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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재즈계 빅마마 윤희정

“음악은 목표가 아니라 내 인생의 희열”

글·이혜민 기자 사진·조영철 기자

입력 2011.05.17 11:57:00

남들은 그를 ‘탱크’라고 부르지만 윤희정은 스스로 ‘소세지’라 했다.
소심하고 세심하고 지랄 맞은 A형. 15년을 한결같이 달려와 ‘윤희정&프렌즈’ 100회 공연을 앞두고 있는 그를 만났다.
한국 재즈계 빅마마 윤희정


1971년 KBS 전국노래 대항전 연말결산에서 최우수상을 받으며 가수로 데뷔한 윤희정(57). 그가 애초부터 재즈 가수를 꿈꾼 건 아니다. 대항전에서 상을 받은 후 가스펠 가수로 활동하다 서른여섯의 나이에 재즈계의 거장 이판근 선생을 만나면서 재즈 보컬리스트의 삶을 시작한다. 음울하지 않고 자유롭고 화통한 그의 목소리는 재즈를 모르는 사람들에게조차 친근하게 다가왔다.
그에게 재즈는 충격 그 자체. 아지랑이 같은 재즈 사운드를 듣자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했다. 이후 그는 정통 재즈를 흉내 내기에 열중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자기 색깔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한국적인 감수성이 나타나는 노래를 해야 세계적인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마음으로 재즈에 한국 가락을 입힌 것이다.
이런 열정은 재즈가 척박한 이 땅의 사람들에게 ‘내가 느낀 재즈의 매력을 죽어도 잊지 못하게 만들고 싶다’는 바람으로 이어졌다. 실제로 그는 97년부터 ‘윤희정·프렌즈’란 재즈 정기 공연을 하며 20년 재즈 인생 대부분의 시간을 여기에 쏟아부었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재즈 전도사, 재즈 대모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5월23, 24일 열릴 ‘윤희정·프렌즈’ 100회 공연을 앞두고 진행된 그와의 데이트. 육중한 몸매를 흔들며 넉살 좋은 입심을 가진 그녀와의 대화는 유쾌했지만 20분에 한 번씩 공연 관계자에게 전화가 오는 통에 대화는 중간중간 끊겼다. 인터뷰와 공연 준비,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고 정성을 쏟아붓는 그에게 쉼 없이 달려온 지난 여정을 물었다.

▼ 축하드립니다. ‘윤희정·프렌즈’ 공연 100회를 맞는 소감이 어떠신지요.
“세월이 유수 같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96년에 정동극장장인 홍사종씨가 한 달에 한 번씩 재즈 공연을 해보자고 제안했을 때는 너무 까마득해서 생각해보겠다고 하곤 도망쳤거든요. 그런데 제게 재즈를 가르쳐주신 ‘한국 재즈계 대통령’ 이판근 선생님께서 ‘왜 도망가느냐. 고양이부터 그리면 쥐가 된다. 처음부터 호랑이를 그려야 뭐라도 된다. 당장 그 기회를 잡아라’라고 하셔서 제안을 받아들였죠. 실제로 내게는 술이나 밥을 먹는 클럽이 아닌 극장에서 공연하는 것이 더 맞다고 생각하기도 했고요.”
▼ 한국에 재즈를 전파하고 싶은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우리나라 가락은 재즈 리듬과 잘 어울려요. 그 둘을 합치면 흥이 더 나죠. 이판근 선생님께서 그루브(가락의 흥겨움)감이 강한 서양의 셔플 리듬에 우리 사물 리듬을 합쳐 ‘셔플 모리 장단’을 만든 것도 그런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만큼 우리나라에는 재즈를 이해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돼 있어요. 판소리도 있고요. 그런데도 사람들이 재즈를 접해보지 않았으니까 좋아하지 않는 거예요.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문화가 더 발전하면 좋겠다 싶은 마음도 있고요. 내가 꽹과리를 들고 재즈를 부르는 것도 문화를 풍요롭게 만들고 싶어서죠.”

무대에 세운 제자만 2백50여 명, 섭외는 ‘114’로
윤희정은 공연할 때 하루에, 리허설 한 번, 무대 두 번을 채우기 위해 총 60곡의 노래를 쏟아낼 만큼 열정이 충만한 사람. 이런 결실을 얻기 위해 연습도 우직하게 한다. 섭외할 때도 마찬가지. 남들이 섭외가 어려울 것이라며 고개를 저었는데도, 유명 인사들의 전화번호를 두드려 박상원, 이현우, 김건모, 김미숙, 홍사덕 등 내로라하는 인사 2백50여 명을 무대에 세웠다. 재즈 메신저를 자처한 그의 노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공연 전 2, 3달 동안의 레슨으로 이어졌다. 제자들은 “레슨을 받는 동안 프로골퍼 타이거 우즈와 함께 라운딩하는 기분이 들었다”며 흡족해했고, 덕분에 각자의 영역에서 빛나던 자신들의 모습을 재즈에 담아낼 수 있었다.
▼ 공연 때마다 명사 1명과 연예인 1명을 포함시키는 이유는 뭔가요.
“이왕 하는 것 재미있게 하고 싶었어요. 일반 사람들에게 눈길을 끌려면 명사를 무대에 올려야겠다고 생각해서 97년부터 정기 공연에 ‘I am a singer’란 코너를 마련했죠. 내가 주로 노래를 부르고 게스트 두 분이 두 곡씩 부르는데, 2003년까지는 한 달에 한 번씩 공연을 하다 벅차서 그 이후에는 두 달에 한 번씩 하고 있어요. 대중이 이분들을 보고 재즈를 친숙하게 느끼셨으면 했어요.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을 줄 아는데, 재즈는 접해본 사람이 드무니까 일단 판을 벌인 거예요. 벌써 14년이 흘렀으니 세월 참 빠르죠?(웃음)”

한국 재즈계 빅마마 윤희정


▼ 그분들이 무대에 서기 전 선생님께 레슨을 받았다고 들었어요.
“특별히 트레이닝을 한 건 아니고 그 사람의 보이스 컬러와 키(음 높이)를 고려해 곡을 골라줬어요. 재즈는 개성을 끄집어내는 음악이라 박경림처럼 쇳소리 같은 목소리도 재즈에 잘 어울리거든요. MR(보컬을 제외한 반주가 녹음된 상태)과 AR(보컬과 반주 모두 녹음된 상태로 립싱크용)을 만들어 연습을 반복하게 하고, 마지막으로 어떤 옷이 완성될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피팅’을 해줬어요. 어떤 사람은 스파르타식으로 일일이 가르쳤지만 별다른 코멘트를 하지 않을 때가 더 많았어요. 소유진씨는 내가 레슨할 때 하도 얘기를 안 해서 자기를 미워하는 줄 알았다고 하더라고(웃음). 난 내가 자꾸 손대면 그 사람의 개성을 망칠 수도 있겠다 싶어 살짝 잘못된 부분만 집어줬죠. 레슨을 해보니까 사람들이 모두 ‘파시빌리티(가능성)’를 가지고 있더라고요.”
▼ 무대에 세울 사람을 섭외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텔레비전이나 영화를 보면서 같이 공연하고 싶은 사람들을 찾았어요. 인테리어디자이너 양진석씨 같은 경우에는 방송에서 그분이 일본 유학시절에 재즈 클럽 가는 걸 좋아했다고 말하기에, 114에 전화해 양진석씨 사무실 전화번호를 알아내서 바로 연락했죠. 말 돌리지 않고 ‘나 윤희정인데, 재즈 공연 같이 하고 싶어요’라고 했더니 흔쾌히 승낙하던데요(웃음). 무모한 짓인지도 모르지만 장관이나 국회의원에게 연락할 때도 114에 전화번호를 물어봐서 연락했어요. 섭외는 의외로 어렵지 않았죠. 물론 거절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싫다는 걸 어쩌겠어요. 안 그래요?(웃음)”
▼ 섭외의 기준이 뭔지 궁금한데요.
“재즈에 흥미 있는 사람, 평소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 자기 분야에서 이름난 사람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골랐어요. 함께 무대에 설 사람인데 내가 싫어하면 안 되잖아요(웃음). 나는 여태까지 직감이 틀려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 ‘이 사람이 적합하다’ 싶으면 연락했는데 거의 성공했어요. 김혜수씨는 섭외가 안 됐지만 내 직감은 거의 틀리지 않으니까 언젠가 이 친구도 재즈 공연을 할 거라고 봐요.”



‘펑크’ 나면 대신 무대 서주는 김미화
▼ 김혜수씨 말고도 섭외하기 힘든 사람들이 있었나요.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존재감이 있는 가수 윤복희씨도 그랬어요. 처음에는 흔쾌히 하겠다고 했는데 그 다음에 연락해선 못하겠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난 언니가 감각적이고 누구보다 잘할 거란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열심히 설득했죠. 한 달쯤 지났을까. 언니가 ‘너 윤희정, 참 세다’면서 무대에 서겠다고 하시더라고(웃음). 콘서트에 게스트로 서본 적이 없는 자기를 데려올 정도로 설득력이 강하다고 느끼신 것 같아요. 전 헌법재판관 송인준 변호사에게는 프러포즈를 6번이나 해서 오케이를 받아냈어요. 완강하게 거절하시기에 그분이 쓰신 시에 곡을 붙여 보내드렸더니 마음을 여셨어요.”
▼ 함께 공연한 분들에게 직접 전화를 하셨나요.
“당연히 내가 먼저 연락을 했지만 요즘은 자발적으로 하겠다는 분들도 생기더라고요. 배우 김효진은 영화를 찍기 위해 레슨을 받으러 왔다가 무대에 서게 됐고 개그우먼 김미화·박경림, 가수 옥주현씨는 제 발로 찾아왔어요.”
▼ 특별히 기억에 남는 공연이 있다면.
“열정적인 분들의 무대는 오래 기억되죠. 뮤지컬 배우 이소정은 허리디스크였는데 공연을 마치고 나서야 수술을 받더라고요. 제대로 설 수도 없는 상태라 공연 중에 꽃 한 송이 들고 의자에 앉아 노래 부르는데, 아… 역시 프로는 프로다 싶었어요. 송일국도 기억나요. 친한 언니(김을동)의 아들이어서가 아니고 정말 열심히 하는 친구거든요. 드라마 촬영 중이었는데도 탭댄스를 4, 5개월 동안 연습하면서 ‘Come fly with me’를 멋지게 소화했죠. (김)미화에게도 고마워요. 공연하겠다고 해놓고 도중에 잠수 타는 사람들이 생겨서 곤란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미화가 ‘내가 갈게’하면서 ‘대타’를 뛰어줬거든(웃음). 이젠 미화도 잘해요.”
▼ 공연을 거치면서 발전한 분들을 보면 흐뭇하시겠어요.
“배우 김효진을 보면 그래요. 레슨 첫 시간에 보니까 스윙 리듬을 아예 못 따라 해서,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막막했죠. 다행인 건, 이미 있는 옷을 고쳐 입는 것보다 아예 새로운 옷을 만드는 것이 더 쉽듯이, 백지 상태이니까 더 빠르게 배우더라는 거예요. 보통은 두 달 정도 레슨을 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잘못된 버릇을 고치느라 세 달까지 레슨을 하기도 하거든. 얘기하고 보니 이런 친구만큼이나 훌륭한 친구도 생각나네요.”

한국 재즈계 빅마마 윤희정

신애라, 송일국, 김수연, 이은결, 김효진 등 25명의 프렌즈와 함께 ‘윤희정&프렌즈’ 100회 공연을 준비하는 윤희정. 100회 공연 포스터에 일일이 공연에 참여한 프렌즈 2백50여 명의 사진을 넣을 만큼 게스트들에 대한 사랑이 각별했다.



▼ 지금 떠오른 얼굴이 누구인지 궁금한데요.
“신애라씨. 후배를 보고 참 괜찮은 삶을 사는구나 하고 느낀 건 그때가 처음이었죠. 자기 자식이 있는데도 두 명을 입양하고, 좋은 일 하면서도 대내외적으로 잘하고… 배울 점이 많더라고요. 가정의 달에 신애라씨와 공연을 했는데, 아이에게 엄마와 함께하는 1년을 선물하려고 홈스쿨링 한다는 말에 감동 받았어요.”

1인 20역 소화하는 스스로가 대견해
얼핏 보면 윤희정은 공연의 ‘얼굴 마담’ 같지만 실제로는 총괄책임자다. 게스트 섭외를 하고, 레슨을 하고, 공연을 기획하고, 포스터 편집을 마치고, 협찬사를 구하는 등 1인 20역을 소화한다. 때로는 이런 역할이 힘들어 정체기를 겪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스스로를 다잡았다. 지난 14년 동안 단 한 번도 새벽 3시 전까지 잠들지 않고, 재즈 공부에 열중했던 것 역시 재즈 가수인 본연의 모습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비록 이런 생활 리듬 때문에 체중이 불기는 했지만 괘념치 않고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고 한다.

▼ 유명 인사들과 공연을 하다가 친구가 된 경우는 없나요.
“서울성모병원의 홍영선 원장. 그 친구는 제약회사 론칭 행사 때 만났는데 내가 부른 노래 제목을 맞힌 인연으로 공연도 하게 됐고, 이제는 자신이 텃밭에서 키운 무며 배추며 가져다주는 사이가 됐어요.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일본에서 공연을 보러 와주신 아시노 상도 고맙고, 공연에 못 오면 식구라도 보내는 삼성물산 박의승 부사장도 고맙죠. 아쉽게도 공연을 함께한 분들과 자주 만나지는 못해요. 10년 전에는 ‘윤희정을 사랑하는 모임’을 만들어 차도 마시고 노래도 불렀는데, 이젠 사람들이 많으니까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만나지 뭐.”
▼ 14년을 한결같이 공연을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
“사람들이 나더러 탱크라고 해요. 그 전에는 가수로 노래만 열심히 부르면 됐는데, 이제는 섭외하고, 무대도 만들고, 레슨도 하고, 포스터도 챙기고, 노래도 부르고 그야말로 1인 20역을 해내니까요. 혼자 힘으로는 못했겠죠. 다행히 제 곁에 이판근 선생님이 계셨기에 추진력을 가질 수 있었던 거예요. 이번 공연 포스터에도 ‘SHOW MUST GO ON’이라고 적어놨는데 이건 쇼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숙명이기도 해요. 가기로 했으니까 가는 거죠.”
▼ 공연하면서 경제적으로 손해도 보셨을 것 같은데요.
“손해 많이 봤죠. 공연장 좌석이 보통 5백 석인데 자리가 비면 내가 다 채웠거든요. 그래도 유명한 분들을 무대에 모실 수 있다는 것만으로 좋았어요. 이 공연을 시작하기 전에 옷 가게를 하면서 벌어놓은 돈이 있어 생활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으니 다행이죠. 레슨도 행사도 열심히 했고요. 기본적으로 나는 가스펠 가수라, 세상에 해결하지 못할 일은 없다고 생각하면서 살았어요. 물론 나도 사람이니까 힘들 때가 있긴 있어요.”
▼ ‘이게 아니다’ 싶은 순간이 있었나요.
“어느 날 내 인생에 장벽이 세워진 것 같더라고. 머리가 아예 안 돌아가는 거예요. 혼자서 여러 일을 챙기다 보니까 정체기가 온 거지. 재즈란 것이 애걸복걸해서 되는 게 아니라 ‘쿨다운’ 할 때 동행할 수 있는데, 그게 안 되더라고. 그렇다고 공연을 그만두겠다고 결심할 정도는 아니었어요. 다행히 공연하면서 이런 감정은 자연스럽게 없어졌죠.”
▼ 긴 시간 동안 추진력을 발휘한 선생님만의 비법이 있나요.
“내가 ‘소세지’거든. 소심하고 세심하고 지랄 맞은 A형. 될까 안 될까 고민하면서 소심하게 계속 밀어붙이는 거야. 누가 돈을 대준 것도 아니고, 한 여자의 힘으로 공연을 15년간 이끌어왔으니, 내가 봐도 내가 대단해. 나는 나를 다지고 싶어서 공연을 하는 게 아니고 이렇게 해야 행복해요. 노하우가 점점 더 쌓이는 걸 보면 희열도 느끼고. 나는 머리가 좋지 않아요. 좋았다면 이렇게 천천히 가지 않았겠죠. 뭘 하겠다는 거창한 목표가 있는 게 아니야. 즐기면서 그냥 가는 거지(웃음).”
“텔레비전에서 내 노래가 흘러나올 때 섬 아줌마도 채널을 돌리지 않고 노랫가락을 흥얼거리며 감상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말하는 윤희정. 사람들이 짊어지고 있는 삶의 무게를 재즈로 치유하고 싶다는 그녀의 열정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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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이사라
스타일리스트·김시온

여성동아 2011년 5월 5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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