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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이색 해외여행

양배추와 콘돔 레스토랑 & 버즈 앤 비즈 리조트

동남아의 오아시스, 태국 방콕의 재발견

글&사진·백세현 사진제공·REX, 버드 앤 비즈 리조트

입력 2011.07.05 09:56:00

양배추와 콘돔 레스토랑 & 버즈 앤 비즈 리조트


태국을 방문하는 관광객은 1년에 얼마나 될까. 태국 관광청에 따르면 2010년에만 약 1천5백만 명이 다녀갔다고 한다. ‘론리 플래닛(Lonely Planet)’이라는 세계적인 여행 가이드북 출판사는 태국을 2010년 가장 방문할 만한 가치가 있는 곳 2위로 꼽았다. 나의 첫 태국 방문은 2008년에 이루어졌다. 여름휴가를 앞두고 불현듯 동남아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다. 그때까지 수도 없이 비행기를 탔지만 여행지는 주로 유럽 국가에 국한됐다. 당시 스웨덴 스톡홀름행 항공권을 예약해놓은 상태였지만 바로 취소하고 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러나 태국 방콕의 첫인상은 실망스러웠다. 깔끔하면서도 역사와 전통이 잘 보존된 유럽 도시들이나 내가 줄곧 살아온 서울과 비교했을 때 너무 큰 차이가 느껴졌다.
그러나 이후 20여 차례 태국을 방문하면서 차츰 시각이 바뀌었다. 특히 지난해 캄보디아에서 근무할 기회가 있어 8개월 가까이 머무는 동안 동남아에서 태국이 차지하는 위상을 실감할 수 있었다. 특히 태국의 수도 방콕은 주변 국가들에게 일종의 로망이었다. 캄보디아인들은 방콕을 묘사할 때마다 부러움을 담아 “싸아-드(아름답다)”라고 말하곤 했다.

관광 천국이 된 다정한 ‘스와디카’의 나라
아무리 경치가 아름답고 물가가 싸도 고약하기 그지없는 인심을 접하면 그 여행은 즐거운 추억으로 남기 어렵다. 일단 태국이라면 이런 걱정이 필요 없다. 태국 사람들은 항상 ‘코픈카(감사합니다)’와 ‘스와디카(안녕하세요)’로 사람을 맞이한다. 잠깐 짜증을 내는가 싶다가도 금세 기도하듯 손을 모으며 ‘코픈카’라고 한다. 더운 날씨만큼 불쾌지수도 높을 것 같은데 이런 상황에 너무 익숙해서인지 이들의 표정에는 늘 여유가 있다. 이 친절함 덕분에 누구나 낯선 나라에 대한 경계심이 쉽게 풀린다. 여기에 매운 태국식 해물탕 ‘톰양쿵’을 맛보고 나면 태국이라는 나라에 홀딱 반하지 않을 수 없다.
친절이 몸에 밴 태국인들을 보면 어딘가 일본인 같다는 인상을 받는데, 도심의 현대적 건물들 사이사이로 사원들이 자리 잡고 있는 것도 비슷하다. 태국 사원에도 일본처럼 바라는 바를 적어 걸어놓는 나무로 된 판인 ‘에마’가 있다. 일본 에마가 아기자기하다면 태국 것은 크고 투박한 대신 개성이 넘친다.
한번은 태국 영화관에 갔다가 당황한 적이 있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 귀여운 아이 목소리로 노래가 흘러나오자 사람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엉겁결에 따라 일어났는데 그때 스크린에 태국의 왕 푸미폰 아둔야뎃이 등장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영화관의 ‘애국가’ 연주가 사라진 지 오래여서 이런 절차가 낯설지만 태국인들에겐 자연스러운 일이다. 흔히 ‘부미볼’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태국 왕은 1946년 즉위하여 지금까지 왕좌를 지키고 있는 세계 최장기 집권 원수이자, 태국 역사상 최장기 재위 군주다. 우연치 않게 나는 부미볼 왕이 단순히 상징적 존재가 아니라 진정으로 태국 국민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양배추와 콘돔 레스토랑 & 버즈 앤 비즈 리조트

1 피피 섬 전경. 2 문화 테마파크 ‘푸껫 환타지(Phuket Fantasea)’. 3 피피 섬에서 스노클링을 즐기는 모습.



‘양배추와 콘돔’이 레스토랑 이름이 된 사연



양배추와 콘돔 레스토랑 & 버즈 앤 비즈 리조트

‘양배추와 콘돔’ 레스토랑에 전시된 마네킹. 색색의 콘돔으로 장식돼 있다.



이번 방콕 방문의 주목적은 일반 관광이 아니라 사회적 기업이 운영하는 이색 명소를 찾아가는 것이다. 방콕의 스카이트레인(BTS)을 타고 아속 역에서 내리면 ‘타임스퀘어’라는 유명한 건물이 나온다. 방콕의 길에서 자주 ‘소이(Soi)’라는 이름을 발견할 수 있는데 ‘소이’란 큰 도로에서 뻗어가는 간선도로, 일종의 골목을 가리키는 말이다. 아속 역에서 내려 이정표 ‘소이12’를 따라 걸으면 오른쪽에 ‘양배추와 콘돔(Cabbages · Condoms)’이라는 희한한 이름의 레스토랑이 나타난다. 이름부터 워낙 독특해서 레스토랑이 어디에 있는지 아무나 잡고 물어봐도 금세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캄보디아에서 인신매매 피해자를 돕는 NGO에서 일할 때 이 레스토랑에 대해 처음 들었다. 이름만 들으면 무슨 ‘섹스숍’ 같지만 이 레스토랑은 PDA(Population and Community Development Association)라는 태국 비영리단체가 운영하는 곳이다. 이 단체는 6백여 명의 직원과 1만 2천 명가량의 자원봉사자가 활동하고 있으며, 50개국에서 온 2천9백여 명을 교육시킨 세계적인 시민단체다. 특히 각 지역의 특성에 맞는 개발 사업을 펼치는 것으로 유명하다.
PDA의 설립자 메차이 비라바이디야는 전직 정치인이자 기업인. 태국인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메차이 회장은 어려서부터 어머니에게 늘 이런 말을 들으며 자랐다고 한다. “더 배우고 힘 있는 사람이 어려운 이들을 위해 힘쓰지 않으면 안 된다.”
1980년 그가 이 단체를 세운 지 얼마 안 돼 태국 전역에 에이즈가 무섭게 퍼져나갔다. 당시 태국에서는 성매매 여성들이나 손님들이 성관계 시 콘돔을 사용하지 않아 에이즈 감염으로부터 무방비 상태였다. 이는 단순히 성매매 당사자에게 한정된 문제가 아니라 이들이 집으로 돌아가 부인 또는 남자친구와 성적 접촉을 하면 에이즈는 급속히 퍼져나갈 수밖에 없었다.
콘돔은 에이즈 방지 외에 산아제한에도 유용했다. 지금도 방콕 외곽에는 하루 1~2달러로 살아가는 이들이 많은데, 이들은 산아제한을 하지 않아서 벌이는 없는데 먹여야 할 입만 대책 없이 늘어나는 삶의 악순환에 빠져 있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메차이 회장은 성매매를 하는 직업 여성들뿐만 아니라 일반 여성들에게도 무료로 콘돔을 배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의도가 좋아도 사업을 지속하려면 돈이 필요했다. 외국의 NGO나 여러 단체들로부터 원조를 받기도 했지만 외부 원조를 받을 경우 관할기관의 감독을 받아야 하는 등 활동에 제약이 많자 가급적 자체적으로 자금을 조달하기로 했다. 이때 메차이 회장이 떠올린 것이 레스토랑 사업이었다.

양배추와 콘돔 레스토랑 & 버즈 앤 비즈 리조트

양배추와 콘돔’ 레스토랑 내부.



메차이 회장은 평소 업무가 끝난 뒤 직원들과 음료를 마시던 공간을 개조해 레스토랑을 열었다. 이 레스토랑은 온통 콘돔으로 장식됐다. 마네킹들은 콘돔 옷을 입고 있고, 벽에 달린 조명에도 콘돔이 주렁주렁 장식처럼 걸려 있었다. 레스토랑 입구에 있는 기념품 판매대에서는 콘돔 열쇠고리, 콘돔 티셔츠, 콘돔 꽃장식, 콘돔 카펫 등을 판다. 기가 막힌 아이디어다. 그런데 왜 콘돔만 있고 양배추는 없는 걸까? 궁금증은 더욱 커졌다.
이 레스토랑의 이름에 ‘양배추’라는 단어가 들어가게 된 사연도 흥미롭다. 레스토랑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메차이 회장은 이곳에서 지방의 가난한 농부들이 가져온 양배추와 각종 채소들을 대신 판매해주고 수익금을 농부들에게 돌려주었다. 이를 계기로 레스토랑 이름에 ‘양배추’가 들어있는 것이다. 지금도 이 레스토랑에서는 각 지역 농부들로부터 직접 구입한 재료를 쓰고 있다.
사회적 기업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이라도 맛이 없으면 호기심에 한번 가보는 데 그친다. 그러나 이런 걱정은 전혀 할 필요가 없다. 콘돔이라는 독특한 이름 덕분에 차별화에 성공한 것은 사실이지만 맛 또한 그 명성에 걸맞아, 태국 내에서도 손꼽히는 레스토랑이다. 태국의 대표 음식 가운데 하나인 톰양쿵부터 각종 해산물 요리와 서양식 요리에 이르기까지 골고루 선택할 수 있으며 서비스도 수준급이다. 태국 전통음식은 맵고 강한 것이 많아서 한국인 입맛에 잘 맞는 편. 제대로 된 태국 음식을 맛보려면 이 레스토랑이 적격이다.

파타야의 낙원 ‘버즈 앤 비즈 리조트’

양배추와 콘돔 레스토랑 & 버즈 앤 비즈 리조트

1 버즈 앤 비즈 리조트 내 수영장. 2 버즈 앤 비즈 리조트 비치사이드 스위트룸에서 바라본 풍경.



방콕에서 동남쪽으로 145km 정도 떨어진 관광도시 파타야에는 PDA가 운영하는 ‘버즈 앤 비즈 리조트’(www.cabbagesandcondoms.co.th)가 있다. 이 리조트는 아름다운 해변을 끼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안에 무지갯빛 정원이 갖춰져 있어 마치 꿈속을 거니는 기분이 들 정도다. 해변의 새하얀 백사장과 어우러진 석양,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하늘을 보며, 만날 보는 하늘인데 이렇게 다르게 보일까 하는 의문이 생길지도 모른다. 리조트의 이름이 말해주듯 ‘꿀벌’과 ‘새’들의 공간에 몰래 숨어든 느낌이다. 그리고 여행 팁 하나. 이 리조트 안에도 ‘양배추와 콘돔’ 레스토랑이 있어 방콕에서와 같은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올 여름휴가 때 동남아 여행을 계획했다면 ‘양배추와 콘돔’ 레스토랑과 ‘버즈 앤 비즈 리조트’ 코스를 선택해보자. 메차이 회장이 자주 던지는 농담 “우리 레스토랑의 음식은 절대 임신을 유발하지 않는다(Our food is guaranteed not to cause pregnancy. 레스토랑의 이름과 결부된 농담)”라는 말의 의미를 되새기며.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태국 명소들

방콕 시내 관광 단체여행객들을 위해 여행사가 마련한 코스는 뻔하다. 대신 안 가면 후회할 필수 코스들을 골고루 담고 있어 초보자에겐 유리하다. 방콕 시내 관광에서 빼놓을 수 없는 방문지가 왕궁과 부속 사원들이다. 왕이 머무는 그랜드팰리스(프라보름 마하 라차왕)와 왕실 전용 사원인 ‘왓 프라 카우’에는 높이 75cm가량의 옥으로 만든 불상이 있어 흔히 ‘에메랄드 사원’이라 불린다. 보통 일본이나 중국, 그리고 한국식 왕궁에 친숙한 이에게 태국의 왕궁은 정말 다른 특별한 경험을 줄 것이다.
쇼핑족들에게는 ‘시암 패러건’을 권한다. 방콕 스카이트레인을 타고 시암 역에서 내리면 된다. 세계 각국의 명품들과 다양한 먹을거리로 가득 찬 곳이다. 여기서 가까운 거리에 ‘MBK센터’라는 대형 쇼핑몰도 있다.

태국 섬 관광 태국 남쪽의 아름다운 섬 푸껫에 가면 ‘제임스 본드 섬’을 빼놓을 수 없다. 1974년 영화 007 시리즈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에 등장했던 섬으로 원래 이름은 ‘카오 핑 칸’이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에게나 제임스 본드 섬으로 통한다. 사진으로만 보던 바다 위 기암절벽이 눈앞에 펼쳐질 때 기대 이상으로 압도된다.
‘푸껫 환타지’라는 테마파크도 필수 코스. 실제 코끼리가 등장하고 새들이 극장 안을 날아다니는 등 스케일이 큰 공연을 볼 수 있다. 또 한 가지 독특한 체험은 ‘피시 마사지’다. 수족관 같은 데 발을 담그고 있으면 물고기떼가 와서 발의 죽은 피부를 먹는다. 물고기가 살살 피부를 갉아대는 것이 얼마나 간지러운지 바로 옆에 앉아 있던 덴마크인이 내 어깨를 붙잡고 어쩔 줄 몰라하며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파타야 해변에서 45분 정도 보트를 타고 가면 나오는 ‘코란’ 섬은 산호초로 유명하고, 방콕에서 비행기로 1시간여 거리에 있는 ‘코사무이’ 섬에는 아름다운 폭포들이 많다. 그러나 개인적으론 피피 섬이 가장 인상적이다. 한때 이탈리아의 카프리를 최고의 섬으로 꼽았는데, 푸껫 주변에 있는 피피 섬(혹은 코피피)에서 부드러운 백사장과 아름다운 바다를 본 뒤에는 생각이 바뀌었다. 또 스쿠버 다이빙을 통해 볼 수 있는 바닷속 풍경도 상상을 초월한다는 상투적인 표현이 저절로 나올 만큼 아름답다. 이곳 사진을 찍어 내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여러 국가의 외국인 친구들이 “도대체 그렇게 아름다운 곳이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다. 그들도 그토록 아름다운 곳이 태국의 푸껫 주변에 있다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한 것이다.
피피 섬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출연했던 영화 ‘비치’의 무대이기도 하다. 영화에는 상어가 등장하지만 현지인들에게 거듭 확인한 결과 상어를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단다. 매년 엄청난 수의 관광객들이 다녀가지만 쓰레기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해변 관리를 잘 하고 있다. 최근에는 현지 여행사간 경쟁으로 인해 섬 관광비가 많이 떨어졌다. 현지 여행사를 통해 예약하면 한국 돈으로 3만5천원 정도(성수기인 11월에서 이듬해 3월까지는 다소 비싸진다)면 일일 투어를 할 수 있다.
양배추와 콘돔 레스토랑 & 버즈 앤 비즈 리조트


돈 벌고 좋은 일 하고 일석이조 사회적 기업

최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사회적 기업(Social Enterprise)’과는 개념적으로 차이가 있다. 사회적 기업은 비영리조직과 영리기업의 중간 형태로,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면서 영업활동을 수행하는 기업을 가리킨다. 가령 어느 기업이 아프리카에 있는 학교가 무상급식을 할 수 있도록 일정액을 기부했다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일부 실행한 것이지 사회적 기업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사회적 기업은 이윤을 창출하되 그 수익 전액을 복지사업 등에 활용해야 한다.
태국의 PDA는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빌 게이츠 회장과 그의 부인 멜린다가 세운 ‘빌 앤 멜린다 게이츠 파운데이션(Bill and Melinda Gates Foundation)’ 재단도 함께 일을 할 만큼 이미 세계적인 시민단체다. 또 PDA는 비영리단체와 영리단체를 분리하여 운영하고 있다. 영리단체를 통해 들어오는 수익을 비영리단체의 활동에 운용함으로써 외부의 기부금이나 헌금 혹은 외국 기관의 원조에 대한 의존도를 크게 낮추는 데 성공했다. 이는 비영리단체에게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아무리 훌륭한 인권 활동이라도 자금이 없으면 실행이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비영리단체의 ‘지속가능한 활동’을 가능하게 한 PDA에 대해 많은 이들이 호평을 하는 것이다.
올해로 창립 38주년을 맞이한 이 단체가 현재 펼치고 있는 프로그램을 보면 지역개발에서부터 교육 및 영양 제공, 학교 환경 개선, 식수 사업, 보건 및 에이즈 방지, 자연환경 보호, 빈곤 퇴치, 젊은 리더 양성 등 매우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다.
내가 지불한 돈이 좋은 일에 쓰인다면 분명 기쁘겠지만 소비자로서 직접 만족감을 느끼기는 쉽지 않다. PDA는 그 점에서 매우 전략적인 선택을 했다. 고객에게 동정심을 얻고자 하지 않고 보통의 기업들처럼 만족스러운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사회적 약자를 돕는 일을 성공적으로 하는 것이 PDA의 전략이다. 고객으로선 자신이 지불한 돈에 상응하는 서비스를 제공받고,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도 하니 일석이조인 셈.


여성동아 2011년 7월 5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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