴낸 자서전 ‘청춘은 맨발이다(문학세계사)’ 때문이다. 자서전은 지난 4월부터 신문에 연재해온 내용을 묶은 것인데, 새삼 책이 화제가 된 건 신문에서도 밝히지 않은 비화까지 상세하게 담았기 때문이다. 특히 신성일이 예전부터 밝혀온 ‘결혼 후 첫사랑’ 김영애씨와의 관계가 적나라하게 표현돼 있다. 다소 쇼킹하고 민감한 얘기인 만큼 그 부분을 보려면 책 가운데 밀봉된 페이지들을 찢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신성일은 “작가의 자존심”이라고 말했다. 어느 날 서점에서 두꺼운 외국 사진집이 비닐로 포장돼 있어 보지 못하자 결국 책을 사본 경험이 있어 이번 책을 펴내면서도 그가 직접 ‘밀봉 아이디어’를 냈다고 한다.

잊지 못할 사랑이 남긴 상처
그 안에 감춰져 있는 내용을 살짝 공개하자면, 신성일이 34세 때 만난 26세 김영애씨는 한평생 그의 마음속에 간직해온 사랑이다. 김씨는 초창기 여성 조종사 김경오 여사의 동생으로, 당시 미국 USC(남가주대) 경영대학원에 재학 중 여름방학을 맞아 서울에 왔다가 신성일과 볼링장에서 처음 만났다. 먼저 말을 걸어온 건 김씨. 신성일이 평소 언니와 잘 알고 지낸 사이임을 안 김씨가 자신을 소개하면서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됐다. 김씨에게 첫눈에 반한 신성일은 세 아이의 아빠임에도 앞뒤 재지 않고 격정적인 사랑에 빠졌다. 책에는 두 사람의 밀애가 소상하게 밝혀져 있는데, 충격적인 것은 김씨가 신성일의 아이를 가졌지만 톱스타인 신성일에게 피해가 갈 것을 염려해 낙태를 했다는 내용이다.
“당시 영애는 나를 ‘님’이라고 불렀어요. 어느 날 국제전화가 걸려왔는데, 임신을 했다는 거야. 순간 머리가 띵했지. 친구가 하는 영화사 사무실에서 전화를 받았는데 그때만 해도 국제전화가 감이 좋지 않아서 고함을 질러가며 얘기해야 했어요. 주위 사람들이 있으니까 내가 대답을 못하고 한참을 있었지. 그랬더니 영애가 ‘제가 알아서 할게요’ 하고 전화를 끊더군요. 그 후로 1년 동안 연락이 없다가 LA 한국일보 소식란에서 내가 베를린 영화제에 참석한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영애가 독일 베를린으로 날아왔어요. 내가 묵는 호텔 프런트에 메모를 남겨서 극적으로 재회했는데, 당시 영애는 삭발을 하고 있었어요. 수척해진 모습을 보니까 그동안 내가 얼마나 남자답지 못했는지 알겠더라고요. 그날 죄책감에 얼굴이 눈물범벅이 되도록 많이 울었어요.”
그렇게 다시 만난 두 사람은 두 달 동안 유럽을 휘저으며 이별 여행을 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10여 년의 세월이 흐른 뒤, 신성일은 이미 두 사람 사이를 알고 있던 아내 엄앵란으로부터 김씨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가 손에 들고 있던 밥숟가락을 내려놓으며 “그렇게 죽을 줄 알았으면 더 잘해줄걸” 하고 혼잣말을 하자 엄앵란은 화를 내며 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가버렸다고 한다. 아내로서 당연히 불쾌할 수밖에 없는 일. 그럼에도 엄앵란은 훗날 김씨를 위해 천도재까지 지내줬다.
“15년 전 아내가 ‘뜨거운 가슴에 좌절이란 없다’란 책을 펴냈는데, 그때 집필을 맡았던 작가가 어느 날 하도 진도가 안 나가서 집 근처를 산책하던 중 역술인 간판이 눈에 띄어서 재미 삼아 그 집에 들어갔대요. 점쟁이한테 이러저러한 상황을 얘기하니까 대뜸 저희 집에 구천을 떠도는 애타는 영혼이 있다고 했다는 거예요. 아내가 그 얘기를 듣고는 영혼을 달래주는 천도재를 지내자고 제안하더라고요. ‘돈도 많이 드는데 뭘 하려고 하냐’고 했더니 그래도 집안에 안 좋은 일 생길까 걱정된다며 비용을 반반씩 부담하자고 해서 했어요.”

그래도… 언제나 고마운 내 마누라 엄앵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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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자서전이 세상에 공개되고 김영애와의 러브 스토리가 새삼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뒤 엄앵란과 신성일의 관계는 냉랭해졌다고 한다. 더군다나 엄앵란은 지금껏 김영애의 낙태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없는지 궁금했는데, 그는 즉답을 피했다.
“물론 아내가 언짢아하는 부분을 충분히 이해하죠. 하지만 저도 억울한 게 아예 없는 게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제가 천하에 파렴치한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요즘 백화점에서 한 달에 두 번 문화아카데미 특강을 하고 있는데 주부들이 꽤 많이 와요. 그때도 지금이랑 똑같은 질문을 받아요. 하지만 우리 마누라가 강연회에서 써먹는 내용처럼 제가 그렇게 바람둥이는 아니에요. 플레이보이는 그야말로 이 여자 저 여자 만나고 다니는 게 플레이보이 아닙니까. 우리나라 사람 거의 다 알아보는 이 얼굴로 얼마나 많은 분들과 데이트를 할 수 있었겠어요. 물론 평생 아내 한 명만 바라보고 살진 않았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너저분하게 살지는 않았습니다. 그걸 생각하면 솔직히 저도 억울해요.”
그러면서 그는 “이번에는 (냉각기가) 꽤 오래갈 것 같다”고 했다. 그동안 부침이 있었지만 그래도 50년 가까이 부부의 연을 이어가고 있는 두 사람은 지금처럼 사이가 좋지 않을 때는 서로 얼굴을 보지 않는 게 최선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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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신성일은 1981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한 후폭풍으로 하루아침에 빚쟁이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 사연을 설명하며 엄앵란의 고생도 얼마나 컸는지를 기록해놓고 있다.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한 신성일은 선거 바로 다음 날 돌아온 당좌수표를 막지 못해 부도를 냈다. 하루는 빚쟁이 네 명이 동부이촌동 아파트로 몰려와 채무지불각서를 쓰라며 협박을 했고, 당시 혼자 집에 있던 엄앵란은 거친 빚쟁이들과 마주 앉아 담담하게 말했다. “이렇게 하시면, 간단해요. 여러분 보는 앞에서 여기 15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리면 됩니다.” 결국 빚쟁이들 중 가장 나이 많은 분이 엄앵란의 말을 듣고는 “갑시다. 이 사람도 시간을 줘야 돈을 벌 것 아닌가. 엄 여사는 돈 떼먹을 사람 아닌 걸 알아” 하고는 오히려 힘내라고 위로하며 집 밖을 나섰다고 한다.
하지만 연달아 또 다른 악재가 터졌다. 당시 신성일이 협회장으로 있던 배우협회 문제였다. 그가 선거 준비로 협회에 신경을 쓰지 못한 사이 사무국장이 운영비 2천5백만원을 유용한 것이었다. 물론 사인은 그가 했기에 책임도 그에게 돌아왔다. 법원에서 1차 진술 후 2천5백만원의 10%인 2백50만원을 벌금으로 내라는 판결이 났는데, 감옥행을 각오하고 판사에게 “몸으로 때우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그는 감옥에 가지 않았다. 이 일과 관련해 아내에게 일절 얘기를 하지 않았음에도 엄앵란이 판사로부터 상황을 듣고 대신 돈을 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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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의 낙선 끝에 대구 동구에서 국회의원으로 뽑힌 신성일이 아내 엄앵란의 볼에 키스를 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이들 부부는 철저하게 딴 주머니를 차고 산다. 이는 신성일이 두 번째 국회의원직에 도전할 때 엄앵란이 먼저 제안한 것이라고 한다. 빚 때문에 숱하게 고생한 부부의 고육책이었던 것. 신성일은 두 번째 도전에서도 고배를 마신 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뛰어든 제16대 총선에서 금배지를 가슴에 달았다. 하지만 그는 그토록 갈망했던 정치 때문에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고통도 맛보았다. 2005년 불법 정치후원금 수수 혐의로 구속돼 교도소에서 2년을 보낸 것이다.
“구속 첫날은 잠을 자지 못했어요. 감방에는 24시간 불이 켜져 있고 스위치도 없어요. 물품도 마음대로 살 수 없죠. 지급받은 것 이외의 신발, 내의, 담요 등은 가족이 매점에서 사서 넣어줬어요. 하지만 바깥에서 쓰던 것과는 천지 차이였죠. 대신 그곳에 있으면서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황석영의 ‘장길산’, 이문열의 ‘삼국지’ 등을 미친 듯이 읽었어요. 또 매일 아침 108배를 올렸고 ‘반야심경’ 2백6자를 썼죠. 냉수마찰로 건강도 지켰고 원예반에서 국화도 길렀어요.”
그가 힘든 상황에서도 자신을 놓지 않고 열심히 생활하는 사이 밖에서는 구명운동이 벌어졌다. 결국 그는 2007년 특별사면을 받아 당초 받은 실형보다 3년이나 빨리 출감했다. 그리고 이듬해, 그는 경북 영천으로 내려가 한옥집을 지어 새로운 안식처를 마련했다. 이름도 성일가(星一家)로 붙였는데, 어느덧 이곳은 영천의 명물로 자리 잡았다. 건평 145㎡(약 44평)에 오대산 월정사 부근의 금강송으로 탄탄하게 지었고, 나무 공예가가 선물한 원두막 옆에 직접 땅을 파서 인공 연못도 만들어놓았다. 서예가가 바위에 새겨준 문패까지, 그림 같은 풍경을 자랑한다.
“잘 짓고 관리만 잘하면 천년 넘게 가는 게 목조 건물이에요. 영천 내려온 지 4년짼데 해마다 가을이면 나무에 기름칠을 해요. 그래야 눈비를 맞아도 썩지 않고 튼튼하게 오래가죠. 집 동쪽으로는 애향산, 서쪽으로는 채약산, 남동쪽으로 금오산에 둘러싸여 있어서 참 포근해 보여요. 또 담장이 없는 게 특징인데 풍수지리학자들은 기가 빠져나간다면서 담을 쌓으라고 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사방을 탁 터놓아도 사소한 물건 하나 집어가는 사람이 없어요.”
그곳에서 그는 마냥 자유를 누리고 있다. 새빨간 소형 BMW를 타고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 달려간다. 헤어스타일도 자유분방하기 그지없다. 은발의 파마머리는 그가 감옥에서 옥고를 치를 때 윤정희·백건우 부부가 선물해준 ‘베토벤의 삶과 음악 세계’란 책을 읽고 그의 삶에 감동받아 스스로 택한 것이다.
“파마머리를 하니 얼마나 편한지 몰라요. 국회의원 할 때는 때때로 염색을 하고, 어디 나가려면 꼭 머리를 감고 단장해야 했는데, 지금은 자고 일어나서도 물만 살짝 묻히면 다시 스타일이 살아나니 편할 수밖에. 교도소에서 출소하기 전날 가족들이 마지막 면회 왔을 때 막내딸한테 엄마 다니는 미용실에 파마 예약 넣으라고 필히 부탁을 했어요(웃음).”

끝까지 흐트러진 모습 보이고 싶지 않아 날마다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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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일은 일흔이 넘은 나이에 아내에게서 독립해 혼자 모든 생활을 꾸려가는 것을 무척 자랑스러워하는 듯했다. 식사 준비는 물론 빨래와 청소 등 모든 집 안 살림을 직접 한다는 그는 “국회의원 하겠다고 혼자 대구 내려가서 살 때부터 다 해왔던 거라 새삼스럽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 나이에 나는 길 잃어버릴까 봐 걱정되는 ‘정년의 미아’도 아니고, 가족들 다 있는 거실에서 무게 잡고 있는 ‘공포의 응접실남’도 아니고, 하루 종일 집 안에서 파자마만 입고 있는 ‘파자마맨’도 아닌 독립된 인간”이라며 기세등등하게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신성일은 자기 관리에 있어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철저하다. 젊은이 못지 않은 근육질 몸매를 자랑하는 것도 꾸준한 운동과 절제된 식습관 덕분이다. 그는 요즘도 매일 아침 샌드백을 치고, 아령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걷기도 좋아해 웬만한 거리는 일부러 걸어 다닌다고 한다.
“사람들에게 항상 건강하고 정돈된 모습만 보여드리고 싶어요. 흐트러진 모습은 나 자신이 용납할 수 없으니까. 언젠가 기력이 떨어진다면 영천에서 파묻혀 밖으로 나오지 않을 거예요. 주위 사람들에게도 내가 죽으면 우리 집 앞마당에 수목장을 해달라고 했어요. 지금처럼 행복하게 살다가 편안하게 눈감으면 그걸로 됐지 뭐.”
그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를 꼽아달라는 부탁에 잠시의 주저함도 없이 ‘사랑’을 꼽았다. 비단 남녀 간의 사랑만을 말하는 건 아니라고 했다. 시골 생활을 통해 모든 사물이 지닌 사랑을 몸소 느끼면서 역시 인간에게 필요한 건 사랑이라는 확신이 든다고 한다.
“시골에 살아보니까 벌레 하나도 사랑스러워요. 벌레에 물려도 ‘저놈도 살려고 그러는 거겠지’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죠. 모든 게 아름답고 행복해 보여요. 각박한 삶이지만 언제나 마음속에는 사랑이 넘실대면 좋겠습니다. 사랑 앞에서는 불신도 투쟁도 다 사라져버린다는 걸 사람들이 알면 좋겠어요.”

장소협찬 | 충정각(02-313-0424)

여성동아 2012년 1월 5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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