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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빵 먹고 몸이 두둥실…그림책 여왕 백희나의 맛있는 꿈

“공들여 만든 ‘구름빵’ 저작권 빼앗기듯 계약 후 고통의 시간, 상처 딛고 1인 출판사 세워 즐겁게 작업 몰두해요”

글·정혜연 기자 사진·지호영 기자, 스토리보울 제공

입력 2011.05.24 13:34:00

활자보다 영상물에 익숙해진 요즘 아이들이지만 책은 여전히 그들의 좋은 벗이 되고자 한다.
특히 아이들의 꿈을 머금은 동화책은 점점 정교하고 다양한 모습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그 중심에 선 ‘구름빵’의 백희나 작가는 동화를 통해 인간과 환경,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해 말하며 아이들의 사랑을 담뿍 받고 있다.
저 멀리 나무 위에 작은 구름 한 조각이 눈에 띄었어요. 우리는 구름이 날아가지 않도록 조심조심 안고 엄마한테 갖다 주었지요. 엄마는 곧 따뜻한 우유를 부어 반죽을 하고 동그랗게 빚은 다음 오븐에 넣었지요. 그때였어요. 아빠가 헐레벌떡 우산을 챙겨 회사로 뛰어갔어요. 우리는 맛있게 익은 구름빵을 먹었어요.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몸이 두둥실 떠오르는 것이 아니겠어요! 우리는 아빠가 무척 배가 고프실 것 같아 빵 하나를 봉지에 담아 힘껏 날아올랐지요. 자동차가 빽빽하게 늘어선 찻길에서 아빠를 찾았고, 우리는 곧 아빠에게 빵을 건넸답니다. - 동화 ‘구름빵’ 중

구름빵 먹고 몸이 두둥실…그림책 여왕 백희나의 맛있는 꿈


종이에 색연필로 그림을 그려 오린 뒤 세트를 만들어 세우고, 그것을 사진으로 찍어 만든 독특한 기법의 그림책에 아이들이 흠뻑 빠져들었다. 2004년 출판해 현재까지 50만 부가 팔린 ‘구름빵’은 작품성과 흥행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고 창작동화 분야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굳혔다. ‘구름빵’을 탄생시킨 백희나 작가(40)는 2005년, 동화작가들의 로망이자 권위적인 행사 ‘볼로냐아동도서전’에서 픽션 부문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됐다. 백희나 작가는 생애 처음 출간한 동화책으로 남들이 쉽게 이루지 못할 성공을 단번에 이뤄냈다.
경이로운 기록을 세운 ‘구름빵’은 어떻게 탄생한 것일까. 작품 활동에 매진하느라 좀처럼 시간을 내기 어려웠던 백희나 작가와 마주했을 때 제일 궁금한 부분이었다. 그는 “살면서 생긴 아이디어에 주변 사람들 요구도 하나둘 덧붙여 만들었다”며 조곤조곤 탄생 배경을 들려줬다.
“미국 유학 시절 LA의 산 정상에서 도시에 낮게 깔린 구름 풍경을 봤는데 참 인상적이었어요. 그때 어렴풋이 ‘구름이 땅에 떨어지면 주워서 뭘 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어요. 이후 산후조리차 한국에 들어왔는데 한 출판사에서 동화책 의뢰가 들어왔죠. 작품을 구상하던 중 요리를 좋아하는 작은언니가 ‘요리하는 장면을 꼭 넣어줘’라고 말해서 구름을 빵으로 만들면 좋겠다 싶었어요. 또 출퇴근 러시아워에 힘들어하던 남편은 길이 막힐 때 ‘자동차가 날아오르면 좋겠다’며 그 장면도 꼭 넣어달라고 했죠(웃음). 자동차보다 아이들이 떠오르는 설정이 좋을 것 같아 바꾸긴 했지만요.”
백희나 작가는 국내 어린이책의 주류였던 서정적 동화를 판타지로 바꿨다는 평을 받고 있다. 어린이책 전문 출판사의 편집장들은 그에 대해 ‘독특한 그림 기법과 내용으로 그림책의 새 장을 연 작가’ ‘반입체 기법을 이용해 애니메이션을 책으로 보듯 흥미로운 구성과 자기 철학을 잘 조합시킨 작가’라고 말한다. 이는 그가 잊혀졌던 종이인형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과거의 향수를 자극하는 분위기를 연출했기 때문이다. 이 독특한 분위기는 백희나 작가의 어린 시절 기억에서 비롯됐다.
“언젠가 어스름이 깔린 새벽에 일어났는데 어머니께서 아침을 준비하느라 부엌에 불이 켜져 있었어요. 미닫이문 사이로 불빛이 쏟아지는 장면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름다운 거예요. 그걸 동화에 꼭 넣고 싶었어요. 부엌은 노랗게, 비 내린 바깥 풍경은 푸르스름하게 하고 등장인물과 배경에 그림자가 지게 하고 싶었죠. 일일이 그려서 가위질하고, 조명까지 설치해야 돼서 손이 많이 갔지만 푹 빠져서 작업한 터라 전혀 힘들지 않았어요.”

‘구름빵’으로 번 돈 8백50만원이 전부
백희나 작가의 이름을 널리 알린 ‘구름빵’이지만, 이 작품은 동시에 그의 존재를 없애기도 했다. 인터넷 검색 사이트에 ‘구름빵’이라고 치면 애니메이션, 아동극, 뮤지컬, 전자책 등을 비롯해 같은 이름의 전국 어린이집까지 뜬다. 하지만 백희나 작가에겐 그 어느 것에도 개입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출간을 의뢰했던 출판사와 계약을 맺을 때 저작권을 모두 넘긴다는 조건에 사인을 한 것이 화근이었다.
“왜 그랬냐고 많이들 묻죠. 저도 처음엔 ‘저작권까지 가져가는 건 좀 아니지 않냐’고 말했어요. 하지만 출판사 쪽에선 매달 시리즈로 제작하는 동화책 중 하나로 작업을 의뢰했고, 다른 동화작가들도 저작권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계약했기 때문에 예외를 둘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어쩔 수 없이 도장을 찍긴 했는데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져 TV에 나오고, 뮤지컬로도 나오는 걸 보니 굉장히 속상하더라고요. 한동안 극복하기 힘들 정도였는데 다른 작업을 하면서 조금씩 나아졌고, 현재 그런 시기는 다 지났죠.”

시리즈물이 단행본으로 나올 때에도 출판사는 재계약을 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눈 뜨고 코 베인 심정이겠지만 그는 애써 담담해지려 했다.
“당시 변호사에게 물어봐도 ‘어쩔 수 없는 계약’이라는 답변만 들었는데, 요즘 이 사연이 알려지자 법률적으로 다시 검토해보자는 분도 있어요. 하지만 ‘구름빵’은 아이들이 보는 동화책이잖아요. 괜한 소송으로 얼룩지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또 한편으로 생각하면 어찌 됐든 제 작품이 아이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은 건 행운이더라고요.”
본의 아니게 비싼 수업료를 치르고 백희나 작가는 저작권에 대해 제대로 배웠다. 1인 출판사 ‘스토리보울’을 세워 다음 작품을 구상했고, 첫 작품 ‘구름빵’이 탄생한 지 5년 만인 2010년, 동화책 ‘달 샤베트’를 두 번째로 세상에 내놓았다. 달이 뚝뚝 녹아 떨어질 정도로 무더운 여름밤, 전기를 너무 써 정전이 된 늑대 아파트에서 반장 할머니가 달물을 얼려 만든 달 샤베트를 나눠줘 더위를 식힌다는 이야기다. 환경 문제와 아파트에 살며 고립돼가는 각박한 현대인들의 문제를 동시에 다룬 작품이다. 뛰어난 작품성을 인정받은 ‘달 샤베트’는 별다른 마케팅을 벌이지 않고도 현재까지 3만여 부가 팔렸다.
이후 백희나 작가는 지난 1월 세 번째 동화책 ‘어제저녁’을 출간했다. 직접 만든 동물 봉제인형을 하나하나 사진으로 찍어 만든 장인정신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는 작품 속의 인형을 모두 의장등록하고 뮤지컬·애니메이션·문구·인형 등 ‘어제저녁’이라는 제목이 상표로 사용될 수 있는 모든 분야에 상표등록 출원신청도 했다. 등록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었지만 이전 작품의 수입을 대부분 투입했을 만큼 철저하게 보호망을 세웠다.
“‘구름빵’으로 번 돈은 8백50만원이 전부였어요. 다음 작품을 만들고 싶은데 여건이 되지 않았고 또다시 그런 일을 당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자신감도 없었죠. 하지만 동화책을 만들어야만 살 수 있을 것 같았고, 만들면서 점점 치유되는 걸 느꼈어요. ‘달 샤베트’ ‘어제저녁’ 작업을 하면서 결과물을 찬찬히 보는 동안 전보다 한결 나아졌어요.”
하지만 그는 또 한 차례 아픔을 겪고 있다. 지난해 8월 한 연예기획사에서 ‘달샤벳’이란 이름의 걸그룹을 데뷔시켰다. 우연히 그의 작품을 본 남편의 고교 동창이 책 제목이 마음에 든다며 걸그룹 이름으로 쓰게 해달라고 부탁했지만 동화책 제목이 성인가요를 부르는 그룹의 이름이 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거절했다. 그랬더니 ‘샤베트’를 ‘샤벳’으로 바꾸고 등장한 것이다. 이에 백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송두리째 빼앗기는 느낌이었고 안면마비까지 겪었다. 이번만큼은 소송도 피하지 않을 결심이다. 그는 “후배들에게 나쁜 선례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냥 넘어가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상상력 풍부했던 아이, 동화책의 어머니 되다
백 작가의 동화책을 보면 기발한 상상력에 깜짝 놀라게 된다. 구름으로 만든 빵을 먹고 몸이 떠오르고, 무더위에 달이 녹아 샤베트로 만들어 먹는다는 설정은 편견 없는 아이들의 눈으로 사물을 보지 않고선 쉽사리 떠오를 수 없는 내용이다. 백희나 작가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지금도 많이 하는 편”이라고 한다.
“어릴 때 피아노를 치는데 집중을 잘 못했어요. 악보 위 음표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게 지네들끼리 뭐라뭐라 말하며 놀고 있는 것처럼 보였거든요(웃음). 중학교 때까지 인형놀이를 했을 정도로 혼자 놀며 이런저런 상상의 날개를 펴는 걸 좋아했죠. 그림 그리는 것도 굉장히 좋아했는데 전공할 생각은 못하고 이과를 갔어요. 고3이 돼서야 전공을 해볼까 싶었는데 순수미술은 자신이 없던 차에 교육공학과 교수인 고모가 그쪽으로 가면 그림 그리고 방송·영화 작품을 만드는 시청각 실습을 할 수 있다고 해서 전공으로 선택했죠.”

구름빵 먹고 몸이 두둥실…그림책 여왕 백희나의 맛있는 꿈

봉제인형을 직접 만들어 입체적으로 사진을 찍는 애니메이션 기법의 동화책 ‘어제저녁’은 지난 1월 출간돼,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구름빵 먹고 몸이 두둥실…그림책 여왕 백희나의 맛있는 꿈


교육공학을 전공하며 동화에 점점 빠져든 그는 졸업 후 LG미디어에 입사해 유아용 소프트웨어를 만들었다. 하지만 작업 자체에 몰두하려는 그는 결과물을 강조하는 조직생활이 체질상 맞지 않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2년여 만에 다니던 회사를 관두고 스토리텔링 기법을 배울 수 있는 애니메이션을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 미국 칼아츠로 유학을 갔다.
시집갈 나이에 유학을 선언한 딸에게 그의 부모는 “말리지도 못하겠고, 갔다 오란 말도 못하겠다”며 그의 결심에 반쪽자리 응원을 보냈다. 환영받지 못한 늦은 유학생활이었지만 그는 사력을 다해 공부했다. 학기 중에는 뒷정리, 복사 등의 아르바이트를 하며 수업을 들었고, 방학 때는 학비를 벌기 위해 꼬박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러면서도 애니메이션 작업만큼은 놀라울 정도로 몰두해 4학년 때는 LG공모전에서 우수상을 받을 만큼 실력을 쌓았다. 학비 문제로 1년 빨리 졸업하려 했던 그는 상금으로 학비를 마련했고 정상적으로 졸업할 수 있었다.
“힘들었지만 열심히 공부한 덕분에 작품을 대하는 자세도 달라졌고, 작업에 임할 때면 항상 만전을 기하게 돼요. 보통 어릴 때 본 책은 평생토록 각인되잖아요. 한 아이가 천 번 만 번 반복해서 볼 만큼 소장 가치가 있는 책을 만들려고 노력하죠.”

백점짜리 엄마 아니지만 아이들이 자신만의 생각 갖도록 교육
동화책을 만들 때만큼은 심장이 두근거린다는 백 작가. 덕분에 공들여 만든 작품을 좋아해주는 사람도 많다. 그중 가장 열성적인 팬은 그의 아이들인 홍비(8)와 범준(3) 남매다. 1인 출판사를 꾸리느라 놀아줄 시간도 많지 않은 엄마지만 두 남매는 친구들이 좋아하는 동화책을 만든 사람이 ‘우리 엄마’라고 자랑스러워한다. 특히 딸 홍비는 엄마와 함께 대중목욕탕에 가 이웃들에게 “우리 엄마 작가예요”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작 백 작가는 자식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크다. 매일 오전 10시부터 막내가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는 오후 2시까지는 어떤 일이 있어도 작업실에서 동화책 만들기에만 몰두한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일하다 보면 대여섯 시에나 귀가하게 된다고. 그는 자녀에게 모든 걸 바치는 엄마들을 보면 존경스럽다고 한다.
“집에 있는 시간에도 나도 모르게 책 생각, 딴 생각에 빠져요. 자식 교육에 철저한 요즘 엄마들처럼 아이 키우는 건 제겐 먼 나라 이야기예요(웃음). 동화작가니까 아이들 창의력, 상상력 키우는 특별한 방법이 있을 것처럼 보기도 하는데 전혀 없어요. 우리 세대가 어렸을 때는 주변에 놀거리가 없으니까 의자 엎어놓고, 상자로 집 지어서 놀았잖아요. 지금 아이들은 장난감·교재·동영상 기구 등 없는 게 없으니까 오히려 생각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것 같아요.”
그런 이유로 백희나 작가는 자신의 아이들에게 강요해서 가르치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선행학습도 시키지 않았는데 홍비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친구들은 모두 아는 걸 혼자 몰라 자신감을 잃어버리는 걸 보고 뒤늦게 시키고 있다. 그는 “아이가 늦게 가더라도 주변을 찬찬히 뜯어보고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길 바란다”고 한다.
지금껏 세 권의 동화책을 만든 백희나 작가는 현재 숨을 고르는 중이다. 차기작을 준비하며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다양한 어린이용 애플리케이션이 쏟아지고 있는 시대 상황에 발맞춰 스마트폰용 ‘달 샤베트’ 앱을 제작해 출시를 앞두고 있다.
“지금까지 작품이 잘되긴 했는데 마냥 행복하기보다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앞서요. 제 작품이 독자들로부터 외면받으면 기를 쓰고 노력해서 성장할 기회를 맞잖아요. 그런데 지금껏 만족할 만한 결과만 나와서 불현듯 ‘이러다 앞으로 발전하지 못하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스치기도 해요. 부수적으로 다른 걸 만들어달라고 요청도 들어오는데 오로지 동화에 몰두하고 싶어 거절하고 있어요.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줄 동화책을 앞으로 계속 만들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어요.”

여성동아 2011년 5월 5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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