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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아름다운 모자

어머니와 함께 한 다니엘 헤니 프라이버시 인터뷰

“한국에서 활동하며 보육시설에 있는 어린이들과 혼혈아들 돕고 싶어요”

글·송화선 기자 / 사진·김형우 기자 || ■ 장소협찬·알마마르소

2005. 08. 31

지난 여름 ‘내 이름은 김삼순’이라는 단 한 편의 드라마를 통해 대한민국을 사로잡은 남자 다니엘 헤니. 그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 크리스틴 헤니씨와 함께 인터뷰에 응했다. 함께 인종차별의 벽을 넘으며 한층 더 단단해진 모자 간의 사랑 & 앞으로의 계획.

어머니와 함께 한 다니엘 헤니 프라이버시 인터뷰

다니엘헤니(26)와 그의 어머니 크리스틴 헤니씨(48)를 만나기로 한 곳은 커다란 투명 유리문이 인상적인 서울 압구정동의 한 꽃집이었다. 약속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는 그를 기다리다 오른쪽으로 살짝 고개를 돌렸을 때, 마침 유리문 저편에서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는 다니엘이 눈에 들어왔다. 무심하게 걸음을 옮기던 그는 유리문 너머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발견하고는 이내 환한 미소를 건네왔다.

“엄마가 나오는 순간 이곳이 엄마의 나라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MBC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변해버린 사랑 앞에 고통스러워하는 희진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의사 헨리 역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 그는 이 드라마가 종영된 뒤 각종 CF에 출연하며 최고의 스타로 주가를 올리고 있다. 드라마 속에서 희진을 위로하고 격려하던 다니엘의 미소는 으레 ‘꽃미남’에 열광하게 마련인 소녀 팬들뿐 아니라 중년 여성들, 심지어 남성들의 시선까지 사로잡아 지금 다니엘은 음료부터 남성용 화장품, 의류, 가전제품, 항공사까지 전 세대를 겨냥한 CF에 모두 출연하는 유일한 모델이 됐다.
널리 알려져 있듯 다니엘의 어머니는 한국에서 태어나 세 살 때 미국으로 보내진 입양아 출신. 그의 아버지는 영국계 미국인 필립 헤니씨(58)다. “체구는 아버지를 닮고, 얼굴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반반씩 닮았다”고 말하는 다니엘은 드라마를 통해 주목받기 시작하면서부터 “한국에 남아 있는 어머니의 뿌리를 찾고 싶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그리고 어머니 헤니씨가 7월 말 한국을 방문하면서 다니엘의 바람은 일정부분 현실화됐다. 아버지 헤니씨는 직장을 오래 비울 수 없어 동행하지 못했다고.
“제 입양 서류에는 ‘황해즐’이라는 한국 이름과 부산의 한 보육원 이름이 적혀 있어요. 미국에 살면서도 늘 내가 태어난 곳, 날 낳아준 부모에 대한 그리움을 갖고 있었죠. 다니엘이 한국에서 활동하게 됐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났어요. 아마 아들이 이렇게 날 불러서 내가 태어난 곳에 다시 오게 해줄 거라고 생각했나봐요. 한국은 늘 상상하던 꿈 속의 도시보다 훨씬 현대적이고 아름다워요.”
전형적인 한국인의 모습을 한 헤니씨는 미소를 띤 채 한국에 대한 감상을 쏟아냈다. 그는 보름 동안 한국에서 다니엘과 함께 지내며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을 했다고 한다. 공항에 도착한 순간 자신을 반기는 수많은 인파와 카메라 세례에 둘러싸였고, 이후 어디를 가나 많은 이들의 따뜻한 환대를 받았다고.
“부산에서는 한 식당에 갔다가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바람에 돌아나온 적이 있어요. 다니엘을 보는 사람은 누구나 나에게도 미소를 보내줬죠.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어요. 인사동에서는 제가 편하게 구경할 수 있도록 다니엘이 차 안에서 기다렸는데, 혼자 다니는 동안에도 모든 사람이 따뜻하게 대해주더라고요. 그제야 친절이 한국인의 천성이라는 걸 알았어요.”
헤니씨는 한국에 있는 동안 서울뿐 아니라 자신의 흔적이 남아 있을지도 모를 부산과 다니엘이 ‘너무 아름다운 곳’이라고 소개한 제주도 등 여러 곳을 여행했다. 입양된 뒤 너무 오랜 시간이 흐른 탓에 뿌리를 찾을 만한 단서는 얻지 못했지만, 자신과 똑같이 생긴 다정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를 마음껏 돌아다닌 것만으로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행복했다고 한다. 들떠 있기는 다니엘 역시 마찬가지였다.
“엄마가 공항에서 나오는 모습을 보는 순간 이곳이 엄마의 나라라는 걸 알았어요. 미국에서는 어디를 가나 엄마만 눈에 띄었는데, 여기서는 모두 엄마랑 똑같이 생겼잖아요. 입국 게이트를 통과하는 엄마를 못 찾을까봐 눈을 부릅떠야 했죠.”
헤니씨는 한국에 있는 동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다니엘을 기겁하게 했던 산낙지뿐 아니라 전복, 설렁탕 등 다양한 한국 음식도 먹어보았다고 한다. 그는 한국에 머무른 지 다섯 달이 넘은 다니엘보다 훨씬 더 빨리 한국 생활에 적응했다.

“오늘 아침엔 일어났는데 엄마가 없는 거예요. 혼자 숙소 앞 마켓에 물건을 사러 나갔다 왔다고 하더라고요. 엄마는 한국말을 한마디도 못하는데 겁이 없어요(웃음). 어디를 가나 디카를 들고 다니면서 제가 나온 광고판을 찍는데, 어제는 제 사진이 붙은 버스 광고판을 찍겠다고 혼자 버스 정류장에 나가서 한 시간을 기다리기도 했죠. 결국은 사진을 찍고 즐거운 얼굴로 돌아왔어요.”
TV 쇼에서 ‘호이짜 호이짜’ ‘좌우지 장지지지~’ 등을 흉내내 보는 이들을 웃게 만든 다니엘의 장난기는 상당부분 어머니를 닮은 것. 헤니씨는 길을 걷다가도 여고생들이 다니엘에게 달려드는 모습을 보면 카메라를 찾아 사진을 찍는다고 한다. “재미있기 때문”이다.

혼혈아라는 이유로 아이들에게 괴롭힘 당하는 아들 지켜준 엄마
어머니와 함께 한 다니엘 헤니 프라이버시 인터뷰


헤니씨의 이런 씩씩함과 유쾌함은 어린 시절 다니엘에게 큰 힘이 되곤 했다. 특히 백인들만 사는 동네에서 다니엘이 인종차별로 고통받을 때 헤니씨는 그가 든든하게 기댈 수 있는 기둥이 되어주었다.
“열한 살 때 스쿨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는데 쉬크라는 아이가 절 기다리고 있었어요. 지금도 그 친구의 이름을 기억하는 건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절 몹시 괴롭혔기 때문이죠. 그 친구가 학교 담장 뒤에서 눈싸움을 하자고 해서 따라갔는데, 다른 친구들과 함께 뒤통수를 때리고 발로 걷어차는 거예요.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을 만큼 세게 맞았어요. 깨어보니 그 아이들이 내 왼손을 밟아서 손가락이 모두 부러져 있었죠.”
한 무리의 백인 꼬마들은 다니엘을 둘러싸고 “다시 해볼래?”라고 물었다고 한다. 다니엘은 “너희는 참 불쌍한 사람들”이라고 말하며 혼자 그들을 헤치고 걸어나왔다.
“한때는 내 얼굴 색이 싫어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한 적도 있어요. 그런데 우리 엄마가 날 다시 일으켜줬죠. 엄마는 정말 강한 사람이에요. 항상 웃고 있지만 얼마나 터프한데요. 제가 괴롭힘을 당했다는 걸 알고 엄마는 학교에 가서 그 아이들을 직접 만났죠. 날 때리던 아이들이 얼마나 겁에 질렸는지(웃음). 그 뒤로는 아이들이 절 괴롭히지 못했어요.”
괴롭힘을 당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다니엘은 곧 인기인이 됐다. 자라나면서 매력적인 외모를 갖게 됐고, 농구선수로도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다니엘의 모교인 미시간주 칼슨 시티 크리스털 고등학교의 농구팀 코치는 최근 한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다니엘은 한 경기에서 혼자 28점을 득점하며 우리 학교를 우승으로 이끈 팀의 리더이자 포인트 가드였다. 방어와 패스, 리바운드, 득점 등 모든 면에서 탁월했다. 그는 매일 8마일(약 12km)씩 뛸 정도로 운동에 열심이었다”고 말했다.
다니엘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학교에서 가장 인기 있는 남자 1명에게 주어지는 ‘프롬 킹(prom king)’ 칭호를 받기도 했다고 한다.
“제 고향 미시간에서 운동은 더 큰 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 일종의 티켓 같은 거였어요. 형제 자매가 없으니 혼자 할 수 있는 농구를 매일 몇 시간이고 연습하다 제게 소질이 있다는 걸 알았죠. 농구를 하면서 좋은 친구를 많이 만났고,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도 꾸게 됐어요. 그때는 매일 밤 잠들기 전에 ‘하느님, 제가 NBA에 진출해 마이클 조던 같은 선수가 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할 만큼 간절히 농구선수가 되기를 바랐어요.”
하지만 대학에 진학한 뒤 다니엘은 자신이 NBA에서 성공할 만큼 뛰어난 농구선수가 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실력도 문제였지만, 스포츠계에 널리 퍼져 있는 동양인에 대한 차별 역시 그의 발목을 잡았다고. 대학팀 감독은 다니엘을 벤치에만 앉혀두고, 출전 기회조차 제대로 주지 않았던 것이다.
“모델의 기회는 사실 우연히 찾아왔어요. 모델 지망생인 친구를 오디션에 데려다주고 주차장에 앉아 기다리는데 한 에이전트가 다가오더니 ‘차도 낡았는데 돈 벌고 싶지 않냐?’고 하더라고요. 당시 전 경제적으로 별로 넉넉하지 않았거든요. 모델 일을 하면서 처음으로 수입을 갖게 됐죠.”
헤니씨는 운동선수가 될 줄 알았던 아들이 모델이 되겠다고 했을 때 처음에는 놀랐다고 한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TV 쇼 장면들을 흉내내며 자신을 즐겁게 해주던 ‘창의적이고 스타일리시한’ 아들이 분명 훌륭한 모델이 될 것이라고 믿고는 지원하고 격려하는 쪽으로 마음을 돌렸다. 하지만 처음 한동안은 아들을 자주 볼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많이 힘들었다고 한다.



어머니와 함께 한 다니엘 헤니 프라이버시 인터뷰

“모델이 된 뒤 전 뉴욕으로 집을 옮겼고, 곧 대만 홍콩 등 아시아 각지를 돌며 일을 하게 됐어요. 몇 달씩이나 계속 집에 못 가게 된 거죠. 제가 처음 홍콩에 머무르면서 3개월 동안 엄마를 보지 못했을 때 엄마는 거의 쓰러질 지경이었어요. 이번에도 엄마를 8개월 만에 본 거예요. 엄마나 저나 그게 가장 힘들죠.”
대신 다니엘은 어머니가 그리울 때마다 전화를 건다고 한다. 이들 모자는 거의 매일 전화로 이야기를 나눈다고. 다니엘이 한국에서 활동을 시작한 뒤에는 감동과 흥분으로 함께 눈물 흘린 일도 많았다고 한다.
“다니엘이 한국에서 많은 일을 하고 있고, 큰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막상 한국에 와보니 생각보다 훨씬 멋있더군요. TV에서 다니엘의 광고를 몇 개 봤는데 아주 잘생겼던 걸요(웃음).”
헤니씨는 “어머니가 보기에도 다니엘이 매력적이냐”는 질문에 “물론이죠(definitely)”라고 답했다.
“다니엘의 팬들은 외모만 보고 매력을 느끼겠지만, 사실 다니엘은 내면이 훨씬 더 아름다워요. 나는 다른 사람들이 다니엘의 매력을 알아채기 훨씬 전부터 그가 멋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고요(웃음).”

“외모보다 내면이 훨씬 더 아름다운 내 아들”
다니엘은 지난 7월26일 혼혈 어린이 지원단체인 펄벅재단 한국지부가 주최한 ‘혼혈 아동 희망 나누기’ 행사에 참가해 “지금은 많이 힘들겠지만, 혼혈이기 때문에 남들이 할 수 없는 경험을 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배울 점도 많다”며 용기와 희망을 가질 것을 당부했다. 그는 어린이들을 한 명씩 안아주며 자신이 고른 팔찌를 선물로 나눠주기도 했다.
헤니씨는 “고통스런 어린 시절을 보낸 다니엘은 늘 입양아나 혼혈인으로서의 삶 때문에 힘겨워하는 어린이들을 돕고 싶다는 이야기를 해왔다”며 “이제부터 다니엘과 함께 한국의 입양기관이나 어린이 보호시설을 돕는 활동을 할 생각”이라는 뜻을 밝혔다.
“경제적인 도움도 필요하겠지만 돈만 내고 모른 척하는, 그런 후원은 하고 싶지 않아요. 엄마와 제가 직접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이 뭘까 생각하고 있어요. 엄마는 늘 저에게 입양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에 대해 이야기했죠. 모든 사람에게 집은 꼭 필요한 거라고요. 저도 아이들이 좋은 부모를 만나지 못해 18, 19세까지 보호시설에 남아 있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버려진 아이가 새로운 부모를 만나는 일, 혼혈인들이 차별받지 않고 살 수 있도록 세상을 조금씩 변화시켜나가는 일에 제가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어머니와 함께 한 다니엘 헤니 프라이버시 인터뷰

아름다운 미소로 대한민국을 사로잡은 남자 다니엘 헤니와 어머니 크리스틴 헤니씨.


다니엘이 자신 있게 한국에서의 활동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이제 그가 우리나라를 활동 근거지로 삼을 것이기 때문이다. 원래 한 화장품 회사의 CF를 찍기 위해 한국에 왔던 그는 출국 직전 ‘내 이름은 김삼순’에 캐스팅 된 뒤 자신의 인생항로를 변경할 만큼 큰 사랑을 받았다.
다니엘은 “드라마가 끝나기 전부터 여러 곳에서 출연 제의가 들어왔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세계 각국을 돌며 모델 활동을 하겠지만, 한국에 머무르며 좋은 작품에도 출연하고 싶다”고 말했다. 다니엘의 소속사 관계자도 “다니엘은 한두 달 머무르다 떠날 사람이 아니다”라며 “첫 드라마의 반응이 워낙 폭발적이었기 때문에 다음 작품을 고르는 데 더 조심스럽지만, 조만간 브라운관을 통해 다시 인사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외모뿐 아니라 마음까지 아름다운 다니엘을 한국에서 좀 더 오래 보고 싶다는 기대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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