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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이기는 힘

아이티 구호활동 다녀온 이광기 가슴 찡한 고백

“석규가 입던 옷 아이들에게 나눠주던 날, 아들이 꿈에 나타나 울지 말라며 눈물 닦아줬어요”

글 김명희 기자 사진 지호영 기자, 이광기·사진작가 성남훈(기아대책위) 제공

2010. 03. 15

아이티에 다녀온 이광기의 눈에선 맑고 선한 기운이 감돌았다. 지난해 사랑하는 아들 석규를 잃은 그는 지금 슬픔에 지지 않고, 아픔을 희망으로 극복하는 중이다. 하늘나라에서 지켜볼 아들에게 씩씩하고 자랑스러운 아빠가 되기 위해서.

아이티 구호활동 다녀온 이광기 가슴 찡한 고백


아무 일 없었다면 이광기(41)의 아들은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아이와 함께 책가방을 고르고 입학 준비를 하는 소소한 즐거움을 누릴 수 없다. 지난해 기승을 부린 신종플루가 그의 아들을 앗아갔다. 지난해 11월 초 빈소에서 만난 이광기는 위로의 말조차 건넬 수 없을 정도로 힘들어했다. 장례식을 치르고도 차마 아이를 떠나보낼 수 없어 손때 묻은 장난감과 동화책, 사진, 옷가지 등을 고스란히 남겨두었다. 사망신고를 하던 날, 네 식구 이름이 함께 올라 있는 주민등록등본 15통을 떼면서 그는 또 한 번 오열했다. 그러고 나서도 슬픔은 때를 가리지 않고 찾아왔다. 유치원에서 아들의 졸업앨범을 보내주던 날, 길 가다 문득 석규 또래의 아이가 눈에 들어올 때, 목욕탕에서 서로 등을 밀어주는 사이좋은 부자를 발견할 때, 누군가가 ‘아빠’라고 크게 부를 때….

“이젠 정말 좋은 마음으로 아이를 떠나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슬픔은 슬픔으로 이길 수 없다. 그는 자신처럼 고통 받는 이들을 찾아 2월11일 KBS ‘사랑의 리퀘스트’ 팀과 함께 지진 피해를 입은 아이티로 구호활동을 떠났다. 이에 앞서 석규의 사망보험금도 아이티 구호성금으로 기부했다. 카리브해의 가난한 섬나라, 아이티는 생소한 이름만큼이나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 비행기로 14시간 날아가 뉴욕에서 도미니카공화국의 수도 산토도밍고행 비행기를 갈아타고 3~4시간, 다시 육로로 7시간을 가야하는 험난한 여정. 구호활동은 둘째치고 오가는 일만으로도 지칠 법한데 그곳에서 돌아온 이광기는 피곤한 기색이 없었다. 이광기가 아이티에 있는 동안 한 네티즌이 그의 구호활동 사진과 함께‘석규가 입던 옷을 깨끗이 빨아 아이들에게 나눠주는 이광기씨의 모습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는 글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다. 사진 속 이광기의 눈도 빨갛게 충혈돼 있었다.

-큰 슬픔을 겪었는데 그런 현장으로 가기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주변에서 걱정도 많았을 텐데. 그럼에도 아이티에 간 이유는.
“부모를 잃은 아이, 아이를 잃은 부모, 남의 이야기 같지 않았어요. 한편으론 ‘내가 저 속에 있었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래도 저는 주변에 많은 분들이 걱정해주셔서 힘을 낼 수 있었는데 ‘그 사람들의 아픔은 누가 알아줄까’하는 생각이 들어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었어요. 출발 하기 전 석규 사진을 보며 ‘아빠와 같이 가서 친구들한테 도움 주자’라고 말하고, 아이티에 가서도 ID카드 뒷면에 석규 사진을 넣고 다녔어요.”
-아이티 어린이들에게 석규가 입던 옷을 나눠줬다고요.
“석규가 필리핀에 오래 있었기 때문에 여름옷이 많아요. 아이티는 더운 나라니까 석규 옷을 가져다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이 옷이며 장난감, 하다못해 하루하루 키를 쟀던 흔적까지 지우지 않고 간직하고 있던 석규 엄마도 이번에는 허락을 했어요. 아이티로 떠나기 전날, 가져갈 옷을 정리하는데 이 옷은 놀이공원에 갈 때 입었던 옷, 이 옷은 동물원에 갈 때 입었던 옷…. 엊그제 일인양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라 눈물이 나더군요. 아이들에게 옷을 입혀주면서 그 옷 하나하나가 재난·슬픔·고통을 막아주는 갑옷이 되기를 기도했어요. 자기 옷이 좋은 일에 쓰인 걸 알면 석규도 좋아할 거라고 믿어요.”
-석규가 그린 그림을 넣어 제작한 티셔츠도 나눠주셨다고요.
“석규가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는데 마침 지난해 10월 제 얼굴을 그린 그림이 있어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인데 누군가가 그걸로 티셔츠를 만들어 아이들에게 나눠주면 좋겠다고 해서 만들어 가게 됐어요. 아이들에게 그 옷을 입혀주며 ‘우리 아들이 하늘나라에서 아저씨를 지켜주듯, 너희 엄마 아빠도 너희들을 지켜보며 도와줄 거야’라고 말해줬더니 한 아이가 그 얘기를 듣고 울음을 터트리더라고요. 지진으로 부모를 잃은 아이였는데, 얼마나 마음이 아프던지….”

-아이티 어린이들 보면서 아들 생각이 많이 났을 텐데.
“아이들에게 옷을 다 나눠주고 빈 트렁크를 보니까 또 울컥하더라고요. 그래도 감사한 게 2월16일이 석규가 하늘나라로 간지 1백일째 되는 날인데 그 날 밤 꿈에 아이가 나타났어요. 언덕 위에서 하얀 모래사장을 내려다보는데 아내와 연지, 석규가 거기 있더라고요. 너무 반가워서 ‘석규야~’ 부르며 달려갔는데 마침 제가 가져간 옷을 입고 있었어요. 그 사이 키가 컸는지 옷이 작더라고요(웃음). 꿈 속에서도 너무 반가워 울었는데 아이가 ‘아빠 울지 마’ 하면서 제 눈물을 닦아줬어요. 그러고는 깼는데 눈이 퉁퉁 부어 있더라고요. 그날 이후 ‘이젠 정말 좋은 마음으로 아이를 떠나보낼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화로 연지 엄마에게 꿈 얘기를 해줬더니 너무 좋아하더군요. 다음에 이런 곳에 가게 되면 자신도 꼭 함께하고 싶다고도 했어요.”



아이티도, 석규도 잊힐까 두려워

아이티 구호활동 다녀온 이광기 가슴 찡한 고백


석규를 잃고 슬퍼하던 그에게 한 지인이 말했다. “이제 그만 내려놓으라”고. 하늘나라에 있을 아이의 평안과 남은 가족의 행복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씻기지 않는 두려움이 있다. 그 고물고물하던 따뜻한 손, 환한 미소가 잊히면 어떡하나 하는. 부모도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이 갖게 되는 솔직한 마음이다. 아이티를 떠나오면서도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한동안 온 나라가 온통 아이티 이야기로 떠들썩했지만, 요즘 아이티 소식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는 지금도 아이티는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한다고 말한다.

-아이티에선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했나요.
“아이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나눠주고 가장을 잃은 가족에게 숙소(텐트)를 만들어주는 일을 했어요. 도움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해발 1200m 산간지역에 올라가 구호활동을 하고 배식도 했죠.”
-실제로 접한 아이티의 참담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텐데.
“모든 국가 기반 시설이 마비됐다고 보면 돼요. 세계 각국 정부와 비정부기구(NGO), 뜻있는 개인들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버티고 있는 상황이죠. 가장 걱정인 건 아직 사체를 모두 수습하지 못했는데 곧 아이티에 우기가 닥치면 전염병이 돌 가능성이 높다는 거예요. 난민들이 머물 숙소도 턱없이 부족하고요. 다행히 지진 참사 직후 실의에 빠져 있던 아이티 사람들 사이에서‘다시 한 번 일어나 보자’라는 움직임이 일고 있어요. 아이티가 재건되는 데는 10~20년이 걸린다고 하는데, 그렇게 되기까지는 지속적인 관심과 도움이 필요합니다.”
-아이티를 떠나는 발걸음이 가볍지 않았을 것 같아요.
“더 많이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뿐이죠. 나중에 기회가 되면 또 한번 가고 싶어요. 가서 텐트도 더 많이 쳐 주고 이번에 인연을 맺은 아이들도 다시 만나고 싶고요.”
-석규에게도‘아빠 잘 다녀왔다’고 인사하러 가야죠.
“네. 아이티에서 사용한 ID카드도 주고, 비행 경유로 뉴욕에 잠시 들렀을 때 잘 알고 지내던 분이 선물로 주신 귀한 성경책도 함께 가져다 줄 생각이에요. 저는 우리 아들이 항상 곁에서 지켜보면서 ‘아빠, 좋은 일 많이 해’라고 격려해주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으면 힘닿는 데까지 도울 겁니다. 아이티가 그 시작이고, 얼마 전에는 광고 모델 계약을 했는데 ‘사랑의 밥차’후원을 계약 조건으로 내걸었어요. 식사를 거르는 분들께 한 달에 한번씩이라도 달려가 따뜻한 밥을 대접할 생각이에요.”
처음엔 ‘왜 이런 시련을 주나’ 원망했지만 이젠 아이가 떠난 빈자리 잘 채울 생각
석규의 장례식 내내 잊히지 않는 모습이 있다. 몇 번이나 실신을 거듭하면서도 끝까지 아들의 마지막 가는 모습을 놓치지 않으려고 했던 석규 엄마의 모습이다. 하지만 석규 엄마는 동시에 자신이 딸 연지(12)의 엄마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마음을 추스른 이광기의 아내는 지난 1월 경기도 파주 교하에 그림 동화책 교실 ‘바퀴 달린 그림책’을 열었다. 오래 전부터 준비했던 일이고 지난해 11월 오픈할 계획이었지만 석규 일로 미뤄졌던 것이다. 그의 아내는 이곳에서 스토리를 만들고 그림을 그려 자신만의 책을 완성해가는 아이들을 도우며 삶의 새로운 의미를 찾고 있다.
시련을 통해 그의 가족은 서로의 존재에 뜨겁게 감사하게 됐다. 연지는 엄마 아빠 앞에서 더 이상 어리광을 부리지도, 울지도 않는 의젓한 딸이 됐다. 그런데 그런 딸의 모습이 아빠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한다. 지금 그의 바람은 연지가 그늘 없이 밝게 잘 자라주는 것이다. 그래서 이광기는 바쁘다. 하늘나라에 있는 석규에게 자랑스러운 아빠가 되기 위해 좋은 일도 많이 해야 하고, 연지와 예쁜 추억도 많이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티 구호활동 다녀온 이광기 가슴 찡한 고백

1 4 부모를 잃은 아이티 어린이들의 따뜻한 아빠가 돼준 이광기. 2 3 이광기는 아이들에게 아들 석규가 입던 옷과 석규의 그림으로 제작한 티셔츠도 나눠줬다.



-슬픔을 받아들이는 첫 단계는 원망이라고 합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는지, 원망스럽지 않았나요.
“처음에는 ‘열심히 살려고, 부끄럽지 않은 가장이 되려고 노력한 나에게 왜 이런 시련을 주시나’ 라는 생각에 견디기 힘들었어요. 그런데 어떤 분이‘성경에 나오는 욥은 하나님이 자식을 데려가고 고난과 시련을 줬는데도 항상 그분을 섬기자 나중에 잃었던 자식 그 이상을 주셨다’라는 말씀을 해주시더군요. 그 얘기를 들으면서 ‘나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런 고통을 겪는구나. 나도 견뎌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일이라면 아이가 남기고 간 빈자리를 잘 채우는 게 제게 남겨진 몫이겠죠.”
-연지 엄마도 같은 마음일 듯합니다. 최근 다시 일을 시작했다고요.
“연지 엄마가 처음엔 포기하려고 했어요. 아이들 얼굴을 보면 자꾸 석규 얼굴이 떠오를 것 같아 자신이 없다고요. 그런 아내를 제가 설득했어요.‘언제까지나 피해갈 수 없다. 한번 부딪혀 보자’고 했죠. 다행히 연지 엄마 스스로, 제가 아이티로 떠나기 보름 전 침대 머리맡에 뒀던 아이 영정사진을 보자기에 싸서 치우고 그 자리에 가족사진을 걸더군요. 연지 엄마나 저나 언제까지나 슬퍼할 수 만은 없어요. 그리워는 하되 슬퍼하지 말고 행복하게 살자고 했어요. (아이를 잃은 슬픔은) 영원히 안고 가는 거니까.”
-석규를 잃고 나서 미니홈피를 통해 사람들에게 ‘아이와 추억을 많이 쌓으라’고 했던 게 기억이 납니다.
“저희도 사교육에 관심을 가졌지만 이런 일을 겪고 나니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더군요. 그나마 마음의 위안이 되는 건 아이와 틈이 날 때마다 놀아주며 추억을 많이 만들어줬다는 거예요. 그림도 많이 그리고 놀이공원에도 자주 가고 특히 석규가 눈을 좋아해서 겨울이면 스키장에 많이 다녔는데… 올 겨울에는 어찌나 눈이 많이 오는지….”
-석규로 인해 삶의 방향이 바뀐 듯합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더 이상 잃을 게 없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가벼워요. 제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이 제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았기에 재물에도 관심 없고 어떤 목표를 세우지도 않을 생각입니다.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순간 사심이 끼어들고 욕심이 생길 것 같아요. 그저 석규가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고 모든 일을 순리대로 풀어나갈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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