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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스타의 몰락

파산 직전 심형래 타워팰리스·영구아트 가보니…

임금 체불, 산더미 부채, 도박·위장 이혼설

글·김명희 기자 사진·김형우 박해윤 기자, 동아일보 사진DB파트

2011. 10. 14

개그맨에서 영화감독으로 전업해 ‘용가리’ ‘디워’ 등을 제작하고 할리우드에도 진출했던 심형래가 임금 체불로 물의를 빚은 가운데 그가 운영하는 영구아트도 사실상 폐업 상태인 것으로 확인됐다. 회사와 도곡동 타워팰리스 자택은 압류된 상태. 알려진 채무액만 60억원 상당인 가운데 그가 강원도 정선 카지노에 드나들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불가능을 모르는 도전적인 사업가로만 믿었던 심형래의 추락은 그를 믿고 응원했던 국민들에게도 큰 충격이다.

파산 직전 심형래 타워팰리스·영구아트 가보니…


심형래(53)는 뚝심의 상징이었다. 잘생기거나 달변이 아닌 대신 망가지고 깨지는 캐릭터로 웃음을 선사했다. 바보 연기로 일가를 이룬 그가 1993년 영화 제작에 뛰어들었을 때는 ‘개그맨이 영화는 무슨’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런 편견을 뛰어넘어 영구아트무비(이하 영구아트)를 설립하고 몇 차례 실패를 맛보기는 했지만 2007년 ‘디워’를 통해 할리우드를 비롯한 해외 시장에까지 진출하며 재기에 성공했다. 이런 그에게 ‘한국 SF의 선구자’라는 닉네임이 붙었고 ‘심형래를 지지하는 것이 한국인의 자존심을 지키는 것’이라는 분위기가 조성되기도 했다. 이에 힘입어 ‘디워’는 국내에서 8백40만 관객을 동원했다. 지난해 12월 개봉한 영화 ‘라스트갓파더’가 완성도나 흥행 면에서 실망스럽긴 했지만, 그의 영화에 대한 열정과 도전정신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최근 그를 둘러싼 불미스러운 일들이 끝도 없이 불거지고 있다. 그가 운영하는 회사인 영구아트 직원 임금 체불, 도박설, 위장 이혼설 등이 그것. 이 가운데 이미 상당 부분은 사실로 드러나 심형래는 법적·도덕적으로 치명상을 입게 됐다.

“정선 카지노 드나들고, 20억 제작비 1백20억으로 부풀리기 했다” 주장 제기
심형래 사건이 처음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8월 말 영화사 영구아트가 임금 체불로 조사를 받은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다. 서울지방노동청 남부지청에 따르면 8월 초 영구아트 직원 43명은 수개월 동안 월급을 받지 못했다고 진정서를 제출했다. 심형래는 이와 관련, 8월19일 남부지청에 출두해 조사를 받았으며 대부분의 내용을 시인했으나 뚜렷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영구아트 직원 4명은 기자회견을 열고 그간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상세히 털어놓았다.
영구아트는 서울 강서구 오곡동 변두리에 자리 잡고 있었다. 기자가 이곳을 찾았을 땐 사람의 출입이 끊긴 지 이미 오랜 듯 건물 마당에는 잡초가 무성했고, 담장을 대신해 쳐놓은 철조망도 녹슬어 있었다. 회사 출입문은 굳게 잠겨 있었고, 유리창 너머로 들여다본 사무실 내부는 먼지가 쌓인 가운데 영화 제작에 사용한 소품과 미니어처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이 회사 건물과 토지는 모두 건강보험료 체불로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압류된 상태다. 이에 앞서 영구아트는 6월과 7월 직원들에게 권고사직을 종용했으며 이 과정에서 직원 대부분이 회사를 그만뒀다. 이날 기자회견을 연 직원들도 모두 권고사직을 받았다고 한다.
직원 43명의 체불 임금은 총 8억원 정도. 갓 입사한 직원은 한두 달치 월급이 밀렸지만 근속 연수가 오래된 직원의 경우는 퇴직금과 밀린 월급을 합해 5천만원 정도가 체불됐다고 한다. 직원들은 “회사가 이 지경까지 이른 데는 심형래 사장이 다른 일에 한눈을 판 게 원인이었다”며 조심스럽게 그의 도박설을 제기했다. 한 직원은 “사장님이 1천만원, 3천만원 이런 식으로 돈을 보내라고 (회사로) 전화를 하곤 했다. 직접 확인한 건 아니지만 강원도 정선 카지노로 금요일에 가서 일요일에 오는 것 같았다. 늦은 시간에 정선에서 택시가 와 사장님을 태우고 가는 걸 목격한 직원들도 있다”고 말했다. 직원들은 “2008년 ‘디워’가 흥행에 성공한 후 외부로부터 투자 제안이 많았으나 심형래 사장이 도박을 하느라 기회를 놓친 것 같다. 그 부분이 가장 아쉽고 답답하다. 우리도 진상을 알고 싶다”고 말했다.

파산 직전 심형래 타워팰리스·영구아트 가보니…

강서구 오곡동에 있는 영구아트. 직원들의 발길이 끊긴 이곳은 잡초만 무성했다. 심형래도 지난 7월을 끝으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회사 정리하는 과정에서 “이혼할 거다” 말 흘려



파산 직전 심형래 타워팰리스·영구아트 가보니…

심형래는 얼마전까지 최고급 빌라 타워팰리스에 거주했으나 압류됐고, 현재 이곳에는 다른 사람이 살고 있다.



10년 가까이 회사 내 가건물에서 살다시피하며 심형래와 고락을 함께한 직원들은 “(심형래의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더라도) 그동안 회사가 어려웠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래서 여러 문제점들을 알고도 그냥 넘긴 것이다. 이제 심형래 사장의 사과와 함께 책임 있는 행동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심형래는 이런 의혹이 불거진 뒤 아무런 해명 없이 잠적했다. 회사 경비원에 따르면 7월부터는 회사에도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9월초 인터넷에는 그를 ‘일본에서 봤다. 몹시 초조해 보였고 누군가와 심각하게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다’는 목격담이 올라왔지만 현재는 귀국해서 한국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휴대전화로 연락을 시도했지만 처음에는 전화를 받지 않았고, 추석 연휴 이후에는 아예 전원이 꺼져 있었다.
직원들이 제기한 또 하나의 의혹은 영화 제작비 부풀리기다. 한 직원은 “미술 제작비 20억원 정도를 1백20억~1백50억원으로 부풀려서 외부에 공개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정도가 너무 심해 직원들이 걱정하자 회사 측에선 “그래야 우리 수익이 많다. 직원들 월급 주기 위한 방편이다”라는 답이 돌아왔다고. 그간 ‘디워’의 총 제작비는 마케팅비를 포함 3백50억원 선으로 알려져 있었으며 국내외 입장료 수입, DVD 판권 판매 등으로 꽤 많은 부가 수익을 올렸지만 최종적으로는 1백억원 정도 적자를 본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직원들 말이 사실이라면 ‘디워’의 총투자 금액도, 적자 폭도 신뢰할 수 없게 된다. 수익을 내고서도 적자를 봤다고 발표했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해 직원들은 “‘디워’는 미국에서 진행된 일이 많기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심형래 가족이 살고 있다는 서울 도곡동 타워팰리스를 찾았다. 그의 집은 타워팰리스 가운데 전망이 좋은 고층부에 있었으며 244.66m(74평형)이다. 심형래는 2002년 아내 김모씨와 공동 명의로 이 집을 장만했다. 현재 시세는 28억~30억원 선. 하지만 심형래는 집을 담보로 이미 상당액을 대출받은 데다 그의 지분은 시흥세무서, 강서세무서, 저축은행, 한국무역보험공사 등에 압류된 상태였다. 이 가운데 공사의 청구액은 34억원에 달한다. 아내 김씨 지분도 중소기업진흥공단에 압류돼 있었다. 심형래는 이미 다른 곳으로 이사 가고 없었다.
시사주간지 ‘일요신문’에 따르면 심형래는 회사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영구아트 직원들에게 “이혼할 거다”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위장 이혼설도 제기되고 있다. 심형래와 이화여대 음대 출신 김씨는 열 살 차이로 1992년 결혼했다. 당시 김씨의 친정아버지는 운송업, 빌딩업 등을 하는 상당한 재력가로 알려졌으며 김씨도 결혼 후 커피숍 등을 경영하는 등 독자적인 경제활동을 했다. 따라서 심형래가 김씨의 재산을 지키려고 위장 이혼을 했을 가능성은 있지만,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1~2년 전부터 감정 기복 심하고 지인들과 소원해져

파산 직전 심형래 타워팰리스·영구아트 가보니…

‘디워’로 ‘한국 SF의 선구자’라는 별명을 얻었던 심형래.



현재 심형래는 제1금융권에만 48억원의 채무가 있다. 여기에 체불 임금 8억원을 합하면 총 56억원. 이 밖에도 제2금융권인 현대스위스상호저축은행과도 채무 관계로 소송을 벌이고 있다. 앞서 심형래는 2004년 ‘디워’ 제작비 마련을 위해 현대스위스상호저축은행과 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 계약을 맺었다. 연리 10%로 55억원을 빌리는 대신 개봉일로부터 5년간 영화 사업 관련 이익의 12.5%를 은행에 지급하는 내용이었다. 심형래는 2005~2007년 수차례 추가로 대출을 받은 뒤 일부는 변제했지만 결국 25억원가량 갚지 못했다. 저축은행은 2009년 이를 갚으라고 소송을 제기했는데 1심 재판부는 심형래의 손을, 2심 재판부는 저축은행의 손을 들어준 상태. 3심에서는 법무장관을 지낸 강금실 법무법인 원 대표가 심형래의 변호를 맡을 예정이어서 눈길을 끈다. 심형래는 이 소송에서 패할 경우 원금과 이자를 합해 총 40억원 상당을 변제해야 한다. 그 경우 빚은 1백억원 가까이로 늘어난다.
또 하나 안타까운 사실은 그가 지인들과도 소원해졌다는 점이다. 그와 형 동생 사이로 지내던 한 방송 관계자는 “심형래씨가 원래 소탈한 성격인데 1~2년 전부터 감정의 기복이 심해져서 사소한 말이나 행동에도 민감하게 반응했고, 서운해하는 일이 잦았으며 연락도 잘 안 됐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심형래와 친분이 두터웠던 연예계 선후배 가운데 상당수가 그와 이미 거리가 멀어진 상태라고 말했다.
심형래의 든든한 지지 기반이던 팬 카페 운영자도 9월5일 ‘그동안 심형래를 응원했던 게 억울하고, 배신감을 느낀다’는 글을 끝으로 카페를 폐쇄했다. 심형래는 돈도 잃고 인심도 잃었다. 아무리 넘어지고 깨지는 슬랩스틱 코미디 전문이라지만, 이번만큼은 그의 재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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